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se of Cards
19. 역사
“언론사에 지금 보내준 그대로 연락하고, 기자회견 일정 잡아. 그래, 최대한 빨리.”
민기가 전화를 돌리는 동안, 종현은 멀찌감치 앉아 날 보는 둥 마는 둥 멍하니 있었다. 간호사가 내 머리카락과 입 안을 닦아내어 비닐 팩에 개별로 담는다.
기록에 남아있는 부모님의 DNA와 내 것을 대조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 딸이다.’라고 선포하기에는 그 반발이 예상 가능했으니. 면봉이 닿은 입 안이 전체적으로 썼다. 끝맛이 인상이 써지도록 불쾌했다.
“다 끝나셨고요, 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리세요. 나오면 연락 드릴 거에요.”
“늦어요.”
“네?”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건 다 하세요.”
“아, 네……”
종현의 신경질에 떨떠름한 표정이 된 간호사가 검사실을 나섰다. 가셔도 돼요. 어느새 전화를 끊은 민기가 종현의 어깨를 살짝 민다.
“왜 선생님한테 신경질이야? 버르장머리 없게.”
“……일정은, 다 잡았어?”
“어. 딱 일주일 후야. 그 사이에 할 게 잔뜩이야. 빨리 가자고.”
가죠? 그의 고갯짓을 따라 나도 일어섰다. 할 일이 많다고. 사무실로 갈게요. 종현은 탐탁지 않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쉬는 게 좋지 않겠어?”
내게 물었으나 날 보고 말한 건 아니었다. 피하는 그 눈에서 묽은 죄책감 같은 걸 읽을 수 있었다. 위선이었다.
“무슨 소리. 지금 일주일도 얼마나 빠듯한 지 몰라? 원래라면 지금 이런 거에 시간 쓸 때가 아니라고.”
“……맞아요. 가요, 일하러.”
내 대답에 두 사람 다 짐짓 놀란 티가 났으나 누구도 반문하진 않았다. 난 결정을 했고, 이제 맞춰가야 한다. 구역질이 나오고 머리가 아파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난 내 불행을 팔기로 했다.
“정신이 없어서 마실 게 없네요. 그냥 물 괜찮아요?”
“주세요.”
그가 정수기에서 냉수 두 잔을 따라 내 앞에 하나를 놓았다. 사무실 안은 온통 너저분한 서류더미와 먼지, 연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기계들로 시끄러웠다. 풀썩, 소파에 주저앉은 그가 물을 한 모금 들이킨다.
“죄송해요. 시기가 시기인지라 좀 더럽네요.”
“……네.”
후딱 해치우고 끝내죠. 주먹을 쥐었다폈다를 반복하던 그가 제 옆구리에 끼어있던 서류 봉투를 앞으로 가져온다.
“정확히 모르죠? 1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나 혼자 무슨 힘으로 알아냈겠어. 속으로 곱씹으며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걸 대답으로 알아들은 민기가 무릎 위 봉투에서 주섬주섬 서류뭉치들을 꺼냈다.
“저도 그 때 중학생이었고, 전 기록되고 조사된 부분들. 그리고 나중에서야 조사하고 전해들은 것들. 그 정도 객관적인 것들밖에 말해줄 수 없어요.”
“……”
“더 알고 싶으면, 킹이나 김종현한테 물어보라는 의미에요.”
그럼 시작할까요? 그리고 그가 사진 한 장을 집어 든다. 선명하게 찍힌 두 남녀의 얼굴. 둘의 가슴팍에 달린 푸른 배지. 나의 부모님. 이젠 흐릿해져 버린 내 머릿속 잔상을 덧칠하는 인상이었다.
“13대 스페이드 킹과 퀸, 당신 부모님이죠.”
그리고 그가 사진을 한 장 더 찾아낸다.
“이 분은 기억해요? 13대 스페이드 에이스.”
“……”
“김종현 아버님이시죠.”
기억은 났다. 드문드문 부모님의 지인처럼 만난 기억이 있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나란히 놓인 세 장의 사진에서, 나는 단 한 톨의 친근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세계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혹시 카드 칠 줄 알아요?”
