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륵, 학연은 천천히 뒷 문을 열고는 제 자리로 찾아가 앉았다. 아직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라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말들을 늘어놓고 또 받아치느라 정신이없었다. 절뚝거리며 들어오는 학연을 쳐다 본 재환은 흥미롭다는 듯 학연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이내 성큼성큼 학연에게 다가갔다.
“안녕!”
난 이재환이라고 해! 활짝 웃어보이며 재환은 학연에게 손을 건넨다. “응, 안녕..” 어색하게 미소지은 학연은 건네진 손을 잡고 두어 번 흔들었다.
“이름이 학연, 맞지? 혈연, 지연, 학연! 이렇게 기억하면 되겠네. 헤헤.”
아.. 저 말 진짜 많이 들었는데. 학연은 지겹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아 왜- 재밌기만 한데! 헐… 혹시 이름가지고 이렇게 하는 거 싫어해? 미안해! 진짜 고의로 한 건 아니야!”
재환은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쉴틈 없이 혼자 말을 이어나갔다. 하, 그 모습에 학연은 말없이 재환을 바라보았다. 두 손을 모아서 머리위로 올린 재환이 학연의 눈치를 살폈다.
“진짜 미안..”
“..아니야, 나 그런 개그 좋아해.”
진짜?!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예감이 좋았다니까. 학연의 손을 잡아 주먹을 만들고는 자기 주먹을 맞대고 재환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이번엔 눈을 동그랗게 뜨곤 물었다.
“야 근데! 너 어디에서 왔어?”
아, 말투에서 티났나.. 학연은 어색하게 웃어보이곤 대답했다.
“아, 창원이라고.. 밑에 지방이야.”
어쩐지! 말투에서부터 느꼈다니깐- 재환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또 말을 걸어왔다.
“나 사투리 쓰는 사람 처음 봐! 티비에서밖에 못 봤어. 완전 신기해.” 하며 재환은 간식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학연이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
“아… 난 너희들이 신기한데.”
너-희들이 신-기한데. 학연의 억양을 따라하며 재환은 또 활짝 웃어보였다. “학연아 나 너한테 사투리 배울거야! 그럼 우리 이야기 많이해야 되겠다 그치? .. 사실 이건 핑계고, 그냥 친하게 지내자 이 뜻이야!”
헤실헤실 웃어보이는 재환이 썩 나쁘진않다. 항상 제 주위엔 사람이 없었을 뿐더러, 자신도 그리 외향적이진 않은 성격이기에 자신의 마이너스적인 요소를 재환은 가지고 있는 것만 같아 부러웠다.
“야 이재환! 아 빨리와봐!”
어 알았어! 하고 제 친구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인 재환이 웃으며 말했다. “학연아, 우리 잘 지내보자!” 하곤 재환은 후다닥 달려갔다.
“..좋겠다.”
저렇게 아이들과 모여 이야기 해본적이 언제던가. 되짚어보니 선뜻 생각나지 않는 저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학연은 애꿎은 샤프만 만지작거렸다. 근데.. 얘는 왜 안 오는거지?
택운의 자리를 바라봤다. 낙서 하나 없는 책상이 낯설었다. 얼룩 하나 없는 깨끗한 책상은 굉장히 보기 드물다. 특히 이 곳에선 더더욱.
“…?”
언제 교실에 들어왔는지 택운은 제 책상위에 가방을 내려놓곤 학연을 쳐다봤다. 뭐 볼게 있다고 빤히 쳐다보는거야. 제 책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학연을 의아하다는 듯 한번 바라보곤 의자에 앉았다.
“어, 와..왔어?”
학연은 어색하게 제 손을 흔들어보였다. 택운은 그런 학연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다시 앞으로 눈을 돌렸다. 대답 하나 해주는게 그리 어려운가. 나름 용기냈는데.. 입을 삐죽거린 학연은 휴대폰을 꺼내고 생각에 빠졌다.
‘번호…번호 알려달라고 할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번호를 묻는 것도 아닌데 학연은 그 작은 것 하나도 굉장히 깊게 고민했다. 그 상대가 택운이기에 더 그런 걸 수도. 아 어떡하지.. 한참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던 학연은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떨리는 손을 택운의 책상위로 가져갔다.
“..뭐.”
“저기… 번호 좀..”
초당 1n번은 눈을 굴린 것 같다. 하 어떡해.. 괜히 물어봤나봐.. 학연은 머릿속으로 자신을 자책했다. 미쳤나 봐. 아직 말도 안 해봤는데 갑자기 왜 번호를 물어서는…
“시, 싫으면 안 줘도, ”
“아 씨.”
눈은 학연의 휴대폰 위에 고정시킨채 택운은 짜증난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너무 섣불렀나봐. 학연은 멋쩍은 듯 고개를 떨구고는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 그게.. 내가 친구 사귀는 데에 많이 서툴고.. 또 사귀어 본 적도 많이 없어서.. 불편했다면 미ㅇ,”
“…”
택운은 학연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내어 번호를 꾹꾹 눌렀다. 그리곤 처음으로 학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
“…어?”
“신경쓰이게 하지마.”
말을 마치곤 자리에서 일어나 택운은 교실 문을 빠져나갔다. 미쳤어, 어떡해.. 신경쓰이게 하지말래. 학연은 제 볼을 감싸쥐곤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용기를 내서는 일을 이렇게 만들어..’ 자신에 대한 자책은 덤으로.
-
“야, 절뚝이! 차절뚝- 여기봐라!”
꺄르르, 같은 반 아이들이 자신의 실내화를 들고 복도 끝으로 뛰어갔다. 야, 야..! 학연은 마른 자신의 다리를 이끌고 아이들을 향해 달렸다. 자신은 최선을 다 했다고 쳐도, 절뚝거리며 질질 끌고간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소아마비를 앓고있던 학연은 또래 아이들보다 말랐음은 물론, 매일같이 괴롭힘과 조롱을 받아왔기에 성격도 자연스레 내향적으로 형성됐다. 하, 진짜 짜증나… 몇 걸음 채 가지 못한 채 학연은 복도 한 가운데에 주저앉았다.
“얘들아, 쟤 봐라- 또 운다 또 울어!” 무리 중 가운데에 있는 아이가 소리쳤고, 지나가던 아이들은 물론 교실 안에 있던 아이들도 다들 학연을 구경하기 바쁘다.
“흐..흐윽, 너네, 너네 진짜 나빠. 그만하라고.. 그만!”
아아- 시끄러. 그럼 나 따라잡아서 이거 가져가면 되잖아! 실내화를 든 아이가 혀를 빼꼼 내밀며 학연을 향해 비웃었다. 그 비웃음은 학연의 마음에 바늘처럼 꽂혀왔고, 곧 머릿속을 지배했다. 아, 그..그만. 그만해 제발.. 학연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곤 그대로 바닥에 꼬꾸라졌다.
왜 난 이렇게 태어난걸까.
아니, 난 왜 태어난걸까.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학연이 14살이 되던 해에, 학연의 엄마는 학연을 일반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하루하루 말이 없어지고, 한창 집에 와서 재잘거리기 바쁜 초등학생 시절을 방 안에서 침묵으로 보냈다. 그리고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친 후, 정말 오랜만에 학연이 입을 열었다.
“.. 해방이다.”
기어코 학연의 어머니는 눈물을 떠트렸고, 학연은 그런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뻗었다.
“엄마, 미안해.”
차라리 내가 안 태어났으면 더 행복했겠지? 그치 엄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을 머릿속에 꾸역꾸역 집어넣으며 학연은 또 한 번 생각했다. ‘왜 태어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