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이르진들
나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당찬 여주인공과 달리, 혹시나 내가 잘못될까싶어서 불의를 보고도 몬 본척 지나치는, 내 목숨을 아주 소중히 여기는 평범하고 소심한 여고생이었다. 항상 본인 얼굴을 평범하고 말하고 다니지만 알고보면 여신인 여주인공과 달리 나는 그냥 꽤 귀엽게 생겼네하고 봐줄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주인공과 나의 공통점을 꼽자면 내 이름이 여주?라는 것 그리고, 우리학교에도 소설속에 등장하는 학교를 주름잡는 일진들이 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극히 평범한 여고생들처럼 야자도 몇 번 튀고, 지각도 한두번씩하고, 학교에 가기싫은 날이면 억지로 기침을 토해내 조퇴를 하며 이불 속에서 뒹구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런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도 기울였다. 복도끝에서 일진무리의 튀는 머리색이 보이면 눈에 들지 않으려고 재빠르게 반대방향으로 달리거나 아무 교실안으로 쏙 들어가 숨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변에 일진님들이 있을까봐 미어캣처럼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복도를 지나다니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지만, ‘미친, 쟤네들 조폭이래, 가족도 다 조폭이라던데’, ‘쟤들 눈 밖에 나는 애는 그냥 학교 생활 종쳤다고 봐야 돼.’ 와 같은 무시무시한 소문이 더 무서웠기에 본능적으로 몸을 사렸다. 물론, 저 소문을 완전히 믿어서가 아니라, 얼마나 무서운 놈들이면 저런 수식어가 붙을까 싶어서 조용히 찌그러져 살았다.
그런데, 그 모든 내 노력들이 쓸모없는 것이었던짓이었다고 비웃기라도 하듯이, 2학년으로 올라간 첫날부터 그토록 피해다니던 일진무리들과 아주 엉커버리고 말았다. 한마디로 앞으로 남은 내 학교생활은 끝났다는 말이다. 엄마에게 울고불고 매달려서 전학을 보내달라고 해야겠다.
“김여주, 대답”
“아...미...미안...”
“너 3번이나 불렀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 말 해”
미친, 전학수속 밟기도 전에 밝혀서 죽게 생겼네. 이미 충분히 무섭게 생긴 외모인데 거기에다가 표정까지 싸늘하게 지어주니 손이 덜덜 떨려왔다. 자, 김여주 생각하자 생각해, 너 여기서 답을 잘해야지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거야.
지금 내 손을 덜덜 떨게 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까지 덜덜 떨리게 하는 이르진님의 이름은 박우진이었다. 박우진은 입학식부터 눈에 뛰는 새빨간 머리에다가 교복을 세탁소에서 찾아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당하게 사복을 입고 오는 패기를 보여준 아이였다. 긴 막대를 가지고 꼴이 이게 뭐냐며 가슴을 툭툭 밀던 학주쌤의 막대를 손으로 잡으며 ‘존나 기분 나쁘니까 이것 좀 치워주실래요, 학교 왔으면 됐지, 시발 잡으려면 집에서 퍼자고 있는 배진영이나 잡으라고요’ 라고 외쳐 학주쌤의 얼굴을 새빨갛게 달아오르게 만들었던건 아직도 애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일화였다.
직접 본건 아니고 친구의 얘기에 따르면, 박우진은 아주 제멋대로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같은 반이 된 후로 이 말에 적극 동의하였다. 입학식에서 박우진이 보여준 패기는 사실 10분의 1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었다. 분명 시발이라는 욕설이 분명히 들어가 있었으나, 그때 박우진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박우진네 부모님은 5살배기도 안다는 W그룹의 사장이었고, 할아버지가 회장을 맡고 계셨고 이어져 나온 계열사도 모두 삼촌, 고모가 맡고 있었다. 한마디로 W그룹은 박우진 집안거라는 얘기였다. 박우진의 무서울게 없다는 듯한 당당한 태도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했더니 다 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빨간 머리를 하고 다녀도, 교복을 제대로 안 입고 다녀도, 제 멋대로 학교를 다녀도 박우진을 터치하지 않았던 것은 다 돈때문이었다. 시발, 더러운 세상.
