형과의 사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내 기억이 생생한 부분부터 희미한 그 지점까지 쭉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생이 된 형은 좁고 투박한 이 집을 떠났다. 더 넓은 곳에서 하고 싶은 공부를 원 없이 하는 게 형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가지 말라며 붙잡고 싶었지만 참았다. 숙제를 하던 형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을 때처럼 그저 가는 형의 발걸음만 눈으로 쫓았다. ‘잘 가.’하고 손을 흔들어 주지도 못했다. 참을 수는 있었지만 끝맺음하는 신호는 하기 싫었던 것이었다.
형과 같이 쓰던 방은 나 혼자만의 것이 되었다. 몸집이 커진 형제 둘이서 쓰기엔 정말 비좁았었는데, 형의 자리가 넓었다는 것을 새로이 깨달았다. 형이 쓰던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보았다. 형이 쓰기엔 조금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리고 손장난을 치다가 형을 따라해 보았다. 공책을 펴들고 연필을 쥐고. 가는 선을 여러 번 덧칠했다. 선들이 겹쳐지고 점점 더 짙어졌다. 나는 연필을 내려놓았다. 형은 잘하던데…….
방학 때가 되면 형은 집으로 돌아왔다. 키도 좀 더 커지고 안색도 좋아보였다. 다행이라며 형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장난을 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내 스스로 형에게 먼저 인사하는 법을 잊게 했다. 서운함? 이게 서운하다는 감정인가? 그렇게 정의하고 싶지는 않았다. 형이 좋아하는 것인데 괜히 내가 아니다 라며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고 싶지는 않았다.
형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 퍽퍽한 흙 땅 위에 아버지와 내 얼굴을 그려주는가 하면 내 열세 살의 생일날 하얗고 보드라운 종이 위에 정성스럽게 멍구와 아버지, 그리고 우리 집을 그려주었다. 삼년이 지난 지금, 큰 책 사이에 끼워 둔 그림을 조심스럽게 꺼내보았다. 하얗던 종이가 조금 노란빛을 띠고 깔끔하던 흑연자국이 번져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꼭 형을 연상시켰다. 그림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책의 페이지들을 훑었다. 작은 종잇조각이 제 크기만 한 소리를 내며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곱게 접혀진 종이를 펴보았다. '이홍빈' 또박또박한 글씨가 여유 있게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길고 동그랗게 난 연필길이 흐릿해져 곧 사라질 듯 했다.
어느 새 12월의 마지막. 내 열일곱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곧 겨울방학일 텐데 형의 소식은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름방학에도 반나절 머물다 가더니 이번 방학에는 아예 안 올 생각인가.
봄기운이 차츰 피어오르던 날의 토요일, 형이 갑자기 찾아왔다. 별 일은 아니고 안부를 물을 겸 왔다고 했다. 형은 말하는 내내 은은한 미소를 보이더니 내게 시선을 멈추었다. 시선을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 척 해야 할지 갈등이 생겨났다.
“홍빈아, 형 친구들 볼래?”
무엇에 이끌린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형은 휴대전화로 잠깐 통화하는 듯싶더니 대여섯 명 정도의 친구들을 마당으로 불러 들였다. 그들은 단정해 보였고 동시에 지적인 느낌도 들었다. 무엇보다도 내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형은 밝은 웃음과 함께 친구들을 차례차례 소개해 주기 시작했다.
밝은 모습이 보기 좋았다. 밝은 모습이 보기 힘들었다. 잘 지내는 것 같아 좋았다. 잘 지내는 것 같아 미웠다. 형의 친구들이 고마웠다. 형의 친구들이 싫었다. 나는 아직 형 하나뿐인데 형은 아니었다. 나 말고도, 다른 이들이 많았다. 나 아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