“……아뇨.”
“그럼……룰부터 설명해야겠군요. 정확한 명칭은 ‘플레잉 카드 (Playing card)’에요. 하나의 직책을 맡은 사람 하나를 ‘카드(card)’라고 부르죠. 당신, 나, 킹, 모두가 한 장의 카드에요.”
한 수트에는 4장의 메이저 카드(Major Card)와 9장의 마이너 카드(Minor Card)가 있어요. 킹, 퀸, 잭, 에이스가 메이저고, 2부터 10까지 9종류의 숫자 카드들은 마이너죠. 메이저와 마이너, 두 종류 모두 한 수트를 결성하는데 필수적이에요.
“메이저들은 한 장의 카드가 하나의 사람과 맞먹어요. 하지만 마이너는 하나의 ‘부대’를 가리키죠. 예를 들어 스페이드의 10번 부대는 그 부대장이 10번 카드 직책을 달고, 밑에 군사들은 10-1, 10-2, 이런 식으로 표기되죠. 이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여기서 넘어가고.”
“……”
“진짜 중요한 건 메이저 카드들이죠. 4명의 인물이 필요해요. 에이스와 잭은 각각 한 사람씩 존재하는 게 필수적이에요. 킹과 퀸은 둘 중 하나는 필수로 있어야 하되 둘 다 있는 게 이상적이라고 여겨지고 있죠.”
어느새 빈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하는 그를 나는 잘 새겨들어야 했다. 나는 내 불행을 판매하기로 했고, 그러기 위해선 수요를 잘 알아야 했으니까. 게다가 그가 곧 얘기해줄 것들은 10년 전의 나의 버려짐과…… 부모님의 죽음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추가로 그가 설명해주는 것들은 나의 필요를 떠나서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꽤 흥미를 자극하는 것들이었다.
“네 수트에 메이저 카드가 각각 4장, 마이너 카드가 9장. 전부 합하면 52장이 되죠. 이 52장을 전부 합해서 세트(set), 팩(pack) 또는 덱(deck)이라고도 불러요. 덱은 현재 중립구역 회장의 명칭이기도 하죠. 그건 알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잉 카드 대신에 트럼프 카드(Trump Card)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건 스페이드 수트에서 주로 쓰여요. 트럼프란 건 원래 카드 게임에서 가장 좋은, 으뜸패를 지칭하는 용어거든요. 그 게임에서 가장 승률이 높은 패.”
“……”
“무패역사의 스페이드죠. 최근엔 잘 모르겠지만.”
워낙 악재가 겹쳐야지 말이에요. 그가 종이의 빈 공간에, 알파벳들을 적는다.
“K는 킹, Q는 퀸, J는 잭, A는 에이스. 알죠?”
“……”
“킹, 퀸, 잭들은 각 수트마다 상징하는 인물들이 따로 있어요. 예를 들면, 스페이드의 킹은 ‘다윗 왕’이죠.”
구약성서에 나오는 인물이죠. 솔로몬의 아버지이자, 고대 이스라엘의 국왕. 스페이드의 퀸은 아테나에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죠.
“잭은 오지에르. 또는 홀거 단스케라고도 해요. 전설 속 바이킹 시대의 덴마크 기사죠.”
“……”
“이것도 잉여 정보에요. 자부심 가지면 좋잖아요?”
빙그레 웃으며 그가 다시 한 번, 종이 위에 크게 알파벳 A를 그린다.
“여기서 에이스는 왜 대우를 못 받냐. 그건 에이스는 그림 카드가 아니라서 그래요.”
“……”
“실제 카드 게임에서 그림이 그려진 건 킹, 퀸, 잭 뿐이에요. 에이스는 사실 숫자 1을 의미하는 숫자 카드거든요. 요즘엔 그림 카드로 취급 받긴 하지만.”
각설하고. 여하튼 전쟁이 어떻게 굴러갔나를 알려면 각 카드가 뭘 하는 역할인지 알아야겠죠? 그가 어느새 이런저런 낙서와 글자들로 꽉 차버린 종이를 뒤집어 반대편 깨끗한 면에 다시 글씨를 쓴다.