한번은 부자 부모님을 등에 엎고 학교를 떵떵거리며 다니는 모습에 아니꼬왔던 어떤 일진 녀석이 박우진 앞에서 ‘돈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쓰레기같은게, 존나 깝치고 다니네 재수없게’ 라고 욕을 하였다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복도 바닥으로 꼬꾸러졌다지. 그때 박우진이 쓰러진 일진아이의 배를 발로 밟으면서 ‘니새끼말대로 돈이 흘러넘쳐서 너 하나 죽이는건 일도 아니니까, 두 번은 없어.’라고 말을 하고 지나간 뒤로 그 누구도 박우진에게 깝치지못했다. 나름 용기 있었던 일진아이는 그 후로 학교에 나오지않더니, 소리소문도 없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버렸다.
“김여주”
“아, 미안....그러니까 그게 내가 너 말을 무시하려고 한게 아니라..!”
“그만 떨어 신경 거슬려”
박우진에 관해서 생각을 하다가 그만 박우진과 대화중이었다는 것을 깜빡해버렸다. 잊을게 따로 있지 그걸 까먹냐 김여주 병신아. 꿈틀대는 박우진의 눈썹을 보자, 닫혀있던 입이 저절로 움직였다.
덜덜 떨리는 입을 움직여서 변명을 쥐어짜내는데, 일순간 박우진이 내 손을 잡아챘다. 이건 뭐지... 잡힌 손을 더 심하게 부르르 떠니, 박우진이 입을 열어 말했다. 신경 거슬린다고. 이제 난 손을 잃게 되는건가. 할 줄 아는거라곤 밥먹는거 밖에 없지만, 그게 얼마나 큰 역할인데. 한번만 봐달라고 빌어야하는건가. 몇초동안 머릿속으로 수백가지의 경우의 수를 떠올렸던것같다. 그러나 다행히 박우진은 내 손을 어떻게 할 생각이 없는지 그냥 내 손을 잡은채로 가만히 있었다.
“내..내가 수전증이 심해서..미안해.....그래도 너가 잡아주니까 안떨린다...ㅎ”
박우진이 친절을 베풀었음에도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책상위에서 떨고 있는 왼손을 들어올려서 박우진이 잡고 있는 손 위에 올렸다. 이제 안 시끄럽겠지. 근데 손떠는게 시끄러우면 얼마나 시끄럽다고 뭐라고 하냐. 지가 일진이면 다야?
나름 반항의 의미로 박우진을 향해서 가자미눈을 하려고 하였으나, 붉어져 있는 박우진의 귀를 보고 다시 눈을 제자리로 돌렸다. 그래도 짝궁이라고 참아주고 있구나, 하하 김여주 그런 것도 모르고. 박우진 넌 정말 착한 아이야. 난 한없이 약한 초식동물일뿐이었다.
어울리지않는 박우진의 친절에 목숨을 부지하고, 화장실을 간 박우진에 좀 숨통이 트여서 똑바로 펴고 있던 허리를 움츠리며 책상위로 엎어지면 교실뒷문을 요란하게 열고는 배진영이 들어왔다. 하, 혼자만의 시간은 보낼 수가 없는건가.
“어, 여주야 너 보려고 일찍 왔는데 자는 거야?”
“.....”
“만약 안자는데 자는 척하는거면 아무리 여주라도 화날것같은데”
책상위에 엎어져있었으니 그냥 자는척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눈을 꼭 감으며 말을 걸어오는 배진영의 말을 무시했다. 다행히 배진영도 내가 자는거라고 생각했는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는 줄 알았으면 빨리 자리로 돌아가서 앉으란 말이야.
발이 땅에 붙은 듯 서서 내 뒷통수가 뚤어질정도로 보고 있던 배진영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에 참았던 숨을 내 쉬려고하는 순간 가까이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씨, 얘 처음부터 내가 안자고 있었던거 알고 있던거 아니야?
“아....잠이 깼나 잠이 안오네......어? 안녕 언제왔어?”
