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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걔 다리병신인거 쪽팔려서 남들이랑 얘기도 못하는거야.”


푸하! 진짜 온갖 시크한 척은 다하더니, 존나 의외지? 자신의 깊은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웃고 울던 어제의 재환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십거리로 삼아 소름이 끼칠만큼 떠들어대고 있었다. 택운은 온 몸이 떨리고 심장은 터질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유일하게 마음을 열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가장 큰 상처를 남들에게 내보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택운은 꽉 깨문 잇새로 새어나오는 흐느낌을 간신히 참으며 천천히 재환에게로 다가갔다.


“근데 다리 불구로 만든게 누군지 알아? 크큭, 지네 아빠야. 지금은 같이 안산대. 완전 막장이야 걔네 집. 걔네 엄마도..”

“야, 씨발. 말 다했어?”

왼쪽 다리를 끌며 택운은 재환에게 다가갔고, 죽일듯이 재환을 노려봤다.

“저, 그..그게 나는 애들이 너 걱정하길래, 그래서..”

“헛소리 하지마. 내가 다리는 병신이어도 머리가 병신은 아니야.”


재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택운을 올려다봤다. 벌벌 떨리는 손을 미처 숨기지 못한 채 입만 벙긋댔다. 주위에 있던 재환의 친구들은 그런 재환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제대로 잘 못 걸렸네..’


“태, 택운아. 내가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택운은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쳤다.

“너 나 놀려? 그 말을 지금 믿으라고?”

더 이상은 버티기 괴로웠다. 택운은 도망치듯 계단으로 향했고, 재환은 한동안 멍하니 사라져가는 택운을 바라봤다.

“이재환! 괜찮아? 정신차려. 쟤 원래 저런 앤 거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어?”

재환은 머리를 짚으며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리곤 살기어린 눈을 들어올리며 허공을 쏘아봤다.



“…풉, 저 병신새끼가. 놀아주니까 기어오르네 아주. ”

재환은 누가 봐도 명백히 잘못을 저지른 자신을 되려 다독여주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어떤 짓을 하던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희열감을 안겨주었다.

그래. 너 같은 새끼는 애초에 필요도 없었어. 너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내 편이야.

얘도, 쟤도, 저기 선생님도. 다 나만 믿는다고.


-


고3이 되고 난 첫날, 택운은 교실에 발을 들여 놓자 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하, 운도 더럽게 없네.”

저 만치 반 아이들과 웃고 떠들고 있는 재환이 보였다. 왜 하필 저새끼랑 같은 반인거야. 고개를 휘휘젓고는 택운은 맨 뒤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앞 문을 열고 제 담임 선생과 처음 보는 아이 한 명이 들어왔다. 스쳐가듯 얼굴만 힐끔 보고는 택운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름은 차학연이라고 했다. 학연은 내 옆자리로 와 앉았다. 신경쓰이는데. 짜증나. 택운은 말 없이 인상만 찌푸렸다.

제 이름을 얘기하며 악수를 청하는 학연에게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모든 것이 귀찮고 싫었다. 재환과의 일 이후로 택운은 사람에게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렸다.

이쯤되면 질려 나가떨어질 만도 한데, 학연은 포기하지 않고 저에게 말을 걸어왔고, 급기야 젤리까지 건넸다.

“이거 새로나온건데, 되게 맛있…”

“아니.”

눈치껏 그만해라. 택운은 속으로 생각하곤 고개를 돌렸다. 그런 택운의 마음을 알아차린건지 학연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별 희한한 애가 다 있네. 그렇게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져서 참다 못한 택운이 학연을 쳐다봤다.


“태, 택운아. 이거 진짜 맛있ㄴ..”

“됐다고.”
응. 학연은 고개를 끄덕이곤 젤리를 자신의 입으로 넣어버렸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기까지 한다. 또래 아이들 같지 않은 순수한 모습이 택운은 퍽이나 흥미로웠다.


다음 날, 택운은 저와 같이 왼 쪽 다리를 절며 등교하는 학연을 바라봤다. 쟤는 왜 저래. 왠지 모를 동질감과 안쓰러움에 택운은 마음 한 구석이 쓰렸다.


자다깨기를 몇 번 반복하다보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점심은 거의 거르는 택운은 빠져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학연이 제 눈치를 보는게 느껴졌다. 

‘왜 이러는 거야 또.’ 택운은 애써 딴청을 피우며 허공을 바라봤다. 학연은 느즈막히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향했다. 그래도 밥은 먹나보네.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할까. 평소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제 모습이 의아해 택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괜히 신경쓰지 말자. 나만 피곤해지니까.


“학연아, 나랑 같이 밥 먹으러 갈까?”

재환이었다. 쟨 언제 차학연이랑 말 붙인거야.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쪽을 쳐다본 택운은 이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없이 그들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재환은 학연의 팔을 잡았고, 곧바로 뛰기 시작했다. ‘쟤 다리, 다리 절던데…’

얼마 지나지않아 쿠당탕, 하는 굉음을 내며 학연은 책상위로 넘어졌다. 저 새끼, 알면서 저런거지. 저러고선 온갖 선량한 척 다 하면서 차학연 챙겨주는 척 하겠지. 택운은 단박에 알아차렸다. 재환의 의도는 분명했다. ‘아픈 아이를 도와주며 함께 있어주는 착한 학생.’ 재환이 원하는 것이었다.

잊고 있던 불안감과 모멸감이 택운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차학연도 분명 똑같이 당할 거야. 택운은 입술을 짓이기며 눈을 꼭 감았다.


-


‘필요없다고! 나 불쌍하게 보지마! 내가 뭐 바보야? 다리만 병신이지 다른 곳은 문제없어.’


