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의 집에서 술이나 한잔 하자며 넷 모두 백현과 찬열의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그새 골아 떨어진 태영은 종인 품에 안긴 채로 백현의 집에 들어왔다. 태영은 아직 자지 않는 수진 덕에 수진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웠다. 찬열은 수진을 업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고 있었고, 백현과 경수는 주방에서 안주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거실에 상을 차리고 넷 모두 자리에 앉았다. 으아아아앙. 또 울음을 터뜨린 수진을 가만히 보던 백현이 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는 찬열에게 안겨 있던 수진을 들어 안았다.
“우리 공주님 잠 오나 봐? 맘마 먹고 코 하까?”
“으아아아앙”
“경수야 나 분유 좀 타주라.”
허겁지겁 일어난 경수가 분유를 태우곤 병을 이리저리 굴리며 온도를 맞췄다. 너무 뜨거운 것 같아 찬물을 틀고 병을 이리저리 돌리며 분유를 식힌 뒤 백현에게 건넸다. 분유를 받아든 백현이 수진을 다시 고쳐 안고 태영이 자고 있는 방으로 조심히 들어갔다. 세 사람은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 30분정도 뒤에 조용히 문을 열고 닫은 뒤 나온 백현이 찬열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오늘은 웬일로 이렇게 일찍 잔대? 어깨를 퉁퉁 치며 백현이 말했다. 피식 웃은 찬열이 백현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고 종인이 소주병을 따 잔을 채워주었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 뒤 각자 자신의 잔을 비웠다.
“하아, 이게 얼마만의 소주냐 진짜.”
“변백현 진짜 완전 아줌마 다 됬다. 다 됬어.”
“그러게나 말이다.”
찬열의 맞장구에 백현의 눈이 세모꼴이 되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니가 나한테 할 소리냐?!! 빽 소리를 지르는 백현의 입을 찬열이 급히 막았다. 수…수진이 깨겠다!! 흡하고 입을 막은 백현이 눈을 이리 저리 굴렸다. 그 모습에 크큭하고 웃음을 터뜨린 종인이었다. 잠시 후 백현의 입에서 손을 땐 찬열이 깎은 과일을 집어먹었다. 너 내가 깎은 거 먹지 마. 백현이 찬열의 손목을 낚아채며 말했다. 난 경수가 깎은 거 집어 먹었다? 얄미운 표정으로 말하는 찬열의 머리를 백현이 한 대 쳤다.
“너…내일 수진이 일어나면 봐. 죽여버릴거야.”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찬열이 백현에게 애교를 피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광경을 지켜보기만 하던 종인과 경수는 서로 잔을 부딪히며 술 마시기에 바빴다. 그렇게 웃고 떠들고 2시간가량이 지났을까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한숨을 푹 내쉰 백현이 발로 찬열을 밀었다. 덩달아 한숨을 쉰 찬열이 방에 들어가 수진을 안고 나왔다. 그 잠깐 동안 얼마나 소리를 빽빽 지르며 울었는지 끅끅거리며 눈가는 발갰다. 경수나 종인도 마음 같아서야 도와주고 싶었다. 시도도 물론 해봤지만 처참히 실패였다.
3개월 전, 수진이 4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늘 그랬듯 백현에게서 수진을 데려 안으려 하는 순간 빽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보통 4~5개월정도부터 엄마 아빠를 알아본다고 하더니 그 무렵부터 수진은 백현과 찬열 품이 아니면 목이 터져라 울어재꼈다. 한동안 백현을 보지 못했던 경수가 당연하게 안아들었다 봉변을 당한 것이다. 그 때부터 수진은 백현과 찬열 품을 벗어나지 않으려했다.
아플 때는 작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백현이나 찬열의 옷을 꾹 쥐고 잠드는 가하면 남의 품에선 빠져나가려고 심하게 몸부림을 쳐댔다.
