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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원/박우진] House of Cards - 행운의 기사 20 | 인스티즈


House of Cards :: 행운기사



20. 발단
















“좀 쉬었다 해요.”


“괜찮아요.”




괜찮기는 무슨. 민기는 고르게 미소 짓는 입술 뒤에서 몰래 혀를 찼다. 누가 봐도 한숨도 못 잔 사람인데, 긴장한 거 광고하시나요? 이름이의 뒤에 서있는 종현의 시퍼렇게 날 선 눈빛이 없었다면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조용히 책상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올려두며, 민기는 애써 종현의 감시를 피했다.




“좀 쉬는 것도 일할 때 중요한 거, 알죠?”


“……”


“잠도 제대로 안 자잖아요.”


“내일 기자회견이 몇 시라고요?”




책상 위 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그녀가 물었다. 




“늦은 두 시에요.”


“……지금은 몇 시죠?”


“여섯 시 조금 넘었네요.”


“20시간도 안 남았네요.”




그제서야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칙칙한 안색, 피곤에 절은 흐릿한 눈빛을 민기는 애써 웃으며 무마해보려 했다. 날카롭게 쉰 소리로 그녀가 입을 열기 전까진.




“20시간 안에 난 당신이 써준 이 원고를 외워야 하거든요.”




눈이 있으면 세어 보실래요? 이게 몇 장인지? 다 모으면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것 같은 종이 한 뭉치를 내밀며 그녀가 물었다.


일주일은 찰나처럼 흘러갔고, 내일은 약속된 기자회견 날이었다. 그 일주일 동안 이름이는 다신 그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 없을 정도로 시달렸다. 민기는 그녀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알아야 할 것들을 떠먹여주듯 가르쳤다.


걸음걸이부터 바꿔야 했다. 신뢰가 가는 걸음걸이, 누구에게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앞만 보고 걷되, 넘어지지 않을 것. 언제나 뒤꿈치가 먼저 바닥에 닿아야 하고, 상체는 흔들리지 않을 것. 앉는 자세도 고쳐야 했다. 어깨는 힘을 빼되 처지지 않아야 했으며, 상체를 숙이지 말고 정직하게 유지할 것. 마치 유치원에서나 배웠을 법한 것들. 이외에도 이름이는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법, 부탁이 아니라 명령하는 법, 


그 모든 걸 배워야 할 이유는 하나였다. 황민현이 그리했기에.




“정신 사나우니까 둘 다 나가줄래요.”




수십 장의 종이, 세 장의 빽빽한 연설문. 이름이는 내일 오후, 이 연설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했다. 딱딱하지만 건방지지 않은 목소리로, 또렷하지만 자연스러운 발음으로,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종이 위는 온통 거짓말로 가득했다.


민기는 그녀에게 말해야 할 것들과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리스트로 적어주었다. 이름이는 자신이 민현의 동생임을 고백해야 했다. 그러나 그가 그녀를 버렸음은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부모님의 장례식에서 보았던 광경에서 그녀가 무엇을 느꼈었는지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민현이 자신의 손을 뿌리쳤던 것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의 죽음에 슬퍼해야 했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밝힐 수는 없었다.




[워너원/박우진] House of Cards - 행운의 기사 20 | 인스티즈

“……그래.”




그리고 종현이 움직였다. 그 기세에 민기도, 내키진 않았지만, 함께 방을 나섰다. 이름이는 시선을 들을 수가 없었다. 흰 종이 위에 나열된 검은 글자들을, 어떻게든 머릿속에 우겨 넣어야 했다.


내일 기자회견장에 어떤 걸음걸이로 들어가야 하는지, 어떤 자세로 앉아야 하는지, 어떤 목소리로 말을 해야 하는지, 또 무슨 질문을 받고 받지 말아야 할지, 어느 질문에는 어느 대답을 해야 할 지, 말은 어떻게 끝맺어야 할 지, 외우지 않으면 할 수 없었다.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눈만 감으면 악몽을 꿨다. 지독하다. 그 악몽은 이제 절대로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 쉴 새도 없이, 눈을 뜨는 순간 매뉴얼을 달달 외워야 하는데 눈을 감아도 자는 게 아니었다. 그 사이 이름이는 점점 괜찮지 않아졌다. 겉도 속도 망가지고, 이젠 이 망가진 몸을 끌고 남들 앞에서 날 선전해야 한다. 이름이는, 쉬면서 하라는 민기의 말에 ‘괜찮아요.’ 대신 사실대로 소리치고 싶었다.


