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가 오늘 새벽 죽었다. 아침에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의 새빨간 피들을 나는 기억한다. 나는 오열하며 경찰에 신고했고 며칠 후 경찰은 나를 사건의 용의자로 선택했다. 눈이 퉁퉁 부어 진술을 했다. 아니 눈이 퉁퉁 부어 진술을 했다면 나는 지금쯤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지 않을까. 경수는 내가 죽인 게 아니에요. 날카로운 목소리가 취조실을 가른다. 경수는...경수는...경수는...이미 세상에 없는 경수의 이름을 부르면 모든 게 씻겨 나갈 것 같았다. 그래서 자꾸 경수를 불렀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형사에게 나의 일상을 털어놓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나는 경수를 죽이지 않았어요. 나는 경수를. 경수는 내가 죽인 게 아니다. 그날 경수가 입고 있었던 옷이 무엇이냐 물었다. 경수는 내가사준 회색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너희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경수가 그 새끼가 선물해준 셔츠를 입고 있을 리 없다. 나는 너의 퍼런 손목 끝 소매에 빨갛게 맺힌 핏방울들을 기억한다. 누구보다도 경수를 잘 아는 것 은 나다. 그날 도경수씨와 같이 있었나요?그 누구도 도경수와 나 사이를 알려고 해서는 안된다.너희는 자꾸 경수의 뒤를 쫒으며 날 잔인한 살인범으로 몰아간다. 나는 더욱 굳게 입을 다물었다. 경수를 죽인 건 내가 아니에요. 경수를 제외한 그날의 나를 말해보라고 했다. 경수를 제외 한 내일상은 있을 수 없다. 경수를 제외한 내 일상. 그래 그날은 너를 만나러 갔던 날이다. 꺼져 내릴 듯 한 하늘이 눅눅하게 젖어가고 도시에는 빛 한점 들어오지 않아 캄캄했다. 정말 갈 것이냐고 몇 번을 되묻는 경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금방 올게. 경수에게 건낸 마지막 말이 이거였던가? 아니다. 나는 경수를 죽인 적 없다. 우산 챙겨가. 경수가 나에게 건낸 마지막 말이었던가? 그런 것 같다. 경수의 말대로 우산을 챙겨 나갔다. 도시 중심에 있는 그 카페는 생각보다 크고 한산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자리에 그 새끼가 긴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날 반기는 손마저 역겹다. 내가 보지 못한 경수의 사춘기를 같이 겪었다는 사실이 더욱 치가 떨리게 만든다. 너는...도대체 너란 새끼는. 떨리는 손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쥐었다. 뻔뻔스러운 새끼. 여유롭게 웃으며 뭐 마실래. 라고 묻는 너의 얼굴에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주먹을 날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가증스러워 미쳐 버릴 것 같았으나 오늘 꼭 문서를 받아 내야 한다. 경수의 과거를 통채로 삼켜놓고 미래까지 간보는 너를 가만히 놔둘 수 없다. 나는 너를 죽일 것이다. 내가 너를 꼭. 나는 너를 경멸한다. 마치 벌레 보듯 썩어 있는 내 표정과는 달리 너의 표정은 평화롭다. 대체 왜? 경수를 사랑하는 것은 니가 아닌 나다. 무책임하게 경수를 버린 너는 절대 용서 받을 수 없다. 너는 죄를 지었다. 너는 경수를 사랑할 수 없다. 너희 집에서는 경수를 파양했다. 파양 당한 경수를 데려 온 것은 나의 큰형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나에겐 너의 존재만으로도 특별했음으로. 2주를 졸라 데려온 경수였다. 경수는 늘 말이 없었다. 그다음은... 저절로 인상이 찡그려진다. 변백현씨, 변백현씨? 나를 부르는 것이 경수가 아니다. 도경수씨와는 무슨 관계였습니까? 무슨 관계라니.너무 실없이 웃긴 질문이다. 어떤 단어로 감히 우리 사이를 묶어야 할까. 한참동안 말이 없는 나를 재촉한다.가만히 좀 있어봐라. 우리는, 그러니까 나와 경수는.."형제사이에요." 간단히 규정지었다. 