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물_
제법 매서워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아침부터 김교수님의 강의를 들어야 한다니, 벌써부터 귓가에 울리는 교수님의 따분한 목소리와 외국어같은 언어에 재촉하던 걸음을 뒤로 돌리고 싶었다.
“오늘 휴강각인데, 윤여주 수업쨀까?”
강의실로 가기싫었던건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전공서적을 옆구리에 끼고 걷던 성우가 자체휴강을 하자며 솔깃한 제안을 건네왔다.
“성우야, 우리 중간고사 점수가 얼마였더라?”
“.....”
“수업가자..”
“...그래..”
그러나, 불현 듯 떠오른 중간고사 점수에 충동을 억누룰 수 밖에 없었다. 수업까지 빠진다면 재수강이 분명했다. 아니, 이미 재수강을 건너고 있던가. 어떻게든 무사히 점수를 받기를 기도하며 눈 앞에 보이는 강의실 문을 열었다.
수업시작까지 5분전, 평소같으면 먼저 강의실 앞에 서서 수업을 하고 계셨을 교수님 대신 칠판에 ‘오늘은 휴강합니다. 추후에 보강날짜를 공지하겠습니다.’라는 글자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칠판에 적힌 글씨를 천천히 눈으로 읽다가 성우와 눈이 마주쳤다.
“지금 교수님이 휴강하신거 맞지? 와 살다보니 이런날도 오는구나.”
“내 말이. 근데 휴강하실거면 좀 문자로 알려주지. 에휴”
“그래도 휴강인게 어디냐,”
문자로 미리 공지를 해주지않으신 교수님이 살짝 야속했으나, 곧이어 휴강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서 비어있는 책상위에 그대로 엎어졌다. 휴강이라는 생각에 신이 난 성우는 콧노래를 부르며 카톡을 하고 있었다. 뭘 하고 있는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뭘 하고 있을지 뻔히 예상이 갔다. 보나마나, 다른 강의실에서 지겨운 강의를 듣고 있을 다니엘을 약올리고 있겠지.
“강다니엘 부러워서 죽으려고 함,”
“에휴, 성우는 언제쯤 철이 들까.”
수업중간에 몰래 먹으려고 산 샌드위치와 우유를 책상위로 올려놓았다. 배고팠는데 잘됐네. 우유팩을 뜯고 있으면 옆에서 성우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으로 내가 하는 행동을 가만히 좇고만 있는걸 보니, 역시 배가 고픈가보다.
“자,”
“오, 역시 윤여주밖에 없다. 땡큐”
가방에 있던 초코우유를 하나 꺼내서 성우에게 건네주자, 해사하게 웃었다. 이럴때만 나밖에 없지. 우유팩을 뜯는 성우에게 잠시 시선을 두다가 곧 나도 우유를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뜯어놓은 우유로 손을 가져다 대는데, 갑자기 강의실밖에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수업중인 곳인 강의실도 있을텐데, 초등학생도 아니고 시끄럽게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에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살려주..’ 어디서 울부짖는 짐승소리와 함께 미쳐끝내지 못한 구조요청소리가 울려펴졌다.
문장이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살려달라는 말이었다. 그것도 장난섞인 목소리가 아닌, 애절한 목소리로.
비명소리가 멎은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눈이 마주친 우리들은 일제히 문을 응시하였다.
“야, 방금 뭐냐.....”
“장난은 아닌 것 같은데...나가볼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의자를 끌며 일어서니,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꽂혔다. 뭐하냐는 듯 쳐다보는 성우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발걸음을 옮겨 문 앞에 섰다. 단순히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는 건데도 심장이 요동치며 손이 떨려왔다. 문을 여는 순간 보지말아야 할 것을 볼것같은 두려운 감정이 어디선가 밀려들어왔다.
호기심이 강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던지,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이미 앞 강의실의 문에 여러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바닥에는 한 사람이 피를 가득 흘리며 쓰러져있었고, 그 앞에는 누군가 앉아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워보였다.
저쪽으로 다가가면 안된다는 경고음이 강하게 울리며 입이 바짝 말랐다. 잡고 있는 문 손잡이에 힘이 들어갔다.
그때 문이 열린 강의실에서 빨리 들어와서 앉으라는 교수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용기있는 한 학생이 쓰러져있는 사람이 있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큰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학생의 기척에 앉아있던 사람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기이하게 일어서며 울부짖었다. 크르르으으그으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조금씩 가까이 올수록 선명하게 보이는 형상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쪽을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은 산사람이 아니었다. 혈관은 모두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고 꽤 오랫동안 부패한것인지 피부의 상태가 말이 아니었으며 가까이 다가올때마다 숨막히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초점없는 눈동자, 기이한 발걸음, 그리고 피를 가득 뭍힌채로 계속해서 무언가를 씹고 있는 턱...결코 산사람이 아니었다.