“킹과 퀸. 말할 필요도 없죠. 수트의 최고 권위자들이에요. 모든 권리를 지니고 독식하죠. 가끔 킹이 퀸보다 더 큰 권위를 지닌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아요. 둘은 같은 위치에요. 성별의 차이일 뿐이지.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에 찌든 사람들이 하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들고 나서서 이 모양이 된 거지.”
“……”
“각 수트마다 킹과 퀸을 부르는 호칭이 따로 존재하기도 해요. 스페이드에선 가끔 이들을 ‘리더(Leader)’라고 부르기도 해요. 다이아몬드는 ‘회장(President)’, 하트는 ‘교황(Pope)’, 클럽은 ‘보스(Boss)’. 공식 명칭은 아니고. 은어 정도로 생각하세요. 누가 본인보고 리더라고 불러도 당황하지 말라는 의미니까.”
주로 무소속 시민들이 많이 쓰죠. 킹이나 퀸보다 중립적인 의미를 쓰려고 하는 것 같아요. 중립 뉴스나 기사에서도 쓰여요. 그는 종이 위에 LEADER라고 쓴 후 두어 번 동그라미를 쳤다.
“다음은 잭. 잭은 일종의…… 두뇌라고 보면 돼요. 참모의 역할이죠. 킹과 퀸의 왼팔이자 모든 전략의 총괄이에요. 그래서 지금 당신한테 열심히 강연을 하고 있는 거고요. 넘어 갈게요.”
“……”
“마지막으로, 에이스인데…… 아까 말했죠? 에이스는 원래 숫자 1이라고.”
“……”
“공식적으로 에이스는 군사 담당이에요. 동시에 행동대장이기도 하죠. 또 보안을 맡고 있기도 해요. 말하자면…… 손수 칼 들고 뛰어다니는 경찰청장, 정도죠.”
“……”
“특히 스페이드의 에이스(Ace of Spades)는 관용어구로 한 업계의 최고를 뜻하기도 해요. 그만큼 스페이드의 에이스는 선망의 대상이자, 에이스 중의 에이스라고도 불리죠.”
“……”
그래서 가장 위험한 직종이기도 해요. 에이스는 드물게 스파이, 암살 등의 역할도 수행해야 하거든요. 전세계에 얼굴이 다 팔리는데 그런 일까지 도맡아 한다는 건 불합리하니까요. 그래서 이들이 가장 작은 숫자 1을 상징하는 거에요. 정상의 자리에 있지만 가장 위험한 일도 나서야 하니까. 대신 페이는 전 수트에서 제일 세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k high return), 그만큼 지원자들도 많고요.”
물론 많이들 그만 두기도 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기도 하고. 힘드니까. 직업 수명도 엄청 짧아요. 나이가 들어서 몸이 굼뜨거나 능력이 떨어지면 수트 입장에선 해고할 수밖에 없으니까. 보통 은퇴 연령은 30대 초반이에요. 김종현도 얼마 안 남았어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처음 만난 순간, 상처투성이였던 우진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 수트는 각각 다른 성향을 가졌어요. 스페이드는 흔히 ‘군대’에 비유되곤 하죠. 스페이드의 심볼은 검을 상징해요. 귄위, 권력, 죽음을 뜻하죠. 법과 질서가 엄격하고 사상도 보수적인 경우가 많아요. 수트의 카드들 간의 결속력도 뛰어나서 단체 의식이 강하고요. 이곳은 권력을 향한 무조건적 충성을 중시하죠. 하극상 또는 배신, 그건 즉시 사형이에요.”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마 킹이 깨어나면 저랑 김종현도 극시 사형일 거에요. 그리고 또 그가 씩 웃었다. 더 이상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가 없게 되었다.
