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물_
살며시 문을 열고 나온 복도는 고요하였다. 바닥에 흩뿌려져있는 핏자국과 살점들이 아니었다면 조금전의 소란이 꿈이었다고 믿을 정도였다.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몰랐기때문에 사방을 경계하며 조용히 걸어야했다.
무사히 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데 가장 앞쪽에 있는 민현이가 손을 들어보이며 아래쪽을 가리켰다. 손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서 시선을 돌리니 복도를 서성이고 있는 좀비 한 마리가 보였다. 이쪽 시야에서 보이는 좀비가 한 마리니까 어쩌면 더 많은 좀비가 포진하고 있을지 몰랐다. 비상문자를 받고 다들 1층으로 내려왔다면 밑의 상황은 더 끔찍할게 분명했다.
좀비가 저쪽 끝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을 확인한 후에,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내려온 1층의 상황은 우리가 있던 3층보다 훨씬 더 좋지못했던 것같다. 원래 바닥의 색을 알수 없을만큼 짙은 핏자국들이 낭자하였고 피냄새와 좀비의 악취가 뒤섞여 역한 냄새를 만들어냈다. 햇빛도 잘 들지않아서 위층보다 더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중간에 좀비를 마주하지않고 쉬지않고 뛴다면 2분안에 동아리방까지 도착할 수 있다. 제발 그때동안 최악의 상황만 피할 수 있기를....
아까부터 몸을 떨던 민지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며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어왔다. 조금 앞으로 다가가서 민지의 손을 잡아주는데, 내게 잡힌 손으로 민지가 바닥 한 쪽을 가리켰다.
민지가 가리킨 방향에는 머리가 으깨진채 민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좀비가 보였다. 민지는 터져나오는 비명을 삼키기위해서 다른 한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끔찍하게 늘어져있는 좀비를 발견한 재환이도 입을 꾹 닫으며 대걸레를 두손으로 꼭 쥐고 높이 들어올렸다.
“꺄아아아아”
아,,안돼! 재환이가 좀비를 죽이기전 꿈틀대며 다가오는 좀비에 민지가 참지못하고 비명을 질러버렸다.
크게 울려퍼지는 민지의 비명소리에 앞서가던 애들이 뒤를 돌아보았고, 잠깐 시선이 마주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달리기 시작했다.
크으크으으ㅡ윽륵
열려있던 강의실에서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수수 걸어나오는 좀비에 발을 돌려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다른 생각은 나지않았다. 오직 살고싶다는 생각으로 발에 힘을 주어서 달렸다. 계단을 다시 올라가려고 했으나, 이미 계단위에서 좀비들이 떨어지듯 내려오고 있었다.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좀비들은 조금뒤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일어났고, 일부는 정확히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소리를 내지않았는데 어떻게 아는 거지, 청각뿐만 아니라 후각, 시력도 살아있는건가.
“윤여주”
멍청히 서서 좀비를 지켜보는데 뒤에서 작게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 들어가 나를 부르는 재환이의 목소리에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근처에서 그 소리를 들은 좀비가 크으으륵 소리를 내며 열린 화장실쪽으로 다가갔다. 재환이가 가까이 다가온 좀비를 살피며 내게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너무 근접한 좀비에 내가 문을 닫으라고 손짓을 보냈고, 그런 내 행동을 보고 재환이가 망설이고 있으면 뒤에 있던 민지가 재환이를 밀어내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
마음이 급했던 민지는 문을 닫기도 전에 잠금장치를 먼저 눌러버렸고, 달칵하는 소리에 화장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좀비가 문에 팔을 집어넣고 울부짖어댔다.
문을 닫으려고 하는 재환이와 들어가려고하는 좀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머리를 열린 문틈 사이로 집어넣으며 들어가려고 발악을 하는 좀비의 힘에 조금씩 문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재환이와 민지가 위험했다.
다른 좀비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기 전에 저 좀비를 빨리처리해야했다. 주머니에서 동전 2개를 꺼내 반대방향으로 힘껏 내던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동전은 꽤나 요란한 소리를 냈고, 계단을 내려오던 좀비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달려들었다.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형광등끝을 두손으로 꽉 붙들고 높이 들어 올렸다. 공포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좀비의 머리를 겨냥한 형광등은 쉽게 좀비의 머리를 관통하였고, 몸부림 치던 좀비는 그대로 축 늘어졌다. 다시 힘을 주어서 머리를 뚫은 형광등을 빼내었다. 진듯하게 묻은 좀비의 타액과 악취에 또 한번 속이 울렁거렸다.
뒷걸음질을 치다가 내가 던진 동전을 향해서 모여있던 좀비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나를 보았음에도 다른쪽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재환이는 문을 막고 있는 좀비를 발로 치우고 있었고 나도 옆에서 좀비를 옮기는 일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방금 전 나를 보고도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던 좀비와 다시 마주쳤다. 이번에도 그냥 지나가겠지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고개를 이리저리 꺽더니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윤여주 빨리 들어와”
다급한 재환이의 목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서려고하는 순간 화장실문이 쾅 닫혔다.