틀린 말도 맞는 말도 아니였다. 아니? 그 빌어먹을 새끼만 없었으면 맞는 말이었겠지. 근데 그 새끼가 없었어도 마냥 맞는 말은 아닌 것 같다. 형사님, 형사님은 동생이랑 키스해 본적 있어요? 난 맨날 했는데.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꾹꾹 눌러 삼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하는 내 경수를 죽인건 내가 아니에요. 뜨거운 햇볕이 모든걸 녹여버릴것 같은 여름이었다.날씨가 더워 마음까지 뚝뚝 녹아 흘러내릴것 같았다. 그해 여름의 한가운데 경수만 축구를 하지 않고 있다.축구에 끼지 못한 채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경수는 작다 거대한 흙먼지를 몰고 다니는 운동장 중심에는 유독 키가 커 눈에 띄는 찬열이 있다. 공이 골대를 흔들었고 찬열이 환호했다. 골이 들어감과 동시에 경수는 만지작거리던 돌맹이를 집어던졌다. 찬열이 또 골을 넣었나보다. 아이들은 환호했고 찬열의 팀이 승리로 게임이 끝났다. "경수야 물 좀." 시원하게 웃는 모습이 사람을 끄는 상이다."응?..아...어.." 순간 동그래진 경수의 눈이 흠뻑 젖은 찬열의 흰 셔츠로 갔다가 곧 정신을 차린다. 경수야 그렇게 쳐다보지 말라니까.옆에서 지켜보는 백현의 눈이 서늘하다. 정신을 차린 경수가 옆에 있던 물병을 재빨리 집어 들었다. 축 늘어진 어깨가 오늘따라 더 피곤해 보인다. 살기를 띄고 지켜보던 백현이 경수를 잡았다."같이가." 찬열을 바라보던 눈이 도르르 굴러 백현에게 닿는다. "재수없어, 시발." 역시 경수는 대답이 없다. 목격자가 있는데도 자수 안할래? 말해 도경수를 죽인게 당신이지? 이거 참, 나는 경수를 죽이지 않았다니까요. 그런데 아저씨 혹시 그 목격자가 박찬열 이에요?봤대요? 내가 경수를 죽이는걸 그새끼가 봤다고요? 형사님, 거짓말을 하고 있는건 그 새끼에요. 내가 아니라 그 새끼라구요! 그래. 범인은 확실해졌다. 니가 그랬지? 니가 그런거야. 이 개새끼야. 너는 경수로도 부족해 나까지 이렇게 만드는 구나. 비겁한 새끼. 나는너를 죽일 것이다. 반쯤 정신이 나가 보이는 백현을 취조하는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침에 시작한 취조인데 시계는 벌써 10시를 가르키고 있다. 루한 만나러 가긴 글렀네. 오랜만에 보기로 한건데 진짜. 때려치울까. 담배나 한대 피우고 할 요량으로 잠깐 쉬는 시간을 갖자고 하고 나왔다. 루한한테 문자 보내야겠네. 혼나겠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휴대폰을 꺼내려는 순간 번뜩 뭔가가 스쳐지나간다. " 경수를 죽인건 내가 아니에요." 거의 모든 정황이 사건의 범인은 백현이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증거도 모두 정황증거 일뿐 확실한 물증이 나오지 않은 이상황에서 백현을 구속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근데 가만히 있어보자 경수를 죽인건 내가아니에요 라니 그럼 도경수를 죽인사람이 백현이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 그 집의 도어락은 지문인식 시스템이었고 강남 한복판에 있는 유명 팬트하우스였다.연예인이나 정치인이 많이 살아 보안이 철저하기로 소문난 그 아파트, 그 집에 감히 백현이 아닌 누가 들어갈 수 있었을까. "아 뜨거." 하마터면 생각하다 엄한 손 데일뻔 했네. 오늘은 루한이고 뭐고 저 새끼랑 밤을 조져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서류 상에는 변백범씨 변백현씨가 형제로 나와있고 도경수씨는 호적에 올라와 있지 않네요. 자꾸 우기실겁니까?" 백현이 인상이 갑자기 팍 하고 구겨진다. 그놈의 서류. 호적. 경수는 내 동생이라니까요. 형사님,박찬열하고 할말이 있어요. 제발 박찬열을 불러 주세요. 건방지고 능글맞던 백현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등본에 써있는데로 말했을 뿐인데, 갑자기 박찬열은 왜? 목격자 진술은 내일이다 민석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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