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취향을 존중하라》
그리고 난 후회했다. 박찬열이 매일 득달같이 달려들어 날 조련하려 들었기 때문이었다. 빌미를 제공한 요인은 자신이었기 때문에 아무말 하지 못하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만 제 풀에 지치기만을 바랬던 것 뿐. 어느날 점심 시간엔 박찬열의 친구들이 우리 반으로 몰려왔다. 난 숙면을 취하고, 녀석은 내 옆에서 내 자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잠결이라 모든 게 명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박찬열~”
“김종인 존나 오랜만이다? 층수 갈리더니 내려오지도 않고.. 섭섭하네..”
“니가 이딴 짓만 안 했어도 맨날 왔거든?!”
“야, 우린 안 보이냐? 엉?”
박찬열이 또다시 하하, 웃었다. 제 친구들 사이에서는 원래 그랬나보다 생각했다. 박찬열과 녀석들은 잠시 상스러운 말을 하며 놀았더 것 같다. 다시 깊은 잠의 수렁으로 빠져들 때 쯤, 박찬열이 날 가리켰던 것… 같기도 하고. 박찬열이 아닐지도 모른다.
“근데 쟨 뭐냐? 니 새친구?”
“아. 쟤 우리 반 똥개야. 난 쟤 주인.”
“윽, 존나 유치해! 초딩도 아니고! 초딩박 재림이요~”
“아냐. 쟤 깰 때 보면 딱 강아지 닮았는데. 애가 얼굴 드는 모습이 좀 비싸서 그렇지.”
정신이 번쩍 뜨이고 정확한 사리분별을 할 수 있게 된 시점은 그때부터였다. 내 자리를 둘러 박찬열의 친구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는 샤이니 막내를 닮은 사람도 있었고, 예쁜 엠버라고나 할까. 약간 외국인 같이 생긴 사람도 있었고, 또… 엄청나게 잘생긴 사람도 한 명 있었다. 그게 딱 하나님을 연상시켰다, 왠지는 모르겠고 매치도 잘 되지 않지만. 그리고 박찬열만큼은 아니지만 꽤 훤칠한 키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명찰엔 오세훈이라고 써져 있었다. 난 발가벗겨진 기분에 눈을 어디로 두어야 하나 망설였다. 녀석들은 내 자리의 앞, 뒤, 옆을 차례대로 점령했다. 반에 아이들이 얼마 없어 다행이지, 만약 있었다면 시끄럽다고 한 소릴 들었으리라. 녀석들은 날 보더니 강아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남자치곤 귀염상이라는 소릴 늘어놓았다. 그리고 박찬열은 맨 마지막에 뒷문에서 2분단 뒤에서 두 번째인 내 자리까지의 코스를 단 몇 발자국만에 오더니 내 옆에 앉아있던 ‘샤이니 막낼 닮은 사람’의 어깨를 툭툭 쳤다. 명찰에는 김종인.
“좀 비키시지? 여기 내 공식 지정 자린데.”
“미친놈아, 나일 먹더니 얘가 왜 이상해졌냐? 나도 좀 앉자.”
“여긴 ‘개주인’ 지정석이거든요. 그치, 백현아.”
“…어? 어..”
내가 놀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는 김종인의 말투가 아주 의외로 멀쩡해서, 둘째는 박찬열이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어서. 김종인은 투덜거리며 자리를 비켜났고, 박찬열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았다.
“착하다, 똥강아지. 이리 온~”
우리는 모두 질겁했다. 박찬열이 맨 마지막 말만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을. 박찬열은 오히려 얼굴에 철판을 깔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앞자리를 차지했던 오세훈은 아직도 토할 것 같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난 갓 태어나 귀여움을 받는 강아지가 되었다는 생각에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다만 차이점은, 강아지에게는 익숙한 일이지만 난 17세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아란 말이다! 그런데 박찬열의 마음 속엔 대체 뭐가 있길래 내 말을 이렇게 잘 알아듣는 걸까. 녀석은 내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사실 김준면(얼굴과 매치가 아주 잘 되는 이름이었다)이 내겐 구세주로 등장한 격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가 장난삼아 박찬열의 손을 툭 쳐냈기 때문이었다. 징그러 죽겠네.. 란 말을 덧붙여서. 하지만 박찬열과 녀석들의 입가엔 모두 웃음기가 가득했다. 김종인은 좀 예외였다. 양 입꼬리를 올리는 법을 모르는 듯 했다. 썩쏘라고도 하지, 그런 웃음은.
*
“변백혀언!!!!!!!!!.. 어?”
그날은 아마 날 중의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박찬열의 친구들 뿐만 아니라 도경수도 웬일인지 우리 반에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녀석은 박찬열의 무리를 보고 놀란 기색이었다. 눈을 크게 떠 흰자부자란 말에 걸맞게 흰자를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이요, 입도 살짝 벌려주시는 센스까지.
