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1억
첫번째 이야기
나에겐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주 이상한 일 말이다.
나는 교통사고라도 당한듯 했다.얼핏 눈을 떠보았을 땐. 수술실이었고 병원 냄새가 가득했다.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면.. 나는 병실이었다. 주변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마 아빠의 목소리, 오빠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여기까진 참 괜찮다. 일반 운 없는 사람들과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교통사고야 자주 나는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난 그 이후로.. 잠에 들기 싫어졌다.
한 가게에 있는 의문의 할머니의 모습과 탄소가 교통사고 나는 모습이 번갈아가며 기억속에 스쳐지나간다.
새벽2시 잠에 든 탄소의 손을 꼭 붙잡고 잠이 든 엄마. 그리고 탄소는 마치 악몽이라도 꾸는듯 인상을 쓴다. 눈물이 천천히 흐른다.
'꿈을 파는 가게'라는 간판이 보이고, 탄소가 그 가게로 들어가는 것이 그려진다.
그리고 할머니가 립스틱 자국이 그대로 묻은 머그컵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선 말하고, 할머니의 빨간 입술이 클로즈업 된다.
'네가 꾸고싶은 꿈이 있나?'
할머니의 입술이 움직이지만, 소리가 들리지않자 탄소는 눈을 작게 떴다가 감는다.
주변이 엄청 어두웠다. 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기에 무서움에 떨며 몇분을 걸었을까.
웬 작은 불빛이 보였다. 버스 정류장이었다. 급히 버스 정류장으로 뛰었다.
정류장 의자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이 곳은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정류장의 이름은 써져있지 않았다. 아무 버스라도 타고 어디론가 가야겠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웬 마을버스 하나가 내 앞에서 멈추었다. 버스 문이 열리고, 그 버스에 올라타자 문득 생각이 든 건.. 지갑이 없다.
"지갑… 죄송합니다. 내릴게ㅇ.."
내 말은 듣지도 않고, 아무 표정도 없이 차를 출발시키는 기사 아저씨에 그 아저씨를 한참 바라보니..
섬뜩할 정도로 아저씨는 표정이 없었다. 아니, 감정이 없어 보였다.
덜컹거리는 차에 비틀거리다 의자에 앉아야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을까.
사람들은 꽤 많이 앉아있었고, 자리는 두자리 정도 남아있었다.
차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표정이 없었고 얘기를 하는 사람 조차도 없었다.
그리고 분명..
"……!!"
한달하고 조금 넘기 전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했다던 유명 연예인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아니.. 내가 잘못 본 것일까 싶어 눈을 비벼보아도 분명 그 연예인이 맞았다.
"여기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의 목소리였다. 고갤 들어 소리가 들리는 쪽을 보니..
"여기에요! 여기로 오세요."
"아, 네?"
"저 이상한 사람 아니니까. 그냥 오시죠."
평범해 보이지 않은 남자였다.손등에는 음표 모양의 타투가 있었고, 머리 색은 또 희한했다.
남자의 앞자리에 앉아보이니, 남자는 마치 사람을 몇년만에 만난듯 신기해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여기 버스 타서 두 번째에요. 말하는 사람 말이에요."
"두 번째..요?"
"네. 두 번째."
"아, 근데 혹시.. 저어기.. 앉은 남자분 있잖아요."
검지손가락을 치켜 올려서 아까 보았던 연예인을 가리키니 남자는 내가 가리키는 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연예인 맞죠..? 내 작은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말했다.
"52일 전에 죽은 김현범.. 얘기 하는 거 맞죠?"
"그래요! 죽은 사람이 왜 여기.."
"이 버스는."
"……."
"저승으로 가는 버스에요."
"네?"
"이 버스에 탈 수 있는 사람은 육체가 죽은 사람들. 육체를 잃고 혼만 남은 사람들이 탈 수 있는 버스인 거죠."
"육체가 죽었다뇨. 그럼.. 저 사람들이 다 죽었단 소리에요?"
