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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그 허망한 것에 대하여.
'요즘. 무슨 생각 하면서 지내요? ‘
‘옛날요. 옛날 일.’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사랑을 했었어요. 정말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때, 기분이 어땠어요?’
‘...’
대답을 하던 사람은 날 보며 웃어보였다. 상담을 시작한지 한 달이 다 되가는 동안 날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그 사람은 처음으로 그의 눈에 날 담았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행복했었는지, 아님 불행했었는지 모르겠어요.’
그의 눈빛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듯이. 화사하게 웃었다가 한쪽 눈썹을 찡그리기도 하며 그 시절의 그를 상상하는 듯 했었다.
그때, 우리가 사랑했던 그 때. 나는 널 어떤 기분으로 마주하고 있었을까...
-
그러니까 그날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은 눈이 굉장히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걸어가던 중 얼었던 몸을 녹였다 가기위해 들어갔던 카페 안에서 우리는 마주쳤었다. 같은 교복. 학교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났던 너는, 첫 인상이 어땠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운아..우리 사귈래?”
“..그래”
같은 학교를 다닌 지 1년. 이제 2년차가 다 되어갔지만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한 채 일 년여를 지나 한 겨울, 펑펑 눈이 내리던 날 처음 만났다. 그 이후 나는 계속 너와 마주쳐 사이가 가까워졌고 6월의 따스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올 때, 너는 수줍은 듯 웃으며 내게 고백해왔다. 나는 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사실 너는 몰랐겠지만 너는 내가 첫 눈에 반했던 내 첫사랑이었다. 첫눈에 반하다. 첫사랑. 이 말처럼 세상에 이렇게 진부한 말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이게 진짜 내 마음이었고, 유치하지만 참 순수했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언젠가부터 네가 날 보던 눈빛이 나와 같다는 걸 느꼈다. 그 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내 마음을 숨겼었고 하루에도 수백번씩 고민하고 망설이던 찰나 네가 용기 있게 먼저 나에게 건네 온 고백이었다. 나는 네 용기를 덥석 잡은 겁쟁이일 뿐이었다. 나도 이제 네 용기에 따라서 너에게 사랑을 담뿍 주고 싶었다.
누구보다 예쁘게 사귀고 있었다. 우리 사이를 아는 친구들은 모두다 질투를 할 정도로. 너는 나만을 바라봤고 나도 너만을 바라봤다. 반이 서로 달랐던 우리. 너는 수시로 카톡과 문자등을 내게 보냈고 점심시간, 저녁시간은 물론 쉬는시간 마다 날 찾아왔었다. 처음에는 그게 과연 질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너의 행동들은 귀엽기 그지없었다. 볼을 살짝 꼬집어주면 너는 몸을 배배 꼬며 부끄러워했었고 그런 너를 보는 나는 네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너는 부모가 한명 없다고 말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함께 산다며 언젠가 내게 덤덤하게 말했었다. 그래. 요즘 세상에 한 부모 가정이 한둘도 아니고, 대신 한사람이 주지 못한 사랑을 내가 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사랑을 주면 줄수록 너는 내가 온전히 너만을 보고 있단 걸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 처음 사랑을 받아보는 어린아이같이 너는 내 사랑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물을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난 듯 너는 내 사랑을 갈구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듯 너는 불안을 넘어서 집착이란 걸 내게 보여주었다. 처음엔 널 다독여줬다. 꼭 안아주고 너만 사랑한다 항상 귓가에 속삭였다. 하지만 너는 그러면 그럴수록 날 더 옥죄어왔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점점 네게 지쳐가려던 참이었다.
어느 날, 그러니까 정말 어느 날. 너는 갑자기 나를 떠나갔다. 학교에선 네가 유학을 갔다고만 전하고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말없이 떠난 네게서 이유를 찾기란 참 쉬웠다. 몇 주 전 아버지의 장례식 때문이였을 것이다. 갑작스런 연락을 받고 달려간 장례식장에 너는 턱없이 커 보이는 상복을 입고서 힘없이 서있었다. 나는 네게 다가가려 발을 뗐다. 그 때. 누군가 네게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밥그릇을 집어던졌다. 나는 얼른 달려가 그를 봤지만 그는 나 따윈 안중에도 없는 듯 너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을 퍼부었다.