설움 어린 학연의 외침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택운은 집에 돌아와 한참이나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전화부에 등록된 몇 안되는 이름 중 [차학연]이라는 활자 위에 손가락을 올려두곤 누를까, 말까 수 없이 고민했다.


수 년간 남들에게 감정표현을 해 본적이 거의 없는 택운은 미안하다는 한 마디를 건네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웠다. 어쩌면 그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미안했고, 마음이 아팠다.


아마 학연은 자신도 다리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오히려 나도 똑같은 사람인 걸 알았다면 더 어이없었겠지. 택운은 생각하며 학연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드러나면 부끄럽고, 또 타인이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상처를 줬을 경우엔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다. 아무리 차가운 택운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고, 겉으로 보기에도, 숨어있는 내면도 그 누구보다 순수한 학연도 마찬가지다.

택운은 결심한 듯 액정 속 학연의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메시지를 보냈다.


[야]


‘야’가 뭐야.. 택운은 자신의 마음대로 나가지 않는 어투에 제 자신을 원망했다. 말 좀 예쁘게 하자 제발.. 볼에 바람을 넣으며 택운은 택상에 엎드렸다.

지잉-.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고 택운은 놀라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뭐가 그리 쑥스러운지 금방 볼이 빨개져선 아무도 없는 방을 휙휙 둘러봤다. 뭐라고 왔을까. 뭐라고 왔을ㄲ..


[뭐]


..미치겠네. 그래, 나 같아도 화났을 거야. 바보같이가 뭐냐 정택운.. 어떻게 운을 떼면 좋을지 고민하던 찰나에 메시지가 하나 더 왔고, 택운은 심장이 저만치 떨어지는 듯 했다.


[사과할거면 하지마. 괜한 동정심 필요없어.]

학연은 마음이 단단히 상한 것 같았다. 택운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칼을 매만졌다. 어떻게 말 해야될까..


택운은 생각했다. ‘내가 이 상황이었다면?’ 오랜 고민끝에, 택운은 결론지었다. 답은 진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메시지를 주고받는 건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택운은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몇 번이나 고민한 끝에 택운은 두 눈을 꼬옥 감고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학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싸늘했다.

“..차학연.”

[필요없다고 했어.]

금방이라도 전화를 끊어버릴 것 같아 택운은 학연에게 조금은 성급하게 말했다.

“미, 미안해.”

[…]

학연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얼마 안되는 정적이 숨을 조이듯 다가왔다. 참다 못한 택운이 입을 열였다.

“바보같다고, 말한거.. 미안해.”


[…흐,흐윽,]

학연은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소리에 당황한 택운은 어쩔 줄 몰라하며 눈을 굴렸다.

“미안해. 진심이야. 동정심 그딴 거 아니고. 진심으로 사과하는거야. 미안해.”

[..흐, 야아! 진짜! …]

택운은 가만히 학연을 기다려주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기다림이 답이라는 것도 늦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울지 ㅁ,”

[나는 진짜! 흐, 어? 너한테 젤리도 주고 다 했는데!]

..젤리? 그것도 마음에 담고있었어?


‘아 이러면 안되는데,’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택운은 마이크를 막았다. 아 귀여워 진짜.


[난 너랑 친해지고 싶어서.. 다 했는데.. 넌 아무 반응도 없고..]


“..응. 그리고?”


[그리고.. 바보..같다고..]


급기야 크게 울음을 터뜨리는 학연에 대해 택운은 몸둘 바를 몰랐다.


“야, 진짜. 진짜 미안해. 내가…”


[..히끅. 괜찮아. 미안하다고 그만해.]


발음이 잔뜩 뭉게져선 꿋꿋이 대답하는 학연이 고마우면서도 귀여웠다.


“..다리는. 좀 괜찮아?”


[..헤, 응. 괜찮아. 자주 있는 일이니까, 뭐.]


자주라는 말이 괜히 거슬렸다. 조심 좀 하고 다니지. 안 그래도 약해보이는데. 괜히 심각해져서는 미간을 찌푸리는데, 이어지는 학연의 말을 듣곤 택운은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근데 너 내 번호 어떻게 알았어? 니가 내 폰에 번호 저장해줬잖아.]


하, 미쳤다.. 택운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학교에서 학연의 휴대폰을 가지고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서 번호를 저장했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둘러댔던 제 자신을 원망했다. 그냥 그 때 저장했다고 할까. 왜 쓸데없이 자존심만 쎄서 이 고생인지.


“..니 폰으로 전화해서 저장했어.”

하 진짜… 택운은 제가 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과의 소통에 너무 소홀했던 터라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어 들려온 학연의 말에 택운은 책상위에 엎질러진 물 마냥 엎드렸다.


[아 그때 그런거였어? 난 또 뭐라고. 그냥 말하지! 뭘 그렇게 담담한 척 했어~]

학연은 언제 그렇게 울었냐는 듯 웃으며 대답했고, 택운은 어색한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하, 미치겠네..”

남들이 보기엔 아무 문제없는 대화지만 택운은 부끄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말해줘서 고마워, 택운아. 사실 그런 말 들어도 나 아무렇지도 않아. 자라오면서 들은 건 그것보다 훨씬 심한데 뭐. 신경쓰지마. 내가 미안해.]


학연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을 당하며 마음 아파했을까. 택운은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더 갈 수 밖에 없었다.


“아..아니야. 니가 왜.”


[..이런 말 해주는 사람은 니가 처음이어서 그래. 내일 보자!]


액정이 어두워질 때 까지 택운은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봤다. 그리곤 습관처럼 고개를 들어 옆을 향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달이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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