절대로 괜찮지 않아요. 괜찮을 리가 없어. 내 불행을 팔겠다고 결정하고 5일 동안, 내가 몇 시간이나 제대로 잤는지 헤아릴 수가 없어. 졸려 죽겠어. 이런 종이조각 따위, 다 던져버리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이대로 잠들어서 다시는 깨어나고 싶지 않아. 다시는, 다시는 나로 태어나고 싶지 않아.


종이더미 위로 몸이 무너져 내린다.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입 다무세요.”




앙 다문 입술 위로 간지러운 결들이 지나간다. 신중한 얼굴로 립스틱을 펴바르던 여자가 눈 앞에서 떠나고, 온전히 거울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을 때. 그 때 내가 본 건 내가 아니었다.


단정하게 세팅된 머리, 뭘 발랐는지 윤기까지 흐르는 머리칼들은 뒤로 깔끔하게 묶여 잔머리 한 가닥도 피부를 간질이지 않았다. 눈썹은 짙고, 눈은 선명했다. 양 볼엔 생기가 돌았고, 입술은 붉고 매끈해 보였다. 흰 셔츠엔 먼지 한 올 없었고, 등 뒤엔 곧 어깨에 걸쳐질 푸른 재킷에 마지막으로 스팀을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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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듯 하네요.”




팔짱을 끼고 날 내려다보던 그가 눈썹을 들썩였다. 비꼬는 문장이었으나 어투는 비교적 담백했다. 기분은 덜 나빴다. 거울 속 내가 아닌 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분명 몇 시간 째 얼굴에 잔뜩 바른 것 치고는 큰 변화는 아니었으나, 일주일 가까이 제대로 잠도 못 잔 내 피곤을 감춰준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카메라 앞에 설 때 화장은 다 이런 건가? 적어도 턱까지 내려올듯했던 다크서클이 가려지고, 내 긴장감을 적당히 감출 수 있었으니 불만은 없었다.




“정말 킹을 닮았군요.”


“화장 다 했는데 그런 말을 들었으니 실패했네요.”


“말투도 딱 황민현 같아요.”





칭찬으로 받아들일게요.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오늘 최대한 ‘황민현’처럼 보여야 했다. 오늘 나는 부모님께서 애지중지 키우셨던 막내딸. 아무 것도 모른 채 자라다, 부모님의 사고 후 사랑하는 나의 오빠가 안전을 위해 어딘가에 꼭꼭 숨겨두었었고. 그 오빠마저 사고를 당하자 가족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온 도시의 딸.


역겨운 거짓말투성이.




“밖에 준비됐어.”




종현이 들어오며 그렇게 단언했다. 기자들, 얼마나 왔어? 민기가 물었다. 얼마나 왔냐고 묻지 말고, 얼마나 들여보냈냐고 물어. 종현이 내 등 뒤로 다가온다.




“안에 들어온 건 200명 정도.”


“생각보다 할 만하네.”


“퇴짜맞고 밖에 줄 서있는 건 그 두 배.”


“잘 비벼보지 뭐.”




그리고 종현이 거울을 통해 날 뚫어지게 쳐다본다. 검은 눈동자에서 생각을 읽을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해?




“나보고 황민현 닮았대.”


“……닮았어.”


“그래?”


“원래……닮았었어.”




달갑지 않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속이 좋지 않았다. 긴장해서일까, 거울 속 내 얼굴이 내가 보기에도 황민현을 닮아서일까? 닥쳐, 둘 다. 제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욕을 하고, 손에 잡히는 걸 다 던져버리고, 창문으로 뛰어내려 집으로 돌아가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스물둘, 한 달이 지나면 스물셋. 이제는 성인이었고, 더 나아가 한 도시의 주인이 될 것이었다. 하고 싶은 바를 숨기고 하기 싫은 티를 내지 않을 것. 그건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시계바늘은 자꾸만 속도를 내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청심환 먹을 걸. 우습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좀 있으면 들어갈 거에요.”