“여주 너가 책상위에 숨도 안쉬고 가만히 엎드려 있을때부터, 여주야 나 너가 일찍 오라고해서 오늘 일찍왔다. 잘했지?”
와 나 연기 드럽게 못하네, 연기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말아야겠다. 국어책 읽는 듯한 내 말투에 배진영은 피식 웃더니(이때 왜 되지도 않는 연기를 하냐면서 내 책상을 발로 찰줄 책상위에 올려놓은 팔을 황급히 치웠다.) 내 양심을 콕 찌르는 말을 하고는 곧 화제를 돌렸다. 뭐지 나 한번 봐주는 건가, 방금 넘어간거맞지? 그래도 배진영이 언제 책상을 발로 찰지 몰라서 책상에서는 계속 떨어져있었다.
“으..응”
“잘했으면 상이 있어야지, 나 소원하나 들어줘”
3교시가 끝난 뒤에 온 주제에 상은 무슨 존나 양심도 없나보다. 작은 머리통만큼이나 양심도 보통 사람들보다 작은가보다. 미영이가 내게 말을 했으면 양심 어디 팔아먹으심? 급식먹을 시간 다 돼서 온 주제에 상은 무슨. 이라고 되받아쳤을 텐데. 내 앞에 있는 사람은 김미영이 아니라 잘나가는 이르진님인 배진영이다. 김미영에게 하는 것처럼 말을 했다간 책상이 당장 내 머리 위로 날라올지도 몰랐다.
“응...알았어”
“아싸, 아껴놔야지”
무슨 대단한 소원을 말하려고 아껴놨다가 말한데, 사람이 적어도 한번은 거절해야 하는 거 아니야 무슨 기다렸다는 듯 냉큼 받아먹는데.
배진영. 이름처럼 얼굴로 훈훈하게 생겼다. 우리학교에 머리가 존나 작고 연예인 후들겨 패게 생긴 애가 있대라는 영희의 말에 그런애가 우리학교에 어디있냐.라고 코웃음쳤는데, 배진영의 실물을 보는 순간 아, 진짜 존재하는 구나.하고 뒤늦게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배진영은 내가 좋아하는 와나완 그룹의 배챙이라는 애를 매우 닮아서 그 애를 처음 본 순간 배..챙이하고 손을 잡을 뻔했다가 가까스로 상대가 배진영이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줄을 잡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정신줄을 잡았던걸 내가 태어나서 잘한 일 베스트 5안에 넣을만큼 잘한일이었다. 배진영은 배챙이가 뭐냐 배챙이가 이름 센스 존나 떨어져, 시발 그리고 그새끼랑 내게 뭐가 닮았다고 내가 배는 더 잘생겼구만. 이라고 말을 하면서, ‘오빠, 배챙이랑 똑같이 생겼어요’라고 말을 하던 여자애의 코피를 터트렸다지. 그때 내가 내가 정신줄을 잡지않았다면 쌍코피를 흘리고 있을 사람이 나라는 생각이 훑고 지나간후로, 배진영 앞에서 와나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도 않았다.
배진영도 박우진과 친구답게 돈이 겁나게 많았다. 집안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계에서 일을 하고 있었으며, 배진영의 아버지는 국민들의 신임을 많이 받는 국회의원으로 차기 대통령후보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배진영의 집안은 망나니처럼 다니는 배진영과 달리, 아주 청렴하였다. 왜 배진영만 저 모양인 걸까...울고 싶다 진짜.
배진영은 박우진처럼 학교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일화를 많이 가지고 있지않았다. 그렇다고 배진영이 조용히 학교를 다닌다는 말은 아니었다. 배진영은 학교를 밥먹듯이 빠졌으며 제가 좋아하는 급식이 나오는 날에만 오후 수업 전에 얼굴을 보이는 이르진님이었다. 얼마오지도 않는 학교에 있을때 조차도 잠만 퍼질러 잤으니, 학교에서 크게 사고를 칠 일이 없었다. 배진영이 학교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게 나에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왜! 2학년이 되고부터는 갑자기 학교를 이렇게 꼬박꼬박 오면서 잠도 잘 안자는거냐고. 덕분에 배진영의 앞자리에 앉은 나만 죽어나가고 있었다.