“안돼!! 지금문열면 우리도 죽어 난 죽기싫어!!”
민지의 비명과도같은 외침에 한눈을 팔고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며 다가오고있었다. 반대쪽은 막다른길이라서 달리 도망칠 곳도 없었다. 반대쪽에 있는 화장실을 향해 내달려서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안에서 잠궜는지 아무리 잡아당겨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옆에서는 좀비가 오고있고 문은 잠겨있고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형광등을 손에 꼭 말아잡았다. ‘제발....’
그리고 좀비들이 나를 향해서 손을 뻗는 순간, 거짓말처럼 화장실문이 열리며 센 힘이 나를 잡아당겼다.
-쾅
그르르으윽 분한 듯 크게 울부짖으며 문을 몸으로 들이받던 좀비들은 얼마 뒤에 포기를 하였는지 소리를 내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긴장이 풀려서 바닥으로 주저않으니 뒤에서 ‘괜찮아요?’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네...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아니에요. 빨리 못 열어드려서 죄송해요.”
“살아서 다행이에요”
감사인사를 하자, 오히려 빨리 문을 못 열어 드려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 남자와 살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남자였다.
“밖에서 소리친 사람 친구분 아니에요?”
“네 친구맞아요, 같은 과 동기에요.”
“친군데, 저 혼자 살겠다고 문도 잠궈버리고 너무한거 아니에요”
“너무 무서우니까 그랬겠죠...무서워서”
눈썹을 찌푸리며 말을 하는 머리가 굉장히 작은 남자와 뒤이어 너무하다며 입을 삐죽거리는 귀엽게 생긴 남자였다. 무서워서 그랬을거에요 살고 싶으니까..... 문을 닫아버린 행동에 상처를 받기는 했으나, 어쩔 수 없었던 걸 알기에 마냥 서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무사히 목숨을 건졌으니까 다 괜찮은거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이대휘입니다.”
“배진영이에요. 같은 학교 다니구요.”
어려보여서 1학년이겠구나하고 생각을 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고등학생이었다. 오늘 학교개교기념일인 것을 잊고 등교를 했다가 뒤늦게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좀비를 맞딱뜨려서 여기까지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말을 들을수록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기분에, 지금의 상황도 잊고 웃어버렸다.
“진짜 신기한 인연이네요. 아, 전 윤여주고, 같은 2학년이에요. 대학교”
같은 2학년이라는 말에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귀엽게 생긴 대휘가 ‘누나, 그럼 나랑 친구네?’라며 손뼉을 쳤고, 그런 대휘의 말에 같이 웃던 머리가 굉장히 작은 진영이가 ‘야 이대휘 누나가 너랑 왜 친구냐, 존댓말 안쓰냐’ 라고 정색을 하며 대휘의 등짝을 시원하게 때렸다.
겨우, 3살밖에 차이안나는데, 편하게 말놔요, 나도 말놓을게. 진영이에게 맞은 등을 손을 뒤로 뻗어서 문지르던 대휘가 내 말을 듣고는 ‘야, 배진영 누나가 말편하게 하라잖아. 넌 존댓말 꼬박꼬박 써라.’라며 진영이를 째려보았다. 진영이는 그런 대휘의 말을 철저히 무시하며 내게 ‘누나, 성격도 짱’이라며 배시시 웃을뿐이었다.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티격태격대는 둘의 모습에 잠시나마 무거운 생각들을 내려놓았다.
꼬르륵 소리와 함께 아침을 안먹어서라며 멋쩍게 웃던 대휘에게 가방에 잘 넣어둔 샌드위치를 넘겨주었다.
벚겨진 포장지를 타고 흐르는 음식냄새에 눈을 감았다.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갑자기 떠오른 성우의 얼굴에 애들생각이 났다. 서둘러 주머니안에 잘 넣어두었던 폰을 꺼내들었다.
[윤여주...살아있는거지...?]
[미안....미안해]
[윤여주 나랑 애들은 동방에 무사히 도착했다. 너도 빨리와]
[연락 좀 받아]
재환이의 문자 사이로 무사히 동아리방에 도착했다는 성우의 문자내용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히 모두 무사하구나.
성우와 재환이에게 괜찮다는 문자를 보내기 무섭게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해가 완전히 지고, 화장실은 완전히 어둠으로 뒤덮였다. 시계를 확인하니 7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이따금씩 울부짖던 좀비의 소리도 잠잠해지고 스산한 바람소리만이 새어나왔다.