“……”


“들어가자마자 플래시 터질 거에요. 눈 찡그리지 말고, 차라리 감아요. 옆에 돌아보지 말고. 놀란 티도 내지 말고. 무조건 앞만-“


“무조건 앞만 보고 걷기. 의자는 제가 가서 빼둘 테니까, 앉을 때 바닥보지 말기. 고개 똑바로 들고 기자들 한 번 보고, 목례하기.”


“……”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말하고, 발음은 더 또박또박 하기. 속도에 신경 써서, 천천히 말하기. 문장 끝낼 때 어조 떨어트리지 않기.”


“……”


“또 뭐 있었죠?”




그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림질이 끝난 재킷을 들고 대기하던 스타일리스트가 다가왔다. 소매에 팔을 집어넣고 매무새를 만지던 내게 그가 돌덩어리를 던진다.




“당황하지 마세요.”


“……”


“실수하지도 말고.”




앞에 나가면, 이제 아무도 당신을 도와줄 수 없어요. 행여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져도,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당신 몫이에요. 그 비장함이 날 웃겼다.




“언론은 무조건 적이에요. 절대 웃어주지 말고. 기자들 눈도 보지 말아요. 당신이 볼 수 있는 건 카메라뿐이에요.”


“……”


“질문은 제가 알아서 걸러 받을 거니까. 외운 거에서 찾아서 답변해요.”


“……알았어요.”


“그럼, 이제 나가죠. 입장 5분 전이네요.”




미안. 사실대로 말하면, 난 아무 것도 제대로 외우지 못했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그랬다.















[워너원/박우진] House of Cards - 행운의 기사 20 | 인스티즈

“긴장 돼?”




문을 지키던 종현이 물었다. 아니, 이름이 답했다.




“미안.”




종현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사과할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 예감 때문에 이성을 거치지 않고 튀어나온 마디가, 그녀의 살갗을 찔렀다. 입 밖에 미안, 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순간, 긴장감에 조금 상기되어 보였던 이름이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는다.




“왜 사과해?”


“……”


“왜 어줍잖은 말을 해, 쓸데없이.”




그게 종현의 양심을 후벼 팠다. 자꾸만 통증을 더해간다. 이제 그의 행동이, 말 한 마디가, 상황을 더 악화시킬 거란 것만 확실하다. 후회하는 걸까? 아니, 후회했다면 사과하지 않았겠지. 그랬다면 일을 바로잡는 걸 행동으로 옮겼겠지. 종현은 결국 그녀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


“……”


“미안하다고 해서.”




1분. 시계를 확인한 종현이 문 앞에 섰다. 바깥엔 웅성거리는 기자들의 말소리가 적나라하다. 마지막 편한 숨을 들이쉬는 이름이 문 앞에 선다.




“긴장하지 마.”


“……”


“실수해도 돼.”




거짓말이었다. 그녀의 실수 하나마다 그는 수천 개의 비난을 맞을 각오를 해야 했다. 


이름이는 비웃었다.




“둘이 입 좀 맞춰야겠다.”


“……”


“아깐 나한테 실수하지 말라고 했는데.”




삐-. 곧장 알람이 울렸고, 종현은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전쟁이라도 난 줄 알았다. 첫걸음을 떼는 순간 터지기 시작하는 플래시와, 선명한 셔터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데, 어떻게 ‘앞만’ 보고 걸으란 거야. 속으로 최민기의 욕을 하고, 다음 걸음을 뗐다.


티 내지 마. 모든 게 처음이라고. 앞만 보자. 긴장해. 걸음걸음이 돌덩이 같았다. 지금 너무 빠르게 걷는 건가? 더 느리게 걸어야 하나? 작은 턱을 올라 강단 위에 서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민기가 의자를 뒤로 뺀다. 아래 보지마.


기자들이 뭐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은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질 않았다. 조용히, 소리내지 말고. 내가 자리에 앉자, 뒤따라 들어온 종현이 민기와 함께 뒤에 선다. 스스로도 떨고 있는 손을 느낄 수 있었다. 떨지마. 괜찮아. 민기가 오른손을 올린다. 삽시간에 번쩍이던 플래시 세례가 멈춘다. 무지갯빛 잔상에 여전히 시야가 똑바르지 못하다. 