“여주야 너가 내 소원들어주기로 했으니까 나도 너한테 상하나 줄게”
“안그래도 되는데..ㅎ 뭔데?”
내게 상을 주겠다는 배진영에 괜찮다고 했지만, 내심 그 선물이 뭘까 기대가 되어서 관심없는척 하면서 뭔지 물어봤다. 배진영이니까 분명 좋은 선물일거야
“내 뽀뽀”
“뭐?! 시..”
“여주니까 내가 특별히 해줄게, 아무나 받을 수 있는거 아니다”
배진영의 입에서 뽀뽀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육성으로 욕이 튀어나올뻔한걸 간신히 참았다. 얘도 정상이 아닐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더 또라이였어. 누가 상으로 뽀뽀를 줘? 무슨 다섯 살 어린애가 엄마한테 잘했다고 상받는것도 아니고.
애써 떨떠름한 표정을 참으며 괜찮아라고 말을 하자, 표정을 구기며 ‘지금 내가 상을 주겠다는게 거절하는거야? 설마 나랑 뽀뽀하는게 존나 싫어서 그러는건 아니지?’라고 말을 하였다. 말에 협박성있는 단어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배진영이 말을 하자, 그 어느 협박보다도 무섭게 들려왔다. 아니라고 대답을 하는 순간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손이 내 머릿통을 가격할것같은 불안감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배진영의 포스에 쫄아서 말도 못하고 배진영은 점점 다가오고, 이러다가 진짜 뽀뽀를 하겠다 싶어서 미친척 혀라도 깨물고 기절해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박우진이 교실로 들어왔다.
박우진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거라고 생각한 적이없는데, 뒷문을 열고 들어오는 박우진의 뒤에서 빛이 번쩍번쩍나는 것 같은게 구세주같아 보였다.
“우! 우진아!”
김여주 미쳤어, 우진아,라니 너무 다정하게 불렀잖아. 다행히 박우진은 내가 우진아.라고 부른것에 대해서 별생각이 없는지 잠깐 비웃음을 흘리기만 할뿐 (남들이 보기에는 수줍게 웃은 것이었다.) 다른 말은 없었다.
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박우진은 배진영이 앉아있는 의자를 발로차며 ‘나와’라고 딱 한마디했다. 다른 애들이었다면 박우진이 비키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알아서 자리를 비웠겠지만 상대는 배진영이었다. 박우진의 말은 신경도 안쓴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싫은데’라고 되받아쳤다. ‘치우기전에 나오라고, 앉고 싶었으면 니가 김여주 옆자리 뽑았어야지’라고 말을 한 박우진은 배진영의 머리를 후렸다. 본인은 살짝 친것처럼 보였지만 머리에서 빡하는 소리가 났다.
덕분에 둘사이에서 죽어나가는 것은 나였다. 시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잘못한것도 없는데 눈치보고 있어야돼. 그러나 속으로만 신나게 둘을 욕할뿐 걷으로는 눈만 도르르 굴릴뿐이었다.
불꽃튀던 두 사람의 신경전은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앉아있는 나를 본 배진영이 ‘김여주 때문에 참는다 내가.’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종료되었다. 배진영 그래도 너 생각보다는 좋은애였구나, 또라이라고 욕했던거 취소해줄게.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울렸다. 원래라면 가장 신나서 ‘야!김민영 밥먹으러 가자’하고 외쳤을 내가 조용히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화,..화장실이 급하네’ 김여주 조금전에 연기를 안하겠다고 다짐해놓고, 내 발연기를 본 민영이는 이마를 짚으로 입모양으로 욕을 했다. ‘김여주 존나 병신아’
“여주야 너 설마 도망가는건 아니지?”
