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느무 어렵네요 ㅎㅎ.... 그래도 예쁘게 봐주세요.
다들 예상하셨을 것 같은데 검은 머리의 남자는 명수입니다.
드디어 메인커플이 만났네요ㅋㅋㅋ
다음편으로 곧곧 찾아오겠습니다. 부족하더라도 재밌게 읽어주세요.
현성은 다음편 아니면 다다음편 정도에 나올거에요!
애증의 화원 02 |
사실 어디로 가든 아무 상관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막내 아들이 기분 전환이라도 하러 나가나보다 싶었겠지만 나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시종들과 가마꾼들에게 평생 시도해본 적 조차 없었던 협박을 하며 '가출'을 시도했다. 마차 안에서 힘을 빼고 축 늘였던 몸을 일으켜서 커텐을 걷어내었을 때 숲 특유의 젖은 흙 냄새가 확 끼쳐왔다.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었는데 그 파장은 매우 컸다. 그 냄새는 기억 속에 묻혀있던 동무들과 사냥을 끝내고 나면 항상 내 방에 오던 호원이 형을 생각나게 했고곧 이어 몇 일 전의 대형 사건 또한 상기시키고 말았다. 형이 나의 친아버지임을 직감적으로 느낀 나는 그 후로 형 앞에서 아버지의 아 소리도 꺼내지 않았고 호원이 형은 왠지 모르게 달라진 내 태도에 의아함을 느낀 것 같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내 선천적으로 약한 몸뚱아리에 책임을 돌리자 순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찌 보면 내 모든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집어 엎을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비밀이었지만 나는 죄다 묻어두기로 했다. 난 이미 눈치 채고 있던 것 같다. 사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형의 과보호가 수상하다고 생각도 했었고 그의 독신 선언이 나 때문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은 내 모든 의혹들이 사실임을 증명했고 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몇 일 째 시달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형을 아버지라고 부를 생각도, 인정할 생각도 없었다. 이 아주 비밀스러운 사실을 내가 포용하게 된다면 그건 정말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여인네들이 길거리에서 시시콜콜하게 떠들어댈 아무개 이야기 속의 주인공처럼 되기도 싫었고 그 위대하신 이씨 가문 안주인님의 말처럼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될 금기의 핏줄처럼 여겨지기는 더더욱 싫었다. 아직 미성년인 나에게 가혹한 시련과 같았다. 나를 끝없이 옭아매던 생각의 범람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을 때 마침 시종장이 문을 두드렸다.
"아, 들어와." "도련님, 해가 곧 저물 것 같아서 마차를 곧 내리려하는데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근처에는 마을이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정말 돌아가시지 않아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니, 돌아가고 싶지는 않고. 정 마을여관이라도 못찾겠다면 여기서 잠을 자고 말지." "도련님, 대체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차라리 저희에게 벌을 내려주세요. 저희들이 몸이 절대 성하지 않게 돌아갈거라는건 도련님께서 집에서 이렇게 나오신 것부터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지만 혹여나 야외에서 주무시다가 병이라도 들으시면.. 저희들은 목이 남아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내 말에 처음부터 안절부절 하지 못하던 시종장은 더욱 시퍼래진 안색으로 무릎을 꿇었다. 나를 올려다 보는 쏟아질 듯 담겨있는 눈물방울들이 내 동정심을 불러오기에는 충분해 보였지만 나는 내가 이쯤에서 돌아가면 얼마나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게 될지 잘 알고 있었기에 표정을 더욱 굳히고 오만해보일 수 있을 정도로 턱을 들어올렸다.
"너희들의 직속 주인이 누구지? 대답해봐." "도련님...?" "입이라고 달려 있는게 내 생각에는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묻지. 너희들의 직속 주인이 누구지?"
십여년을 함께 해온 시종장 조차도 볼 수 없던 나의 모습에 그녀의 두 눈은 순간 두려움으로 크게 뜨였다. 이제서야 이 서른살 남짓의 여인은 나를 더이상 유약하고 항상 큰 도련님의 보호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도련님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물론 성열 도련님이십니다. 제가 감히 주제 넘게 참견을 했습니다. 저희들이 주변의 인가를 어떻게든 찾아낼테니 도련님은 편히 쉬세요."
시종장은 꿇었던 무릎을 피고 내게 허리를 깊게 숙여 용서를 구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나는 만족스러운 듯이 손을 휘휘 저어 나가라는 뜻을 전했고 그녀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는 나갔다. 시종장이 마차 문을 조심스레 닫을 때 까지 나는 그 모습을 눈에 담았고 결국은 헛웃음을 흘렸다. 물론 후환이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는 내 고집을 관철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만 나를 잡아삼키는 거대한 늪에서 살아남을 것만 같았다. 아, 그 때 내가 위태위태했던 형을 건들지만 않았다면 좀더 나았을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지는 모르겠다. 안락한 소파에 몸을 뉘이고 있던 나를 현실로 돌아오게 한건 근처에서 대저택을 찾았다는 시종장의 목소리였다. 나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그 곳으로 가서 신세를 져도 되는지 묻자고 했다. 숲 한복판에 대저택을 지은 정신이상자의 얼굴이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호원이 형 특유의 냄새가 가득한 숲 속에서 야외 취침은 내 자신에게 너무한 것 같았다. 저택은 숲 속에서도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창 밖에 고개를 내밀고 저택의 외양을 확인했을 때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생김새가 생각보다 심하게 멀쩡했고 그로 인해 집 주인의 특이한 취향이 더더욱 의심되었다.
