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과 함께 목욕을 마친 타오가 뽀송한 얼굴로 화장실에서 나오자 경수는 그런 타오의 몸을 닦아주며 로션을 바르기 위해 방으로 데려갔다.
"우리 타오 아빠랑 잘 씻었어?"
"녜."
"아빠가 예쁘게 씻겨 주셨어? 막 이렇게 세게 안하고?"
"안니여! 아빠가 막 이케 물로 살살 해주셔써여."
"그랬어? 아빠 칭찬해야겠네?"
"녜! 아빠 조아여."
타오의 말에 경수는 아이의 통통한 다리에 로션을 발라주며 기분좋게 미소짓다가 갑자기 드는 생각에 멈칫했다. 아..이러다가 조금 있다가 변백현한테 지는거 아니야? 타오가 백현이가 더 좋다고 하면 어쩌지...?
이미 욕조에서 아빠와 아들이 은밀히 나눈 대화에 대해서는 눈꼽만치도 알리가 없는 도경수의 쓸데없는 걱정이 펼져질 뿐이고.
"타오야-오늘 엄마, 아빠랑 재밌게 보냈어?"
"녜!"
아이가 잠들 시간. 일찍이 스텝들을 물린 감독은 타오를 무릎에 앉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자신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니 타오가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럼 아저씨가 이제 아침에 말했던거 물어봐도 될까?"
"........"
"타오가 아직 모르겠으면 내일 말해도 되고."
"........"
"대답하기 싫으면 아저씨가 안물어볼게 타오야."
"안니에여."
"응?"
"타오는..."
타오는 말끝을 흐리며 백현과 경수를 바라봤다. 다 안다는 눈빛으로 제게 살짝 고개를 흔드는 백현과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두손을 모으고 저를 바라보는 경수. 아빠는 다 안나고 했으니까...
"엄마가...쪼끔...아주 쪼끔..더 조아여..."
제말에 입을 크게 벌리며 제게 다가와 안아드는 경수에 타오는 그의 품에 안겨 백현과 마주봤다.
잘했어.
입모양으로 제게 작게 말하는 백현.
착하네 우리 아들.
제게 씩-하니 웃는 백현의 모습에 타오는 경수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백현에게 저 역시 조용히 입모양으로 제 마음을 전했다.
아빠.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아빠.
저는 아빠도 마니 조아해여.
알아 임마.
그렇게 도경수만 모르는 부자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의 어깨너머로.
누군가에게 제아들이 변백현보다 도경수가 좋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 못견딘 경수는 결국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당연히 김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긴...내가 친구가 어딨어..김종대밖에. 변백현이 욕조에 받아놓은 깨끗한 물에 샤워까지 하고 백현의 무릎에 누운 도경수는 종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거의 끊어질 무렵,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
"종대야! 자?"
-....자는데 전화를 받겠냐. 왜.
"아니...있잖아...오늘 타오한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이렇게 물어봤거든?"
-....어.
"그랬더니 글쎄, 타오가 뭐라고 했는줄 알아?"
-......뭐랬는데.
"엄마가 더 좋다고..쪼끔 더 좋다고..막 그러는거 있지? 너무 귀엽지 않아? 어? 우리 아들이 글쎄...지 아빠한테는 또 미안ㅎ.."
-경수야.
"..응?"
-...진짜 미안한데...내가 오늘은 좀...피곤하네.
"아....그래? 미안해..."
-아니야. 괜찮아. 끊을게.
"응?...아...그래. 쉬어 종대야. 미안해."
그제서야 종대의 목소리가 평소와는 좀 다른 것도 같은 눈치없는 도경수는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경수의 모습에 백현이 만지고 있던 경수의 머리칼을 정리하며 물었다.
"왜. 김종대가 닥치래?"
"아니...그런건 아닌데..."
"근데 왜. 왜 더 자랑안하고 끊었어."
"종대가 피곤하대서...목소리가 진짜 힘이 없는것 같기도 하고.. "
"그러냐."
또 한껏 풀이 죽으려는 경수를 일으킨 백현이 경수의 등을 살짝 타오의 방쪽으로 밀었다.
"애 재워야지 이제. 늦었는데."
"응? 어 맞다!! 내가 가서 재워야지!"
"그래. 도경수가 가서 재워줘. 엄마니까."
"엉 백현아.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재우고 올게."
"그래. 또 거기서 니가 먼저 자지말고. 니 서방 기다린다."
"알게쪙."
또 신이 나서 엉덩이를 씰룩대며 타오가 있는 방으로 향하는 경수를 보던 백현이 다시 경수의 휴대폰을 들었다. 아니, 요즘 디렉팅도 없는 새끼가 지 친구 자랑도 못들어주고 그렇게 싸가지 없이 끊어?
한번 받지 않는다고 그만 둘 변백현이겠나. 다시 건 전화에 종대가 조금은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도경수. 나 피곤하다고.
"야 이새끼야. 아무리 피곤해도 니 친구가 지새끼 자랑 좀 하겠다는데 그걸 좀 못들어주고 그렇게 끊어? 도경수가 자랑할 데가 너말고 누가 있다고."
-.....야. 나 진짜 오늘은 너네 상대할 기분 아니다. 끊자.
"뭐 좆같은 일 있으면 나한테 풀어. 경수한테 그러지 말고. 쟤는 너 이러면 또 하루종일 신경쓴다."
결국은 남은 음식에 손도 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종대는 백현의 말을 듣고 있자니 더 비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변백현.
"왜."
-....술 한잔 할래.