“도망이라니....난 그냥...화,,화장실이 급해서”
“빨리 갔다와, 우리 교실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오늘 여주 너가 좋아하는 불고기 나온데”
눈치 빠른 녀석같으니라고, 화장실을 가는척하고 민영이랑 몰래 급식실로 가려고 했는데, 완전 실패다. 민영이에게 실패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흔들며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하니, 뒤도 안돌아보고 교실을 나가는 김민영이었다. 그래 이게 우리 우정이지....
“여주야 왜 이렇게 밥을 못먹어? 맛이 없어서 그래?”
“아니!! 절대 맛이 없는게 아니야!!!”
“아 귀여워, 알았어, 그럼 많이 먹어”
다정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이르진 무리 중에서 그나마 착하게 생긴 이대휘였다. 이대휘는 귀여운 남동생처럼 생겨서는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학교도 꼬박꼬박 잘나오고 성적도 우수했다. 왜 이런 무서운 애들과 어울릴까 싶을 정도로 해맑았고, 착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대휘가 이 애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며 종종 동정의 눈빛을 보내곤 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이대휘는 그런 내게 해맑게 웃어보였는데 왜 이대휘가 그렇게 해맑았는지는 시간이 조금 더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
그 무서운 애들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면서 해맑게 웃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 미친사람일 것이다. 다행히? 이대휘는 미친사람이 아니었고, 마냥 해맑은 사람도 아니었다. 귀여운 얼굴 뒤에는 무시무시한 다른 얼굴을 숨기고 있는 아주 무서운 애였다.
이대휘는 귀엽게 생기고 다른애들에 비해서 작고 왜소해서 이 무서운 이르진무리를 아니꼬와하는 다른 일진무리에게 곧잘 표적이 되곤했다. 욕을 하면서 시비를 걸어도 실실웃어 넘겼으며, 제게 주먹을 날리는 아이의 손을 막으면서도 ‘친구야 학교내에서 폭력은 금지야’라는 모범생같은 말을 하곤했다. (학교내에서 폭력은 금지라는 말에 눈치를 챘어야했다.)
이대휘의 다른 얼굴은 본 건 아주 우연이었다. 어쩐일인지 다른애들도 아니고 이대휘가 어떤 애와 시비가 붙어서 학교에 보호자를 데리고 와야한 적이 있었다. 이대휘가 왜? 학교폭력에 이대휘의 이름을 본 순간 든 생각이었다. 아, 피해자로 연루된건가. 그때 이대휘의 얼굴은 상처하나없었고 싸움이 붙었다던 남학생은 학교를 나오지않고 있었으니 내 생각에 힘을 붙여줬다. 그러나 이대휘의 보호자가 운동장으로 검은색차를 몰고 들어오는 순간 내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 눈에 봐도 비싸보이는 외제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까만 정장을 입은 누가보더라도 뒷골목에서 일해요,하고 말을 하는 듯한 사람이었다. 거기서 난 일차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을 보자마자 머리통을 후리며 이대휘가 ‘여기 학교라고, 그렇게 저 깡패입니다하는 복장으로 와야겠냐, 대가리 안돌아가?’ 라고 하는 말에 이차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이대휘의 행동에 머리를 숙이며 ‘죄송합니다, 형님’이라고 사과를 하는 깡패님의 행동에 삼차로 충격을 받았다.
상담실로 들어온 깡패님의 행색에 먼저 와서 소리를 치고 있던 어떤 일진의 부모님이 일순간 입을 다물었다. 그때 알았다. 이대휘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일진학생은 학교를 안오는게 아니라 병원에 입원을 해서 못 오고 있는것이라는 것도,
조폭형님들의 등장에 잔뜩 주눅이 든 피해자 부모님에 합의는 쉽게 끝났다. 어마어마한 합의금을 손에 들고 학교를 나가는 피해자의 부모님의 뒷모습을 보던 깡패님이 ‘형님, 왜 사과를 하십니까? 그냥 죽여버리면 되는 일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처리하고 올까요?’ 이대휘를 향해서 불만스럽다는 듯 말을 하였다. 거기에 이대휘는 ‘그냥 놔둬, 쥐도새도모르게 처리하려고 했는데, 아직 학생이라서 봐준거니까. 그냥 놔둬, 한번 더 기어오르면 그때’ 라며 섬뜩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하였다. 그리고 말을 끝까지 잊지않았지만 번뜩이던 이대휘의 눈이 다음 대사를 말해주고 있어서 주변에서 보고 있던 나는 숨을 꿀꺽 삼켰다. 존나 이대휘가 이르진짱이었어.