“지 부모 다 죽인 호로새끼.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틀림없어. 저 놈은 귀신이 씌인게야. 아이고 하연아..이제 학윤이까지 자식새끼 하나 때문에 다 떠나보냈네..아이고 아이고..”
뜨거운 육개장 국묵을 흠뻑 뒤집어쓰고도 너는 그 자리에 묵묵히 서있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네 탓을 할까.. 그들 스스로가 힘들어서 끊은 목숨인데. 남은 핏줄이라고 해서 너를 욕하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가만히 네가 덮은 육개장 국물을 치우고 너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조용한 곳에서 너는 어떻게 참았을까 신기할 정도로 펑펑 울어댔다. 내 옷깃을 꼭 쥐며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너무 미안하다고.. 그렇게만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네 옆에 있어줄게. 내가 다 지켜줄꺼야. 그러니까 불안해 하지마.. 쉬이. 착하지, 연아. 다 괜찮을거야. 약속할게. 너를 꼭 지켜주겠다고. 뚝 하자 뚝..
너를 토닥여주며 겁쟁이인 나는 그 순간만큼은 굳게 다짐했다. 절대로 널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었다. 하지만 이 약속을 한 지 2주 만에.. 너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떠나가 버렸다.
네가 훌쩍 떠나버리고 나서 학교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모두 다 너에 관한 얘기였다. 사실은 아빠랑 둘만 사는데 뒤를 대주는 창부였더라. 사창가를 들어가는 걸 봤다. 아버지가 조폭인데 쫓기는 상황이라 도망을 갔다더라. 너에대한 소문은 삽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깡깡 얼어붙어 깨지지도 않아 쉽사리 진실을 표명할 수가 없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친구들이 왜 나서지 않느냐며 나보고 용기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용기가 아니라 욕심일 뿐이었다. 어차피 듣고 싶은 사실이 아니면 두 귀와 눈을 막고서 아무것도 들으려 하지않는 현실을 먼저 겪어본 나는 그들의 입을 그냥 그대로 놔두기만 했다. 뜨거운 냄비처럼 그들은 냄비가 식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일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나도 내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결코 너를 잊기 위해서 몰두한 게 아니었다. 네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조금은 지쳐가던 내 마음에 약간의 휴식을 주는거라 생각했다. 네가 다시 돌아오면 나는 예전처럼 똑같이 너를 마주할 수 있겠지. 굳게 믿으면서 고등학교 3학년 생활을 네가 없는 채로 그렇게 보냈다. 치열했던 수험기간을 보내고 드디어 모든 것을 결정짓는 마지막 날. 모든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학교를 나왔다. 교문 앞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 그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도 몰랐던 네가 내 앞에 서있었다. 너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해맑게 웃던 입도, 예쁘게 접히던 눈꼬리도. 조금은 까무잡잡한 피부까지. 얼른 달려가서 널 꼭 끌어안아줬다. 모든 게 궁금했다. 어딜 다녀 온 건지, 왜 그랬는지. 나.. 보고 싶진 않았는지. 하지만 묻지 않았다. 이렇게 돌아와 준 것 만으로도 기뻤으니. 널 안고 네 향기를 맡아서 안심이 되었으니..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다시만난 너는 처음의 웃고있던 눈꼬리에 점점 눈물이 맺히더니 엉엉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너는 예쁘게 눈꼬리를 접으며 말했다.
“나..나 돌아왔어 운아.”
“응. 잘 왔어. 너무 잘 왔어. 연아.”
“응...응”
나는 지쳤던 마음이 이제는 휴식을 취해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에 진학했고, 너는 1년을 쉰 탓에 고등학교를 일 년 더 다녀야했다. 성인과 성인이지만 고등학생의 신분을 갖고 있던 우리 둘의 사이는 예전과 같이 변함이 없는 듯싶었다.
‘운아.’
‘운아 왜 답이 없어?’
‘운아. 운아 바빠?’
‘많이 바쁜가보네...’