“스페이드가 군대라면 다이아몬드는 ‘대기업’이에요. 스페이드가 혈통을 통해 다음 킹을 선출한다면, 이들은 실적 기록을 토대로 투표를 진행하죠. 민주주의 표본이죠. 메이저 카드들이 권력을 많이 가져가는 건 사실이지만, 스페이드만큼은 아니에요. 또 수트 자체가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이는 만큼, 실제로 많은 사설사업도 하고 있어요. 소속 인구 수도 비교적 많고, 수익률은 제일 높아요. 어떻게 보면……가장 민첩한 곳이죠.”
그렇게 말하는 민기의 표정에 쓴 맛이 감돌았다. 스페이드 입장에선 다이아몬드는 철전지 원수이니 좋게 말하는 게 쓸 법도 했다.
“하트는 정말……이질적인 곳이죠. 여긴 마치 종교집단 같아요. 킹을 ‘교황’이라고 지칭하는 것부터가 글러먹었죠. 스페이드보다도 훨씬 독재적이에요. 알려진 정보도 많이 없고, 외부 교류도 잘 안 해요. 인구수도 적고. 특히 현재 킹은 이름 빼고는 알려진 정보도 없죠. 비밀스러운 대신 얌전하기는 한데, 이번에 갑자기 다이아몬드랑 연합을 발표한 것처럼 뒤통수를 때리는 경우도 있어요.”
“……”
“아, 그리고 하트는 전쟁에 참전한 적이 다른 수트에 비해 훨씬 적어요. 기권을 많이 하는 건데, 이게 오히려 수트 홍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평화주의자’를 표방하는 하트로 많이들 몰려가거든요.”
그래도 아직 다른 데 비해 작은 곳이죠. 바티칸 공화국 알죠? 그 느낌이에요. 통제도 엄청 심하고. 이번엔 인터넷까지 끊었었어요. 나사 하나 빠진 교황이 사는 곳이죠. 그리고 그는 종이 위에 마지막 심볼 하나를 그린다. 세 개의 이파리, 클럽이었다.
“클럽 심볼은 곤봉을 형상화한 모양이에요. 농민을 대표하며, 지혜의 상징이기도 하죠.”
“……”
“하지만 수트 자체는 지혜와는 거리가 좀 멀어요. 인구수는 가장 많은데 소득은 언제나 최하위죠. 빈곤층이 많이 분포해있고, 덕분에 치안도 그닥이에요. 클럽 정권은 길게 가는 법이 없죠. 지금 정권도 3년 전에 쿠데타를 일으켜서 자리잡았죠. 아직까지도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에요.”
자꾸만 우진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름 씨.’ 날 부르던 목소리도 들린다. 그가 해주던 얘기들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아이처럼 엉엉 울던 모습들도 눈에 선하다. 일주일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억겁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 가슴 한 켠이 참을 수 없이 아렸다.
“대충 얘기를 끝냈으니, 드디어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가 있겠군요.”
종이 한 장을 양면으로 꽉꽉 메우고 나서야 그가 숨을 돌린다. 가득 차 있던 물컵을 바닥까지 들이키고, 다시 새 종이 한 장을 꺼낸 그가 펜을 바로 잡는다.
“옛날 얘기 시간이네요.”
“……”
“당신 부모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겠어요.”
“10년 전, 13대 전쟁은 10월 15일로 예정되어 있었어요. 전 수트가 참전, 스페이드는 킹, 퀸, 잭, 에이스 네 카드 모두 보유하고 있었고, 하트도 마찬가지였죠. 다이아몬드는 퀸이 부재, 클럽은 킹이 부재. 총 14명으로 결정 났었죠.”
그의 손에 의해 열댓 장의 사진들이 테이블 위로 펼쳐진다.
“이젠 대부분 고인이 되어버렸지만.”
“……”
“……큼, 아무튼. 딜러는 10월 1일에 13대 전쟁의 룰을 발표했어요.”
“……”
“정식 명칭은 ‘계급 전쟁’이에요. 카드 칠 줄 모른다고 했죠?”
그럼 지금부터 잘 들어둬요. 그는 종이에 차례대로 2, 3, 4, 5, 6 7, 8, 9, 10을 일렬로 써내려간다.
