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이의 하루일과중 맨처음하는일은 나를 찾는 일이다.남들과는 다르게 새벽부터 해뜰때까지가 가장 집중이 잘되는지라,찬열이와 함께 자도 새벽 4시쯤만 되면 아침 9시까지 작업실에서 일을 한다.8시쯤에 일어나는 찬열이는 자기전에는 자기옆에있던 내가 사라져서 늘 '백현...백현이...백현이..'라며 계속 내이름을 되뇌이며 온집안을 돌아다닌다.처음에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드는 찬열이 때문에 많이 놀랐지만,이내 약간 젖은 목소리를 내는 찬열이를 달래주기 바빴다.
지금도 그건 변함이 없다. 다만,이제는 내가 작업실에 있다는걸 알고 끝날때까지 작업실 밖에서 기다린다.
밖에서 기다리면 내가 마음이 약해진다는걸 아는걸까,왜 작업실 밖에서 기다리는건지는 모르겟으나 괜히 조급해진 나는 오늘도 30분이나 일찍 작업실을 나섰다.
"찬열아!"
"으음..다했어?백현?"
"내가 여기서 이렇게 앉아있지 말랬잖아!어서 일어나"
작업실 문앞에서 쭈그리고 졸고있는 찬열이를 보고 일어나 깨웠다.아직 젖살이 빠지지않은 얼굴이라서 위에서 내려다볼때 한움쿰 뽀얀 찹쌀떡같이 볼살이 보여 귀엽지만,찬 바닥에 함부로 앉아있게 내버려둘순 없었다.찬열이를 일으켜 세우곤 눈이 마주쳤다.찬열이 나이나 생일을 알수 없었지만,일단 예상한건데,나보다는 분명 나이가 적었다.
요즘애들보다 작은편이라고해도 일단은 성장기일텐데,잘먹고 잘재웠다고 이렇게 빨리 클수도 있는건가.새삼 청소년의 발육속도에 놀랐다.
처음 나와 눈을 마주쳤을때 내가 약간 내려다볼정도의 키였는데 지금은 아주조금이지만 내가 올려다 보고 있으니.나는 한참 클때 뭐한거지 키도 안크고.
문득 중고등학교때 공부만 했던 제가 미워졌다.운동이나 해둘껄,그럼 좀 컷을지 어찌알아.
이미 멈춰버린 제 성장판은 그만 탓하고,키가 더 클것이라고 생각했던 찬열이는 생각보다 아주 빨리 성장하고 있었다. 겉으로나 내면적으로나.얼마나 더 클진 몰라도 이제 내 옷까지 맞지 않는다면 옷을 사야될텐데 그럼 밖으로 나가야되고 찬열이를 두고 나가려니 걱정이 앞섰지만 데리고 나갈생각은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백현,이제 일 다한거야?"
"이제 나랑 책읽어,응?"
요새 말이 부쩍 늘어버린 찬열이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물론 글보단 그림이 많은 책이였지만.말은 많이 듣고 읽을수록 늘것이라는 생각에 회사에서 책이란 책은 다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가장 친한 동기 종인은 요즘 수상하다면서 이런게 왜 필요하냐며 타박했지만,어차피 보내줄꺼 그냥 보내달라며 제촉하자 한숨을 쉬며 알겟다고 했다.또 이사한집에 언제 한번 찾아오겟다는 말도 잊지않았다.
유아용부터 아동용까지 길고 짧은 동화책이 산더미다.찬열이는 그저 내가 읽어주는 책만 같이 보다가 아주 최근들어 아주 간단한 동화책을 나에게 읽어주기 시작했다.
"안녕?나는 토끼야.너는 누구야?"
"나는 호랑이야!잘부탁해 토끼야"
"안녕?나는 토끼야.너는 누구야?"
"나는 거북이야!잘부탁해 토끼야."
주인공은 토끼로,길을 지나다니며 보이는 동물들에게 인사를 주고 받는 아주 간단한 내용의 동화책이다.알록달록 선명한 색채의 삽화가 글씨보다 눈에 띄는 동화책을 보면서,정말 호랑이랑 거북이를 본 적은 있는지 토끼 목소리는 나도 못들어봤는데,토끼는 가늘고 귀엽게,호랑이랑 거북이는 굵고 둥글둥글하게 목소리를 내는 모습에 괜히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하다.어쩌면 지루하고 심심했을지도 모를 이 상황이 어떤 아이로 인해 눈에 띄게 달라졌다.이래서 애를 키우나.
조금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여름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온다. 온 집안을 메꾸며 어린 솜털을 건들이는 바람.약간 나른하면서 또 나쁘지않다.