“아……”




헉, 숨을 급하게 들이 삼켰다. 습관처럼 내뱉은 잉여의 탄성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마이크를 타고 그대로 퍼졌다. 뭐부터 해야 했더라? 어딜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했더라? 




“저는……”




틀렸다. 내 첫마디는 ‘안녕하세요, 국민 여러분’이었어야 했다.




“황민현의 동생입니다.”
















순간 민기는 눈을 질끈 감을 뻔했다. 눈 깜박할 새도 없이 거세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덕분이기도 했고, 덜컹 내려앉는 그들의 앞날 때문이기도 했다. 입 안에 침이 바싹바싹 말랐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빗발치는 질문들 속에서, 사시나무 떨리듯 요동치는 이름이의 어깨가 유독 도드라져 보였다. 종현은 양손 주먹을 터질 듯 말아 쥐었다. 후회했다. 그가 늘 그랬듯이.




“저는……”




말을 잇지 못한다. ‘저는’은 이 상황에 아무런 설명을 마련할 수 없는 단어라는 거 알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랐다. 예정되어있었던 한 가닥으로 된 실타래 같던 문장들이 온통 꼬여버렸다. 그녀의 뇌를 감고 도는 한 마리 뱀처럼. 이름이 정적이 길어질수록 그 뒤 서있는 두 사람의 속도 푸르게 타들어갔다.




“리더 황민현 씨의 현재 상태는 어떻습니까?!”




그 질문이 명치를 꿰뚫고 지나간다. 이름이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외웠다. 생각할 새도 없이 입이 열렸다.




“킹은 무사합니다.”




그래, 그렇게 대답하라고. 민기가 그녀에게 건넨 예상 답변들 중 쓰여있었다.


이제 이름이는 민기가 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모든 것들을 행했다. 그녀는 입장할 때부터 벌벌 떨었고, 첫 번째 문장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제 멋대로 질문에 대답을 하였고, 수백 대의 카메라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되돌아갈 수 없었다.




“……킹은, 황민현은 제 친오빠가 맞습니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진, 분명 그랬습니다.”




거짓말과 진실이 서로 상충한다. 




“제 이름은 황이름입니다.”

“10년 전, 그 전쟁에서 저는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멋대로 말하기로 했다.




“10년 전 그 날, 그 날부터 저는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모두가 제가 그들의 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는 자들은 절 숨겼고, 나머지는 절 모른 척했으니까요.”

“집을 옮겼고, 서류를 조작했고…… 텔레비전에는 새로운 킹이 된 제 오빠가 나왔습니다.”




수백 대의 카메라가 비추는 중, 진실을 말할 건지 거짓을 말할 건지. 스스로도 몰랐다.




“괴로웠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제 부모님의 무덤이 어딘지조차 몰라야 했고…… 궁금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멀쩡히 살아있는 가족을 없다고 거짓말했고, 스스로 죽은 사람과 다름없다고 여겼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제가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등 뒤, 완벽하게 침착한 얼굴을 하고 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두 사람이 있었다. 행여 그들이 택한 최후의 선택이,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불어버리는 건 아닐까? 종현은 줄곧 병실에 누워있을 민현의 얼굴을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하지만’이 종현의 전신을 바늘처럼 따갑게 찌른다.




“제 가족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통탄스러웠습니다. 12살엔 부모님을 잃었고, 22살엔 오빠를 잃을 뻔 했습니다.”




깜박이는 카메라의 불빛들,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수백 개의 안광. 그 앞에서도, 입에 발린 말들이 술술 나온다.




“킹은 무사합니다. 당연 그렇습니다.”


“……”


“그는 지난 주 사고 당일, 여덟 시간에 걸쳐 수술을 받았습니다. 폭발로 인해 등에 화상을 입었고, 왼쪽 어깨가 찢어지고 골절되어 뼈가 드러났었고, 전신에 찰과상과 타박상을 입었고, 계단에 머리를 부딪혀 뇌진탕에 현재까지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


“그래도 아직 살아있습니다.”




셔터 소리가 요란스러웠으나 묘하게 숙연해진 분위기가 그녀를 괴롭혔다.