"응. 당신도 마찬가지야. 이 버스는 영혼을 태우고 총 49바퀴를 돌게 돼요.
그리고 43바퀴를 돌 때 까지는 멀쩡히 말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44바퀴 부터는 그 영혼은 생각과, 기억은 뺏기게 돼요."
"……."
"저 사람들 처럼 말이에요. 분명 엊그제 까지만 해도 김현범씨 저랑 얘기도 했었는데.
아! 49바퀴를 다 돌게 될 경우에는 황천길에서 내리게 돼요.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타는 거지. 당신 처럼."
"……."
"이제 남은 건 저 혼자였는데. 그쪽이 왔으니. 덜 심심하겠네 이제."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죽었다. 그리고..
"손바닥 보면, 그쪽 나이랑 어떻게 죽었는지 사유가 써져있으니까. 확인 해보던가요."
나도 죽었다. 내 손을 덥썩 잡아 손바닥을 보는 남자에 나도 따라 손바닥을 보았다.
"자, 스물네살. 교통사고. 꽤 어린나이에 죽었구나."
"……."
"난 자살."
"…네?"
"음악 하던 사람이었거든요. 음악은 잘 안되지.. 돈은 없지. 엄마,아빠한텐 미안하지만 결국 안좋은 선택을 하게 된 거죠.
이렇게 정말 저승이란 게 있을 거란 걸 알았다면.. 죽지는 않았을 거예요. 너무 외롭거든."
"근데 저는요."
"……."
"죽지 않았어요. 분명.. 수술을 받고.. 병실에 들어왔고.. 가족 목소리도 다 들렸구요."
"네?"
"분명 난 안죽었어요. 이거 꿈일 거예요."
"……"
"난 여기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미안해요."
그 말을 하고선 자리에서 일어났을까. 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난..잠에서 깨게 되었다.
내가 눈을 뜨자,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가 놀란 눈을 하고선 의사를 불렀다.
'탄소가 깼어요!' 엄마의 말에 의사가 병실에 들어왔다. 나는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여봐, 나는 죽지 않았다. 절대로..
거짓말 처럼 또 눈이 천천히 감겼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화장실에서 눈을 뜨게 되었다. 밖에선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여긴... 클럽인 것 같다.
그리고 난 마치 토라도 하고 있었는지 속도 울렁거리고, 변기를 잡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벽을 짚고선 일어섰다. 거울을 보자.. 내 모습 그대로.. 내가 맞았다. 근데.. 내가 언제 이렇게 야시시한 옷을 입었었나.
화장실에서 나오니, 웬 모르는 남자가 내 손목을 덥썩 잡는다.
"……."
"정신이 좀 드냐? 넌 무슨 양주 한잔에 토를 하러 가냐?"
"넌 누구니..?"
"뭐?"
"…뭐?"
"뭐..가..?"
"누구냐고.. 너."
"나 몰라? 정호석이잖아."
"아..!!!"
"아아아!! 기억 나!?"
"아니.. 모르곘는데. 미안.."
남자의 손목을 뿌리치고선 대충 걸어가다가 나중엔 너무 높은 하이힐에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뭔데 이건 또.. 나 지금 꿈 꾸고 있는 거니? 무작정 밖으로 나왔을까.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처음 보는 건물들과, 아는 사람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속이 너무 울렁거려 배를 움켜잡고있자, 곧 누군가가 또 내 손목을 잡는다.
"……!"
"길에서 토하지 마라. 벌금 100만원이다."
이번엔 또 다른 남자가 내 손목을 잡고 질질 끌어, 웬 전봇대 밑으로 데려가 나를 강제로 앉혀버린다.
"미안한데.. 나 토가 안나와."
"아니? 너 토 나와. 그것도 숨 못쉬고 4초동안 웨에엑-"
"아닌ㄷ.."
곧 무섭게 토가 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술을 마신적도 없는데. 왜 토를 하는가.. 정말 울 것 같았다.
술 먹고 토하는 게 제일 짜증나는데..
"다 했냐?"
"응."
