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 - 나를 좋아하지 않는 그대에게
나를 좋아하지 않는 그대에게 上
내 마음 속에 네가 들어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내가 잠깐이라도 너의 마음속에도 있었던 적이 있을까 모르겠다.
아니, 불행하게도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너는 나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빛나는 사람이니까.
어느덧 너는 나에게 너무나도 큰 존재가 돼버렸다.
그래서 이제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매일을 우울 속에 갇혀 사는 나에게 너는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그 누가 봐도 보잘 것 없는 그런 인생을 살았다.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픔은 커져만 갔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도 겁이 났다.
정말이지 죽을 수가 없어서 살아온 것 같다.
나는 죽는 것조차 두려워서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다가 너를 만났다.
고등학교 때 나에게는 그 흔한 친구도 한 명 없었다.
내 학창시절은 다시 떠올리기 비참할 정도로 어두웠다.
학교에서는 미치도록 공부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집은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고 덕분에 나는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악착같이 공부를 했고 결국 모두가 인정하는 명문대에 입학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 자신을, 그리고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니 입학식이니 하는 행사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다.
나의 가난과 아픔이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으니까.
사람들의 비난마저 익숙해진 나는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개강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수업을 듣고 집으로 가려고 가방을 챙기는데
“어! 저기...”
“...”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엄청 작은 얼굴에 올망졸망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신입생 맞죠?”
“... 네.”
“오늘 개강파티 꼭 와요! 맛있는 거 많아요.”
안 갈 거라고 해야 하는데...
싫다고 해야 하는데 바보같이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그의 목소리가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래서 그날 뭣도 모르고 개강파티에 끌려갔다.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그곳은 정말 어색함과 불편함 그 자체였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친해진 듯 보였다.
“20살 맞아요?”
“... 아.. 네.”
“여기 다 스무 살이에요. 말 놓자 우리.”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는 이들이 낯설었다.
나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로 가득했던 고등학교 때와는 사뭇 달랐다.
“왜 오티는 안 왔어?”
“어.. 그냥...”
멍청하게 자꾸 말을 더듬었다.
“에이 괜찮아. 이제 친해지면 되지.”
내가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친구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소주를 꽤나 마셨더니 머리가 아팠다.
그래서 잠깐 바깥 공기를 마시러 나갔다.
나를 맞아오는 쌀쌀한 밤공기가 좋았다.
바람이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슬며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졸음이 밀려왔다.
“아무데서나 자면 안 되는데.”
강의실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사람이었다.
장난끼 가득한 웃음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스무 살이에요?”
“... 네.”
“나도 스물인데. 말 놓자!”
“그래.”
“아 아까는 미안해.. 행사 때마다 사람들을 모아야 하거든 내가.”
“...”
“아니면 나 혼나.”
“아...”
“과대 하게 됐어 어쩌다 보니까.”
과대라니...
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싱긋 웃음이 흘러나왔다.
웃음을 아예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빠삐코 왕창 사왔는데.”
“응.”
“웃는 게 더 예쁘다.”
나도 모르게 나온 웃음을 본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사고회로가 정지된 느낌이었다.
“아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 밝은 모습이 더 잘 어울려서...”
“... 괜찮아. 춥다 들어가자.”
화들짝 놀라 사과하는 그의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나는 옹성우야. 너는 이름이 뭐야?”
우리나라에 옹씨도 있나..?
이름마저도 그와 참 잘 어울린다 싶었다.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성유리..”
정말이지 내가 미쳤나 보다.
길을 걷다가도, 잠에 들기 전에도.
너의 그 특유의 말투와 눈빛이 자꾸만 떠올랐다.
끝이 행복할 거라고 기대한 적은 없다.
성우처럼 찬란하게도 빛나는 사람이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으니까.
그래도 그냥 좋았다.
그가 하는 모든 말이 좋았고 정말로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지독한 짝사랑의 시작이었다.
이제 대학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예상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다가와 주었다.
