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쳤냐고 물어봤을 때 그 아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피곤하냐고 물어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내 물음을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는 아이에게 어느새 화가 날것같아 도로에 차를 정차하고 고개를 획 돌려 그를 바라봤을땐 이미 잠에 곯아떨어진듯 불편한 자세로 안전벨트를 꼭 쥐고 고른 숨을 쉬는 아이가 보였다. 자는것같기도 하고 내 물음이 귀찮아서 자는체 하는것 같기도 하고. 평소에도 얼굴에 아무런 생각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을 유추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젠장. 귀찮게 하네 정말.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는 엑셀레이터를 미친듯이 밟았다. 새벽 2시의 밤거리는 그렇게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미친듯이 밟을수가 있었다. 감시용카메라가 이쪽을 보고 번쩍한것 같았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지금은 빨리 집으로 가서 나른한 몸을 씻고 자고 싶었으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옆에서 자고 있는 아이를 안아들고 도어락을 푼 뒤 그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힌 후 이불을 잘 덮어주고 나왔다. 먹는 즐거움을 모르니까 그렇게 가볍게 안아들리지 백현아. 백현이가 다니는 예술고등학교는 절반이상이 한국인이었고 나머지 반은 터키, 러시아, 인도 등 거의 외국인학교나 다름이 없었다. 말이 예술고등학교지 외국인학교나 다름없는 교육 시스템이나 교정은 백현이를 그 학교에 보내는데에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다. 물론 본인도 그닥 학교에 가고싶지는 않은 것 같지만 친구가 거기 다니고 있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허락했다. 아직까지도 탐탁치 않은 눈길로 백현이를 바라보면 아이는 나에게 온갖 애교를 다 부리며 은근슬쩍 그 화제를 피해가곤 한다.
씻고 매일 읽던 소설책을 잠시 꺼내들어 읽던 도중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란의 방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옆 콘솔에 책을 엎어둔 후 노크를 하고 그의 방으로 들어가니, 젠장할. 백현이가 정신을 가누지도 못한채 침대에서 떨어진 채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일어나고 싶으면 날 불러."
"아니야…씻고 자고 싶어…내가 할 수 있어."
"고집은…. 알았어. 그럼 욕실까지만 데려다 줄게, 안에서 넘어지지마."
저혈압에 혼자서 잘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이는 언제나 잠에서 깰 때마다 이 소란을 피운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리고 다시 침실로 들어와 책을 읽고 있었다. 몇번이나 읽은 책이지만 읽을 때마다 감회가 새로워 다 아는 내용도 흥미롭게 읽힌다. 20분쯤 지났을때 욕실 문을 여닫는 소리와 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이가 다 씻고 이제 잠에 들려고 하는것같아서 잠자리를 봐줄까 싶어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젖은 머리칼을 말리지 않고 자려는 아이에게 아침에 했던 잔소리를 또 한다.
"형이 머리 말리고 자랬잖아. 안 말리고 자면 감기 걸려."
"감기 안걸려. 머리 말릴 힘이 없어."
"그럼 내가 말려줄게 어깨에 수건 걸치고 여기 와서 앉아."
머리를 말리지 않고 자는건 또 싫어는지 별다른 투정없이 내 앞에 와서 다소곳이 앉는다. 검은머리칼이 물기를 머금어 약간 파란빛을 띄우니 원래 하얗던 피부가 더 하얘보여서 얼굴이 찌푸려진다. 나도 피부 하얀편인데 왜 얘는 나보다 더 하얀걸까. 매일 집에만 있어서 그런가. 햇빛을 좀 더 많이 봐야겠다 싶어 이번주 토요일에는 아이를 데리고 멀리 멀리 일광욕을 하러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드라이어를 키고 듣기 싫은 소음이 귓가를 간질이자 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말려주는 내 손길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머리에 있는 물기를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5분 정도 지나자 대충 머리가 다 말려졌는지 다시 윤이 반짝반짝 나는 검은머리로 돌아온 아이를 안아들어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가슴까지 덮어주었다. 새벽 3시 30분. 4시간 정도밖에 못자겠군. 평소 하던데로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불을 끄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이마가 많이 뜨겁다. 열 나는것 같기도 하고. 방금 전까지는 몰랐는데 아이의 호흡이 거친것 같기도 하고.
"현아, 아프니?"
"....."
병자는 말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서랍에서 혈압계와 흡입제를 꺼내들고 아이를 일으켰다. 혈압이 점점 더 떨어지는구나 아가야. 그러니까 좀 따뜻하게 다니랬잖아. 감기라도 걸리면 한 일주일은 일어나지도 못하는 아이가. 콜록콜록 거리며 흡입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를 달래며 숨을 들이쉬게 만들었다.
"…찬열이형…"
"입 다물어."
"....."
"....."
"잘못했어."
"....."
"잘못했다니까…"
"잘못할짓을 왜 했어. 입 다물고 숨이나 제대로 쉬어."
화가 났다. 그냥, 짜증이 솟구쳐 올랐다. 지난번에도 일주일동안 골골 거리며 집에서 누워있는걸 겨우겨우 회복시켜 학교 보내놨더니만 오늘 또 시작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거친 손으로 숨을 들이키게 하자 아이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서럽니? 서럽겠지. 서러우라고 그러는거야. 아, 그런데 울면 안되는데. 울어서 호흡이 거칠어지자 잘들어가던 흡입제를 못받아 들이고 있다. 이 때는 또 내가 한발 물러서줘야 되겠지? 울지 않게. 그래야 애가 나을테니까.
"알았어. 울지마. 형이 잘못했어. 뚝. 울지마."
"…진짜…?"
"응, 그러니까 울지마. 너 우는거 보면 형이 마음 아프잖아. 울지말고 뚝해."
우리 관계는 이것의 연속이다. 아이가 잘못하고 나는 화가나고 아이가 울면 나는 사과하고. 싫지 않다 이런게. 근데 싫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이미 내 안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었다. 우는게 보기싫지만 나름 우는것도 매력있다. 우리 관계는 모순이다. 모순.
아 병맛....이런 20분만에 끄적인게 그렇죠 뭐ㅠㅠ아아아아아아아아
나중에 시간되면 2편쓰고 아니면 그냥 치울게여ㅋㅋㅋㅋㅋ
오랜만에 쓰는거라서 좀 돋을수도 있어여
댓글
♥
찬열이는 뭔가 좀 자상한데 이상한쪽으로 머리가 잘돌아가는 스타일
백현이는 그냥 애기예요 할말 제대로 못하고
원래 구상이랑 많이 달라졌는데 이해해주실거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