내 말에 남자가 또 내 손목을 질질 끌고 가더니 곧 웬 비싸보이는 외제차 앞에 나를 세워놓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나를 밀어낸다.
어어? 하고 남자를 바라보아도, 남자는 뒤늦게 운전석에 앉아서는 차 시동을 건다.
"아니.. 넌 또 누구세요..?"
"예뻐서 납치한다."
"에??"
무슨 드라마에도 안나올 법한 저런 유치하고, 재수없는 대사를 저렇게 날리시나..
바람이 너무 쎄서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있으니, 운전을 하던 남자는 곧 창문을 닫고선 앞을 본다.
그런 남자를 빤히 바라보았다. 옷도 쏘쏘하게 입어.. 근육도 꽤 있어.. 잘생기기도 했지? 차는 웬말이야. 신상 외제차..
"집 어디야."
"집?"
"집."
"그러니까. 집..?"
"그래. 집. 이 멍청아! 아오!"
"왜 화를 내시나!"
"말을 한 번에 못알아 들으니까. 답답해서 그러지!"
"몰라."
"집이 어딘지 몰라?"
"어."
"참나."
남자는 콧방귀를 끼고선 곧 속도를 더 밟았다. 놀래서 아무곳이나 잡고선 정면을 응시하다가 옆에 아무 건물 간판이나 보고있으니..
세령동.. 월귀동.. 등등 알 수 없는, 들어본 적도 없는 동 이름이 써저였기에 나는 이게 또 정말 개꿈이라는 걸 알아챘다.
"지금 이 상황 말이야.. 내가 미친 건지는 모르겠는데."
"토 나올 것 같으면 삼켜라."
"아니.. 토 얘기가 아니라. 혹시 여기 어디야?"
"한국."
"아니.. 그건 아는데. 혹시 지역이 어디냐 물었다!"
"백건."
"백건? 지역 이름이 백건이고.. 여기가 월령동이야?"
"응."
"왜?"
"뭐?"
"왜 또 화부터 내려고 해.."
"아니. 백건이면 백건이고, 월령동이면 월령동이지 뭐가 왜냐? 자꾸 촌티 낼래?"
그래. 들어보지도 못한 지역이라잖아. 꿈에서는 하고 싶은 건 다 이루어진다던데.. 나는 확신을 하고 내 뺨을 때렸다. 착- 소리와 함께
큰 소리가 차 안에 울렸을까. 남자는 나를 정말 이상하게 바라보더니 혀를 쯧쯧 찼고, 내 볼은.. 정말.. 아팠다.
정말 현실처럼 아파서 소리를 다 지를뻔 했다.
"내가 생각 하기엔.. 이게 꿈인 게 확실하거든? 친구야..?"
"그래서. 네 뺨을 그렇게 후려쳤냐?"
"아마 내가 꿈에 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깨고싶은데."
"가면."
"가면?"
"언제 올 건데."
"어?"
"이번에 가면 언제 올 거나고."
"내가 왜 오냐.. 안 와. 이 얼굴만 잘생기고 성격 더럽게 생긴 것아."
"뭐?"
"뭐."
"참나. 이게.."
도착한 곳은 웬 딱 봐도 비싸보이는 주택 집이었다. 놀래서 입을 떡 벌리고 있으니
남자는 내게 내리라는 말만 하고선 먼저 내려버린다.
그 따라 내리자, 정원에 들어가려면 있는 대문에 걸린 비밀번호를 치는 남자에게 물었다.
"어디 가?"
"우리 집."
"너네 집? 왜?"
"집도 모른다는데 어디 가서 자려고? 우리집에서 자. 방 많으니까."
"너 부자야?"
"어. 재벌집 아들이다 어쩔래."
"무슨 드라마같은.."
"들어와."
들어가기 싫었다. 그냥 꿈에서 깨야겠다는 생각에
눈을 감고 정신을 최대한 자야 된다는 생각에 집중을 했다.
아.. 또 눈이 떠져서 가만히 천장을 보고 있었을까. 이번엔 엄마가 진정이라도 한듯 내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정신이 들어!? 탄소야..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 저기 오빠새끼는 내가 사고가 나고 겨우 눈을 떴는데 울기는 커녕...
