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두 개의 영혼과 신선한 피만 있으면 다시 부활할 수 있어
달이 밝게 빛나는 밤하늘과는 대조적으로 음침한 분위가가 형성중인 공간으로 검은 도포를 눌러 쓴 한 형상이 보인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투명색의 구슬을 손으로 굴리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인형은 시커먼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수상한 인형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고 난 후, 달이 비친 공간은 참혹한 장면을 보여준다. 이리저리 짖이겨진 시체는 누구였는지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며, 지독한 피냄새와 부패한 시체의 냄새에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대충 버려진 시체의 수는 대충 보아도 열명 남짓해보였다. 주인이 사라진 공간은 끔찍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지는 듯했다.
지성의 강요에 못 이겨서 강원도로 향하는 차 안에서 다니엘과 우진은 불만스러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여주가 혼수상태에 빠진 후로, 실종된 후로 사실 지성은 둘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편의를 봐주었었다. 그건 다니엘과 우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억지로 다시 퇴마를 하라고 등을 떠민 지성이 원망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냥 모든 상황이 싫었다. 왜, 나는 강하지 못했는지, 왜 또 다시 그 애를 잃어야했는지.. 반복되는 자책과 후회에 자기혐오만 커져갔다. 그럼에도 퇴마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이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면 아예 여주와의 연이 끊어질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퇴마를 하지 못함에도 일을 그만 두지는 못했다. 아마 그건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여주가 사라진 후로 더 광적으로 일에 매달리는 성우도, 귀신이라면 진저리가 난다며 이제 자신은 사무만 하겠다고 선언한 재환, 지후, 진영이 여주가 사라진 후 다시 현장에 나가기 시작한 것도, 대휘와 관린이 구박을 받으면서도 성우에게 퇴마를 배우는 것도, 실종에 관한 사건에는 목숨을 걸로 매달리면서 신원불명의 시신이 나오면 차마 확인을 하지 못하는 성운과 민현도, 마지막으로 정서적으로 힘든 이들을 위해 일부러 괜찮은 척 살아가는 지성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죽지 못해서 살아가고 있다 보면 다시 여주가 분명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에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다 왔다.”
시동을 끄며 말을 내뱉은 성우로 인해서 3시간 동안의 침묵이 깨어졌다. 문을 열고 바닥에 발을 대는 순간부터 기분 나쁜 기운이 전신을 타고 돌았다. 2 달 만에 실종, 살해, 자살자만 10명이라.. 이건 분명 악귀의 소행일 것이다.
“의뢰인 만나러 가자. 주소는 우진이 네가 갖고 있자?”
“....”
내리자마자 소름끼친다며 난리를 쳤어야 할 우진이나 그런 우진이를 보며 설마 쫄았냐며 놀려야할 다니엘이 침묵을 고수하니, 셋 사이에는 계속 침묵이 맴돌았다.
어느 순간부터 웃는 일도, 말하는 일도 적어진 둘에 상황을 주도하는 것이 어쩌다보니 성우의 몫이 되었다. 말없이 폰을 꺼내어 주소를 보여주는 우진에 성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얘들이랑 제대로 대화를 한 게 언제였더라, 누가 보면 너네만 여주가 없어져서 슬픈지 알겠다. 성우는 차마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여기 저번에 여주랑 왔던 곳이랑 비슷하다...”
그때가 여주 첫 사건이었는데... 걸음을 옮기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며 다니엘이 말을 하였다. 오늘 처음으로 입을 뗀 순간이었다. 잠긴 목소리가 씁쓸함을 더하였다. 여주가 있을 때는 우리에게 아니, 내게 #여주가 이정도 존재였다고 생각 못했었는데, 아니 중요한 존재라고는 생각했는데... 네 빈자리가 이정도로 클 줄은 나조차도 몰랐네...