“당신 부모님이 왜 돌아가셨는지 답을 듣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가 내 눈치를 언뜻 살피는 게 느껴졌지만……굳이 맞춰주고 싶진 않았다. 그냥 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에서 이미 죽었네 살았네 별 얘기를 다 들었었는데, 새삼 꺼려질 것도 없었다.
“계급 전쟁은 일본에서 설계된 게임이에요. 카드 게임에선, 빨리 내 패를 잃는 게 우승이지만……실제론 패를 전부 잃는 순간 패배하죠. 그래서 룰이 조금 달라요.”
그는 일렬로 나열한 숫자 뒤에 J, Q + K, A 를 추가한다.
“순서대로 가장 낮은 계급부터 높은 계급이에요. 2의 카드는 가장 약한 수죠. 퀸과 킹은 잭보다 높고, 에이스는 최강의 카드로 그보다도 더 높죠. 하지만 또한 에이스는 2번 카드보다 약한 카드에요. 그러나 2번 카드는 킹과 퀸을 공격할 수 없죠. 뫼비우스의 띠에요.”
“……”
“카드들은 자신보다 높은 계급을 공격할 수 없다. 자신보다 낮은 계급만을 없앨 수 있다. 이걸 머릿속에 익히고 시작하면 돼요.”
“……”
“룰은 간단해요. 각 수트는 토너먼트 식으로 다른 수트와 적어도 한 번은 싸워야 해요. 즉 각자 최소 3번의 전투를 치르게 되죠. 그리고 그 승률을 따져서, 1위와 2위 수트가 다시 한 번 더 맞붙는 거에요. 거기서 이긴 수트가 승리하는, 간단한 게임이죠.”
그리고 그가 사각형의 도형을 그린다. 각 꼭지점에 하나의 수트를 써넣고, 대각선의 점을 잇는 선 두 개를 추가한다. 각 선에 하나씩 번호를 매기며 숫자 6까지 써넣은 그가 펜촉으로 도형을 가리킨다.
“보면, 결국 총 6번의 전투를 우선적으로 치르게 돼요. 딜러는 10월 15일을 시작으로 하루에 두 개씩 전투를 잡아, 3일 안에 일종의 예선전을 끝내도록 했죠.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거에요.”
“……”
“15일엔 스페이드 대 하트, 다이아몬드 대 클럽의 전투가 있었어요. 여기서 하트가 기권을 선언하면서 스페이드는 자동 승리. 다이아몬드는 클럽을 상대로 승리했고.”
“……”
“16일엔 스페이드 대 클럽, 다이아몬드 대 하트. 여기서 스페이드가 클럽을 상대로 승리했고, 다이아몬드도 하트를 상대로 승리했죠. 문제는 여기서부터예요.”
그가 종이에서 시선을 떼고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스페이드를 상대로 기권을 선언한 하트가 다이아몬드를 상대론 전투에 임했다.”
“……”
“만만하게 보인 거죠, 다이아몬드가.”
그래도 두 수트는 라이벌 관계고, 어느 정도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던 다이아몬드인데. 자존심에 엄청나게 상처를 입은 거죠.
“심지어 다이아몬드가 하트를 상대로 쉽게 승리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어요. 꽤나 힘든 전투였으니까. 다이아몬드도 병력에 꽤나 손실을 입었죠. 반면 스페이드는 큰 무리 없이 두 번의 전투에서 승리했어요. 이제 남은 건 17일의 전투, 스페이드 대 다이아몬드. 그리고 하트 대 클럽이었죠.”
“……”
“다이아몬드는 불안했을 거에요. 겨우 상대가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스페이드를 상대로 승리할 확률이 거의 없었으니까.”
“……”
“특히 당시 다이아몬드의 킹은 선거 공약으로 전쟁의 승리를 매우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으로, 덕분에 지지율을 많이 높였어요. 만약 패배한다면 지지율은 추락할거고, 그는 사임을 면할 수 없었겠죠. 물론 그건 겨우 예선이었지만, 이미 한 번 지고 많은 손실을 본 군대가, 130년 무패의 트럼프를 이길 수 있을 까요?”
“……”
“거의 불가능한 거죠.”