-아아아아악
가까이서 괴생명체와 마주한 학생은 그 자리에 서서 비명을 질렀고, 괴생명체는 튀어올라 그 학생의 목덜미를 콱 물어뜯었다. 그와동시에 피가 분수처럼 튀어올랐고, 팔다리가 버둥거리는 학생의 몸을 괴생명체는 계속해서 물어뜯었다. 마치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발견한것처럼 사정없이 씹어먹었다.
-꺄아아아악
-아아악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학생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괴생명체는 먹고있던 학생을 바닥으로 내던지고는 비명소리가 터져나오는 강의실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비명소리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때 피를 가득흘리며 쓰러져있던 학생이 갑자기 발작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괴생명체와 같은 형상을 하고는 비명소리가 난무하는 강의실로 향하였고, 마침 강의실에서 도망쳐나온 학생의 팔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비명소리, 짐승과 같이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고요하던 복도를 가득 채웠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람이 죽고, 죽은 사람이 다시 일어나서 사람을 물고 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현실감없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에 사고회로가 정지되어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그 순간 단단한 이로 어떤 학생의 내장을 먹고 있던 괴생명체와 눈이 마주쳤다. 뜯고 있던 학생을 내팽겨지고 내쪽으로 달려오는 괴생명체에 도망가야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채웠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순식간에 뛰어온 괴생명체와 불과 3m정도의 거리차이를 두고 있을 때 내 몸이 안쪽으로 당겨지며 문이 쾅하고 닫혔다. 그리고 간발의 차이로 나를 잡지 못한 괴생명체는 닫힌 문을 두드려대며 울부짖었다.
“윤여주, 정신차려!, 황민현 거기 앞 문 잠궈, 빨리”
내 어깨를 잡고 흔드는 성우의 말에도 한번 나간 정신은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썩은 피부, 먹이감을 발견한 듯 번뜩이는 눈동자, 산 사람을 먹는..저 괴생명체는 어제 본 좀비영화에 나오던 좀비의 모습과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그건 단지 픽션인데, 그게 현실에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조금전 보았던 장면들은 분명 현실이었다.
밖에서는 계속해서 비명소리가 난무하였고, 아직 정신을 온전히 찾지못하고 있는 순간, 여기저기서 경보음이 울렸다.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였습니다. 상황이 안정될때까지 외출을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한 설명도 없이 외출을 삼가라는 내용만 들어있는 긴급문자에 미간에 주름이 졌다. 비명소리가 잦아들고 짐승같은 소음도 멎어들면서 서서히 이성도 돌아왔다. 긴급문자까지 도착한 마당에 방금전 내가 봤던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이성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모든 것이 현실이었다.
“저 좀비같은게 뭔지, 대피요령 이런것도 없이, 다짜고짜 외출만 삼가라니, 어쩌라고.”
“그러니까 밖에 있는 저게 진짜라고?”
“.....허.....”
“애들아!! 다들 인터넷 좀 봐봐”
박민지의 말에 급하게 인터넷창으로 들어가니, 좀비, 괴생명체, 좀비퇴치법, 좀비바이러스 와 같은 단어들로 포털사이트가 도배되어 있었다.
‘영화에서만 보던 좀비가 현실로 튀어나왔다. 아직 그것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확인되지않았으나, 소리에 민감하다고 한다. 그것들의 모습은 흔히 좀비라고 부르는 것과 닮았으며, 짐승과 같이 으르릉거리는 소리를..........’
‘....치료제는 현재 개발중이며, 전국에서 대피소를 구축하고 있다. 정확한 위치는 오늘 자정에 공개된...........좀비의 턱은 인간일때보다 20배는 더 단단해져서 짐승과 같이 이로 먹이를 뜯어먹는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다.’
‘......바이러스 감염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정부에서는 아직 이 현상에 대해서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숨기기에 급급하다. 최조 감염자가 정부의 비밀 연구소에서부터 발견되었다는 익명의 제보도 들어왔다. 감염자는-흔히 좀비라고 부르는 것-사람을 물어뜯으며 소리와 빛에 민감하다. 어둠속에 모여 있고 밝은 곳에서 조금 더 움직임이 빨라진다. 좀비를 완전히 처치하려면 뇌를 정확하게 박살내야한다. 그렇게 하기전에는 끊임없이 당신을 먹기위해서 입과 손을 움직일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지만 저 밖에 있는 것들이 진짜 영화에서나 볼법한 좀비라는 것, 어둠속에서 무리지어 있는다는 것, 밝을 때 움직임이 더 빨라진다는 정보가 다였다. 정확한 대처법이라든지, 치료제라든지, 대피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나마 자세한 정보가 있던 기사도 순식간에 삭제된 내용이라는 알림이 떴다.
