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오세훈 사장님
“아저씨."
“응.”
“저한테 잘 해주지 마세요.”
아저씨는 항상 과하게 친절하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음에 항상 더 없이 처량해진다. 나는 오늘 그를 보는 게 두려웠다. 그 이유가 우습다는 것쯤 하나는 나도 알고 있다. 다가 오지도, 보이지도 않는 사람에게 더 이상 다가오지 말란 말을 했다. 내가 그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끊어 내려고. 그에게 벽을 쳤다. 더 이상 잘 해주지 말라고. 이러지 말라고.
"얘가 또 사람 환장하게 만드네."
"…."
“…”
“왜, 나 좋아해?”
“…”
“난 너 좋아.”
순식간에 바람을 일으키고 지나가는 지하철과 철도의 마찰음만이 내 침묵을 대신해주었다. 마음을 들켰다. 아저씨는 단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제 마음을 드러냈다. 난 너 좋아. 하고. 그 뒤에 따라 붙는 마지막 그의 한 마디가 거슬려 잠에 못 들 것 같긴 하지만.
“참 여러 의미로.”
어깨를 잡아 일으키는 그의 행동에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투박한 손길로 코트 옷 깃을 여며 주는 그의 행동에 괜히 울컥 눈물과 함께 신경질이 났다. 나는 그의 손을 뿌리쳐냈다.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뭔데. 오세훈 당신이 나 좋다는 그 의미는 그저 아는 어린 동생일 뿐이겠지. 그 정도는 예감 하고 있었으면서. 결국엔 또 이렇게 바보같이 상처를 고스란히 막아내지 못한다. 비수를 막지 못하고 심장이라는 과녁에 고스란히 맞아 고통을 감내하며 버텨낸다. 이게 두 번째다. 무려 두 번째. 세훈은 지하철 출구로 구둣발 소리를 뚜벅뚜벅 내며 걸어갔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의 뒤를 종종걸음으로 좇아 소매를 붙잡았다. 놀란 그는 눈을 치뜨며 나를 내려다 보았고, 나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란 작은 파도의 동요에 울먹이며 말했다.
“저 이제 아저씨 안 만날거에요. 회사도 그만 둘 거구요.”
“또 왜 그래.”
“제가 아저씨 좋아하는 거 알면서 이러는 거죠, 사람 순수한 마음 가지고 장난 치면 좋아요? 다 큰 어른이 됐으면서…! 나 보다 몇 년이나 일찍 태어난 사람이…!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못 느껴요?! 아까도…!! 그리고… 그 때 라운지에서도…!”
그렁그렁 유리구슬처럼 눈가에 맺힌 눈물이 기어코 세상에서 가장 처연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구질구질하다. 태생부터가 당신 같은 사람 같지가 않아서, 당신처럼 다른 사람의 좋아한다는 그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놀 만큼 사랑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나는 지금 현재 그게 가장 억울하다.
“미안하다.”
“…”
“나 너 마음 가지고 장난 친 거 아닌데.”
“…”
“그냥 착각 한 거야. 난 그 맘 알아서 그래. 너한테 나는 신기한 마음에 나타난 일말의 호기심.”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너 좋아하는 사람이랑 교제 해 본 적 있어?”
“…”
“그것도 이렇게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사람이랑.”
나는 아저씨의 말에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훔쳐냈다. 아저씨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어낼 때 마다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마저 처연한 느낌이 들어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아서. 가빠진 호흡에 심호흡을 했다. 추한 몰골을 숨기려 고개를 떨궜고, 그것을 보고 아저씨는 내 손을 가져가 잡았다. 항상 따뜻한 아저씨의 손이 얼 듯 말 듯 차가운 내 손을 녹였고, 나는 그 따스함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아저씨를 바라 보았다.
“난 너를 볼 때 마다…”
“…”
“내 여동생 같고 막 그래.”
우수에 찬 눈빛으로 내 손을 내려다 보던 아저씨의 모습에 촛불이 일렁이듯 맘 한 켠이 일렁였다. 계속해서 내 손을 쓸던 그의 행동에 놀라 손을 얼른 빼내었다
“해고 안 하시면 제가 알아서 사직서 내겠습니다. 이제 연 끊고 지내요.”