지금도 찬열의 무릎에 앉아 손가락을 빨며 찬열의 티셔츠를 꾹 쥐고 있었다. 백현이 많이 긴 수진의 앞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졌다. 머리 자르러 가야겠다 우리 공주님. 수진이 손을 올려 제 머리를 만지는 백현의 손을 꼭 쥐며 웃었다. 시계를 보자 12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우리 슬슬 가야겠다.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콜 불러줘? 백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 경수가 쇼파에 걸쳐두었던 외투를 입고 종인의 외투를 종인에게 건네주었다. 종인은 방에 들어가 잠든 태영을 안고 나왔다.
“니네 차는 내가 내일 일어나서 보고 가져다주든 가 할게.”
“부탁한다?”
“조심해서 가라.”
“어. 수진아 이모 빠빠이.”
“공주님, 삼촌이모 잘 가 해야지.”
백현이 수진 앞에서 손을 열심히 흔들자 수진도 따라 손을 흔들었다. 그게 귀여운지 웃은 두 사람이 백현과 찬열의 집을 나섰다. 콜 택시를 타고 집 주소를 부른 뒤 경수가 옆에 앉은 종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하암-졸리다. 종인이 경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줬다. 청소 다 하고 나왔으니까 집에 가서 자면 되죠. 얼마 되지 않는 거리기에 금방 도착한 두 사람은 계산을 하고 집으로 올라왔다. 종인이 아기침대에 태영을 눕히고 벗어서 개어뒀던 잠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경수는 들고 갔던 물병을 주방에 가져다 놓고 가방정리를 하고서야 방으로 들어왔다. 종인이 나오고 경수도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누워있는 종인 옆에 자리하고 누웠다. 경수의 머리를 들어 올린 종인이 밑으로 제 팔을 놓은 뒤 다시 경수의 머리를 놔줬다. 살짝 몸을 튼 경수가 종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잘자요, 형. 종인이 경수의 이마에 입술을 꾹 내리찍었다. 경수도 씩 웃으며 종인의 입술에 쪽 입맞춤을 하고 눈을 감았다.
찬열네 집은 수진을 재우기 위해 별 노력을 다 했지만 수진의 눈을 말똥말똥했다. 찬열을 닮아 큰 눈은 감길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주말이라는 점에 찬열이 수진을 봐야했고, 백현은 씻고 잠이 들어버렸다. 거실에서 수진을 안고 이리저리 쇼파에 앉아 제 배 위에 수진을 얹고 들썩들썩 한참을 그러다 먼저 지친 쪽은 찬열이었다. 여전히 수진은 잠들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평일에는 제 일이 바빠 도와주지 못했기에 미안한 감정에 주말에는 수진 보기를 자처했었다. 그리고 제 딸이지만 가끔 너무 미운 수진을 잘 봐주고 있는 백현에게 너무 고마웠다. 새벽에 감성에 젖어든 찬열이 수진에게 쪽쪽쪽 입을 맞추고 다시 끌어안았다. 오구 내새끼, 우리 수진이 나중에 사춘기 와서 아빠 싫다고 하면 아빠 울지도 몰라. 알겠지? 알아 들었는진 모르지만 수진은 밝게 웃으며 찬열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놀 뿐이었다. 새벽 5시가 넘어서야 잠든 수진을 내려놓은 찬열이 뻐근한 어깨를 툭툭 쳤다. 씻을 기력도 없어 그대로 백현 옆에 엎어져 잠들어버렸다.
으음. 창문새로 들어오는 햇빛 때문에 잠에서 깬 경수가 눈을 반쯤 떴다. 허리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인의 팔을 치워내고 다리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인의 다리를 치워낸 경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한 번 비볐다. 태영아? 태영이 경수와 종인의 침대를 보며 멀뚱멀뚱 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아마 내려오지 못하니 저러고 있었던듯 싶었다. 태영을 안아 내려주자 혼자 뽈뽈뽈 기어 제 놀거리를 찾았고 그런 태영을 보며 경수가 피식 웃었다. 왕자님, 엄마랑 놀까? 태영을 휙 들어 꼭 껴안은 경수가 태영의 정수리에 대고 웅얼거렸다. 그게 간지러운지 까르르 웃은 태영이 손을 버둥버둥거렸다. 쪽 소리 나게 뽀뽀를 날린 경수가 기저귀를 몇 번 만져보더니 태영을 내려두곤 기저귀를 챙겨왔다. 우리 왕자님 기저귀 갈아야겠다. 기저귀를 갈고 난 뒤 벗긴 기저귀를 둘둘 말아 방 한 구석의 쓰레기통에 툭 던졌다. 보송보송해진 엉덩이에 기분이 좋았는지 경수의 허벅지에 얼굴을 비벼댔다.
