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 펼쳐진 포르말린으로 가득찬 시험관들 속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담겨있다. 아아, 계속되는 신음에 ‘B’의 아픔이 피부로 느껴졌다. 더 이상은 무리야, 그를 부르자. ‘B’는 대답하지 못한다. 형형색색의 액체가 흐르는 투명한 관이 거추장스럽게도 잔뜩 매달린 왼손을 간신히 들어 버튼을 누르자 쇠로 된 톱니바퀴가 맞물려 기괴한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기기, 키긱. 곧 그 소리는 그의 목소리로 변해간다.
「그래, 용건은? 나 지금 바쁘니까 간단히 말해줘. 」
“…‘B’의 한계야. ”
그가 낮게 웃었다. 벌써? 역시 약체는 곤란하다니까. 변조되어 온 곳을 울리는 목소리가 불쾌했다. 이미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느낌의 말투에 그를 재촉하며 짜증을 내비추자 그가 신경질을 내며 움직였다.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스피커를 바라보고 있던 ‘B’가 다시금 앓는 소리를 냈다. ‘B’를 향해 손을 뻗었지만, 내 손에 닿는 감촉은 사람의 그것이 아닌 차가운 유리의 굳음이다.
굳게 잠겨 절대 열리지 않을 것만 같던 철문이 사뿐하게 열리고 그 틈새로 흘러나오는 새하얀 소독 증기 사이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머리를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변조된 목소리와 화려한 금빛의 가면은 그의 정체를 가려줬지만 그리 완벽하진 못했다. 그가 이 쪽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길 때 마다 은은한 푸른 조명에 대비되는 붉은 머리칼이 반짝거리며 흔들렸다. 그 날 이후 여전히 한 쪽 다리를 절며 이 쪽으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B’의 앞으로 다가온 그가 유리 앞에 펼쳐진 디스플레이를 조작했다. 유려한 손 끝이 그 위를 몇 번 오고가자 ‘B’의 시험관 속에 하얀 증기ー지금까지의 추측으론 해독제ー가 피어올랐다. 가빴던 ‘B’의 숨소리가 가라앉는다.
「여긴 진전이 없네, 진전이. 」
“미친놈. ”
「‘K’가 각성했어. 」
발열 반응도 적당선에서 끝났고, 혈전도 안 생겨. ‘K’의 각성 덕분인지 감정이 격양되어 보이는 그의 광기어린 두 눈이 높게 빛났다. 인체 각성이 끝났으니 곧 세뇌 각성이 이뤄질 차례였다. 그와 ‘K’의 얼굴이 겹친다. 그의 완벽한 세계에 당도한다. 손을 들어 두 귀를 막았다. 계속 이런식이면 나도 곤란하다니까? 너는 특별한 존재야, ‘D’. 상냥한 말투와 대비되는 듣기 싫은 기계음이 진하게 손 끝을 울리며 그의 얼굴이 진한 회색빛으로 흐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