거짓말. 속으로 속삭였다. 거짓말쟁이. 넌 황민현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얼마나 아픈지. 이것저것 주워들은 것들로 전국민을 속인다. 지옥에 갈 거야. 거짓말로 점철된 혓바닥이 아렸다. 거짓말, 거짓말들이……




“저는 그가 하고자 했던 것들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눈물 한 방울이 눈꼬리에 잠깐 맺혔다, 뺨의 완만한 굴곡을 타고 흐른다. 그 모든 게 카메라에 담긴다.




“그가 하지 못했던 것, 그가 10년을 바라봤던 것…… 그것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


“왜냐하면 제가 그의 동생이기 때문입니다.”




목구멍을 뜨겁게 데우고 북받쳐오는 감정의 늪. 이제 뒤돌아볼 수 없다는 걸 체감한 자의 허탈함. 아무 것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 애증이 어린 나의 거짓말. 그걸 맛본 혓바닥의 고통. 잊고 잊혀진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와 물을 쏟는다.


나는 끝까지 남이 시키는 대로 살다가 남을 대신해서 죽을 것이다.


모두가 강요했으나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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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으로 오늘 기자회견 마치겠습니다.”




이 이상 가만 둘 수 없다고 판단한 민기가 입을 열었다. 그 말에 작게 놀란 이름이의 어깨가 조금 들썩였다. 순식간에 아우성치는 기자단의 뒤로, 중앙 문을 열고 수트의 직원들이 들이닥쳤다. 요동치는 회장 안이 순식간에 난리통이 되었다. 고성, 욕설, 소리치는 기자들과 그들을 제압하는 경호 사이에 금방이라도 싸움이 붙을 것 같았다. 뒤에 서있던 종현이 귀에 가만히 속삭였다.




“이제 나갈 거야. 아무 말 하지 말고, 아무도 쳐다보지도 말고, 조용히 일어나. 들어왔던 문으로 나갈 거야. 고개 숙이지 말고.”




왼손을 잡아 이끄는 종현을 따라 조용히 일어섰다. 빳빳하게 세운 고개에 당장이라도 쥐가 날 것 같았다. 빠른 걸음으로 측면의 벽을 따라 걸었다. 소리치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어깨 너머 문이 닫힌다. 언제 그렇게 시끄러웠냐는 듯이, 여전히 얼떨떨했지만 스스로도 양 손이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




종현이 물었다. 억지로 굳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대답대신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졸졸 따라다. 쓰디쓴 현실이 발목을 휘감는다. 네가 모든 걸 망쳤어. 내가 모든 걸 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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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래.”




전국에 생중계되는 그 뉴스를, 진영이 유심히 보고 있었다. 




“박우진은?”


“방에. 잔대.”




우진이 자고 있지 않음을 그는 잘 알았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스페이드 보안국에 크래커 칩을 심는 임무에 실패하고, 우진은 거의 2주 만에 귀환했다. 퀭한 두 눈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니엘이 그를 책망하려고 했으나, 그 눈을 봤다면 그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이유를 물었었다.




‘말해 봐. 왜 사흘짜리 임무가 2주 가까이 걸렸어야 했고, 심지어 실패하기까지 했는지.’

‘……죄송합니다.’

‘반항인가?’

‘아니……아닙니다.’

‘그럼?’

‘……보안 경보를 뚫느라 늦었습니다.’




그리고 울 것 같은, 정확히는 이미 울고 난 얼굴로 답하는 우진에게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뭔가 있었다고 짐작은 했지만, 우진은 그에게 얘기해주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도 우진이 그로 인해 임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그 역시 그다지 캐묻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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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왜?”


“……박우진, 아직도 꿈 꾸냐?”


“꿈? 뭔 꿈?”


“그, 있잖아. 맨날 말하던 거.”


“아, 그거?”


“……”


“그럴 걸?”




그리고 진영은 다시 제 노트 위 낙서로 정신을 옮겼다. 쓸모 없는 막냇동생. 그리고 다니엘도 텔레비전에서 신경을 끄고 다시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책상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꾸만 우진의 그렁그렁한 눈이 아른거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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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 황민현의 마지막 수란 말이지.”




이어폰을 꽂은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느라 성우는 제가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사실도 몰랐다. 다행이 그는 차에 타고 있었고, 운전석에 앉은 건 재환이었으니 누구에게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그 영상으로 인해 성우는 민현이 살아있음을 확신했다. 만약 민현이 그 사고로 인해 죽었다면, 스페이드는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가 살아있는 척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대역을 들여오다니, 그것도 그 동생을. 본인이 정말 움직일 수 없거나, 아니면 날 족치기 위한 연막이거나. 그가 그린 사고의 크기를 보았을 때, 멀쩡할 것 같진 않지만.