"엄마. 괜찮다잖아. 수술 끝나고도 그냥 자는 거라고 했잖아. 의사 선생님이. 그것도 코까지 골.."
"ㅈ..ㅈ..저..."
"야. 너는 살이라도 좀 뺴지. 너 옷갈아 입힐 때. 엄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ㅈ..ㅓ..저.."
"그래도 깨어났으니 다행이다. 뭐? 동생아? 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 같은데
"저 개.."
"개..?"
"개새끼야.."
"엄마. 얘가 개새끼라는데? 얘는 죽었다 깨어나서도 하늘같은 오빠한테 욕질이네."
엄마가 울면서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올려 핸드폰을 보고있는
오빠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고, 오빠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엄마! 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나는 또 눈이 천천히 감긴다. 그래도.. 오빠한테 욕을 하고 잠이 들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이 죽다 살아났는데 살 빼라고?.. 한창 다이어트 했을때. 쓰러졌는데도. 게임 때문에 못나간다고 했던 네가 떠올라 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검은 공간 속에서 해매다가 눈을 천천히 떴을 땐.. 와우. 여긴 또 집이다. 저승 버스에 이어서, 화장실, 그리고 일반 아파트 집 벽지..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을 땐.. 뭔 방이 장난감으로 이렇게 더러워졌는지 인상이 다 써졌다.
밖에서 우당탕 소리와 함께 깔끔하게 정장을 빼입고 있는 남자가 내가 있는 방 문을 덜컥 열고 들어온다.
"양말 한짝 어디갔어?"
"……."
"이거 양말 한짝 말이야. 아까 분명 봤.."
"모르겠는.."
"당신 손에 있는 게 양말이 아니고 뭐야 그럼?"
"아!.."
내 앞으로 다가 온 남자에게 내 손에 들린 양말을 건내주었다.
또 꿈인가보다. 또.. 근데 이번엔 무엇인지..
"윤혁이 어린이집 보낼 준비 안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느릿느릿해?"
"에?"
"아침 또 굶지말고, 냉장고에서 좀 꺼내서 먹어라. 어떻게 된 게
일 가는 남편보다 집에 있는 아내가 밥을 더 거르냐."
"……."
"나 출근한다. 오늘은 좀 늦어."
"……."
"갔다올게."
남자가 내게 다가와 내 볼에 뽀뽀를 했다. 너무 생생하게 느껴지는 느낌에 놀래서 내 볼을 매만지니
남자는 날 보고 웃더니 곧 내 옆에서 엎드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고선 나가버린다.
잠깐만...
"너.."
"……."
"누구니?"
"누구긴 누구야? 엄마 아들이지."
"아까 방금 그 남자는 내 남편이야?"
"엄마가 드디어 머리에 돌을 맞았구나?"
"이놈! 어른한테!"
"아! 왜 때려?"
"너 이름이 뭐니?"
"민윤혁."
"민윤혁?"
"응!"
"어린이집 가야 돼?"
"응!"
"여기가 우리 집이고?"
"엄마 진짜 왜 그래?"
"어린이집.. 이름이 뭔데?"
"엄마는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이름도 몰라? 살다 살다 별일이네."
아이는 꽤나 말을 잘했다. 마치.. 내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랄까.
그러니까.. 이 꿈에서는 나랑 아까 그 남자랑 결혼을 했고, 결혼을 해서 이 아이를 낳았다?
꿈에서 또 애를 낳아보네. 별어린이집이라는 가방을 매는 아이에 나는 아이를 올려다보고선 말했다.
"걱정 마. 늘 그렇듯이 운동 해. 운동. 해도 안빠지는 것 같지만..
나 혼자서 어린이집 버스 탈 수 있으니까. 걱정 말라구."
"……."
"갔다올게. 끝나고 데리러 올 필요 없어. 아빠 퇴근시간 맞춰서 픽업.. 아, 아빠 오늘 늦는다고 했지?