저녁을 먹고 찬열이가 씻는동안,요즘은 외주로 들어오는 작업을 했다.,봄이랑 가을이 시즌인 저의 회사가 잠깐 한산한 여름 ,이렇게 외주로 일을 받아가고 있다.생각보다 돈이 짭잘하단말이지.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둥글둥글하고 색감이 선명한 그림스타일은 아니였지만,나의 그림들은 약간은 도시적이면서 전체적으로 따듯한 회색느낌의 그림체를 선호하는 클라이언트들에게 인기있는 편이였다. 이번에 들어온 동화는 '작은도시에 괴수가 나타났다.다들 그 괴수를 무서워하고 내쫓을려고 했다. 괴수를 눈물을 흘렸다.괴수의 눈물을 본 도시의 히어로는 모두를 설득시켜서 괴수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드리는..'이런 줄거리였는데,따돌리지말고 서로 친하게 지내라는 내용을 담은것같은데,요즘 동화는 모티브를 사회문제에서 뽑는것같다. 씁쓸하면서도 나는 이 동화에서 찬열이를 생각해냈다. 물론 아직 사람들앞에 보인적도 또 나는 히어로도 아니였지만,나는 히어로가 괴수의 눈물을 보는 장면에서 왠지모를 먹먹함이 느껴졌다.
간단한 시안을 뜬뒤,다씻었을 찬열이의 머리를 말려주러갔다.
거울앞에 앉은 찬열이의 머리를 수건을 살살살 털어주었다.
"깨끗히 씻었어?"
"응,근데 냄새나는것같아"
"무슨냄새?"
"내 몸에서 백현냄새나"
같은 샴푸에 같은 비누쓰고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그래서 그런가.
보통 자기 냄새는 잘 모르는데,후각이 좋은가?
"내 냄새?내 냄새가 뭔데?"
"백현이 냄새있어.막 막.."
너무 어려운걸 물어봤나.아직 찬열이의 어휘력으로 냄새를 표현하기엔 무리가 있는것같다.
"좋은냄새야?"
"응!많이많이 좋은냄새야"
제 몸에서 좋은 향이 난다고 하니,기분이 좋아졌다.또 이제 찬열이에게도 나와 같은 향이 난다고 하니 뭔가 신나는것같기도 했다.아이가 된것같았다.
문자가 왔다.이사 온 뒤로는 핸드폰을 볼일도 없고 연락 올 사람은 더 더욱 없어서 아주 간만에 온 문자였다.수신인은 김종인.전에 말했듯 나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동기이자,꽤나 친한 친구이다 고등학생때부터 같은 대학까지 갔지만 둘다 적성에 맞지않아서 그만두고 지금 회사에 같이 입사했다.
[요즘 무슨일있어?안하던짓까지하고 언제한번 찾아갈께 주소좀 보내봐]
너무 연락을 안한건가.거의 맨날 만나다가 지금 몇달째 연락을 안했으니 섭섭할법도 하다.그런데도 먼저 연락까지 하게 만들었으니 미안해졌다.다른 사실을 말하자면 시골로 이사를 가겟다고 결심하게된건 꽤나 충동적이였다.공기 좋고 조용한곳에서 일하고 싶다며 이제는 담배도 쓸데없이 회식이 많은 회사도 매일 사건사고가 터지는 도시가 싫다며 정말 아주 충독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결론적으로 나쁜것은 하나 없었지만 제 친구인 종인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갈터였다.
주소를 보내고 나서야,찬열이가 생각났다
어쩌지..아직 누군가를 만나기엔 무리가 있지않을까?꽤나 적응력도 빠르고 잘 습득하는 찬열을 보면 또 그건 아닐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걱정되었다.
[언제 올꺼야?]
[이번주?이번주 휴일에,일요일이 좋을것같아]
[첫 집들이 손님?올때 휴지좀 가져올래?]
[오냐.망할친구자식아.그래도 이사간지 꽤 됫는데 내가 처음이야?]
[응,어쩌다 보니 그렇게 됫어]
[알겟다 알앗어.목에 기름칠 할것도 가져갈께]
[헐 사랑해요 형님.아 그리고 오면 좀 놀랄준비도 해라]
[왜?]
[그런게 있어.나 잔다 일요일날봐!]
"찬열아"
"응?왜 백현?"
"이번주에 손님이 올꺼야"
"손님?손님이 뭐야?"
"어..음...집에 다른 사람이 올꺼야'
"다른 사람?백현말고?"
"응,친구야 친구"
"친구는 뭐야?"
꽤나 어휘력이 늘었다고 생각햇는데,예상치못한 질문이 쏟아진다.친구가 뭐냐니...자연스럽게 놀이터에서 사람사귀며 친구를 만든 나를 아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나도 어렸을땐 부모님께 친구가 뭐냐고,손님은 또 뭐냐고 물었을텐데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기억이 안난다.
"친한사람.찬열이랑 나처럼 친한사람을 친구라고 해"
"그럼 나도 백현이랑 친구야?"
"그럼.찬열이랑 나는 친구야."
뭔가 일반적인 친구랑은 살짝 다른감이 없지않아 있지만,지금은 딱히 뭐라고 대답해야될지 모르겟다.
이제껏 딱히 찬열이와 나사이를 정의 내릴수도 없었는데 '친구'정도라면 부담스럽지않고 괜찮은것 같다.
"그렇구나.."
"이제 그만 잘까?"
"응"
침대안에서 또 아기처럼 큰몸을 비집고들어와 안긴다.나는 또 그런 등을 감싸안고 잠든다.
*암호닉환영해요*
[띵동]님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