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머니는 고급 창녀였다. 수도에서 내로라 하던 고급 요정의 접대부답게 명망 있는
순수혈통 자제들의 러브콜을 끊임 없이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자국 귀족 남성들의 펜 잉
크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로 수없는 연애편지를 받는 걸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던 어머
니는 아버지의 유일무이한 첩으로 들어가셨다. 나의 아버지도 절대 평범하신 분은 아니었
다. 그는 이 나라의 재력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다는 웃지 못할 풍문까지 돌 정도로 어마
어마한 권력과 부를 가지고 있는 이씨 가문의 가주셨고 어머니께 그 명성에 알맞을 만큼의
혼수를 선물하셨다. 그 중 가장 손꼽히던 것은 당연 이 나라의 사계절 꽃이 즐비해있는 온
실 화원이었는데 내가 저녁 식사에서 포크를 올바르게 쓰는 법도 헷깔릴 정도로 어렸을 때
에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그 곳에서 낮잠을 자곤 했었다.
나는 여느 다른 귀족 서자들과 다를 바 없이 어머니가 하나가 아니었다. 그들이 보통 네다
섯 심하면 여섯 이상의 어머니들을 두고 있다면 나는 여성편력이 그리 심하지 않은 아버지
덕분에 딱 둘의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것이다. 대(大) 이씨 가문의 안주인이 바로 나의 또
다른 어머니이다.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면 그녀는 나를 낳은 적이 없었고 나를 자식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다는 것. 호색한들이 들끓는 귀족 사회에서 유난히 여자에 관심이 없
으셨던 아버지께서 들이신 첩이라는게 겨우 창녀라는 걸 참으실 수 없으셨을 것이다. 아버
지를 향한 충성심과 여자 특유의 독점욕이 내 어머니와 그녀의 아들인 나를 향해 비수가
되어 향한 것이겠지.
물론 그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어머니는 불명예스러운 직업을
가지셨었지만 흑단의 실타래 같은 머리의 여자는 누가 봐도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정계
인사만을 상대해왔던 자 답게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언변을 지니고 있었고 그와는 상반되
는 매력인 순수함을 가진 여자였다.
어린 날의 나를 꼭 끌어안고 주무시던 어머니가 눈에 아른거릴 때면 난 내가 처한 모든 상
황이 너무나도 슬퍼졌다. 아, 나의 아름다운 어머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흔
한 여인네들의 치맛 속 암투에 희생 당하신거다.
가주의 음식에 독을 탔다는 굉장히 식상함 모함에 의해 윤기가 흐르던 그 육신은 도살장의
고기 찌꺼기만도 못하게 갈기갈기 찢어졌다. 내 눈 앞에서. 나의 또 다른 어머니는 잔인하
신 분이셨다. 나는 어머니의 입술연지색만큼이나 진한 피가 튀기는 살육의 현장에서 그녀
의 붉은 입술이 머금은 진한 미소에 몸을 떨어야만 헀다. 눈물이 속절 없이 떨어지는 와중
에도 6살의 나는 깊은 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사냥은 이제야 시작이라는 것을.
"형, 왜 아버지는 어머니를 도와주실 수 없던거야? 형은 알잖아! 우리 엄마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거. 알잖아!"
어리고 유약했던 나의 떨리는 몸을 다잡아준 것은 배다른 형, 호원이 형이었다. 그는 다른
어미의 소생이었지만 누구보다 나를 챙겨주는 사람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이 끝난 기분에
오열하는 나를 감싸 안아준 호원이 형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성열아, 그래. 네가 말 안해도 잘 알고 있어. 성희, 아니 성희님은 모함을 당하신거야.
내가 미리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 비극을 막기에는 내가 아직 너무 약했나보구나.
성열아, 미안하다. 형이 미안해."
너무나도 잔잔한 그의 목소리에 그의 품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 그를 올려다 봤을 때 나
는 보았다. 흑갈색 눈에 담겨져 있던 조용하지만 강한 분노를. 그리고 애절함을. 형은 소
리 없이 울고 있던 것이다. 나는 그 때 강한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알고도 모른 척 해
야 할 것 같은 그 무언가를. 판도라의 상자는 형의 눈물과 직결 되있다는 것을.