언젠가부터 너의 연락을 보고도 못 본 척 하게 되었다.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카톡소리에 알람을 끄고 시간을 보내면 문자를 보내왔고, 너의 학교가 쉬는시간 일 때면 어김없이 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다시 돌아온 너를 나는 웃으며 안아줬고, 우리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듯 했지만 우리사이는 그렇게 쉽게 돌아가지 못한 듯싶었다. 너를 예전과 똑같은 시선으로 보려고 몇 번이나 노력했었다. 질투를 하는 것도 귀여워 보이지 않을까. 볼을 살짝 꼬집으면 너의 패턴은 똑같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점점 네게 거부감을 느꼈었다.
‘카톡 왜 안 봐? 많이 바쁜 거야?’
“응”
‘아.. 아 그럼 오늘 혹시 마치고는 시간 돼? 나 오늘 야자 안하는데. 우리 오랜만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어.. 오늘 할 일이 많아서 안 되겠는데. 미안하다.”
‘아..뭐 때문에? 많이 바쁜 거 아니면 나랑 저녁이라도 먹고 들어가면 안될까?’
“안 될 것 같아. 집에 먼저 들어가 있어”
‘응..’
20살이 됨과 동시에 집에서 나와 자취를 했던 나는 너와 같이 살고 있었다. 그때의 변명도 너와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거짓말을 해버린 것이다. 친구를 붙잡아 술잔을 기울이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12시를 훌쩍 넘어있었고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걸어갔다. 어두컴컴한 집의 불을 켜자 소파위에 네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차학연.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얼른 들어가서 자.”
“술..마신거야? 오늘 바쁘단 게 술 때문이었니? 누구랑 마신건데? 여자랑 마신거야?”
너는 소파위에서 끌어모았던 다리를 내리고 날카로운 시선을 내게 던지더니 소파에서 내려와 날 붙잡고 소리쳤다. 난 그런 게 아니라며 널 밀어냈지만 너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나에게 화를 냈다. 난 피곤하다며 너를 피했고 너는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더 날 몰아세웠다.
“”어떤 년이랑 술 마시고 왔는데? 저번에 카톡하던 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니?“
“차학연. 그만해”
“아. 아님 몸 파는 년이야?”
“그만하라고 그랬지”
“뭘 그만해. 내가 뭘 했는데?”
더 이상 너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집을 나왔다. 너는 어디 가냐며 소리쳤지만 듣지 않고 그길로 집을 나와 버렸다. 점점 지겨워졌다. 우리 사이가. 예전의 네가 맞는 건지, 아니면 그 옛날의 내가 사라진 건지.. 한 가지 확실한건 너와의 사이가 이제 점점 두근거리지 않는단 것이었다. 거리를 방황하다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너는 소파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고 얼굴의 눈물자국은 그대로였다. 한숨을 쉬며 너를 안아들어 침대로 옮겼다. 널 옮긴 뒤 나는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커튼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눈을 떴다. 시계를 바라보면 너는 이미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을 시간이었고, 나는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조금 식은 밥과 국. 반찬들을 보고 수저 옆에 놓여 진 쪽지를 읽었다.
‘어젠 미안했어ㅠㅠ. 사랑해’
쪽지를 바라보다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똑같은 패턴의 연속이 오늘따라 더욱 지루하게 여겨졌다.
지켜주겠다던 그 약속조차 희미하게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채 우리의 사이는 점점 시들어갔다. 이런 일이 한 열 댓 번은 더 반복이 되었을까.. 더 이상 너와 이렇게 마주하고 있을 자신이 없어졌다. 우리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이는 맞았던 건지. 그 옛날의 감정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이렇게 질투와 눈물만이 우리를 마주하고 있는 건지.. 더 이상 너를 바라봐도 두근거리지 않았을 때 그때 이미 너와 내 사이는 끝난 것 만 같았다. 한사람이 죽을힘을 다해서 끌어당기던 줄에 맞은편의 사람이 쓰러진 모습. 그게 그때 우리의 모습이었다.
나는.. 나는 결국 너에게 이별을 고했다.