그날 이후로, 학교에는 이대휘가 완조직의 차기보스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졌고, 나는 해맑게 웃는 이대휘의 얼굴을 보며 전과 달리, 식은땀을 흘렸다.
전에 컨디션이 안좋아서 밥을 제대로 먹지않은적이 있는데, 그때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이대휘가 밥이 맛이 없어서 안먹는거냐고 묻더니 식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고는 박우진을 향해서 ‘넌 학교급식을 뭐 이딴식으로 주냐, 일 똑바로 안하냐’ 라며 살벌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난 배가 아파 죽을 것 같아도 급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게 되었다. 급식도 내 마음대로 못 먹고, 시발 서러워죽겠다.
“여주야 같이 가자니까 왜 먼저 갔어, 교실에서 너 기다리다가 왔잖아.”
“어...? 애들이 먼저..내려오자고 해서”
“야 너 자꾸 여주한테 반말하지마, 나이도 어린새끼가.”
고맙다. 우진아. 이관린은 박우진이 말한대로 우리보다 한 살이 어렸다. 그러니까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이라는 거지, 내가 2학년이라니까. 그런데 이관린은 나를 처음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게 존댓말이나 선배라는 호칭을 사용하지않았다. 무조건 여주야. 그게 이관린이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다른애들한테는 잘만 형이라고 부르는게 나한테만 여주야래. 그래 내가 존나 만만하다 이거지. 애가 보는 눈은 있어가지고 그래 내가 이 구역 만만이다.
이관린을 설명하자만 얼굴이 잘생겼고 잘생겼다. 그리고 일학년인 주제에 가장 키가 컸다. 그리고 키가 큰 대신 싸가지가 없었다.
입학실날 나도 귀여운 후배를 얻는다는 생각에 신나서 김민영의 손을 잡고 강당을 기웃거렸다. 뒤에서 ‘너무 귀여운거 아니야, 완전 병아리같아’라고 하며 키득거리는 우리의 모습에 가장 우리와 가까이있던 후배들은 변태를 보는듯한 눈빛을 보내며 우리에게서 한걸음 물러섰지만, 우린 아랑곳하지않고 더 히죽웃어댔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존나 변태스러웠던것같다.
어쨌든 변태처럼 기웃거리던 그날 이관린을 처음 만났다. 병아리같다며 쑥덕대던 우리앞에 큰 그림자가 생겨서 고개를 들어보니, 고개를 더 치켜들어야지 얼굴이 보일정도로 키가 큰 남자애가 서있었다. 그때 이관린은 키가 컸고, 포스가 있었기에 우리처럼 신입생을 보러온 3학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존댓말을 사용하였다. ‘안녕하세요.’ 아무말도 하지않고 내 앞에 가만히 서있는 모습이 뭔가 민망해서 먼저 인사를 하니, 잠시뒤에 웃음소리와 함께 내 귀를 의심할만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귀여워, 병아리같아 삐약삐약’ 헐, 저거 나한테하는 말 맞지..?
‘하하....병아리같은 건 저기 있는 일학년들이죠..’ 소름돋는 팔을 문지르며 대답을 하니, ‘아니야 애들중에서는 너처럼 귀여운애 없어, 너만 병아리같아. 여주야’ 이 선배가 수능을 앞두로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는 구나라고 이해해주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소름이 끼쳐서 놀라다가 내가 명찰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민망한 느낌에 목을 큼큼하고 다듬은 다음에 나도 눈앞에 보이는 명찰을 응시했다.
“헐,,,,아니 일학년!”