"시간이 몇신데. 돌았냐."
-....내가 너네 집앞으로 갈게. 한잔만 하자.
"집에 애도 있고 도경수도 있다."
-.....한잔만.
"..야."
-....진짜 한잔만 하자 백현아 내가...
"......."
-지금 미칠 것 같아서 그래.
사나이 변백현. 원래 이렇게 마음 약한 인간이 아니었건만...평소에는 있는정 없는정 다떨어지게 싸워대며 안볼것처럼 굴지만 어쨌든 친구인 것을...
"그럼 집에서 마시던가. 애랑 도경수 재우고 나서."
-.....그래.
"한시간 뒤쯤에 와라. 도경수 잠든 다음에."
-.......어.
"백현아...나도 한잔만 같이 마시면 안돼?"
"안돼."
"아-왜-나도 오랜만에 술마시고 싶은데...응?"
"너 아까 김종대 목소리 들었지."
"응."
"어땠어."
"....힘들어 보였어."
"근데 니가 취해서 그새끼 토할 때까지 술먹이면 김종대가 얼마나 더 힘들겠어."
"...그..그런가?"
"그래. 그러니까 우리 도경수는 낸내해라. 오빠가 한번씩 들어올거야. 자나 안자나."
"내가 애기냐!!"
"아니, 내 마누라지."
"......헹."
"이제 눈감고 자. 너 자면 나갈게."
이불을 덮어주며 제가슴팍을 일정하게 토닥이는 백현의 손길에 잔뜩 튀어나온 입술에 서서히 힘이 풀리고 눈을 감는 도경수는 역시 아직까지 애가 애를 키운다는 말이 어울린달까.
"경수는."
"재웠지."
"너도 참..."
양손 가득 술과 안주를 사온 종대가 대강 식탁에 어질렀다. 그리고는 안주랍시고 사온 과자봉지도 뜯지 않은채 맥주 한캔을 따 급히 마시기 시작했다.
"변백현."
"왜. 야. 그리고 작게 말해. 도경수 깨."
".....너는 그렇게...경수가 좋아?"
"뭐?"
"경수가...얼만큼 좋냐 너는..?"
"그런걸 왜 묻냐 갑자기."
"그냥...대답이나 해."
"그걸 어떻게 얼만큼이라고 말로 표현해."
"....너는 당연히 니 일보다 경수가 우선이겠네.."
"장난하냐. 도경수는 비교대상이 아니지."
"...만약에 경수가 아프면...?"
"아 씨발 야. 말이 씨가 된다. 취소해 새끼야. 아프긴 누가 아파."
백현과 대화를 이어갈수록 종대는 대체 제가 하는 연애는 어떤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저 역시 아주 현실적인 타입이었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한번쯤 미쳐도 보고 불타올라 서로가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순간들을 지나보고도 싶은데...이성적으로 모든것을 판단하는 그가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취소한다 이 팔불출 새끼야."
"...김종대."
"..왜."
"너 연애하냐?"
"........"
"근데 너랑 연애하는 년인지 놈인지 모를 인간때문에 지금 이러는거냐고."
"......."
말없이 다시 맥주를 들이키는 종대의 모습에 백현은 앞에 놓인 제 맥주캔을 따서 한모금 들어켰다.
"김종대."
"왜."
"니가 누구랑 만나는지는 모르겠는데."
"......."
"너 혼자 이런 고민을 하게 두고 있다는게 나는 이해가 안가는데."
".....그러게. 나도 이해가 안간다."
"니가 이딴 고민을 하게 하는 인간이랑 연애하는 것도 이해안되고."
"...맞아. 내가 병신이야."
"김종대."
"왜 자꾸 불러 새끼야."
"나는 도경수를."
"......."
"진짜 말도 못하게 사랑한다."
"........"
"경수는 나한테 애인 그런거 아니야. 그런걸로는 표현 못해."
"........"
"도경수는 나한테 그냥...이젠..."
차마 말로 담을 수 없는 사랑이 변백현의 눈 속에 있었다. 종대는 울고 싶어졌다. 자꾸만 제사랑을 비교하게 만드는 그가 정말이지...너무 미웠다.
"근데."
"........"
"나는 좀...너무 미친새끼고."
"......."
"도경수한테."
우습게 말을 잇는 변백현.
"뭔진 모르겠지만 너도 다시 생각해봐라."
"...뭐를."
"니 애인한테 니가 진짜 바라는게 뭔지. 그게.."
"....."
"너무 큰건 아닌지. 뭐 그런거."
너무 큰거...큰거라....
연인에게 제가 항상 첫번째가 되고 싶은게 욕심일까.
"경수는 그냥 내 목숨이야."
"........"
"나는 도경수밖에 안보여. 그래서 도경수말고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도 없고 책임도 못져. 솔직히 말하자면.."
"......"
"이기적인 새끼지 나는."
".........."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니까. 꼭 나처럼 물불 안가리고 환장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
근데 말이야 백현아.
나는 그 물불 안가리는 사랑이 하고 싶어.
리스씨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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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실장과 종대의 이야기는 좀 길게 갈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커플의 주제가 이성적인 크실장과 감성적인 종대의 서로 맞춰가기. 니까요! 저번에 소재 제공해주신 우리 독자님!!그 에피소드도 꼭 담을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너무 감사드립니다. 백도의 이번 에피소드는 다음 편에 끝날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클첸이들과 세준이들의 알맞은 사진이 없어 고민입니다. 지나가시는 길에 갖고 계신 좋은 커플 사진 있으시다면 부탁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