삭제한 것일까, 삭제된 걸까. 정부의 비밀 연구소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다녔다.
“시발, 밖에 좀비가 돌아다니니까 조심하세요. 어쩌라고”
“소리에 반응하고 밝은 곳에서 속도가 빨라진다는 정보말고 다른거 더 찾은 사람없어?”
“......”
도움되는 정보도 없이 같은 말만 반복하는 기사에 짜증이난 재환이는 손으로 제 머리를 헤집었고, 민현이는 침착하게 이 사건에 대해 더 찾은 정보가 있는지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민현이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30분이나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나, 찾은 정보는 거의 없었다.
“자정에 대피소에 대한 안내가 있을거라니까 그때까지 기다려보자, 그전에 다른 정보가 더 올라올수도 있으니까 수시로 확인해보고.”
민현이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말이 제대로 머릿속에 들어와서 끄덕이는 이들은 얼마없어 보였다.
좀비의 울부짖음도 멈추고 고요함이 우리 주변을 맴돌았다. 그 어떤때보다 두려운 침묵이었다.
일부애들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고, 민현이와 성우는 조용히 강의실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팩속에 우유가 가득했으나, 먹고싶지않았다. 사람을 씹어먹던 좀비의 모습이 떠오르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조심스럽게 가방안을 살폈다. 보조배터리, 샌드위치, 지갑, 붕대, 필기도구, 열쇠.....쓸만한게 없었다. 하긴, 좀비가 출현할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가방에서 소리가 날만한 물건은 빼서 책상위에 올려두고 보조배터리는 붕대로 감아 놓고, 머플러를 풀어서 다시한번 샌드위치와 배터리를 감아서 가방에 넣었다. 지갑에서 동전은 전부 꺼내서 주머니에 깊숙이 넣었다.
강의실을 둘러보던 성우와 민현이는 대걸레 2개와 형광등 2개를 챙겨왔다.
“언제 구조가 올지 모르고 온다고 하더라도 옥상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올거야. 그러니까 우린 여기서 나가서 더 안전한 곳에 숨어있어야 해.”
“.........꼭 나가야 해?”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당장 먹을 것도 필요하고, 밖에 있는 저것들이 언제 문을 뚫고 들어올지 모르니까.”
“나,,난 나가기 싫어. 나가면 우리 다 죽을거야 죽을 거라고!!!”
나간다는 말에 흥분한 김지애가 소리를 질렀고, 그에 반응한 좀비들이 강의실을 향해서 쿵쿵하는 소리와 함께 울부짖었다.
“지애야, 좀 조용히해. 저것들 들어오겠어.”
박민지가 김지애의 등을 두드리면서 말을 했다. 김지애는 겁을 잔뜩 먹어서 입을 틀어막고는 눈물을 흘렸다.
“나가자고 강요하지는 않을게, 나갈 사람?”
성우의 말에 민현이는 당연히 손을 들었고, 입술을 물어뜯던 재환이는 고민을 하다가 손을 들었다. 성우의 시선은 손을 들지않는 내게 향하였고 그에 난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좋아, 그럼 민지랑 지애는 여기 남을거라는 거지?”
넓은 강의실에 둘만 남게 된다는 사실에 더 겁을 먹은 건지, 둘이서 시선을 교환하더니 ‘우..우리도 같이 나갈게.’하고 말을 하였다.
발로 걸레부분을 떼어낸 성우는 재환이와 민현이에게 하나씩 쥐어주었다. 그리고 남은 형광등 하나를 들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들게, 줘”
내 말에 성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에 형광등을 올려주었다.
“그럼 나랑 성우가 앞쪽에 서서 갈게, 민지랑 지애가 중간에 그리고 재환이랑 여주가 뒤쪽으로 가는 걸로 하자.”
민현이의 말에 다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광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까처럼 멍청히 보고만 있으면 안된다.
“야, 윤여주 너 괜찮겠어? 그냥 가위바위보로.”
“괜찮아, 할 수 있어. 애들 겁 많이 먹었잖아. 난 괜찮아.”
가방을 어깨에 매며 맨 뒤쪽에 섰다. 또다시 크ㄹ르릉 울부짖음이 시작되었다. 제발 동아리방까지 무사히 갈 수 있기를....
“여주야 조심해.”
맨 앞에 서서 내게 작게 얘기하는 민현이에게 ‘너도.’라고 대답해주고는 형광등을 두손으로 잡았다. ‘문 연다.’ 성우의 속삭임과 같은 말을 끝으로 강의실 문이 열렸다.
------------
수능도 일주일이나 미뤄지고...ㅠㅜㅜㅜ 다들 지진피해가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갑자기 좀비가 생각나서 끄적인 글이라서 사진도 없어요....우리 독자님들이 좋아하시면 다음편도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