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오세훈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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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태운 백화점 비서 자리로 취직했다며? 축하한다 ㅇㅇ아."
커피잔에서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김이 원장의 얼굴을 가렸다. 역시나 반갑다는 형식적인 인사 뒤에 제대로 된 첫 마디는 '그 동안 잘 지냈냐'는 진부한 안부인사보다는 '태운 백화점에 비서로 취직을 했냐'라는 속물의 그림자가 드리운 한 마디였다. 대체 내가 왜 스무 살 때 시궁창같은 그 곳을 나와서 그렇게 아둥바둥 살려고 했는지, 대체 내가 왜 그렇게 나가고싶어 안달이었는지, 대체 왜 그런 것따윈 묻지 않는 것인가 마음 속에서 원망이 뜨겁게 끓어 올랐다.
"축하 해주셔서 감사해요. 원장님은 잘 지내셨어요?"
"그래, 잘 지냈다마다. 너 떠난 이후로 네 걱정이 보통 돼야 말이지…, 그런데 여기는 어쩐 일이냐? 영영 떠날 것처럼 도망치더니..."
커피를 조심스레 홀짝이던 김원장은 흘끗 나를 흘기며 물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느냐고.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내 의자에서 스르륵 일어나 김원장님의 앞에 터벅터벅 걸어가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이미 오래 전에 세상 떠나신 거 저도 잘 압니다."
김원장의 표정이 급작스레 굳어졌다. 웃음기 가득 띠던 얼굴엔 서슬퍼런 날을 연상케하는 새파란 독기만이 가득했고, 내가 눈물을 하나 둘 떨궈내기 시작했을때는 그 굳어가던 표정과 갈 곳을 잃은 눈빛은 더더욱 짙은 독기를 뿜어냈다.
"그래도, 그래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미 한 번 버려졌다. 모두에게. 나를 낳았고, 세상에 탄생한 그 순간 유일하게 나를 축복해주어야 했던 나의 피붙이는 나를 버렸고, 죽지 못 해 살아가던 보육원 생활 속에서 도피하려 성인이 되자마자 도망 쳤을 때는 내가 세상을 버렸다. 세상의 전부였던 부모가 나를 버렸고 나는 이런 세상에 닳고 닳아 세상을 버렸다.
"찾고싶습니다."
그런데, 찾고싶다. 자꾸만 자꾸만 혈육이라는 사실만이 그들과 나를 강하게 연결하고 끌리게끔 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를 버린 데에는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아서. 되도 않는 기대라는 걸 알지만, 나를 버린 데에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만 같아서. 나는 계속해서 울음을 토했다. 그만큼 간절했다. 세훈아저씨를 만난 이후로 찾고싶은 사람이 생겨났다. 내가 태어나 눈을 처음 뜬 순간 내가 보았던 부모들과, 어떠한 이유도 없이 강하게 그리워하던 언제인지 모를 한 때의 소년을...
"원망… 많이 해요. 부모님도, 원장님도."
"…."
"그래도.., 제가, 고작 저 따위가 유일하게 살아있는 그 분들 딸인데, 찾고싶습니다."
원장은 꼬고 앉은 다리 위에 얹어놓은 손가락을 계속해서 까딱이며 움직였다. 그 모습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오만해 보였어도 나는 꿇은 무릎을 한치라도 세우지 않았다. 오히려 원장의 살기가 더욱 차갑게 느껴질 수록 내 무릎을 굽혔다. 여태껏 그렇게 살아 왔다. 그것이 나에게는 곧 세상의 순리였으며 일종의 생존 방법이었다. 자존심이고 뭐고 낮추고 닳고 닳아질 때까지 굽히는 방법.
"찾아가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나, 네가 얼마나 죽느니만 못 하게 살았나. 알려드릴려고?"
"…."
"그만큼 먹여주고 재워줬음 됐지 나한테 뭘 더 바라니? 성공했잖아, 그래서, 너 지금 이렇게 꿋꿋이 살잖아. 그럼 된 거야, 그 모습으로 된 거야, 응? 우리 오늘 본 건 없었던 일로 하자꾸나 ㅇㅇ아."
차갑게 일어서는 김원장님의 다리를 붙잡았다. 계속해서 울음을 토해냈다.
"부탁드려요…, 부탁드려요…."
"얘가 왜 이래 정말!"