다니엘이 여주와의 첫 사건을 생각하며 추억에 잠긴 사이 우진이의 안색은 더 안 좋아졌다. 그때도 여주 많이 다쳤었지.. 한번도 지켜준 적이 없네.. 그런 우진이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성우는 서툴게 우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안녕하십니까, 퇴마사무소에서 나왔습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먼 걸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의뢰인을 따라서 들어간 집 내부는 마을과는 달리 밝은 기운이 감싸고 있었다. 그래봤자 마을의 음산한 기운으로 인해서 완전히 밝은 기운을 내지는 못했으나 그래도 양호한 수준이었다. 아마도 이곳은 조상신이 지키고 있으리라.
손님이 찾아온 지 오래되어서 마땅히 대접할게 없어서 죄송하다며 녹차를 3잔을 가져 온 의뢰인은 입술을 한 번 축이더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이 마을에 산지도 벌써 3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은 범죄가 뭐야, 소란 한번 없이 아주 평화로웠습니다. 누가 죽었다느니, 실종됐다느니하는 말은 일절 들을 일이 없었죠, 오죽하면 저기 산 아래 있는 경찰서에서 이 마을은 경찰이 필요가 없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을까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1년 전에 경작지를 더 넓히기 위해서 100년 된 나무를 배어버리고 나서 마을에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아니 분명 그때부터 입니다. 응급실에 실려 가고, 경찰서에 가고, 병원에 입원하고 하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었죠. 그런데 그 일들이 왜 발생했는지 이유는 하나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도 어쩌다가 다리가 부러졌냐고 그냥 굴러서는 이런 모양으로 골절이 안 난다고하고, 싸워서 경찰서에 간 이들은 다음날 왜 싸웠는지 기억이 안난다는 겁니다. 서로 죽이네마네하고 심각하게 싸웠으면서 말이죠.
틀림없이 산신이 노하신 겁니다. 마을을 지켜온 나무를 배어버려서,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없어지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이 분명합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좋겠습니까...
“신의 신성한 나무를 건드리니 벌을 받는 겁니다. 인과응보죠.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일들은 다른 이유로 발생한 것 같군요.”
성우의 다소 날카로운 말에도 말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며칠 동안 머물며 조사를 해보겠다고 말을 하고는 안색이 어두워진 의뢰인을 두고 밖으로 나왔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둘”
“...”
“...”
“하기 싫은 거 알겠는데, 그래도 왔으면 제대로 하자, 나 혼자 해결 못하는 거 알지? 다 같이 뒤지고 싶으면 계속 그러던가.”
최대한 좋게 말을 하려던 성우는 결국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떴다. 실실 웃고 다니던 애들이 축 쳐져서는 죽은 사람처럼 구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여주 만나기만 해봐라, 만나기만 하면.... 뒷주머니에 들어있는 라이터를 습관적으로 켰다가 곧 담배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의미 없이 라이터를 닫았다가 열기를 반복했다.
“20대 중반으로 추정, 긴생머리에 체크무늬 셔츠에 스키니를 입은 여자시신이 공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문이 훼손되어서 바로 신원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특이점이라고는 왼팔 손목에 있는 흉터와 모양인지 아이스크림과 젤리가 든 봉지가 옆에 흩뿌려져있었다는...
반장님의 입에서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이라는 말이 흘러나오자 이미 성운과 민현의 머릿속은 하얘지기 시작했다. 설마 아닐거야, 여주일리가 없잖아라고 부정을 하면서도 떨리는 오른손을 감추지 못했다. 여주의 왼쪽 손목에 흉터가 있었던가, 체크무늬면 여주가 즐겨입던 옷이었는데,,아닌가.. 이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가물가물한 기억에 민현은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ㅎ..현...황민현!”
바로 앞에 와서 책상을 내려치며 이름을 부르는 반장님에 민현의 의식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멍을 때려, 가서 신원확인하고 사건협조하고 와. 반장님의 말이 끝났음에도 민현의 몸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 시체가 여주면,,어떡하지...
“반장님 오늘 쟤 상태가 영 별로인데, 제가 대신 다녀오겠습니다.”
그런 민현을 도와준 것은 성운이었다. 본인도 정신이 없으면서도 다리까지 덜덜 떠는 민현이 걱정되어서 자원을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자신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민현의 얼굴에 성운은 일부러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였다. 그 시체가 여주일리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신호였다.