자,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할까요? 전쟁은 지게 생겼고, 나는 퇴출당하게 생겼다. 난 스페이드를 상대로 이기지 않으면 안 되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스페이드는 킹과 퀸이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수트의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다. 즉, 그들만 없으면……
“……군인들의 사기가 엄청 떨어지는 거군요.”
“맞아요.”
그리고 민기가 다시, 부모님의 사진을 종이더미 가장 위쪽으로 끌고 온다. 선명한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난 어느새 그 틈에 있는 황민현의 어릴 적 얼굴을 그려낼 수 있었다.
“그래서 죽였군요.”
“……”
“우리 부모님을.”
“……당시 딜러는 매 전투 이후 그 결과를 보고받는 걸 룰로 설정했었어요. 따라서 모든 수트의 지도자들은 중립구역에 가서 상황 보고를 해야 했죠.”
민기는 상 위에서 사진을 치워 뒤집어 엎어 놓았다. 사진이 없어도 잔상을 똑똑히 그려낼 수 있었다. 좋지 않았다.
“16일자 전투가 끝나고, 스페이드의 킹과 퀸도 보고를 위해 중립구역으로 가는 길이었죠. 각 수트의 모집 장소는 각기 달랐고,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기 때문에 그 장소를 알고 있는 건 메이저 카드 4명 밖에 없었어요.”
“……”
“……킹과 퀸은 보고를 마치고, 차에 올라탔죠. 장소가 비밀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운전수도 없었고, 오로지 두 사람뿐이었어요.”
“……”
“중립구역과 맞닿아있는 스페이드 시의 초입에서 겨우 7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고속도로 한 가운데. 거기서 일이 터졌죠.”
터졌죠, 말 그대로. 그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다. 나는 작은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차가 폭발했어요.”
“……”
“늦은 밤이었고, 또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길 위에 다른 차량은 없었죠. 폭발 사고는 그 700미터 밖, 경계선을 지키던 우리 측 관제탑에 포착되었고, 발견된 지 30분이 넘게 지나서야……그게 킹과 퀸인 걸 알게 됐죠.”
그 뒤로는……당신도 알 거라고 생각해요. 도시가 아수라장이 되었고, 황민현이 킹으로 즉위했죠. 이제 민기는 펜을 완전히 내려놓고 소파에 기댄 채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즉위 직후, 황민현은 사고의 특이점을 지적했어요.”
“……”
“단순 사고는 절대 아니었어요. 차체를 조사한 결과, 엔진에서 플라스틱 폭약*흔적을 발견했거든요.
*변형시킬 수 있으며 혼합할 수 있고 점착성이 있는, 연소에 의해 폭발시킬 수 있는 폭약
“……”
“결국 그건 암살 테러라는 게 확정 지어졌죠. 그렇다면, 대체 폭탄이 거기 어떻게 부착될 수 있었는가, 그게 범인을 잡는 핵심이었죠. 그 날 그들이 찾아갔던 장소는 철저히 비밀리에 유지되었었고, 그 시간은 킹과 퀸이 자의적으로 결정한 것이었죠. 누구도 이 일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어요.”
그가 다시 앞으로 몸을 숙인다. 마치 비밀 얘기를 할 듯이. 플라스틱 폭탄은, 안전성이 높아 자가 폭발은 힘들어요. 외부에서 자극을 줄 수 있는 다른 소형 폭탄, 또는 전기 자극을 필요로 하죠. 집중을 하려 할 때 가끔 그러하듯, 그는 종이 위에 의미 없는 원을 반복해서 그리고 있었다.
“조사 중 폭탄과 함께 유도전류 기기가 함께 부착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죠. 결국 전기 충격으로 인해 폭발했다는 것. 스페이드는 즉시 신호를 추적했고, 이때 딜러가 수사에 참여해 단서를 제공했죠.”
“……”
“폭발 시기 발생된 전기 신호들 중에서, 다이아몬드에서 발생한 것이 중립구역을 가로지르고 스페이드 인접 지역에서 끊긴 것을 추적해낸 거죠.”