"도련님... 저,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 저택의 주인이 방을 내주는게 곤란하다고..." "하룻밤 조차도 곤란하다고?" "아.. 그게.. 죽어도 안되겠으니 다른 곳에서 자던지 말던지 하라고.." "뭐?" "자꾸 자기랑 엮이면 후회하게 될거라고 알 수 없는 말만 하는데요.."
참나,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후회하게 될거라고? 남는게 방 밖에 없는 것 같은 놈팽이인 것 같은데 고작 방 몇 개 내어주는게 아깝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해가 저문 뒤라서 숲을 도로 빠져나가는건 무리였다. 돌려말해서 우리에게 야외취침이라도 감행하라는 것 같은데 그건, 정말로 싫었다. 시종장의 잘못도 아닌걸 머리로는 아는데 내 말투는 날카롭게 나갔고 그녀는 내 눈치를 보면서 드문드문 말을 이어붙였다. 그게... 이씨 가문에서 왔다고 해도 고개를 저어서요. 어쩌면 좋죠? 헛웃음이 나옴과 동시에 알 수 없는 고집이 생겼다. 이걸 어쩌나. 난 여기서 오늘 밤을 묵어야겠는데.
"내가 직접 대화를 해봐야겠다. 나는 죽어도 여기에 한 몸 뉘여봐야겠거든." "도련님, 일단 진정하세요. 몸도 약하신 분이 괜히 흥분하시다가 합병증이라도 오면.. 상상하기도 싫네요."
나를 붙잡으려는 시종장 포함 몇 명의 시종들을 뿌리치고 나는 저택의 대문을 발로 걷어 찼다. 그 흔한 문지기 조차 없는 주제에 잠궈두지도 않았던 대문은 쉽게 열렸고 나는 그대로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기름칠을 하지 않았는지 문은 끼익 기괴한 소리를 내며 열렸고 문이 열리자 마자 보이는 인영에 나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고야 말았다. 생각과는 다르게 저택의 안은 굉장히 환했다. 밖과 심하게 대조될 정도로. 내 바로 앞에 서있던 레몬색 머리의 소년은 나를 무심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주인님의 말씀, 못들으셨습니까?'
이 동양인에게 어울리기 힘든 머리색의 소유자는 여자처럼 섬세한 이목구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잠시 멍해있던 정신을 고쳐잡고 나는 내가 이 곳에 온 목적을 상기시켰다. 나도 최대한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듣긴 들었는데 도저히 납득이 안되서 말이지. 이 곳의 주인이 한밤 중에 갈 곳이 없어 찾아온 사람들을 야생에 내몰 만큼 매몰차시지 않은 이상 적어도 나와 대화 정도는 허락하실 것 같아서 말이야."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래도 주인님은 뜻을 번복하시지 않을겁니다." "난 네가 그 사람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은데."
소년의 한 쪽 눈썹이 올라갔다.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꼼짝도 안하는 주제에 맘에 안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 같은데 같잖게 느껴지기만 했다. 남의 저택에서 무슨 행패냐, 이게 무슨 철없는 행동이냐 지탄을 받아 마땅한 행동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눈에 뵈는게 없었다. 아까는 야외의 취침도 불사한다고 했지만 그 때는 저택의 존재 여부 조차를 몰랐을 때고 이렇게 사람 뉘일 수 있는 집이 있는 한 나는 굳이 밖에서 불필요한 생각들을 하며 잠에 들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노려보고 있었을까. 그 때 저택 중앙의 계단 쪽에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시끄럽군." "주,주인님. 죄송합니다."
드디어 주인공 등장. 나는 그 비정한 집주인의 상판대기라도 확인하자는 식으로 고개를 빠르게 들어올렸고 지극히 무심하고 깊은 두 눈에 꽉 잡히고 말았다. 조금 거리감이 있는데도 틈없이 맞물리는 시선에 나는 다시 공황 상태에 빠졌다.
"분명히 후회할거라고 했을텐데."
남자의 검은 머리칼과 흰 피부는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고 나는 문득 그 지독한 눈이 나를 끝까지 놔주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무채색의 의복을 입고 있었지만 절대 칙칙해보이지 않았다. 명화 속에나 나올 것 같은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는 갑자기 엄습해오는 불안감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 모습에 그가 눈을 살짝 가늘게 뜨면서도 나를 응시하고 있었을 때 나는 또 다시 느꼈다. 그는 아직 내게 아무 해도 가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느꼈다. 아, 내가 이래서는 안됐는데. 저번에 불안불안했던 호원이 형을 건드렸던 때처럼. 그 때와 똑같은 기분을 느끼고 나는 다시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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