엄마가 데리러 와야겠는데?"
"너 쪼그만한게 말을 왜 이렇게 잘하니?"
"다른 아줌마들이 엄마랑 말투 똑같다고 판박이랬어."
"그래?"
"그리고! 엄마 누룽지 끓인다고 냄비 들여 놓은 거 빨리 끄지? 집 홀짝 태우지 말고!"
내가 이렇게 까불까불 거린다고..? 괜히 아이를 째려보자, 아이도 나를 째려보더니 곧 내 볼에 뽀뽀를 하고선
간다!! 하며 집에서 나가버린다. 그리고 난 천천히 일어나 집을 둘러보았다.
일반 사람들이 살만한 아파트였다. 거실엔 아이의 장난감들이 가득했고, 청소를 꽤 안한듯 많이 어지럽혀져있었다.
그리고.. 거실 벽에 달린 결혼 사진을 보니.
"…우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나와.. 턱시도를 멋있게 입고 있는 아까 그 남자.
나와 그 남자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꿈이 너무 리얼한 거 아니야..? 냄새도 이렇게.. 리얼하게 나는 건가..
"잠깐..!"
급하게 부엌으로 가니.. 누룽지가 많이 들은 냄비가 타고 있었다.
급하게 냄비를 만졌다가 너무 뜨거워서 뒷걸음질을 쳤다.
너무.. 너무 생생하게 아프기까지 해.
대충 냄비를 물 안에 넣어두고선 식탁 의자에 앉아서 집을 둘러보았다.
처음이었다. 꿈에서 꿈인 걸 스스로 알아채고, 이렇게 아프고, 냄새도 리얼하게 맡아지는 것도 말이다.
얼른 깨야겠단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선 깨야 돼.. 라는 말을 반복하자 곧 눈이 또 떠졌다..
이번엔 병실에 또 엄마만 있다. 내 손을 꼭 잡고선 잠이 든 엄마를 한참 바라보다 두눈을 감았다 떴다.
무슨 꿈이 이렇게 리얼할 수가 있는 거지..
몸도 피곤한 것 같고.. 꿈에서 냄비에 데였던 손끝마저도 쓰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고가 나기 전 순간의 장면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웬 할머니가 웃으며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억이 안난다.
벽에 달린 시계를 보자.. 벌써 새벽 3시였다. 나 오래도 잤구나.. 그치만 눈이 또 감긴다는 건.. 왜일까.
눈을 떴을 땐. 이번엔 버스도 아닌, 화장실도 아닌, 낯선 집도 아니었다.
고개를 들었을 땐. 여기는 확실히 한국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마치 러시아에 있는 성들.. 궁전에 온 느낌이었다.
내 앞에는 큰 연못이 있었고, 그 안에는 물고기들이 지나다닌다.
"여기서 뭐하는 거지?"
누군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을까.
"깜짝이야.."
"……."
꽤 옛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옷은 뭔지.. 턱시도 같지만, 왕이 입는듯한 느낌을 주는 셔츠에..
분명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누군가의 옷이었다.
구두까지 신은 남자를 보니 확실히 일반 사람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니 남자는 나를 한참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저는 그게. 음.. 맞아요. 지나가던 사람이요!"
"지나가던 사람? 근데 궁전에 들어왔단 말인가? 그 차림으로?"
"아, 헐! 여기 혹시 막 예전에 몇백년전에 있던 궁전 그런 건가.. 그러기엔 풍경 빼고는 인물들의 말투나 옷차림은 절대 아닌데..
아! 말투가 살짝 조선시대 느낌이 나기도 하네.. 대박.."
"대박..?"
"아, 생각해보니까! 나 여기 궁전 인터넷에서 본 것 같아. 예~전에 사진 보고 오고싶다는 생각 했었는데.
꿈에서 오게 될 줄이야."
주변엔 하녀들과, 궁전을 지키는 말과, 기사단들이 가득했다.
