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시간을 달리는 소녀(piano ver.)
열병
written by. Thames
일주일이 지났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백현이가 천식이 있어서 2년 전에 끊은 담배를 다시 물어보니 이때까지 어떻게 참아왔나 싶은 생각과 강한 흡연욕구가 솟구쳐 올랐다. 인터넷에서 소브라니를 보루로 주문했다. 급한대로 레종멘솔을 사서 연달아 2갑을 피워댔더니 내가 담배연기를 생산하는것같았다. 그 날 이후로 백현이를 찾으러 나가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3일의 휴식기를 마치고 회사로 정식출근했으며 매일 아침마다 아이의 학교로 전화를 해서 출결상황만 듣고 끊었다. 이틀전부터 학교를 나오고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많이 아프지는 않다고, 그냥 풀이 약간 죽어있는것 같다는 말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이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그냥 아기일 뿐이었지만 제 딴에는 착실하게 성장하고 발전해가고 있었을 아이를 난 가두려고 한것이다. 그것을 못견딘 아이는 억눌렀던 심리를 표출해서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려고 했던게 아닐까. 생각해보니 나와의 동거 2년동안 아이의 동선은 정해져있었다. 중3때부터 동거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집-학교-집의 루트를 반복하며 친구를 만나는것을 극도로 자제하는 아이의 모습을 왜 난 깨닫지 못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이의 친구들을 싫어했던게 아니라 아이가 나 말고 의지 할 사람이 생기는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도록 응석을 마음껏 부릴수 있도록 키웠다. 여기서 나의 잘못된 교육 철학이 나오는건가. 10대 시절을 너무 파삭하게 보낸 아이에게 죄책감이 밀려왔다. 나때문에, 남들보다 더욱 심한 성장통을 안겨준 나를 원망하고 있지는 않을까.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학교가 끝나는 시각은 5시 40분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학교앞에 가보지 않았다. 나를 피할까봐, 나를 못본척하며 지나갈까봐 두려웠다. 그리고 많이 보고싶었다. 보고싶어 백현아. 용기없는 내가 죽일놈이다.
*
드레스룸에 들어가 수트를 고르기 시작했다. 검은색, 검은색이 좋겠다 싶어 검은색 수트를 고르고, 검은색 넥타이를 고르고. 이건 누가 봐도 프로포즈 하는 남자의 옷차림새였다. 사과하러 가는거니까 좀더 멋있게 하고 가고싶었다. 일주일만에 보는 얼굴인데 살이 더 빠졌을까, 헬쑥해 졌으면 어쩌지, 밥은 잘 먹고 다녔나 싶은 사소한 걱정들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했다. 원래 입이 짧아서 챙겨주지 않으면 먹지 않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꽃집 앞에 도착했을때는 이미 네시가 조금 넘어있었다. 남자앤데 꽃을 좋아할까, 그래도 백현이는 감성이 소녀감성이니까 좋아하겠지. 말도 안되는 합리화를 시키며 장미꽃 100송이를 주문했다. 35만원입니다. 캐셔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신용카드를 내밀며 뭐라고 첫 말을 내뱉을지 생각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아직도 화나있는건 아닐까. 서명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백현이에게 무슨말을 할지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여자친구분한테 선물하실건가봐요."
뒤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캐셔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멀쑥하게 웃어보이고는 인쇄되어 나오는 영수증에 시선을 두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지금 나는 백현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것같아 죽겠는데. 장미꽃 100송이를 포장하면서도 캐셔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포장은 무슨색깔로 해드릴까요, 리본은요, 금띠는 두르시겠어요? 계속해서 속사포처럼 내뱉는 질문에 나는 꽃집 밖에 걸려있는 꽃다발 모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모형이랑 똑같이 해주시겠어요?"
최대한 공손하게, 20분 정도 지나고 완성된 꽃다발은 내가 봐도 예뻤다. 어떤 여자가 이런 꽃다발을 싫어하겠어. 내 애인은 남자인게 문제지만. 조수석에 꽃다발을 놓고 학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섯시. 40분만 있으면 백현이가 밖으로 나올 시간이었다. 아직도 첫 대사를 정하지 못했다. 무작정 끌고 오는건 납치 같고. 그렇다고 학교 앞에서 주저리를 늘어놓자니 시선이 신경쓰였다. 내가 이렇게 한심한 남자였나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학교앞이었다. 교통사고가 안난게 천만다행일 정도로 어떻게 온지 알수가 없었다. 학교 운동장은 한산했다. 그도 그럴것이 예술고등학교는 운동장을 잘 이용하지도 않을 뿐더러 지금은 마지막 교시였다. 아마도 실기준비나 하고있겠지. 자동차에 구비되어 있는 거울로 지금의 내 상태를 점검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오늘따라 금요일은 휴직인 회사가 너무도 고마웠다.