다이아몬드의 유일한 실수는 폭탄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는 거죠. 만약 그들이 스페이드로 이미 진입한 이후에 터트렸다면, 딜러가 수사에 참여할 수 없었을 테고. 그럼 그들의 전략도 들통나지 않았을 거에요.
“이후 다이아몬드는 부인해봤지만 소용없었고, 나중엔 그들의 에이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기까지 했죠. 에이스의 단독 행동이였다나, 뭐라나…… 추했죠. 결국 딜러는 그들에게 페널티를 줬어요. 그리고 뭐, 전쟁에서 승리했고. 하지만 아직 문제가 끝나지 않았죠.”
“……”
“차에 폭탄이 부착된 경위가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뚝, 강박적으로 낙서를 그리던 그의 손이 멈췄다.
“딜러는 스페이드에게 중립구역의 CCTV를 제공했었는데, 그곳엔 차에 접근한 그 무엇도 찍혀있지 않았어요. 차를 추적하는 사람, 기계, 무엇도요. 결국 답은 하나였어요.”
“……”
“차는 애초에 폭탄이 설치된 채로 이동했다는 것.”
“……”
“배신자의 존재죠.”
“차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걸로 미뤄 보았을 때, 다이아몬드가 폭발을 일으키기 위해선 의심 받지 않고 차를 감시할 사람이 필요했죠.”
“……”
“그리고 그곳에서 폭탄의 위치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건?”
“……”
“그 700미터 밖의 스페이드 관제탑이죠.”
배신자. 결국 누군가가 차에 미리 폭탄과 장치를 설치해두었고, 관제탑에서 차의 이동경로를 지켜보다가 다이아몬드에게 신호를 보낸 거죠. 불행 중 다행인지, 그 타이밍이 어긋나서 너무 일찍 터져버렸지만.
“킹은 곧장 이 사실을 알았어요.”
“……”
“그리고 그는 청소를 시작했죠.”
“……”
“킹과 퀸의 이동경로를 파악하고 있을 법한 자들, 또 그들의 차에 의심 없이 접근이 가능했던 자들, 또 보안시스템에 접속해 그들을 추적할 수 있었던 자들……”
“……”
“수십 명이 죽었죠, 그 때.”
당시 잭과 에이스는 물론, 그 때 관제탑에 있었던 자들, 보안 직원들, 하다못해 주차장 보안 요원까지. 싹 다 갈아 엎었어요. 그 덕에 킹은 공포 정치의 타이틀을 획득했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오히려 덕분에 혼란했던 사회를 진정시키는 데 적은 노력을 들였죠.
“그리고 세월이 흘렀죠.”
“……”
“킹은 지난 10년 동안 다이아몬드에 복수하겠다는 생각 하나만 하면서 살았어요.”
“……”
“당신이 그 뒤를 이었으면 좋겠네요.”
“……얘기 다 끝났나?”
“뭐야, 언제 왔어?”
숨을 죽인 채 문가에 서있던 종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방금.
“수술 끝났어.”
“……어떤데?”
종현이 가볍게 숨을 내쉰다.
“성공적이래.”
그 말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안도와 불안. 두 가지가 얼기설기 얽혀서 뇌를 괴롭혔다. 나는 그든, 나든, 죽기를 바란 게 아니었나. 아니, 차라리 죽지 않을 거라면, 무사히 깨어나서 날 다시 쫓아내 줘. 여긴 내 자리가 아니니까.
“지금 회복실 들어갔어.”
“꼬박 8시간 걸렸네.”
“불행 중 다행이지. 둘이 할 얘기 아직 많이 남았나?”
“옛날 얘기 하느라 정작 중요한 얘기를 많이 못했거든.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밥 먹고 하지. 벌써 6시야.”
벌써? 시계를 쳐다본 민기가 휘둥그래 진다. 말 많아서 굶어 죽을 뻔 했네.
“이름아.”
“……”
“……밥 먹고, 하자.”