그런 큰 일을 겪고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 동안 형은 알게 모르게 나의 보호자
역할을 해왔고 더럽고 간악한 (우리 가문의 위대하신 안주인님의 표현에 따르면) 창녀계집
의 핏줄인 나를 이씨 가문에 머무르게 할 수 없다는 그녀의 뜻에 형은 끝까지 저항했고 어
리고 힘없는 나를 감쌌다. 그게 그와 그의 친어미 사이를 악화하는 결과를 낳았지만서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 그 일 이후 십여년 쯤 후였을거다. 혼인 적령기를 훌쩍
넘기고도 부인을 맞이하지 않는 호원이 형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남자다운 다부진 눈매
를 가진 이 청년은 누가 봐도 탐나는 청년인데 말이다. 십대 특유의 궁금증에 못이겨 나는
형에게 물었다.
"호원이 형, 형은 왜 결혼 안해?"
"그건 내게 정인이 있기 때문이지."
"에이, 뭐야. 그럼 그 정인이랑 결혼 하면 되겠네. 그렇게 간단한 걸 여태까지 왜 미뤄왔
어? 그리고 형은 나한테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걸 말도 안해줄 수가 있어? 난 내 일거수일
투족까지 형한테 보고하는데! 아잌, 진짜 완전 손해 보는 기분."
투정 부리듯 내뱉는 내 말에 형은 약간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굉장히 큰 덩어리를
목으로 꾹꾹 쑤셔넣는 듯한 표정으로.
"내 정인은 너무나 멀리 있어서 그게 안되네."
"대체 누구길래 그래? 말해줘. 응? 말해달라니까."
"미안하다, 성열아"
뜬금 없이 진중하게 날 쳐다보며 말하는 형에게 난 그 때 이상경보를 느꼈어야만 했다. 내
가 떼를 쓰고 투정을 부리면 형은 나를 항상 이기지 못했는데. 그 때의 형은 평소와는 다
르게 그 예의 쓸쓸한 미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왜 이렇게 멋있는 형을 두고 먼 곳에 간거야?"
거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낯선 사람 같은 형의 모습에 툴툴 댄다는 것이 형이 강하게 억누
르고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어야만 했다.
"그녀는 죽었지. 내가 손을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숙연함과 미안함에 뒤섞여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철없는 내
치기가 형의 상처를 건든 것이었다. 난 바보처럼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호원이 형은 그
런 나를 보고도 괜찮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될 자격 조차 없지. 난 항상 내가 과연 우리 가문의 다
음 가주에 어울리는 자질이 있는지도 의심하고 있어. 난 너무 죄가 많으니까. 어머니께도
그렇고... 아버지께도 그렇고... 그리고 너에게도 그래."
신세한탄과 비슷한 형의 독백이 이어지자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눈을 들어 형
을 바라보았다. 저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형은 여전히 내 머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아
냐, 형은 내게 죄가 없어. 형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 조차 하기도 싫은 걸..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내가 입을 떼기도 전에 숨이 턱 막혀옴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성희에게도.... 마찬가지지."
나와 눈을 맞출 때 마다 살풋이 접어지던 그 두 눈은 어느 때 보다 강렬했다. 그건 아버지
의 눈이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느꼈다. 아, 내가 결국은 건드렸구나. 판도라의 상자를 열
어버렸어. 그의 내게 비정상적일 정도로 헌신적이던 태도와 나의 어머니를 언급할 때 마다
애잔해지던 그 눈망울을. 나는 알면서도 모른 척 했던 것이다.
그래, 그는 사실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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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설정일까요 ㅋㅋㅋㅋㅋ
으잌 호원이가 성열이 형이 아니고 아버지였어!
일단 시대,공간적 배경은 음... 귀족이 존재하는 그런 사회입니다.
이름은 한국인들인데 귀족이나 가문이나 이렇게 하니 좀 오글거리죠? 그래도 참아주...세..엽..ㅋ...ㅎ.죄송해요
커플링은 수열현성입니다. 아직 명수가 나오진 않았지만 흐흐 좀만 기다려주세요.
수열이 좀 어두운 분위기라면 현성은 밝은 분위기입니다.
아이도루 팬픽은 처음 써보네요 ㅠㅠ 많이 예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