민현을 안심시키고 왔으나 막상 사건현장에 도착하여 공터에 둘러진 노란선을 보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여주 일리가 없다고, 이렇게 가까이 있었으면 못 찾았을리가 없다고, 여주가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다고 머릿속에 드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며 성운은 한 발짝씩 떼었다.
폴리스라인 앞에 서 있던 경관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는 둘러진 흰 천을 손으로 내리는 순간 성운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하얀 천 밑으로 드러난 여자는 여주의 얼굴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걷고 걸어서 드디어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산 밑에 도착을 하였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는 산의 위세에 여주는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이미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저기까지는 언제 올라가는지 싶었다. 이미 해가 많이 기울어진 하늘을 확인하며 여주는 어깨에 멘 가방끈을 다잡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였다.
산을 오르는 내내 나무에 숨어서 혹은 나무 위에서 자신을 쳐다보는 귀신에 여주는 절로 긴장이 되었다. 원래 기가 센 무당이었던 것인지 귀신들이 노려볼 뿐 다가와서 해코지는 하지 않는 모습에 안도하였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상함을 느꼈다. 이름과 나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좋아하던 것은 무엇인지, 하물며 가족이나 친구의 존재조차 기억이 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매섭게 자신을 노려보는 귀신들의 존재에 두려움이 배가 되었던 기억밖에 없다.
어떻게 퇴마를 하는 것인지 아직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지만, 우연히 한 꼬마아이를 괴롭히던 악귀를 퇴마한 뒤로 계속해서 퇴마를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퇴마를 하고,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알고 그만 둬야지 하고 생각했으나, 쉽지 않았다. 이미 더러움을 끊을 수 가 없게 되었다.
표지판을 잘 보고 올라왔던 것 같은데,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헛도는 느낌이 들었다. 주변에도 키가 큰 나무밖에 없는 게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게 틀림없었다. 폰을 급하게 켰지만 배터리가 나갔는지 까만 화면만 비추었다. 설상가상으로 해는 저물기 시작하여 하늘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음기가 강해지고, 귀신들이 활보한다는 밤에 산 속에 고립이 되었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산을 울리는 기이한 웃음 소리에 낄낄낄낄낄 소름이 돋아서 어깨를 쓸었다.
낄낄낄낄 길을 잃었나봐 안타까워서 어떡해
그러게 그럼 불쌍하니까 우리가 먹자, 먹으면 길을 안 찾아도 되잖아.
근데 쟤는 좀 위험한 거 같은데 먹어도 될까
저를 두고 낄낄거리는 귀신들의 소리에 여주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런다고 저 소리가 안 들리지 않겠지만 낄낄거리는 소름끼치는 음성이 듣기 무서웠다. 장난을 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가 기이하게 기어서는 자신의 앞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하는 모습에는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서 귀를 틀어막아버렸다.
“아가씨, 괜찮아요?”
“..”
“길을 잃었나 본데, 저랑 같이 가요, 날이 어두워져서 위험해요.”
어깨에 닿는 감촉에 소리를 꽥 질렀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눈 밑이 퀭해서 다소 어두운 느낌을 주었지만 전체적으로 선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같이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묶고 내일 다시 길을 찾으라는 남자의 말에 여주는 경계를 하였으나, 주변의 귀신들이 사라진 것을 느끼며 남자의 손을 서둘러 잡았다. 계속 여기서 있다가는 언제 귀신이 다시 나타나서 괴롭힐지 모르는 일이었다. 남자의 손을 잡고 걷는 내내 어쩐지 남자의 손이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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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는 거 아니야.... 과연 애들은 언제 재회를 할지..!!
독자님들이 시즌 1과 이어지는 걸 더 좋아하셔서 이어지는 내용으로 시즌 2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ㅎㅎ 다음주에 가져오려고 했지만 오랜만에 독자님들을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공부 던져두고 달려왔어요..ㅋㅋㅋㅋ 2화는 진짜 시험 끝나고 찾아오겠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글을 쓰니 많이 부족하지만, 착한 독자님들은 이해해주시리라 믿어요!!...
아, 암호닉은 여기 일화부터 받을게요 부담없이 신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