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 싫다. 짜증나. 택운은 인상을 찡그리곤 이어폰을 꼈다.
오늘은 3월의 첫 번째 평일, 새학기였다. 10대의 마지막 학창시절을 시작하는 날인 것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감 또는 불안감들이 뒤섞인 교실의 공기는 기분나쁜 들뜸으로 가득하다. 일순간 소란을 “누구야?”라는 말로 일축시켜 버린 건 다름아닌 교실 앞에 서있는 선생님과 한 아이의 존재였다.
“자, 다들 조용히하고. 고3의 입구에 발을 들인 걸 진심으로 환영한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싱글벙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담임에 아이들은 일제히 탄식을 내지른다. “이왕 시작된 거, 좀 기쁘게 시작하는 게 낫지 않겠니?” 그래도 학교 내에서 가장 학생들과 친밀하게 지내는 교사라 학생들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여기 이 친구는 오늘부터 우리 학교에 다니게 된, 네가 소개할래?” 사람좋은 웃음을 지은 담임이 제 옆에 있는 학생에게 눈을 맞추며 물었다.
… 무서워, 말 하기 싫어.
“..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 안녕. 내 이름은 차학연이고 사정이 있어서 전학오게 됐어. 잘 부탁해.”
헐, 존잘인데? 반에서 시끄럽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재환이 탄성을 내질렀고, 학생들은 일제히 재환의 말에 동의했다. “존잘이 뭐냐 존잘이! 그런말은 나한테 어울리는 말인데?” 담임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학생들을 바라봤고 학생들은 제 귀를 막고 눈을 가리며 한숨을 쉬었다. 학연은 머쓱한 듯 웃어보이며 담임을 바라봤다.
“아, 학연이는 저 뒤에 택운이 옆에 가서 앉으면 되겠네. 혹시 안 보이면 나한테 말 해. 자리 바꿔줄테니까.” 학연은 짧게 목례를 해보이곤 주먹을 쥐었다 폈다.
괜찮아. 내색하지 말자. 담임이 알려준 아이의 옆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학연의 예상대로 아이들은 학연의 다리를 바라봤다.
아 씨, 오늘따라 더 거슬리네. 학연은 절뚝거리는 왼쪽 다리를 이끌고 택운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 안녕?” 그 말에 택운은 학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다시 자신의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뭐야.. 기껏 용기내서 인사했더니.’ 학연은 그 새 속상했는지 볼에 바람을 넣곤 가방을 열어 필통과 책들을 꺼냈다. 모두 새로 장만한 건지 손을 탄 티가 나지않았다. 그리곤 웃음을 띈 학연은,
‘이건 내 회심의 준비물!’
생각하고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젤리가 가득담긴 봉지를 꺼냈다. 주면서 말 걸면.. 좋아하겠지? 하, 근데 보통이 아닌거 같은데. 자신을 바라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연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말 걸면 가만안둔다.’ 라는 아우라가 택운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래도 지금 아니면 언제 말붙여! 학연은 잠시 고민하다 택운의 팔을 쿡쿡 찔렀다.
“…?”
아 미쳤다. 눈을 마주치니 멀리서 봤던거보다 훨씬 무섭다.
“아…하하. 내 이름은 차학연이고. 혹시 젤리… 좋아해?” 말을 마친 학연은 꼬물거리며 봉지를 흔들어보였다. 이거 새로나온건데, 되게 맛있…
“아니.”
아 진짜 미쳤다. 어떡하지. 운동장에 덩그러니 서있는 동상마냥 학연은 굳어버렸다. 왠만하면 하나라도 먹어볼텐데.. 금세 시무룩해진 학연은 봉지를 뜯고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초록색 맛 젤리를 하나 집어들고는 또 고민에 빠졌다. ‘이거 진짜 맛있는데. 한 번만 먹어보라 해야겠다.’
“태, 택운아. 이거 진짜 맛있ㄴ..”
“됐다고.”
응. 고개를 끄덕이곤 자신의 입으로 넣어버리는 학연이다. 우물우물, 금새 또 기분이 좋아졌는지 헤실헤실 웃고있다. 그리고..
정말 미세하게, 택운도 웃고있었다.
드르륵- 수업 시작 종이 치고 한 참 후에야, 반장이 들어와서는 아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얘들아, 우리…”
우리 뭐?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반장을 쳐다봤다. 우리 뭐어어!! 재환은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팡팡치며 반장에게 재촉했다. ‘쟤도 한 성질머리 하는구나.” 학연은 속으로 생각하며 재밌다는 듯 상황을 지켜봤다.
“체육대회 참가하기로 결정됐다!!”
와아!! 반 안에 있던 학생들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단, 두 명을 제외한 30명만이.
“... 부럽다.” 학연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푸욱 내쉬곤 책상위로 두 팔을 포개고 엎드렸다. 그런 학연을 힐끗 보곤 택운이 우물쭈물 망설였다. 그리곤 고개를 한 번 젓고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아 거슬려…
신경쓰여, 짜증나게.
전학생으로서의 첫날은 학연의 우려보다 꽤나 괜찮았다. 애초에 아이들하고 친하게 지내는 건 기대하지 않았다. 시비라도 안걸리면 다행일까. 하지만 마음에 하나 걸리는 거라곤 제 짝인 택운 하나였다. 왜 그렇게 쌀쌀맞은거야. 내가 뭐 잘못한 것도 없구만. 이상하게 하루종일 마음에 걸린다니깐. 하곤 학연은 다음 날을 위해 침대에 누웠다.
내일은 밥 같이 먹자고 해볼까?
헤헤, 학연은 조금은 바보 같은 웃음을 흘리곤 눈을 감았다. 친해지고 싶단말이야. 생각하면서 학연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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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미쳤어! 어떡해..”
습관처럼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어버렸다. 지각이다, 이제 시작인데.. 망연자실하며 자신의 머리를 뜯은 학연은 서둘러 준비했다.
아 힘들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학연은 간신히 교문 앞에 도착했다. 사실 뛰는 속도가 일반 사람들에 비해 확연히 느리기에 빨리 도착할 수가 없었다. ‘너무 무리했나…’ 학연은 자신의 왼쪽 다리를 작은 주먹으로 통통 두드리며 어기적어기적 교실로 향했다.
‘…쟤도 늦었네.’
몇 발치 뒤에서 지켜본 택운은 신기하다는 듯 학연을 쳐다봤다. 그리곤 천천히 걸어갔다. ‘괜히 마주치면 어색하니까…아, 이런 건 왜 신경쓰고 있는거야.’ 하며 인상을 찡그린 채로,
왼쪽 다리를 절며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