“아무말도 안 할게. 사랑한단 말도. 좋아한단 말도, 네가 싫다면 하지 않을게. 그냥. 그냥 내 옆에만 있어줘. 그거면 되. 그것도 안되겠니?”
“연아. 난. 난 항상 네 옆에 있었어. 근데 넌 그것보다 항상 더 많은 걸 내게 바래왔어. 이젠 네 말을 들어줄 자신이 없다. 미안해.. 하지만 이게 내 최선이야 연아..”
너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주저앉았다. 남았던 정이라도 있던 것일까. 아님 그저 네가 불쌍한 동정심이었을까, 가녀린 네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싶었지만 거두었다. 집은 구해놨으니 일단 거기서 살고, 네가 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집을 비우라고 말했다. 뱉은 말의 내용은 너를 배려했지만 내뱉어진 말투는 차갑기 그지없었던 지독한 모순이었다.
주저앉아있던 너는 날 올려다보며 눈동자에 날 담았다. 모든 걸 잃었다는 그 허망한 눈빛, 그 눈에 날 담던 너는 일어서서 터덜터덜 집을 나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간 너를 기다렸다면 기다린 것일까, 나는 우두커니 서서 현관문을 바라봤다. 한참을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그래.. 돌아오지 않겠지 돌아오지 않을거야. 전부터 준비해 뒀던 집과 가까운 오피스텔의 비밀번호를 너의 문자함에 남겼다. 아직은 학교를 다녀야했던 너이기에 내가 너에게 주는 이별선물쯤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라는 변명을 준비했던 나는 이렇게라도 너와 조금의 여지라도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이제 잊어야지. 이렇게. 이렇게 떠나보냈으니 이젠 정말 널 잊어야지. 생각하며 집에서 혼자 소주병을 땄다. 참.. 사랑했었다고, 즐거웠던 추억이었다고. 이제 그 추억을 가슴속에 묻고 살아야한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소주를 들이키곤 잠에 빠졌다. 다음날 숙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모두 게워냈다. 내려가는 물과 같이 너도 모두 다 내려 보내리라 다짐했다.
-
너를 떠나보내기로 다짐한 지 1년여 정도가 흘렀을 것이다. 처음엔 역시나 힘들었다. 아직까지 배어있는 너의 향기가 나를 괴롭혔고, 가구마다, 공간마다 너와 함께한 추억이 눈앞에서 재생되었다. 하지만 네가 남기고 간 향기가 조금씩 사라지는 속도로 나는 너를 잊어갔다. 이렇게 천천히 너를 거의 잊어갔을 무렵, 너는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됐을 때였다. 너와 자주 가던 카페조차 이제는 거리낌 없이 드나들었지만 딱 한 가지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내가 너에게 맡겼던 너의 보금자리였다. 네가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됐을 때 떠나가라고 맡겼던 그 곳. 그 곳 만큼은 아직까지 발을 들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직 그 곳에 있을까, 혹여 마주치진 않을까. 마주친다면 나는 네게 웃으며 말을 건넬 수 있을까. 너는 날 어떻게 대할까.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너의 향기가 희미하게나마 기억나는 그 시점에서 네 보금자리에 발을 들이면 나는 옛날의 다짐조차 모두 잊어버리고 너를 안아버릴 것만 같아 쉽사리 그 곳을 찾아가보지 못했다.
너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까.
사람들과 몰려다니기를 그렇게 즐기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하는 자리에서 어쩔 수 없이 마신 술은 기분이 좋다기 보단 그저 답답했고, 그 기분을 떨치지 못해 슬쩍 빠져나와 비틀비틀 집으로 걸어갔다. 집 앞까지 간신히 도착해 문을 열기위해 손을 뻗던 그 순간. 좀 전의 가로등과 같이 눈꺼풀이 깜빡거렸다. 그 깜빡이던 눈꺼풀 속에서 내 눈동자가 비췄던 건 뭐였을까.. 눈동자가 비추는 걸 뇌로 전달하기도 전 내 뇌는 이미 방전상태가 된 듯 암흑으로 뒤덮였다.