남자는 내가 어이가 없는지 날 어처구니 없다는듯 바라보았고, 나는 벌떡 일어서서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동시에 궁전 문을 지키던 기사단들이 내쪽으로 뛰어와 나의 팔을 양쪽에서 잡았다.
"도련님 괜찮으신지요! 당장 이 자를 끌고 나가겠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놓아주시죠."
"예..?"
"내 알아서 할테니. 풀어주시오."
기사단은 나를 놔주었고, 곧 남자가 손짓을 하자 기사단들은 저 멀리 다시 문쪽으로 향해 뛰었다.
괜히 꿈이란 걸 알고나니.. 이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고싶은 말은 다 해도 되겠다 싶어 주변을 둘러보다 남자에게 말했다.
"보아하니.. 뭐 이 나라의 왕이신가?"
"……."
"맞나본데? 이 큰 궁전에 이런 턱시도도 나쁘지 않다. 뭔가 흡혈귀 같은 느낌이랄까. 되게 섹시해."
"……."
"나 여기 좀 구경 좀 해봐도 되나? 되게 넓네.. 오늘 하루종일 구경해도 되겠어.
구경해도 돼요?"
"도대체 그쪽은 누ㄱ.."
뒤돌아 남자에게서 멀어졌다. 탄소가 신나서 궁전을 돌아다니자 곧 기사단이 석진에게 다가왔다.
석진은 그런 기사단에게 손짓으로 막아내고선 말했다.
"오늘 하루종일 궁전을 구경할 수 있게 둡시다."
"네! 알겠습니다."
꿈에서도 시간이 참 길게 갔다. 꿈에서 깨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해가 저물때까지 꿈을 꿀 수 있었다. 궁전은 꽤 넓었고, 기사단은 날 보고도 모른채했다.
아.. 이런 곳에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왕의 부인으로 살면 얼마나 편하겠어.
꿈이라도 그럼 참 행복할텐데. 몇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게 돌아다니기만 하다가 곧 아까 내가 눈을 떴었던 연못이 보였다.
이제 슬슬 꿈에서 깨볼까 생각을 하던 찰나..
궁전에서 곱게 생긴, 고운 드레스를 입은 한 중년의 여성이 하녀들의 부축을 받고선 계단을 밟아 내려왔다.
참 아름다웠다. 정말로 몇백년 전에.. 다른 나라의 여왕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이 연못은 신기하게도 겨울에 얼지 않아요. 몇십년이 지나도 그 비밀을 알 수가 없죠."
여왕의 말에 옆에 서있던 하녀들은 공손히 손을 모아 여왕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말했죠. 보는 눈이 없을 땐, 나와 눈을 맞춰도 된다고."
"……."
"예전부터 떠돌던 이야기가 있죠. 저 연못엔 1000년 묵은 요정이 산다고 해요.
그래서 겨울에도 얼지않고, 따듯할 수 있다고 해요. 전 그 요정이 이 연못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나와 눈이 마주쳤다. 분명 작은 나무 뒤로 숨어있던 나는.. 그 여자와 눈이 마주쳤고
나는 눈을 피하지도 못한채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이리오세요. 숨지말고.. 이리로."
여인이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내가 저 여인에게 다가가도 되는 걸까. 노심초사하며 천천히 나무 뒤에서 나오자 여인은 옆에 서있던 하녀들에게 말한다.
"들어가있도록 해요. 날이 추워지니.. 감기에 걸리지 않게 하구요."
여인의 말에 하녀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선 궁전으로 조심슬럽게 발을 디뎠다.
여인은 궁전으로 들어가는 하녀들을 바라보다 다시금 시선을 돌려 나를 마주했다.
나에게 다시금 손을 뻗는 여인의 고운 손을 보았다. 참 고왔다. 여인의 얼굴처럼 말이다.
다가가지 못하고 가만히 여인을 바라보고만 있자, 여인은 손을 거두고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낯선 사람이면 경계를 해야 마땅한데. 왜 소녀를 보니 마음이 편해질까요."
"……."
"저렇게 예쁜 하늘엔 감히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
"근데.. 저는 예쁜 하늘에 수많은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이요?"
