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현총수/ 우아한 탐닉]
#02
*
"민호야. 답장이 안와."
턱을 괴고 입을 부우 내밀며 앉아있던 기범이 열심히 종이를 넘기고 있는 민호에게 말을 붙였다. 편지가 안와.
"네가 시오넬인걸 알아차렸나보지."
"아니야. 절대 그럴리 없단 말이야."
내가 얼마나 정성스럽게 보냈는데, 김종현에 대한 마음을 잔뜩 담아서 얼마나 사랑해줬는데.
사실 눈치를 챘을만도 했다. 어느날 갑자기 초인종이 울리고 대뜸 문 앞에 놓여있는 편지라니. 하지만 김종현이라면 의심없이 나의 관심을 받아줄 것 같았다.
실제로 요 몇 달간은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으니까. 아마 나를 보면 반가워하고 기뻐하겠지.
내가 김종현이 좋아하는 것들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거다.
"이상해. 최민호."
기범의 말에 민호가 종이를 넘기던 시선을 기범에게 돌렸다.
곧장 나 화났음. 이라는 표정으로 민호를 바라보는 기범의 시선에 어이없다는듯 다시 시선을 종이로 돌리긴 했지만.
"너는 왜 종현이를 시오넬에 데려올 생각을 안해? 마지막 아네르가 죽었어. 우린 이제 어떡해?"
"아네르니 뭐니, 다 헛소리야."
"우린 아네르가 없으면 살지 못해."
"그딴거 안 믿어."
민호의 차가운 말에 기범은 곧장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풀고 진지하게 민호를 쳐다봤다. 저 바보같은 녀석.
"그래, 뭐 믿지 않아도 좋아. 그런데 내 생각엔 아마…."
기범이 말을 그만뒀다. 그런 기범의 행동에 다시 한번 기범에게로 시선을 돌린 민호가 계속하라는듯 기범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기범은 그런 민호가 우스운 듯 옅은 조소를 지었다.
피의 서약을 믿지 않는 최고 권위자. 그동안 한번도 남의 피를 탐해본 적이 없는것으로,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있다.
아네르를 믿지 않는다고?
"카텐이 종현이를 데려간 것 같아."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가 움직일꺼야. 김종현은 내가 먼저 발견했어. 너보다, 카텐 놈들 보다.
*
"태민아. 잠깐만."
"왜요?"
태민이 몰고 온 검은색 자동차에 몸을 싣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 감고 조금만 기다려요.'라는 태민의 말에 그 자리 그대로 앉아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왜 감으라는건지 이유는 몰랐지만 그리 하라길래 그렇게 했다.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태민의 '도착했어요.'라는 말에 무거운 눈꺼풀을 애써 들어올렸을때 눈앞에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도 익숙했다는 것. 종현은 그것밖에 알 수가 없었다.
"여기…"
"형이 생각하는게 맞아요. 아네르의 구역이었죠."
"여기는 왜 온거야?"
헛된 기대를 해본다. 어쩌면 카텐에 가둬놓는 삶이 아니라 여기, 이 곳. 나의 고향에 두고 살아가게 할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
"형이 없던 그 10년동안. 우리에겐 많은 일들이 일어났어요. 몇몇 구역들은 시오넬로 넘어가고, 우리는 그 넘어간 구역을 아네르를 흡수함으로써 보완했죠."
"뭐라고?"
"아네르는 이제 존재하지 않아요."
태민의 말이 귓가에 박혔다. 존재하지 않는다. 내 구역, 내 가족.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사람이 없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나를 그렇게 목숨을 바쳐서까지 살리려고 했던 그녀의 노력이 간절했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종현은 눈앞에 놓인 풍경에 집중했다. 변함없이 여전했다. 여기가 아네르의 구역이든, 카텐의 구역이든. 눈에 보이는 풍경은 여전했다.
태민이 자연스럽게 종현을 차에서 내리게 했다. 곧장 아네르의 입구, 아니. 카텐의 입구에서 뛰어나온 남자가 태민에게서 무언가 건네받더니
태민과 종현을 카텐의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순식간에 입구에 쳐있는 막이 사라진다. 시오넬의 접근을 막는 장인것 같다.
"형."
태민이 앞서 걷다가 뒤돌아서서 종현에게 말을 건다. 종현은 그런 태민의 부름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시선을 태민에게 고정시켰다.