눈을 떴지만 어두웠고, 눈앞엔 얇은 천이 시야를 가로막고 있단 걸 느꼈다. 순간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소리를 지르려 입을 벌렸지만 그제서야 무언가를 물고 있단 걸 느꼈다. 입으로도 눈으로도 말 할 수 없고 볼 수 없단 고통과 불안에 몸을 움직였다. 의자에 묶여있는 건지 몸을 움직이자 의자와 함께 움직였고, 팔과 다리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오랜만이다. 그치?”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잊었다고 자부했던 목소리. 환청처럼 목소리가 들렸다. 시야를 가렸던 끈이 스르륵 풀리며 밝은 빛이 들어와 내 눈을 찡그리게 만들었다. 찡그린 눈에 담긴 너는 1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다. 너는. 너는 아직도 날 보며 웃고 있구나.
“많이 아파?”
너는 쪼그려 앉아 의자에 묶여있는 날 올려다보면서 물었다. 너를 같이 마주보고 있으면 너는 고개를 숙여서 말을 했다.
“나는.. 나는 많이 아팠는데 너는 아프지 않았었구나. 그랬구나..”
“......”
입을 막고 있는 천을 가만히 물고서 너를 봤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네 목소리를 계속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 나 안 버릴 거라고 약속했잖아. 근데. 근데 왜 버렸어? 응? 왜..왜 날 버렸던 거야? 불안했어. 네가 떠나가고 나서. 난 이제 어떡하지..다시 네 옆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항상 생각했어. 네가 구해준 집에 들어와서 살면서 계속해서 널 봤었어. 근데..근데 넌 모르더라? 한번만. 한번만 돌아봐주지. 항상 네 뒤에 있었는데. 한번만.. 한번만 돌아봐주지 그랬어.“
사고의 정리도 되지 않은 채로 가만히 너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제 와서야 생각한 말들을 내뱉어본다면..너를 거의 잊어갔다고 말했었지만 사실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네가 살고 있었다. 이 음식을 보면 문득 아.. 네가 저 음식을 참 좋아했었는데. 처음 가는 공원을 산책하더라도 너는 걷는 걸 참 좋아했었지...이렇게 너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말을 끝까지 해주지 못한채. 나는 가만히 너를 바라보기만 했다. 너는 정말 내가 너를 잊었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미안했어. 이제는..이젠 정말 떠나줄게.”
너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주머니에서 뭔 가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그 물건을 네 손목에 갖다 대고 꾹 누르기 시작했다. 의자를 들썩였다.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막고 있는 천 조각 탓에 소리는 꽉 막힌 채로 나오질 않았고 너는 그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일어서서 얼른 가야했다.
“네가 아픈건 하지않을게. 난 아직 너를 사랑하니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궁금해서 그랬어. 과연..내가 이렇게 아프면 네 표정을 어떨까..날.. 날 다 잊었다면서. 그럼. 이제 네 마음은 안 아프겠네? 그치? 내가 이렇게. 이렇게 해도 넌 아프지 않은 거지?”
눈앞에서 네가 스스로 상처를 내는 걸 지켜봤다. 단지..단지 궁금해서 나를 이렇게 묶어놓고 네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널 보니 두려움보다는 너무나 미안했다. 나란 사람이 대체 너에게 어떤 사람 이길 래 네가 상처를 받아도 아프지 않을 것 이라 생각 한 건지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사랑해줬었는데..그렇게 미친 듯이 나를 갈망 했을 때 다독여줬었는데...그런 모습을 기억조차 하지 못 하는 너를 보니 슬퍼졌다. 너는 울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계속해서 나는 아프지 않을 것이라 중얼거렸다. 온 몸이 붉어진 너는 마지막으로 환히 웃으며 너의 눈에 날 담았다.
“이게..이렇게 너를 바라보는 게 사랑인 줄 알았어 나는..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제..널 더 이상 바라보지 않을게. 미안했어. 그리고, 정말 사랑해 운아..”