넋이 나간 듯 한 그의 얼굴을 끝으로 나는 뒤를 돌아 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 갔다.
악덕
오세훈 사장님
나는 그 날 울다 지친 몸을 이끌고 일찍 집에 와 침대 위로 몸을 던져 누웠다.
‘내 여동생 같고 막 그래.’
‘편식 하는 구나.’
‘하면 안되지.’
스물 하나 인생 처음으로 찾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내 인생에는 남겨진 사진도, 인연을 이어온 사람도, 곱씹을만한 추억거리도 하나 없다. 어떤 한 사람을 제외하고.
‘오빠 자주 올께 ㅇㅇ아. 다음에는 편식 하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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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는 것은 단지 차림새 뿐이었다. 구김 없이 잘 다려진 맵시 좋은 오부 정장 바지, 흑갈색으로 맨 멜빵, 새하얀 셔츠. 대충 그쯤으로 기억 하는 것이었고, 또한 미지의 물건이 하나 있다. 이름 모를 소년이 남기고 간 것인지는 몰라도 예쁘고 인자한 여자가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 목걸이. 꽤나 형식적인 사진과 목걸이의 디자인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파란색 꽃이 그려져 장식된 사진 목걸이 속에는 내가 무엇인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리라 짐작해본다.
악덕
오세훈 사장님
(viewpoint:세훈)
애초에 기억을 잃은 적은 없었다. 내가 너무 아파서 감춰 뒀던 기억을 스물 여덟. 뒤늦게서야 해내고 수 많은 고민 끝에 면죄부로 ㅇㅇ이를 만난 것 뿐. 만나기 전에도, 만나고 난 후에도 나는 많이 괴로워 했다. 그것만으로도 하느님께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괴로움으로 인해 ㅇㅇ이가 두 번 다시 상처 받지 않기를 바랐다.
'붙잡아!!!'
왜 이러냐며 엉엉 우는 그 어린 아이를 경호원들은 거세게 붙잡았다. 보육원 원장이라는 사악한 사람은 웃으며 ㅇㅇ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ㅇㅇ이한테 왜 그래요!! 엄마!!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정말 그만 올게요..! 저 어린애한테 왜..!'
'난 이제 너 못 믿겠다 세훈아. 마지막으로 약속 했던 게 벌써 일주일 전이야.'
어머니는 내가 보육원의 ㅇㅇ이를 특별히 보살피는 것을 알곤,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시며 절때 한 마디도 섞지 말라고 소리를 치셨고, 둘 째 번에는 인상을 쓰며 긴 시간동안 이유 없는 꾸짖음을 하셨다. 이상하고 집요하게 ㅇㅇ이에게만. 세 번 째는 그저 보육원 봉사를 가지 말라며 억압을 했다.
일주일 뒤, 나는 오랜만에 보육원 정찰 겸 봉사를 나가신다는 아버지를 뒤따라 보육원에 갔고, ㅇㅇ이를 만나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어린 날의 추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급하게 보육원까지 나오신 어머니께서는 다짜고짜 내 뺨을 내리 치셨다. 나는 왜 맞는지도, 어머니께서 왜 그렇게 ㅇㅇ이에 대해 못마땅함을 넘어서 가증스럽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 채로 끌려가야 했다.
〈o:p>강제로 붙잡혀 집에 돌아가는 차 안이었다. 격해진 어머니와 싸움에 나는 한 번 더 뺨을 맞았고, 그와 동시에 나가겠다고 난리를 치는 나를 말리던 어머니는 실수로 보온병 안에 담겨있던 커피를 기사 아저씨께 쏟았다. 주인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는 제 멋대로 앞차와 충돌을 했고, 동시에 데구르르 굴러 방호울타리를 넘어 선 자동차는 훗날 ㅇㅇ과 나의 운명을 만들어 낼 다소 큰 날갯짓의 나비효과였다. 〈/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