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2년 5월 5일
대화를 시작한지 10시간째
점점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날이 저무는 초저녁이 되었다.
남편과 자식들이 들어오기전에 컴퓨터를 꺼야만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내가 과거의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단 사실을 알리면,
어떤 반응이 돌아올지 겁이나서 차마 알리진 못할것같고… 그냥 차라리 나만의 비밀로…
그렇게 간직한채 살고싶었다.
익인6: 아 어떡해ㅠㅠ저 나가야될것같아요. 진짜 나가기싫은데ㅠㅠ
익인10: 저도 엄마가 컴퓨터끄라고 난리임ㅠㅠ사실을 말할수도없고 아이고..
익인18: 진짜 이런 기회 언제 또 가져보겠어요.. 나가기 아까운데..
시간이 시간인만큼 점점 지치는 익인들도 있었고, 나갈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 익인들도 생겼다.
‘ 컴퓨터좀 하면 어때서 엄마는 맨날 끄래 ’ 라며 궁시렁 궁시렁 엄마 험담을 하는 익인들을 보며
귀여움에 나혼자 슬그머니 웃고 눈으로 익인들의 자잘한 대화를 따라읽었다.
익인2: 글쓴이님! 글쓴이님은 시간 되세요?
글쓴이: 저도 곧 나가야할듯 싶습니다. 저도 제 생활이 있으니 평생 컴퓨터만 붙들고 살순 없죠.
오늘 정말 꿈만같은 일을 겪게되어서 아직까지도 어안이벙벙합니다. 비록 시공간을 초월해서 만난거지만
착하고 귀여운 친구들을 잔뜩 사귄것같아서 기분이 참 좋아요. 다시한번 이곳에 로그인할수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된다면 내일도 오늘과 비슷한시간에 만납시다. 이 대화창에서.
운영자: 그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글쓴이님과 익인1~18의 아이디가 로그인되면 제가 초대하겠습니다.
글쓴이: 부탁..드려요
아쉬움에 징징거리는 익인들을 보며 나또한 오랜 친구들과 헤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거의 2~30년만에 만나는 순박하고 정 많은 사람들.
고민이라고는 성적과 이성문제, 친구관계정도밖에 없는 이 낙천적인 사람들(2042년에 비해)
얼마만에 느껴보는 소속감인지, 정말 오늘 하룻동안 굉장한 행복감을 느꼈었다.
뭐, 그거면 된거지. 하루라도 어디야, 이런 경험 할수있었던거에 감사하면서 또 살아야지.
슬슬 남편과 자녀들이 돌아올시간이 임박해오고 나는 현관쪽을 살피며 슬슬 로그아웃할 준비를했다.
익인17: 헤어지기 싫어요..
익인18: 그냥 안가면 안되요?ㅠㅠ
익인4: 우리 다시 만날수있어요?
익인10: 아ㅠㅠ그냥 이렇게 있어요 우리 네!?
익인2: 글쓴이님 가지마요ㅠㅠ
내 얼굴도 알지못하고, 오로지 대화창에서 10시간동안 이야기만을 나눴을뿐인데.
이미 여기있는 모든 익인들은 나를 정말 친구처럼생각하고 진심으로 붙잡고싶어했다.
당장 닿을수없는 미래의 존재라는게 경계스러울법도한데 이런게 순하게 쉽게 정을 줘버리는 익인들이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글쓴이: 저도 내일이고 모레고 여러분들과 하루종일 이렇게 연락하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그러나 우린 살아가는 시대가 다르고, 어쩌면 그렇기때문에 친구가 된걸수도있습니다. 부디 제가 나간 다음에도
익인들이 하루하루를 감사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익인들이 사는 시대 2012년, 30년뒤 제가사는 이 시대와
맞물리게 된다면 우리 반드시 만날껍니다. 열심히 살아주세요.
아쉬워하는 익인들 사이에서 점점 30년후 나를 찾겠다는 익인들이 생기기시작했다.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성을 지닌 물건같은걸 찍어서 첨부해준 익인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본명을 한번더 말해주며
자신들이 찾아오면 맞이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반드시 멋지고 당당한 어른이되서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몇번이고 당부했다.
글쓴이: 저를 찾아오신다면 기쁜마음으로 환영하겠습니다.
그 순간, 지하 50층 주차장에서 내 남편이 이 건물안으로 들어왔다는 신호가 울렸고, 그에 나는 빠르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글쓴이: 이제 정말 나가야할시간이네요.
익인1: 싫어요ㅠㅠ진짜 아쉽단말예요ㅠㅠ
익인14: 꼭! 꼭 찾아갈게요! 기억할게요! 나 환영해줘요..
익인3: 훌륭한사람이 될께요 글쓴이 꼭찾아갈게요
익인10: 글쓴이!! 우리 잊지마세요!! 꼭!! 아 내일도 만날수있었으면 좋겠다ㅠㅠ
계속해서 이어지는 작별인사들을 읽으며 나는
간단하게 현재의 내가 살고있는 집주소를 과거의 익인들에게 알려준 다음,
마지막으로 미래에서 보자는 말을 남긴채….
.....로그아웃했다.
“ ……… ”
정적이 흐르고,
위잉- 하는 기계돌아가는 소리만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있었다.
그리웠던 초록색의 인터넷창이 꺼진뒤
숨조차 쉬지않고 몇초간 멍하니 검은색 화면만을 바라보고있었다.
여태까지 무슨일이 있었던거지 싶을만큼 큰 공허함이 몰려왔고
방금까지 내가 과거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우정을 나눴다는게 도무지 현실로 와닿지가 않았다.
이게 흔하게 겪을수있는일도 아닐뿐더러, 그 일을 내가 이렇게 몸소 체험하게 되리라고는 전혀생각못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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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아웃을 한 뒤로 한참을 멍하니 정신을 놓고있었다.
곧 집에 들어온 남편은 나에게 어디 아픈거냐며 걱정을했고, 그냥 몸이 좀 안좋다고 둘러댄 나는
홀로 방에 들어와 일찍 잠을 청했다. 말랑말랑한 플라스틱에 얇은 친환경실크를 깐 침대에 몸을 뉘이는 순간.
어쩌면 지금 꿈에서 깬게 아닐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했다.
2012년 인스티즈에 로그인하고,과거의 익인들과 친구가되고,아쉬운 작별을 고하고, 방에들어와서 침대에 눕는 그 순간까지
그 모든게 꿈이였고, 지금 막 깬건 아닐까 하고.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몸이 피곤해져있는 상태였고 방금까지의 설렘과 긴장이 몸에 옅게 남아있는 상태였다.
모든 내 몸의 생생했던 반응이 현실을 절대 부정할수없게 만들었다.
그래, 운이 좋다면…
내일 다시 2012년 인스티즈에 로그인할 수 있을지도몰라.
아니 어쩌면…내일이라도.
익인들이 나를 찾아올지도몰라.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하게 갑자기 잠이 밀려오며 마음이 편해지는게 느껴졌다.
쿵쿵쿵 하고 수년동안 요동치지 않았던 오래된 내 심장이
다시 강하게 뛰기시작했다.
나에게도 설렘이 생겼다.
내일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