너는 마지막까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눈을 감고 미동도 없는 너를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너무나 두려워서 눈을 꾹 감으면 우리가 함께했던 행복했던 추억들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고, 그 기억마저 괴로워 눈을 뜨면 눈앞의 광경은 더욱더 지독했다. 잠들어 있는 널 바라본 지 몇 분이나 지났을까.. 현관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마지막까지 너는 내가 아픈 게 싫었던 모양이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이 집안으로 들어와 묶인 천들을 다 풀어주었다.
온 몸이 떨리는 와중에 나는 구급대원들을 다 제치고 너에게로 달려갔다. 온 몸이 붉었던 너. 마지막까지 예쁘게 감긴 눈과 눈꼬리에 아직까지 마르지 않은 눈물. 다 그대로인 것만 같았다.
-
‘진짜. 진짜 예뻤어요. 자고 있는 것 같이.. 그래서 흔들었어요. 일어나라고. 근데..근데 새빨간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질 않는 거예요. 무섭진 않았냐고요? 전혀요. 자고 있는 사람이 뭐가 무섭겠어요. 그냥. 그냥 그 아이가 눈을 뜨기만을 바랬어요. 눈을 떠서. 다시. 다시 날 바라봐줬으면 좋겠는데 눈을 뜨지 않았어요..’
그의 길고 길었던 이야기가 끝나고 우리의 상담은 끝이 났다. 길었던 이야기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 듯 했다. 싱긋 웃으며 감사하다고,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며 상담실의 문을 나섰고, 그를 보내고 나서 나도 서류를 챙겼다. 서류정리를 끝내고 외투를 집으려 뒤를 돌았다. 상담실의 뒤는 통유리였다. 옥상 바로 밑층이 병원의 상담실이었고 나는 뒤를 돈 그 순간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웃으며 상담실을 나섰던 그가. 수고했다며 고맙다고 인사를 전한 그가. 처음 비행을 시작하는 아기새 처럼 그렇게 날기를 바랬던 모양이었다.
비행을 시작한 그 순간. 내 눈에 담았던 그의 표정은 뭐랄까...미묘했다. 웃고 있었나? 아닌데. 입꼬리는 분명 내려가 있었다. 그럼 울고 있었나? 눈 꼬리는 분명 휘어져 있었는데. 아직도 그 기묘했던 찰나의 순간을 잊을 수 가 없었다. 가장 화려하게 빛났던 꽃 두 송이는 그렇게 비참하게도 끝을 맞이했다.
나는 아직도 강연을 나가면 그들의 황홀했지만 시렸던 사랑이야기를 전해준다. 덧붙여 질투란 그 허망한 것에 대해서도..그들은 사랑을 하는 동안 어땠을까.. 행복했을까..아니면 너무나도 불행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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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있는데요. 여기 오기 전에 그 아이의 집을 가봤어요. 그 아이..정말 저만 보고 있었더라구요.. 하나도 빠짐없이 싹 다..그는..그 아이는 정말 날 사랑했던 것일까요?’
-질투. 그 허망한 것에 대하여.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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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연홍차입니다^^ 하..하. 제가 저번에 말씀 드렸던 프로젝트 혹시 기억나시..나요? (소금소금) 사실 그 프로젝트가 7대악이었는데 초..총대님..ㅠㅠ 내 생애 첫번째 웹진이었는데..그랬는데에...ㅠㅠㅠㅠㅠㅠ 언젠가 오시겠죠.. 일단은 한번 올려봅니닿ㅎ 그때의 그 아등바등한 기억을 되살리며..하핳.. 제목에서도 보였듯이 주제는 '질투'였었습니다. 그런데ㅋㅋㅋ 전혀 글에 질투가 나타나있질 않네요..(그래서 제목을 저렇게 지은..거라고는 말 못해!!!;;;)이것 참..허헣..
아!! 아가야는 토요일, 늦어도 일요일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독자님들 또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기쁘네여!!!ㅎㅎㅎㅎ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ㅠㅠ 사랑합니다!!!!ㅎㅎㅎ
암호닉 몽쉘통통님. 달돌님. 요니별우니별님. 정모카님.달나무님,작가님워더 님,하마님,천사천재님,정인님 사랑합니다!!!
전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암호닉 부담갖지말고 막막 찔러봐여!!!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