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국인 친구의 이름은 루한이었는데, 그는 중국인답지 않게 한국을 굉장히 좋아해서 한국을 자주 왔다갔다 거렸다.
그가 한국에 가서 하는 일은 관광이 아닌 한국 사람들처럼 사는 것 이었다.
루한이 한번 한국에 가면 짧으면 6개월 길면 일 년 동안 중국으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좀처럼 그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루한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한 일은 인천에 있는 어학원의 중국인 강사였다. 한국드라마로 짧은 한국어를 배운 그는 한국어에 서툴렀다.
루한이 한국에 가서 오랫동안 중국에 들어오지 않아도 우리는 그에게 뭐라고 하거나 중국에 들어오라는 재촉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루한이 거의 매일 SNS에 자신의 한국생활을 올렸기 때문이다.
루한이 처음으로 올린 SNS게시물은 학원 간판이었다. ‘더 퍼스트 어학원’ 빨간색 간판이었고 옆에는 조그맣게 중국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루한은 사진과 함께 YOYO라고 덧 붙였다. 지극히 루한 다웠다.
루한이 빠오즈를 처음 본 것도 그 어학원에서였다고 했다. 빠오즈는 중국말로 만두라는 뜻이다. 왜 루한이 빠오즈를 빠오즈라고 부르는지는 둘이 같이 찍은 스티커사진을 보고서야 이해가 갔다. 날카롭게 생겼으면서도 동시에 얼굴에 귀여움이 가득했다. 볼이 터질 것같이 빵빵해서 루한이 빠오즈라고 애칭을 지어 준 것 같았다. 빠오즈는 말이 굉장히 없었는데 그래서 루한에 눈에 띄었다. 중국어는 성조가 조금이라도 틀리면 다른 뜻이 되 버리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성조에 맞게 말하고 따라하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이 입 모아 루한을 따라할 때 빠오즈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낡아빠진 샤프로 무엇을 끄적였다.
‘여러분 다 같이 따라하셔야 되요.’
항상 루한이 친절하게 다같이를 강조해서 말했지만 단 한명 빠오즈만은 절대 따라할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결국 루한은 수업을 시작한지 4일 만에 빠오즈를 따로 불러냈다.
‘민석씨 중국어는 성조가 중요해요 성조 뭔 줄 알죠? 이- 이↗ 이런 거요 이런 거는 따라 해야 느는거에요’
친절히 그리고 조금 느리게 열심히 빠오즈는 결국 묵묵부답. 그 후에도 몇 번 더 수업에 같이 참여해달라고 했건만 민석은 매일 책에 뭔가를 끄적일 뿐이었다. 이런 날들이 계속되자 루한은 민석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결론에 까지 이르렀다.
월요일은 단어시험이 있는 날이었는데 민석은 단어를 다 쓴 것인지 못 쓴 것인지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단어장에 코를 박고 샤프를 움직였다. 매일 뭘 저렇게 끄적이는 것인지 매일 내말은 무시하면서. 억울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 화가 뒤섞인 루한이 성큼성큼 민석의 앞으로 다가갔다. 확 시험지를 낚아챈 루한이 종이 가득 찬 한국어를 읽기 시작했는데
‘루한 잘생겼다’, ‘루한이랑 사귀고 싶다’, ‘루한’, ‘중국어로 어떻게 쓰지?’, ‘♡루♡한♡’, 〈s>‘루한♡민석’〈/s> , ‘루한워더’, ‘워더 루한’
“아 시발 뭐하는거에요!”
다시 민석이 시험지를 확 뺏어버렸지만 이미 루한의 얼굴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태였다. 그날 밤 루한은 한숨도 못자고 자신의 SNS계정만 들락날락거렸다. 민석도 잠을 못 잔 것은 마찬가지였다. 쪽팔림이 머리끝까지 밀려와 이불을 몇 번이나 찼는지 셀 수도 없었다.
서로의 생각으로 꼴딱 밤을 새운 그들이었다. 루한은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그 한글이 자꾸 머릿속에 스쳐지나가 미칠 것 같았다. 살면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남자를 좋아한다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루한이였기 때문에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민석은 다음날부터 학원에 나오지 않았다. 루한에게 전화나 문자는 일절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쪽팔림이 가시자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도저히 학원에 갈 용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