다리를 비틀어 빼서 곧장 앞으로 향하던 김원장님은 나를 경멸스러운 시선으로 한 번 뒤 돌아봤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붙잡고 있는 듯 쥐고 있던 주먹에 더욱 힘을 주며 땅에 짓누르며 우는 중이었다.
악덕 오세훈 사장님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렇게 지친 몸보다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이끌고 옮기는 발걸음이 천근같이 무겁기만 했다. 세상이 미웠고 그런 미운 세상에 약자라는 이름표를 달고 존재하는 내가 증오스러웠다. 하늘이 시커맸다. 진회색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슬픔은 어릴 적부터 나를 집어 삼킬 것처럼 잠식 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슬픔은 내 안에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 공항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마음 한켠이 자꾸만 시리고 허해서 세게 치게 됐다. 감기 기운탓인지 고열이 몸에서 가시질 않았고, 아침에 먹었던 죽마저 토해냈다. 살고싶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알아 챘는가 보다. 나는 실소가 나와 피실피실 웃었다.
"애기야."
입국 게이트에서 나오던 세훈아저씨의 모습에 나는 반갑게 웃었다. 이제는 어느세 '애기야'가 되어버린 내 호칭에 살짝은 낯이 간지러 발그레해진 볼을 숨기려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 세훈아저씨는 나를 품에 꼭 안았다.
"춥지, 걸어 온 것도 아니고 귀가 왜 이리 새빨개?"
"…."
"아뇨, 안 추웠어요. 그러려고 했지 방금."
그는 내 귀를 따뜻한 두 손으로 감싸주며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나는 두렵다. 계속해서 깊어지는 우리 관계가, 이 마음이...,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걸 알아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내게 있어 그와 떨어져 있던 일주일은 더디고 길게 느껴졌다. 그런만큼 세훈아저씨의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절실한 존재인지, 이 썩어 빠진 세상에서 내가 겨우 붙잡고 명을 부지할 수 있는 동앗줄인지 절감했다. 죽지 못 해 사는 내게 하루 하루 눈을 뜨고 숨을 쉬는 이유가 되어 버린 사람.
"너, 이상하다. 몸이 너무 뜨거워."
"아파요."
"뭐?"
"아파요…, 많이 아파요."
"그럼 이 상태로 지금 여기까지 온 거야? 너 미쳤어?"
"…."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병원을 안 갔단 말야 그럼? 너 준면이형 명함 없어? 그럼 나한테 전화를 했어야지."
나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시들시들하게 꺾여 버린 몸도 너무 아프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모든 게 너무 서러웠다. 치유 받고 싶었다. 누군가 알아 주고 보듬어주길 바랐다. 생전 처음으로 그런 마음이 들었다. 내 이런 상처를 누군가가 알아주고, 걱정 해줬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생각. 그토록 원하던 바를 세훈아저씨는 모두 다 들어주고 있는데, 왜 이렇게 서러운 걸까. 우는 내 모습을 보며 세훈아저씨는 마른 세수를 하며 한숨을 쉬었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투로 내게 말했다.
"오빠가 걱정 돼서 그러지."
"…."
"화 내서 미안해, 미안해, 응?"
그런 게 아닌데, 사실은 아픈데 왜 여기까지 왔냐고,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하고 있던 거냐며 화를 내주길 바랐는데. 화를 내는 그의 모습에 겁을 먹은 게 아닌데. 만나자마자 싸우고 울만큼 남아 있을 감정도 이제 내겐 없다. 그란 존재가 내게는 치유 그 자체였다. 어린 아이들이 상처를 드러내 약을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를 때의 쓰림을 못 이기고 울 때의 감정이, 지금 내겐 고스란히 퍼지고 있었다.
'찾아가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건데.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나, 네가 얼마나 죽느니만 못 하게 살았나. 알려드릴려고?'
죽느니만 못 하게 산다. 남들 조차도 그렇게 일컫는 내 인생을 세훈아저씨는 안아주고 보듬어주었다. 어쩌면, 앞으로 갈 길이라는 건. 세훈아저씨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훈아저씨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 나를 꼭 감싸 안아주었다.
"우리 애기 나 없을 때 뭐 힘든 일 있었구나."
"…."
"울어. 그게 맞는 거야. 힘든 일 있을 땐 이렇게 나한테 안겨."
그렇게 나는 세훈아저씨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 왔길래…, 남들처럼 부모를 만난다는 일조차도 힘들고 어려운 것인가. 그가 아니였다면…, 여태 이렇게 아등바등 살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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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명 착각했어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