가끔은 함께 술을 마시기도, 놀러를 가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생할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재미라는 걸 느낀 것 같다.
그러다가 5월이 되었고 오늘 우리는 엠티를 가게 됐다.
사실 안 가려고 했는데 갈 수 밖에 없었다.
과대 옹성우의 모습은 보고도 또 보고 싶다.
화창한 날씨 덕에 다들 신이 났다.
그리고 나도 덩달아 신이 났다.
요즘 이런 내 모습이 내가 봐도 너무 신기했다.
짝사랑의 시선은 다 그런 걸까.
수많은 사람들 중에 너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여러분. 이번 게임은 짝피구예요.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팀이에요. 그래가지궁.. 네 뭐.... 다들 어떻게 하는지 알죠?”
성우를 보며 멍 때리는 사이 짝이 거의 다 정해졌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 없는 성유리 내가 구제해줄게.”
짝을 해주겠다며 나에게 다가오는 옹성우다.
또 한 번 눈치없이 내 심장이 나댔다.
옹성우가 과대였던 탓일까.
우리는 모두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나름 운동신경이 있다고 자부해왔는데...
끊임없는 공격에 정신이 혼미했다.
“야 좀 잘해봐.”
“알았어알았어.”
“... 으악!”
결국 보기 좋게 넘어졌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너무 쪽팔렸다.
“야 성유리.. 괜찮아?”
“... 나 쪽팔려.”
“일단 숙소 가자. 약 들고 온 거 있으니까.”
“다 까졌구만. 안 아팠어?”
“... 아팠어.”
사실 아픈 건 생각도 잘 안 났다.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내가 할게.”
“됐어. 이리 줘봐.”
성우는 다친 다리를 이리저리 보더니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줬다.
그리고 후 불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기저기 흉진 내 다리가 부끄러워서, 그리고 한없이 다정한 옹성우 때문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괜히 시선을 돌리느라 애썼다.
대학은 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은 아닌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게임이라는 술게임은 다 한 것 같다.
“오 유리다.”
그러다가 진실게임을 하게 됐는데 역시나 내가 걸렸다.
아...
하여간 운은 더럽게도 없다.
“음.. 뭐 물어보지?”
“...”
“좋아하는 사람 있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벌주를 마실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모르겠다.
“응.”
이미 올라온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내 마음이 너에게도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후에 조금은 묘한 표정의 성우가 보였다.
술을 마시는 동안 성우는 나에게 계속 물을 챙겨줬다.
“고마워.”
“에이 친구끼리 뭘.”
친구...
친구라는 단어가 무척이나 좋기도 했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아니, 사실은 많이 쓰라렸다.
혹시나 하는 내 마음에 거리를 두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엠티가 끝이 났다.
시간은 어김없이 빠르게 흘러갔고 피곤한 월요일이 되었다.
월요일은 동기들이 마치는 시간이 다 같은 날이라 함께 점심을 먹고는 했다.
그래서 오늘도 수업을 마치고 다 같이 문을 나서는 길이었다.
다들 미쳤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이 순간이 참 좋았다.
“성우야.”
누군가가 너를 부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굳어지는 성우의 얼굴이 보였다.
성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둘 사이에 내가 감히 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구나.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 도서관 앞에서 그 둘을 다시 봤다.
그렇지만 괜찮았다.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네가 행복하면 됐다.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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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이런 우울한 글 써와서 뎨둉합니다.. 제가 이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됐는데 급 영감이 떠올라서 막 주절주절 썼어요ㅋㅋㅋ 사실 주말에 올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글이 너무 안 써져서 이렇게나 오래 걸렸답니다ㅠㅠ 예전부터 짝사랑하는 글도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이 글은 뭔가 성우가 딱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옹으로 데리고 왔습니다ㅎㅎ 이번 글도 독자님들이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라며,, 별 일이 없다면 이번 주말에는 도서관 로맨스나 귀여운 김재환 뒷 편 써올게요:-) 오늘은 행복한 공휴일이니까 (제 글과 함께) 다들 즐겨 주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