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루민] underpeace 02
이상한 꿈을 꿨다.
작년에 가족들과 떠난 해외 여행에서 본 푸른 바다가 나왔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파랗고 투명한 바다였는데, 그 바다가 꿈에 나왔다.
잔잔한 크로아티아의 바다.
난 그 바다를 보며 울고 있었다. 왜 울고 있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꽤나 감성적인 꿈 때문인지 잠에서 깼는데도 기분이 몽롱했다.
갑자기 작년에 본 바다가 왜 꿈에 나왔을까. 난 왜 울고 있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단 의문들을 떠올리다 방으로 가져다주는 아침을 먹고 시계를 보니 정오가 지난지 한참이었다.
1시에 지하 3층으로 오라고 했었지.
방 안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방 밖으로 나왔다.
건물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규모가 대단했으며, 복도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하 3층부터 지상 5층까지 있는 건물인 것 같았다.
“민석씨.”
“아, 깜짝이야.”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남자, 아니 크리스가 바로 앞에 서 있었다. 크리스는 작게 웃었다.
“와 주셨네요.”
“…가족들을 지키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복도 안 쪽 커다란 문 앞으로 날 안내한 크리스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내 건네주었다.
“이게 없으면 여기 들어갈 수 없어요.”
“이게 뭔데요?”
“신원 확인 같은겁니다. 민간인이 여기에 함부로 들어갈 순 없잖아요. 뭐, 이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부 지급된 건 아니지만.”
문 옆 조그만 기계에 카드를 갖다대니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양쪽으로 열렸다.
안은 그냥 평범한 원룸 같았다.
복층형 구조였는데,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2층이 잘 보이지 않았다.
“슈브레이유는 아마 자고 있을거에요.”
“…2층에 있나요?”
“네. 딱히 자지않으면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슈브레이유는.”
“…”
“그는 항상 사는게 무료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해요.”
“…”
“…자살 시도도 몇 번 한적이 있는데, 할 때마다 번번히 실패하니까.”
“…”
“이제 죽는 것도 포기한거죠. 그저, 미래의 전쟁에서 자신이 쓰일 날을 기다리는 일 밖엔 할 수 있는게 없어요.”
2층으로 올라오니 크리스가 침대를 가르켰다.
흰 침대. 온통 하얗기만 한 벽지와 가구들. 막상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하얗기만 했다.
그리고 침대 위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새우잠을 자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순간, 하얀 배경과 쏟아지는 햇빛을 받으며 잠든 남자가 너무 잘 어울려서, 박제 된건줄로만 알았다.
그는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슈브레이유.”
“…”
“일어나.”
“…”
“손님이 왔어.”
“…안 자.”
그는 찬찬히 상체를 들어올렸다. 크리스와 비슷한 밝은 상아색의 머리칼이 살짝 흔들렸다. 긴 속눈썹에 가려져 있던 눈동자가 날 향했다.
“…”
“…”
“…안녕.”
“…”
“…하세요.”
어벙한 내 인사를 듣곤 크리스가 크지 않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표정인 남자를 보니 괜시리 무안해졌다.
“…”
“…저기 크리스, 설마 한국어를 못하….”
“빠오즈.”
“…네?”
남자가 뱉은 말은 전혀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크리스를 보는데, 그는 날 보더니 한번 더 웃음을 터뜨리곤 계단으로 내려가 버렸다.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
“…저기, 빠오즈가 뭐에요?”
“…”
“한국어 못해요?”
“만두.”
“…네?”
“만두 닮았어.”
남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두라니, 농담같은 건 하나도 못하게 생긴 얼굴로….
“…농담이죠?”
“아닌데.”
“…”
“농담같아?”
“…그래도 초면에…”
“…”
“그러시면….”
대꾸할 말이 없잖아요.
“볼.”
“…네?”
“볼 만져보고 싶다.”
“…”
남자는 거리낌없이 몸을 일으켜 내 볼에 손을 가져다댔다.
따뜻한 온기에, 그의 잔잔한 눈동자에 몸이 저절로 멈췄다.
“와.”
“…저기, 손 좀…”
“역시 만두같다.”
“…”
“하하.”
밝은 햇빛을 등에 지고 남자는 웃었다. 휘어지는 나른한 눈매를 보며 깨달았다.
아.
이 남자는,
크로아티아의 바다를 닮았다.
암호닉 신청해주시는 분들, 신알신 해주시는 분들 모두다 감사드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