“반 죽인 걸로 만족해야지, 지금은.”




그리고 차는 부드럽게 멈춰 선다. 인기척이 없는 도로. 중립구역의 어느 길가. 여기서 기다려, 손을 들어 재환에게 신호한 성우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주차된 차의 맞은 편, 도로의 다른 방향에 어느새 나타난 흰 가면을 쓴 실루엣. 성우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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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번엔 모든 게 다 내 편이야. 승리마저도.






*


안녕하세요, 부기옹앤옹입니다.

약 한 달 만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한 달간, 저는 정말 많이 아팠습니다.

큰 병이나 부상은 아니었지만, 꾸준히 절 괴롭혔고 가끔은 제 일상생활을 심각하게 방해할 정도의 문제였습니다.

지난 번에도 이 때문에 글을 미룰 수밖에 없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제 망가진 생활패턴 덕에 더 심각해져 버렸었어요.

다행히 지금은 완치에 가까워졌고, 약도 줄이고 지금은 일상생활도 가능해져서 건강히 살고 있습니다!


긴 시간 소식 없이 침묵한 점 무척 죄송합니다.

어느새 20화입니다. 다시 열심히 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언제나 사랑합니다!


언제나 행복한 하루 되길 바라고, 빠르게 다음 화로 돌아오겠습니다.

건강은 재산입니다 여러분 건강 챙기세요……!






+


~ 지난 번 약속드린 TMI 대잔치 (아니고 작은 잔치) ~


순서 뒤죽박죽 주의해주세요






A. 하우스 오브 카드는 5부작 이다.


하옵카의 1부의 제목이 <행운의 기사>이고, 우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

이후 등장할 작품들도 같은 세계관 속 다른 이야기를 다룰 것이다.

아직 제목과 각각의 주인공들은 비밀.


과거 얘기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 것도 이 때문……




B. 작가의 작중 최애는 옹성우다.


사연 있는 나쁜놈 “최고”

좀 똘끼 있는 캐릭터가 쓸 때 가장 재밌습니다.

(우진아 사랑해)




C. 원래 행운의 기사는 박우진 vs. 김종현의 러브라인이었다.


근데 쓰다 보니 삼각관계는 영 부담스러워서 흐지부지 되었다.

실제로 초반부에는 종현이 여주를 좋아한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못 느꼈다고요? 그렇다면 애초에 별 거 아니었으니 넘어가요 헤헤




D. 작중 시점은 연말 겨울, 12월 초이다.


전쟁은 12월 20일로 예고되어 있다.

그보다 2주 전인 12월 초가 주 시점이다.

올해는 눈이 매우 일찍 내렸다.

적당히 추운 겨울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해이다.




E. 자주 쓰는 BGM은 방탄소년단 - House of Cards (Instrumental ver.)이다.


가끔 물어보시는 분들을 위해.

애초에 이 글의 테마이기도 하다.

완전히 띵곡 흑흑 항상 들으면서 쓰고 있다.




F. 등장인물마다 테마곡이 하나씩 존재한다.


그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쓸 때 보통 그 곡을 듣는다.

예를 들면 종현의 테마곡은 9화의 브금이기도 한 Starry starry night이다.

우진의 테마는 LAYTO의 Little poor me.

역시 브금으로 사용되었던 바 있다.

다 알려드리고 싶지만 곡명을 다 공개해버리면 스포일러가 되니 자제하겠습니다,,,




G. 수트에 소속됨 =/= 전쟁에 나감.


수트는 like 하나의 독립국가.

수트의 카드 = 국가공무원과 군인 등의 직종

수트 소속 시민 = 국민, but 다른 직종의 일반 시민들!


시민은 세금을 내고 수트에게 보호받지만 입대가 필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위급상황에서 대동될 수 있는 일종의 보충인력.

그냥 일반 국가랑 같은 시스템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H. 민현, 종현, 민기는 동갑에 동창이다.


셋은 같은 중학교를 나왔다.