*
오늘도 학교에서 선생님께 많이 혼이났다. 백현아 손을 동그랗게, 왜 잘하다가 기본도 못하니. 누가 손톱으로 치래. 손 눕히지마, 손세워! 노처녀 선생님의 히스테리가 아주 극에 달해서 고막이 터질것 같았다. 결국 7시까지 개인교습을 받을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얇은 지휘봉으로 내 손등을 열번은 내리치셨다. 슈만 소나타 2번 다시는 안칠거야. 7시가 조금넘어 어둑어둑해 질때쯤 학교 기숙사에만 불이 켜져있었고 지금 하교를 하는 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 앞에 나갔을때는 어떤 키 큰 사람이 형태로만 보였다. 원래 있던 가로등은 어디가고 왜 안보이는거야 괜히 무섭게. 나는 그 사람쪽을 피해서 옆으로 스윽 비켜가려고 할때 익숙한 목소리와 익숙한 말투가 들렸다.
"백현아 왜 이렇게 늦었어, 형 걱정했잖아."
*
중저음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백현의 귓가를 때렸다. 백현은 천천히 그 쪽으로 몸을 돌려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 형이다. 박찬열이다. 섣불리 다가갈순 없었다. 아직도 화가 나있을수도 있으니까. 이것은 찬열과 백현 둘 다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찬열은 용기를 내서 백현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뿌리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기뻤다.
"백현아, 형 걱정 많이 했는데."
".........."
"형이, 너 그렇게 보내고 나서 얼마나 후회했는데."
".........."
"형이랑은 이제 말도 안할거야?"
"......아니..."
그렇게 대답하는 백현의 몸이 떨려오고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자 찬열은 아이를 더 꽉 안아주었다. 다 나 때문이야, 백현아. 형 용서해주라. 그 말과 동시에 백현의 눈가에 입을 맞추자 아이가 화들짝 놀랐다. 형때문에 많이 속상했지 백현아, 아팠지, 고개들어봐 얼굴좀 보자. 어두운 곳에서도 네 얼굴만 잘보인다고 말했잖아. 고개들어봐. 찬열은 백현의 고개를 들게하고 어두운 와중에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혹시라도 아픈 흔적은 없나, 상처는 안생겼나.
"흐윽, 형 잘못했어."
"...뭐?"
"잘못했어, 형 보고싶었어."
자신을 허리께에 팔을 감아오며 말하는 아이의 몸이 아까보다 훨씬 떨리고 있었다. 찬열은 자신의 와이셔츠가 축축하게 젖어오는것을 느끼며 아이가 울지못하도록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아이는 울면 힘이 다 빠져서 곧바로 잠에 빠져들곤 했기때문에, 우는것은 되도록이면 방지해야했다. 우는 백현을 안아들고 뒷자석에 태운뒤 라이트를 on 상태로 만들었다. 아이의 얼굴이 엉망이었다. 항상 얼굴에서 없어질줄을 모르던 눈물선이 오늘따라 진하게 생긴것같았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온통 눈물 범벅이 되서는 펑펑 우는 아이를 보며 조금만 더 일찍올걸, 조금만 더 빨리 데리러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백현을 자신의 무릎에 눕히고 혈압계와 흡입제를 꺼냈다. 울면 안돼, 혈압이 점점 떨어지잖아. 흡입제를 받아들이면서도 백현은 계속 찬열의 이름을 불렀다. 박찬열, 형, 찬열이형. 계속 울먹이는 아이때문에 흡입제를 제대로 받아들이지도 못하자 찬열은 흡입제를 빼고는 백현의 입에 살짝 입을 맞췄다. 촉촉하던 입술이 버석하게 말라있었다. 찬열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백현의 입에 다시한번 입을 맞췄다. 백현은 입술뿐 아니라 혀도 버석하게 말라있어서 찬열을 더 안쓰럽게 만들었다. 키스를 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때문에 찬열은 괜히 눈물이 날것같았다. 이렇게 여리고 아프고 조금만 건드려도 부서질것같은 앤데, 어떻게 화를내. 이렇게 예쁜데. 혀로 아이의 혀를 살살 달래주었다. 이러저리 피하다가도 엉켜오는 혀때문에 찬열은 백현의 교복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얄쌍한 허리선을 한번 쓰윽 쓸었다. 카섹스는 처음인데.
하루에 2편 연재는 앞으로 자제하겠습니다.
뭐니뭐니해도 퀄리티 원래도 개퀄인데 거지퀄이 됐네요...
먼가 아련터지는 찬백을 쓰고싶었는데 이건 무슨 캐릭멘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뎬댱...핡...잘못했어여 저를 매우치세여ㅠㅠㅠㅠㅠㅠㅠㅠ
다음편은 기다리시던 카섹...이구요 그다음편은 완결입니다^,^
매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