“도경수?”
“어? 김종인? 너도 여기 있었네?”
김종인과 도경수도 서로를 아는 기색이었다. 비록 어색하긴 했지만 도경수가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난 자리를 박차고 나가 경수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뒤에서 녀석들이 날 이상하게 보던 말던 신경쓰지 않았다. 박찬열은 특히 놀라겠지, 녀석의 똥강아지에게 이런 모습도 있다는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까. 도경수는 갑작스런 내 호의에 당황했는지 애꿎은 눈만 껌뻑였다. 이럴 땐 웃음으로 무마하는게 최고지. 난 룰루랄라 반을 나섰다. 뒤에선 왜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자애들이나 할 법한 캉캉 걸음을 하며 정문 앞 벤치로 향했다.
“야, 너, 갑자기, 왜, 왜, 왜이래?”
“에이… 새삼스럽게. 내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야?”
“아, 아니.. 그건 아니지..”
“근데 왜 왔어? 학년 바뀌고 생판 한 번도 안 오더니.”
“이따가 음악 때 합, 합주 한다던데 리코더 놓고 왔어, 쏘리.”
“도경수 클났네. 나 리코더 없는데. 나 다른 건데.”
맥이 빠졌다. 괜히 내려온 게 아니었나 싶었다. 그나저나 리코더는 내게 없었다.
순간 머릿 속에 번뜩인 게 박찬열이었던 건 왜일까. 얼핏 음악 시간에 녀석이 리코덜 불지 못해 쩔쩔매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주인이란 사람이 똥개보다 못하면 쓰나. 난 벙찐채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대는 도경수를 데리고 다시 4층으로 올라갔다.
*
닫혀있는 뒷문을 드르륵 열었다. 여전히 반엔 아이들이 얼마 없었다. 점심 시간은 끝나가고 있었다. 눈에 딱 띄는 개털같은 갈색 머리는 내 책상에 턱을 괴고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도경수는 여기서 잠시 기다리겠다 했다. 난 박찬열에게 다가갔다.
“박찬열.”
“똥개. 훈련은 잘 마치고 돌아오셨습니까.”
“완전 잘요. 혹시 리코더 있어?”
“있는데, 너 줄 리코던 없어.”
“아… 주인님. 친구가 빌려달랬는데.”
“사물함 잘 뒤지면 나오겠지.”
아싸! 승리의 쾌재를 외치며 박찬열의 사물함으로 향했다. 몇 번이었더라, 20번 쯤이었는데.. 아. 찾았다. 박찬열은 23번이었다. 사물함은 주인의 머리마냥 잡다한 물건들로 난리가 아니었다. 슬램덩크부터 체육복까지 규칙없이 뒤엉킨 사물함은 가관이었다. 더미 속에서 용케도 리코더를 찾아낸 나는 더 가관인걸까. 난 경수에게 리코더를 주었다.
“침 뭍었으니까 닦아서 써.”
“변백현밖에 없다. 끝나자마자 가져다줄게!”
경수의 등을 한 대 쳐주고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내가 첫 발을 내딛자마자 뚫어져라 쳐다보는 박찬열의 시선은 부담스러웠다. 입모양으로 왜- 라는 말을 건넸다. 박찬열도 소리없이 그냥- 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박찬열 앞에 서기까지, 우리는 묵언의 대화를 이어갔다.
‘그냥이 어딨어’
‘여깄는데’
‘자꾸 보지 마’
‘왜’
“부담스럽잖아.”
녀석은 상체를 뒤로 젖히고 날 정말 강아지 대하듯이 바라보았다.
“똥강아지.”
“……?”
“난 백현이라고도 불렀는데 왜 넌 찬열아, 하고 안 불러.”
“어?”
“생판 모르는 백현이 친구한테 리코더까지 빌려줬으면 백현이는 날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이거읽으면 살빠짐ㅎㅎ
1편부터 안 보고 온 익인들 있으면 안대.. 1편은 봐야 제맛 보라고 있는게 1편임!!!!!!!!! 꼭봐라 두번봐라
아싸 길다~~~ 오늘 김종인은 소리소문없이 자기네 반으로 슝 갔지만 다음편에선 조금 더 비중있게 나올거에요 유후!
그리고 저 쇼핑몰 이벤트 당첨되서 화장품 받음..ㅎㅎ 그래도 그것보다 어제 폭댓보고 진짜 감동받았음 오징어 같은 여자들ㅠㅠ 사랑해요ㅠㅠ 정말로ㅠㅠ
박찬열 캐릭터를 좀 살리고 싶은데 ㅇ떻게 안되겠냐능.. 개주인씨..당신은너무잘생겼어 하악하악 우리연애할까
BGM은 the finnn - 이 겨울 끝은 눈보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