천천히 문고리를 돌려 살짝 문을 열고 밖을 확인하였다. 어두워서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않았다. 벽을 짚고는 밖으로 한발짝 내딛었다. 그리다가....실수로 벽에 붙어있던 스위치를 눌러버렸다, 어둡던 복도가 한순간에 밝아졌다.
불이 밝혀지던 순간 보인 광경에 숨을 삼키며 조용히 그러나 서둘러 문을 걸어 잠궜다.
-우우우
-크와와아 그르으륵
조용하던 복도가 한순간에 좀비의 울음소리로 채워져나갔다.
“누나! 괜찮아?”
“밖에...밖에.. 갑자기 저것들은 왜 저러는 거야?”
“복..도가 좀비들로...꽉 찼어.....”
불이 켜진 순간,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복도를 가득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좀비가 포진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층 포악한 소리를 만들어내며 좀비들은 복도를 돌아다녔고, 이따금씩 화장실을 향해서도 몸을 쿵쿵 부딪혀왔다. 좀비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함께 복도를 통해서 나가려는 계획은 포기해야할것같았다. 재환이와 통화를 하며, 애들이 모여있는 동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조금 이따 꼭 만나자, 윤여주’ 통화를 끊기전 재환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응 꼭 다시 만나자.
무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좀비에 대휘가 몸을 살짝 떨었다. 진영이가 그런 대휘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여주었다.
창고. 라고 적힌 칸 문을 잡아당겼다. 다행히 잠궈놓지않았는지 쉽게 문이 열였다. 안에는 청소도구가 몇 개 놓여져 있었다. 대걸레 2개와 한쪽 구석에 놓인 집게 하나를 꺼내들었다.
“누나가 이거 드는게 더 나을것같은데”
“아니야, 너무 길어서 오히려 더 불편할거야”
가장 짧은 집게를 든 내게 진영이가 자신의 대걸레막대를 내밀었다. 튼튼해보이는 대걸레를 들고 있는게 더 안전할 것 같긴했지만, 선뜻 받아들 수 가 없어서 거절했다. 한쪽이 없어진 집게를 떨리는 손으로 꼭 잡았다.
“진영아, 대휘야 준비됐지?”
“응”
창문을 뜯어놓으니, 사람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생겼다. 상체를 내밀어 살핀 창문밖으로는 다행히 좀비가 보이지않았다. 먼저 창문으로 내려와 주위를 계속 살폈다.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좀비소리에 마음이 급해졌다. 진영이가 막 창문을 통해서 나오고 있었고, 좀비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조금만 더 빨리.
-크으으ㅡ으르
그것은 하나의 소리가 아니었다. 좀비소리가 뒤섞여서 울려퍼졌고 곧 수십마리의 좀비가 시야에 잡혔다.
“누나, 빨리”
어느새 넘어온 진영이가 내 손을 잡았고 우린 그대로 내달렸다. 뒤에서 우리를 발견한 좀비가 뒤따라오기는 했지만 우리가 달리는 속력을 따라잡지는 못하는지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힐끗힐끗 뒤따라오는 좀비를 보면서 뛰느라 미처 옆에서 다가온 좀비를 확인하지 못하고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다. 크으으으 입을 크게 벌리는 좀비의 턱을 두손으로 죽을 힘을 다해서 밀어내고 있는데 일순간 좀비의 행동이 멈추며 바닥으로 엎어졌다.
“누나, 괜찮아요?”
“어...어...고마워”
대휘가 내 옆에 쓰러져있는 좀비의 머리에서 대걸레를 빼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집게를 주우며 대휘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우리가 있는 쪽으로 좀비무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한 진영이가 바닥에 넘어져있는 좀비의 머리에 대걸레를 찔렀다가 빼며 ‘빨리 다시 뛰어’라고 외쳤다.
눈 앞에 보이는 건물에 뛰쳐들어가 문을 닫았다. 유리로 된 문에 좀비들이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게 보였다. 재환이와 민지가 제발 먼지 동방에 도착했기를 바랐다. 휴대폰 조명의 밝기를 낮춘후, 길을 아는 내가 앞장을 서서 걸었다. 함부로 복도의 불을 밝힐 수가 없었다.
-크와아아아악
이제 코너만 돌면 곧 동방이 나온다는 생각에 방심을 했던 건지, 모퉁이에 숨어있던 좀비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드는 좀비에 집게를 가로로 들어 좀비의 심장에 찔러넣었다.
“빨리, 들어가서 문열어달라고 해. 왼쪽에서 4번째에 있는 방이야”
심장이 찔리고도 좀비는 내게 더 다가오려고 버둥거렸다. 다시 빼내려고 하는데 집게가 좀비의 몸에 박혀서 빠지지않았다. 좀비는 심장에 집게가 박힌채 더욱 크게 울부짖으며 턱을 딱딱 거리며 내게 다가왔고 대휘는 달려드는 좀비를 힘겹게 상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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