아, 민현은 참고로 중졸 + 검정고시를 봤다

도시 하나 다스리느라 학교 다닐 시간이 없었다고,,,

종현과 민기는 고졸.




I. 에이스는 돈이 많다.


한 도시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카드는 언제나 에이스.

본문에서도 언급된 바 있었다.

스페이드의 에이스는, 전쟁이 있는 해에는 대략 천 억 정도 받는다.

 단 직업 평균 수명은 35세로 굉장히 짧다. 짧고 굵게 벌어 정승같이 늙자

하지만 단명 위험이 너무 큰 것……




J. 중립 구역에도 정부가 있다.


중립 구역에는 어느 수트에도 소속되길 원치 않는 사람들 + 외국인들이 거주한다.

그들 위한 정부도 따로 있다. 이는 현재 일반 정부와 같은 시스템이니 설명 않겠다.

비교적 안전한 곳이다 보니 집값은 엄청 높은데 평균 소득은 그에 못 미친다.

돈 벌고 싶으면 다이아몬드 가세요.




K. 왜 우진이는 다니엘한테 존대를 하나요?


다니엘, 우진, 진영 삼형제의 자세한 사정은 좀 더 나올 것이지만!

우선은 그건 우진의 ‘거리감’의 표현입니다.

우진은 우선 자기 형제 앞에서도 말이 없고, 제 윗사람인 킹에게 과하게 깍듯하죠.

그건 우진이가 다니엘을!!!!!!!!!!!!!!!!!!1싫!!!!!!!!!무섭!!!!!!!!!!!1

읍읍




L. 진영이랑 다니엘은 우진이가 스페이드에 간 걸 알고 있나요?


네 알고 있습니다!

우진의 초기 명령은 스페이드 ‘보안국을 교란시키고 오는 것’ 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나올 거에요!




M. 조커는 누군가요?


알려드릴 수,,,없어요,,,,흑흑

우선 <행운의 기사> 여주는 조커가 아닙니다. ㄱㅡ것만큼은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게요!

또, 조커는 극 중 이미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특별히 암시를 드린 건 아니니까 모르시는 게 당연합니다.

쪼꿈씩 나올 거에요 나머지 떡밥들은!




N. 주요 인물 나이 정리 (만 나이)


민현 + 종현 + 민기 + 성우 (25) > 강다니엘 (23) > 여주 (22) > 우진 (20) > 진영 (18)




P. 자주 언급되는 정보들 총정리


스페이드: 킹 황민현, 퀸 여주, 잭 최민기, 에이스 김종현.

다이아몬드: 킹 옹성우, 퀸 공석, 잭 김재환, 에이스 권현빈

하트: 킹 김상균, 퀸 박지현, 잭 임영민, 에이스 박지훈

클럽: 킹 강다니엘, 퀸 공석, 잭 배진영, 에이스 박우진


인구수: 클럽 >>> 다이아몬드 ~ 스페이드 > 하트

개인소득: 다이아몬드 >>> 스페이드 > 하트 > 클럽

영토 크기: 클럽 >>> 다이아몬드 > 스페이드 >>> 하트






오늘은 여기서 끝!

여러분 진짜 다음에 봐요 안녕안녕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독자1
세상에 작가님 많이 편찮으셨다뇨 jnj 지금은 안정을 찾으신거죠? 괜찮아지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5부작,, 너무 기대돼요 끝까지 달리겠습니다 작가님 오늘도 글 감사해요!
6년 전
비회원193.112
별님입니다
작가님 아프셨다니요ㅜㅜ 정말 아프지마세요
그래도 괜찮아지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그리고 요즘 날씨 추우니까 감기도 조심하세요
정말 오늘글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편이 기대되네요~

6년 전
독자2
오오옹 작가님 넘 오랜만입니당ㅠ 암호닉도 없고 자주 오지도 않았었지만 그래도 글은 재미있게읽고 있엇는뎅ㅠ 몸이 안좋으셔서 글이 늦었던 거라니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건강이 최곱니다!! 건강 절 챵기시구 다음 글에서 봐요!!
6년 전
독자3
왕 tmi 너무 유용해요 ㅠㅠ 성우가 만난사람은 누구일까요 !!
5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작품을 읽은 후 댓글을 꼭 남겨주세요, 작가에게 큰 힘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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