"죽어서도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지어, 언젠가 죗값을 받을 거란 걸 알고 있음에도
인간은 어리석게도 왜 더한 죄를 짓고 사는 것일까요. "
"……."
"제 아이들에게 큰 잘못을 했어요."
"…아이들에게 잘못을 했어도. 곁에 엄마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고, 큰 선물이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
"저는 어렸을 때. 엄마가 제 손을 놓쳐서 길을 잃고 납치 당할 뻔 했거든요?
크고나서 저도 엄마랑 매일 다투고, 가끔은 빨리 시집이나 가서 집을 나가고 싶다는 생각.. 자주 하는데요.
엄마 생각을 하면 시집 가는 것도 두려워요.
아무리 엄마가 어렸을 때. 내 손을 놓쳐서 큰일 날 뻔 했어도 엄마는 엄마잖아요. 옆에 없으면 안 될 사람."
"손 한 번 잡아봐도 될까요?"
"…네."
"제가 갈게요."
여인은 또 나에게 손을 뻗었다. 외로운듯 슬픈 눈을 하고있는 여인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와주었다.
왠지 모르게 이 여인을 보니, 엄마의 젊었을 시절이 떠올라 눈물이 다 나올 것만 같았다.
궁전에선 아까 보았던 턱시도를 입은 남자와, 또 다른 남자 두명이 계단을 밟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 동시에.. 남쪽에서 날라온 화살이 여인의 가슴에 꽂히고 만다.
나는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 뒷걸음질을 쳤다.
곧 궁전에서 나온 아까 그 남자는 여인에게 다가가 여인의 머리를 받쳤다.
"어머니.."
어머니.. 라고 했다. 분명 어머니..라고 했다.
"어머니.."
"남쪽에서 화살이 날아왔어요. 어머니 이렇게 만든 인간. 바로 잡아와요."
절망에 빠진 남자는 곧 손을 바들바들 떨며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곧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
울고 있었다.
또.. 아까 외로운, 슬픈 표정을 짓고선 말이다.
근데 이상하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이런 슬픈 일은.. 꿈에서라도 꾸기 싫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다.
꿈에서 깨어나 눈을 떴을 땐.. 나는 울고있었다. 손을 들어 손등으로 대충 눈물을 닦아내자
역시나 내 옆에 앉아 핸드폰을 하고있는 오빠라는 놈은 콧방귀를 끼고선 말한다.
"왜. 네가 여태 먹었던 음식들이 살아나서 너 쫓아오디? 그러게 내가 작작 쳐먹으라고 했잖아. 기지배야."
"오빠."
나는 교통사고가 난 뒤로.
"뭐."
"꿈이 너무 현실같아. 너무 현실 같아서.. 꿈이 현실 같아."
"뭐라는 거야. 꿈이 현실 같다고? 야.. 가끔 그래. 뭘 그런 걸로 걱정이냐?"
"너무 현실 같아서.. 가슴이 아프다고."
"그거 살쪄서 그래. 너 깼으니까. 나 알바 간다? 엄마 올테니까. 기다려."
"……."
"우냐??"
현실같은 꿈을 여러개 꾸게 되었다. 정말.. 현실같은 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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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아.. 이거 역시 타싸에서 한 번 연재를 한적 있었는데요!
3화? 까지만 나왔었고, 이거랑은 내용이 많이 달라욥!
우울하기만 한 내용은 아니니 기대해주세요!-! ㅎㅎ
그러고보니 이건 5년 전부터? 고딩때부터 엄청 써보고 싶었던 작품인데.
제대로 써보는 느낌이랄깡!!!! 무거운 내용뿐이 아니라! 개그쪽으로도 많이ㅋㅋㅋㅋㅋ 쓸테닠ㅋㅋㅋㅋ 기대해주세요퓨!!
그럼 다음편에서 보아요!!!
미리쓰니 개꾸우우우울~~
좀이따 첫사랑보관소에서 또 보아요 ㅎ_ㅎ 이쁘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