태영이 맘마 먹을까? 냉장고에서 미리 만들어 뒀던 이유식을 전자레인지에 돌리며 경수가 말했다. 경수의 다리를 잡고 일어선 태영이 경수의 다리를 툭툭 쳤다. 태영을 안아 식탁 옆 아기 의자에 앉힌 뒤 작은 숟가락을 들고 와 자리에 앉았다. 아-. 경수를 따라 입을 벌린 태영이 밥을 잘 받아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혓바닥을 쭉 내밀었다. 응? 태영이 왜? 믈! 물? 빨대 꽂힌 물통을 내밀자 쏙 잡아 빼간 태영이 쪽쪽 물을 빨아 먹었다. 경수가 웃으며 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왕자님 완전 똑똑한데? 똑똑이야, 똑똑이. 또도기? 빨대를 입에서 뺀 태영이 경수의 말을 따라했다. 똑똑이. 또도기! 까르르 웃는 태영에게 다시 밥을 먹여 주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거실 뽀로로 매트 위에서 놀던 태영이 문을 열고 나오는 종인에게 엉금엉금 기어갔다. 아쁘-아쁘! 졸린 눈으로 나오던 종인이 태영을 보고 웃으며 태영을 안아들었다. 아빠지. 우리 태영왕자님 아빠지? 또도기! 태영이 또도기! 또도기?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쇼파에 앉아 있던 경수가 통역을 해주었다. 자기 똑똑이래. 내가 아까 똑똑하다고 칭찬해줬거든.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우리 왕자님 똑똑이라고 대답해줬다.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신 종인이 거실 쇼파에 태영을 내려두었다. 그러곤 경수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태영이 내려 놔. 저러다 떨어지면 큰일 나. 경수의 말에 종인이 다시 태영을 안아다 바닥에 내려두었다. 뽀로로 매트에 배를 깔고 누워 매트에 그려진 뽀로로를 보는 걸 본 경수가 채널을 찾아 뽀로로를 틀어주었다. 주제가가 나오자 바로 앉은 태영이 뚫어져라 TV만 쳐다보았다.
으엥. 백현과 찬열의 알람시계는 늘 그랬듯 수진이었다. 아침부터 울어재끼는 수진 덕에 엉금엉금 기어 나온 백현이 수진을 안아들었다. 찬열도 눈을 다 뜨지 못한 채 이불 위에 앉아 있었다. 수진이 맘마 먹을까? 배고파서 그래? 어구, 기저귀도 다 젖었다. 찬열아, 기저귀 좀 갈아줘. 나 분유 태워와야겠다. 백현이 분유를 태우러 간 사이 찬열이 수진의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울음은 그쳤지만 수진은 여전히 훌쩍거리고 있었다. 백현이 다시 들어와 분유를 물리자 그제야 좀 조용해졌다. 분유 한 병을 다 비운 뒤 기분이 좀 좋아졌는지 수진의 눈은 반짝거렸다. 즉, 잘 기분이 아니란 뜻이다. 겨우 두 시간도 자지 않았다. 그건 찬열도 마찬가지였다. 앉아서 꾸벅꾸벅 조는 찬열을 툭 밀어 침대로 밀어트린 백현이 좀 자라며 이불을 덮어주곤 수진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어떻게든 수진을 재워보려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찬열이 일어난 11시가 지나서야 백현은 다시 잠에 들 수 있었다. 물론 찬열이 수진을 봤기에.