"나를 믿어요."
"그래."
믿을 수 없는 그 말에 종현이 당연하다는듯이 대답하자 태민은 대답과 동시에 손을 잡아채며 예전의 그 곳. 그 공간으로 종현을 이끌었다.
그녀와 그, 내가 함께였던 그 공간. 지금은 카텐의 권위자가 있을 그 공간으로.
변한게 없는 공간, 문, 물건들. 곧장 문을 열어젖힌 태민이는 위에 앉아있는 흐릿한 실루엣의 누군가에게 보일듯 말듯한 조소를 띄우며 종현의 손을 더 꽉 잡았다.
"데리고 왔어."
"가까이 와."
남자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였다 들어올리며 종현을 안으로 이끈 태민이 남자와 더 가까워지자 곧장 종현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형.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요.'
무릎을 꿇어라. 종현은 태민의 말을 듣자마자 곧장 굳어버렸다. 할 수 있을리가 없다.
'형.'
태민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던 말던 종현은 그저 가만히 서있었다. 죽음의 두려움보다 굴복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아네르는 카텐에게 굴복해야 할 종족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입장이 아니다.
종현은 입술을 꾹 다물고 그 자리 그대로 서있었다.
"숙이지 않겠다는거지?"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그 소리에 종현은 고개를 들어올려 남자를 바라봤다.
멀리서 봤던 실루엣과는 다르게 얼굴에 온화함이 가득한 사람이다. 환한 미소로 종현을 바라보는 남자의 행동에 종현이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내게서 얻어갈건 아무것도 없을거에요."
"이미 얻었어."
남자가 의자에서 내려와 곧장 종현을 향해 다가온다. 종현은 그런 남자의 행동에 움찔 몸을 움직였다.
잠시 떨어져 있던 태민의 손이 겁내지 말라는 듯이 종현의 손을 꽉 감싸온다.
그런 태민의 행동을 본건지 살짝 미소를 굳힌 남자가 곧장 종현의 앞에 멈춰서더니 한 손을 들어올려 종현의 얼굴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마지막 아네르의 얼굴을 보게 됐지."
남자가 손을 내밀자 태민이 남자의 손에 칼을 올려 놓는다. 무슨 행동을 취하려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종현은 태민에게서 벗어나려 손을 비틀었다.
곧장 남자의 손이 종현의 어깨를 잡아온다. 하지마. 하지말란 말이야.
"해치치 않아. 종현아."
남자의 달콤한 말이 종현을 향한다. 종현은 남자의 말에 움직이던 몸을 굳혔다. 남자의 진심어린 말. 알 수 없는 감정이 가득히 담긴 눈동자.
종현은 그런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본적이 있나. 내가 저 얼굴을 본적이 있었던가. 저 목소리를 들은적이 있었나.
"나는…. 나는."
종현이 더듬거리며 입을 열자 곧장 남자는 칼을 종현의 목에 가져다대고 부드럽게 살을 베어낸다.
그와 동시에 종현의 귓가에 닿은 남자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어를 내뱉는다. 천천히.
'널 지킬꺼야.'
남자의 말에 종현의 눈동자에 가득차있던 아픔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감정만이 가득 담겼다. 그리고 떠오르는 이름. 이진기.
종현은 진기의 입술이 귓가에서 내려가 목에 닿는 느낌에 질끈 눈을 감았다.
진기는 종현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슬쩍 쓸어올렸다. 몇 번 핥더니 곧장 입술을 떼어내는 진기의 행동에는 탐하지 않겠다는 통제가 담겨있었다.
여기까지가 단순한 위협이라는듯. 충분히 이해 했다는듯이 진기는 종현을 감싸고 있던 손과 얼굴을 떼어내고는 태민에게 명령을 내렸다.
"데려가."
"이진기."
종현이 무심코 내뱉은 이름에 진기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태민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가는 종현의 눈에는 계속해서 진기의 얼굴이 담겼고, 태민은 그런 종현의 행동에 더욱더 종현의 손을 꽈악 붙잡고 표정을 굳혔다.
작가의 주절주절 |
어어… 점점 갈 수록 재미가 없어지는건 기분 탓이 아닐꺼에요(울음울음) 다음편도 최~대한 빨리 올…리도록 하겠지만.
언제 올지는 또르르
암호닉 주신 세분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럼 오늘도 전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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