명찰을 확인하는 순간 입밖으로 말이 터져나왔다. 헐, 일학년이었어. 일학년이면서 나한테 먼저 반말한거야, 헐....게다가 내 명찰도 확인했으면서? 봤으면 명찰색이 다르니 내가 당연히 저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알았을텐데. 내가 니 이름은 꼭 기억하고 만다. 이관린. 이관린....어디서 들어봤는데....이관린 그러니까. ‘김여주 이번 신입생 중에서 이관린이라고 엄청 잘생긴애가 있는데, 얘가 우리학교 이르진님들이랑 친한 사이라고 하니까 얘도 조심해’ 맞다, 저번에 김민영이 말했던 이름.....헐...아니야 얘는 아닐거야 그냥 동명이인이겠지. 이관린이라는 이름은 흔한이름이...아니잖아. 시발 그리고 잘생긴 이관린이라면 내 눈 앞에 있는 얘가 맞잖아.
옆을 돌아보니 이미 김민영은 튀고 없었다. 의리라고는 찾아볼수도 없네 좀 같이 튀지....
우리반 이르진님들과 친하다던 이관린은 그 후에도 자주 봤다. 자주봤다는 말이 부족했지, 주말빼고 거의 매일 봤다. 일한년인 주제에 이학년 교실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왔음에도 뭐라고 하는 애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반애들은 나처럼 다들 온순한 초식동물이었다.
이관린은 이르진님들과 친한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성격이 이들처럼 개같았고 돈도 엄청나게 많았다. 이관린네 부모님은 내가 좋아하는 와나완은 물론, 인기있는 아이돌그룹이 소속해있는 L엔터테이먼트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다른 연애,엔터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정말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딱 맞았다. (이관린과 조금만 친해지면 와나완 싸인앨범을부탁해볼 생각이다 그러니까 내가 반말을 참아주는거야! 절대 무서..워서 그런거는 아니야)
“여주, 처음에 나한테 존댓말 쓸 때 귀여웠는데, 또 써주면 안돼?”
“그때는...내가 너가 일학년인줄 모르고..”
“그럼 지금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해주면 되잖아”
아는데 뭘 모른다고 생각해, 어이가 없네. 내가 왜 나보다 어린놈한테 존댓말을 써야되는데 안그래도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누워서 이불을 뻥뻥차는데.
“이관린 그만해. 여주가 너 선배야, 호칭도 똑바로 해.”
“...치”
“여주야 내꺼도 너 먹어, 너 불고기 좋아하잖아.”
“고마워, 지훈아”
개소리를 하는 이관린의 입을 속시원하게 닫게 만든 이는 박지훈이었다. 제 몫으로 놓인 불고기를 내 급식판으로 옮겨주는 박지훈은 그래도 내가 이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박지훈은 얄상하고 예쁘게 생겨서 나를 종종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지만, 하는 행동만큼은 아주 상남자였다. 생긴걸로만 봐서는 박우진이 이 무리에서 가장 쎌것같지만, 알고보면 박지훈이 가장 쎘다. 조용한 카리스마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박우진에게는 그런 아우라가 있었다. 미친 듯이 날뛰는 애들을 정리하는 사람은 주로 박지훈이었다. ‘너네 성적표 부모님에게 보내기전에 당장 입닥치고 앉아.’ 소란속에서도 박지훈의 낮게 깐 음성이 들리며 모두 무슨일이 있었냐는 듯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물론, 항상 박지훈의 말을 잘 듣는건 아니었지만 열에 일곱은 박지훈의 말을 잘 들었다.
박지훈의 어머니는 판사에 아버지는 대학병원의 교수였다. 이과와 문과의 최상층의 완벽한 조화였다. 물론 어머니네는 다들 법조인출신이고, 아버지네는 병원에 종사하고 있었다. 박지훈이 공부를 하지않아도 항상 전교권에서 놀수있었던데는 유전자의 힘이 컸다. 존나 부럽네, 나는 코피터지게 공부해도 중간자리도 간당간당하게 유지하는데.