그리고 종현은 쏜살같이 방을 나가버렸다. 민기는 그가 남기고 간 어색한 공기를 속으로 욕했다. 죄책감은 지 혼자 가질 것이지, 나한테 전도하지 말고. 어떻게 할래요? 민기가 어색하게 물었다.
“……가요, 밥 먹으러.”
민기는 그 단정한 표정에서 민현의 얼굴을 겹쳐봤다.
“골 때리네.”
또 왜? 진영이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가 반응을 원한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노트북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다니엘이 피식, 웃는다.
“진영아, 뉴스 좀 틀어봐.”
진영은 순순히 텔레비전을 킨다. 지상파 방송으로 채널을 돌린 진영의 눈이 조금씩 커진다.
“뭐야, 쟤 죽었어?”
중립 구역서 스페이드 측 자가용 폭발…… 스페이드 측 부상. 속보를 장식하는 타이틀이 하단에 흘러간다. 곧이어 민현의 영상과, 연기를 뿜는 자동차의 영상이 송출된다.
“헐, 나 아까 못 봤는데.”
“안 죽었어. 부상이라잖아.”
이내 이어지는 다음 뉴스를 보며, 진영의 눈은 더 커진다.
“이에 대해 스페이드 측은, 치료를 위해 자리를 비운 리더의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임시 리더직을 고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와, 쟤네 돌았나 봐. 진영은 어느새 노트 위 그림을 그리던 손을 멈추고 텔레비전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너무 뚫어지게 쳐다봐서, 등 뒤에 어느새 ‘그’가 와있다는 것도 모른 채.
“……뭐 봐.”
“와씨, 깜짝이야. 기척 좀 내고 다녀.”
놀래 키려고 한 건 아니지만. 그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붉은 머리칼이 손길에 따라 흔들거렸다.
“깼냐?”
“……네.”
다니엘의 무성의한 물음에 그가 작게 대답한다.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옮겨,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다니엘이 또 한 번 물었다. 좀 잤냐?
“……잤습니다.”
“하나도 안 잔 다 티 난다. 구라 치지 말아라.”
“……그럼 하나도 안 잤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은 그가 제 시커멓게 내려앉은 다크서클과 탁한 안색을 확인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제 얼굴을 매만지며 어색하게 서 있던 그가, 이내 다시 등을 돌려 돌아가려고 하는 순간.
“우진아.”
다니엘이 그를 불러 세운다.
“네.”
“……아니다.”
“네.”
“진짜 자둬라. 내일부터 다시 굴릴 거니까.”
네. 그 대답 밖에 하지 못한 우진이 다시 원래 가던 길을 갔다. 잘 수 있었으면 했다. 악몽을 꿔도 좋으니까, 잠에 빠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악몽 한 번쯤 꿔줄 테니까 깊은 잠에 빠져서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벌써 며칠 째 밤을 샌 우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더 울게 될 까봐 무서웠다.
그녀가 꿈에 나올 까봐.
*
자꾸만 사진이 엑박 + 깨져서 오늘은 움짤 수를 줄였습니다
분량 대폭발
오늘의 내용 = tmi 대잔치
많이 알아서 나쁠 건 없잖아요? 촤하하
내용들이 어느 정도 비중이 있긴 하지만 전부 다 알고 외우셔야 할 것들은 아닙니다ㅠㅠ
그냥 이런게 있구나~ 정도로 편하게 읽어주세요!
다음화가 벌써 20화에요 나 미쳐 호롤로
20화 기념으로 다음 화 업데이트랑 함께 tmi 대잔치 할거에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것저것 쓸 생각이니까 그냥 노잼일기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질문도 받아요! 역시나 스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개수 제한 없이 질문해주시면 다 답변해드려요
부담 없이 하고싶은 분들만! 언제나 부담 놉
그리고 잠시 잠잠했던 우진이
오늘 짧게 등장했지만, 또 다시 들어가 있을 거에요
곧 다시 나올 것,,, 우진이 안 죽었어요 여러분ㅠ
개강 / 개학 시즌이군요,,,
학교 다니시는 여러분,,, 힘내시길 바랍니다,,,,,,
매일 행복한 하루 되세요! 사랑해요 ('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