그렇게 황금같은 주말이 지나가고 찬열과 종인은 출근을 해야 했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는 나름 승승장구 중이었다. 두 사람이 공동사장으로 있는 터라 비교적 외출이 자유로웠기에 찬열은 수시로 집에 들러 수진을 보곤 했다. 종인도 수진을 알기에 보내준 것일테고. 여느 집이나 출근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비교적 조용한 종인의 집은 그냥 경수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종인의 아침밥을 하고 있다는 점? 그에 반해 찬열의 집은 우는 수진을 챙기랴 출근 준비하랴 정신이 나가버릴 판이었다. 찬열이 씻을 동안 수진을 업고 밥을 했고,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는 동안 수진은 목청이 나갈세라 울어댔다. 현관문 앞에서 두 아이의 태도도 극과 극이었다. 아빠 다녀오세요. 아쁘, 빠빠이. 경수를 따라 인사를 하는 태영에 반해, 으앙. 수진은 그저 찬열의 옷깃을 꾹 쥐며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형 생각보다 일찍 왔네요?”
“말도 마라. 아침마다 전쟁이야 전쟁.”
문을 열고 들어오는 찬열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분명 머리는 손질한 거 같은데 어딘가 엉망이었고, 양복 한 쪽은 구겨져 있었다. 기지배, 힘만 세서. 얼마나 오래 꽉 쥐고 있었으면 잘 다려져 있던 양복이 구겨져 버렸다. 피식 웃은 종인이 커피를 한잔 건넸다. 아침은 먹고 온 거에요? 입으로 먹은건지, 코로 먹은건지 모르겠다 답하며 찬열이 커피를 받아들었다.
“그러고 보니 몇 주 안 남았지 않아? 태영이 돌?”
“네. 1주일 남았어요.”
“돌잔치는 어떡하게?”
“그냥 집에서 조촐하게 하려고요. 요즘은 하면 욕먹는다더라고요.”
태영이 벌써 돌이에요? 갓난아기 때 본 게 엊그제 같은데…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어휴, 우리 수진이는 언제 다 키우냐. 푸념 섞인 찬열의 소리에 직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수진이가 이제 몇 개월이죠?”
“이제…7개월일걸요?”
“7개월이면 뭐, 애들 금방금방 커요.”
한숨을 푹 내쉰 찬열이 책상에 엎어졌다. 그렇게 피곤한 하루가 시작될 무렵 경수는 경수대로 백현은 백현대로 피곤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요즘 두 사람이 출근하고 나면 백현의 거의 경수의 집으로 왔었다. 근래 그나마 태영과 놀면 좀 조용해지는 수진 덕에. 늘 그랬듯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경수의 집으로 온 백현은 수진을 내려놓자마자 쇼파에 널부러졌다. 으에-으브-옹알옹알 옹알이를 하는 수진을 신기하게 쳐다본 태영이 제일 아끼는 에디 인형을 들고 오더니 수진에게 건넸다. 에디! 에디! 수지니도 에디! 멀뚱히 인형을 보던 수진이 인형을 툭 쳤다. 태영이 울상을 지으며 위태위태한 걸음으로 경수에게 달려갔다. 으으-어마 수지니가 에디 때치! 얼굴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경수가 괜찮다며 태영을 토닥였다. 한편 백현은 오빠가 준 건데 그러면 안 된다며 수진에게 얘기하고 있었다. 수진은 들은 채 만 채였지만. 굴하지 않고 이번엔 타요버스를 들고 오더니 부웅-소리를 내며 수진 앞에서 알짱거리던 태영은 수진이 휙 돌아 백현에게 가 버리자 자리에 풀썩 앉으면서 경수를 쳐다보았다. 그 표정이 귀여운 경수가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로 태영의 사진을 찍었다. 수진과 놀아보겠다고 시도했다 실패한 태영은 검지손가락을 입에 넣고 뽀로로 매트에 드러누워 눈을 끔뻑끔뻑 거리고 있었다.
“왕자님 또 졸려?”
“태영이 낸내!”
“낸내하꺼야?”
“으응…”
태영을 안고 방으로 들어간 경수가 몇 분 뒤 태영을 재우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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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업뎃하려했는데 콘서트 갔다와서 뻗어 버렸네요...애들 진짜 멋있었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