무리에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박지훈과 이대휘였다. 이대휘의 숨겨진 모습을 알고 난 뒤로 알게 모르게 경계를 하는데, 박지훈은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애라서 가장 의존하는 애 중에 하나였다. 종종 안풀리는 수학문제를 붙잡고 끙끙 앓고 있으면 옆에 와서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해서(과외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것보다 훨씬 더 이해가 잘됐다. 어려운 문제를 쉬운 방법으로 슥슥 풀어나가는 모습을 볼때면 와 진짜 천재긴 천재구나하고 감탄이 절로 나오곤 했다.) 편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재수없어. 이새끼 여주가 성떼고 불러줬다고 얼굴 빨개진거봐”
“부러우면 그냥 닥치지, 배진영”
“여주야 나도 진영아라고 불러줘”
“....어....그게”
“김여주가 불러주기 싫다잖아. 새끼야. 니가 싫은 듯”
“뭐 시발 그럼 박우진 니도 똑같잖아”
“아닌데, 난 아까 우진아라고 불러줬는데 니 새끼도 들었잖아”
“..시발”
지훈아. 라고 부른게 뭐 그렇게 큰 일이라고 이렇게까지 반응할 일이야. 큰 일일수도 있긴하겠네. 배진영 너를 차마 진....영아라고는 못부르겠어...물론 다른 애들도....그나마 대휘는 부를 수있겠다.
진영아.라고 불러줄 것을 강요하는 배진영에 몰래 식은땀을 훔치고 있으면, 박우진이 끼어들어서 배진영을 상대해주었다. 그리고는 승자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우진아라고 불러줬다면서 배진영을 업씬여겼다. 내가 언제...!라고 말을 하려다가 아까 배진영에게서 나를 구해줄 박우진이 반가워서 우진아.라고 부른게 생각났다. 불렀네..불렀어.
“여주야 내꺼도 너가 다 먹어”
“고,,고마워”
“왜 나는 이름 안불러줘?”
“고마워,,,대휘야”
이대휘는 역시 머리가 좋았다. 박우진과 배진영이 말다툼을 하는 틈에 내 식판에 불고기를 잔뜩 올려주며 제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다. 박지훈이 내게 불고기를 주는 행동에 내가 이름을 불러 준 것을 정확히 기억을 하고는 말이다.
“여주야 난 그냥 불러줄거지?”
“....”
“....”
“....관린아..”
그렇게 무서운 눈빛으로 쳐다보면 내가 이름을 불러줄줄 알고.....어림도 없는.....그래 새꺄 정확하게 나를 간파했어. 그렇게 무섭게 나를 쳐다보면 당연히 이름을 불러줄 수밖에 없지. 불러줄테니까 그만좀 쳐다봐. 손떨려서 젓가락질을 못하겠다.
결국 아무것도 모르고 박우진과 말싸움을 한 배진영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름을 불러주었다. 제발 내가 다른애들은 이름만 불러 준 사실을 배진영은 절대 몰랐으면 좋겠다.
당장 집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엄마한테 빌어야겠다. 제발 전학을 보내달라고, 괴롭힘이라도 당한다고 거짓말이라도 해야하나.,,아니지 따지고보면 완전 거짓말은 아니지... 진짜 괴롭힘이 시작되기전에 빨리 이 학교를 떠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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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좀비물을 쓸까하다가 수능전날인데 그래도 그 글은 좀 아닌것같아서....우리 미자들이 나오는 학교물로 끄적여 봤습니다.
나름 선물?아닌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써봤는데, 갈수록 망,,,,지훈아 분량 미안해....힘이 딸려서....ㅠㅜ(짤도 다 너무 옛날꺼..)
제 독자님들 중에서도 고3인 분이 계시는 분이 있는 걸로 알아서 써봤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ㅎ(물론 오늘 제 글을 읽은 고삼님은 없으실테지만요..)
고삼분들 내일 옷 따뜻하게 여러겹 입고 가시고 오늘 일찍 주무세요. 수능날까지 많은 일이 있어서 많이 혼란스럽고, 내일 수능이라는 생각에 긴장도 되고 기분이 싱숭생숭 하실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수능대박이 날거라는 걸 저는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고삼 독자님들은 지금껏 잘해왔으니까 내일도 분명 잘할테니까요.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