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팬픽은 절대 진지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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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찬열] 사신밀담 00 (부제: 아주 오래 전 이야기)
천天 12년, 온갖 독한 결계가 쳐진 제 처소에 홀로 갖히다시피 한 찬열이 몸을 떨었다. 하루아침에 제 능력을 잃었고, 제 정체를 잃었고 저의 하나뿐인 정인을 잃었다. 찬열의 표정이 절망에 가득 물들었다. 찬열은 주작이었다. 여름을 관장하는 사신四神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것이 전부 과거 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추문에 휩싸여 그는 지금 반란을 꾸민 주모자와 사랑을 나눴다는 이유로 홀로 유폐되어 죄인이 되어 있었다. 미치도 록 괴로웠다. 현실이 괴로웠고, 그가 저의 곁에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미치도록, - 심정이 어떠한가? 증오스럽다. 찬열은 대답 대신 다가온 사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 … 차라리 죽이십시오. " - 과연, 그놈이 탐낼만한 용태를 지녔구나. " 이리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사느니 기꺼이 목숨을 끊겠습니다. 신을 소멸시키시지요. " - 그럴 수야 있나. 상이 찬열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찬열의 두 초점이 정처없이 흔들렸다. 마음같아서는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에게 몸이 더럽 혀지고 비웃음거리가 되느니 죽는 것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상은 치졸했다. 끝까지 찬열을 죽지 못하도록 모든 능력을 빼앗고 처소에는 결계를 쳤다. 아주 견고한 결계였기에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사랑한 것 치고는 너무나도 가혹한 대가였다. " 죽여, 제발 죽이라고! " - 차피 너는 짐의 계륵鷄肋이나, 욕정을 풀기 위한 도구로서의 쓸모는 있지. 천계서 제일가는 경국지색絶世佳人, 적어도 그 맛은 한번 보고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찬열이 비명을 질렀다. 난생처음 허락하지 않은 타인의 손에 의해 반항하는 흰 몸뚱이가 맥없이 널부러졌다. 그가 떠난 지 닷새가 지났다. 이레가 지났고, 열흘이 지났다. 찬열은 점차 표정을 잃었다. 고통도 두려움도 괴로움도 조금씩 지워졌다. 단지 그 아름다운 얼굴 안에는 끝없는 절망과 슬픔이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 흐흐흐, 흐흐흐흐. " 괴악스런 웃음소리에 눈쌀을 찌푸린 상이 찬열에게 말했다. - 정녕 미친 게로구나. " 아니요. " " 사는 것이, 그악스러워서¹. " 지독히도 그악스러워서, 그리하여 웃었습니다.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심부 안에 있을 무언가는 이미 잔뜩 문드러져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그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 청룡이 그리운 것인가. 찬열의 답이 없자 상이 찬열의 따귀를 후려쳤다. 이미 잔뜩 피멍이 들고 상처가 난 뺨이었으나 당연스럽게도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다. - 과연 그놈처럼 천하구나. 꼴에 정인이라 똑같이 천해 빠졌어. 보거라, 네 그 정인이 지금 무슨 꼴을 하고 있는지. 다시 찬열의 뺨을 두어번 더 후려친 상이 이내 반항하는 몸뚱이를 질질 끌어 수정구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빛을 내는 수정구 안에는 차마 외 면하고픈 진실이 있었다. 차디찬 빙하 안에 갖혀 반쯤 죽어있는 청룡의 모습은 이미 산 사람의 몰골과는 거리가 멀었다. 괴로워하며 울부짖 는 찬열의 모습이 즐거운지 연신 웃어대던 상이 이내 자리를 떴다. 찬열은 반쯤 기다시피 하여 앞의 수정구를 품에 안았다. 걸을 힘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슨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마냥 연신 가슴에 품었다. 가끔은 웃어주던 아름다운 내 정인, 내게 당신은 둘도 없을 천하절 색의 가인이오 칭송해주던 내 정인, 증표로 내게 은가락지를 끼워주던 내 정인. 찬열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종인아. 너는 나를 끊어내려 얼마나 아팠을까, 등을 돌리던 네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찌 이리 야속한 짓을 저질렀어. 종인아. 너 없는 세상은 이미 나의 세상이 아닌 것을…. 찬열이 소리없이 눈물을 흘려냈다. 부여잡은 뭉그러진 심장 안의 수많은 고통들이 터져 시커먼 피고름이 철철 흘러내렸다. 찬열은 저를 깨우는 손길에 이끌려 반쯤 억지로 눈을 떴다. 여전히 표정은 초췌했고, 가슴에서는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가시질 않았 다. 찬열은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너무나도 아프다. 꼭 보름이다. 종인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삼아 차디찬 얼음덩이 안에 봉인당한 지가. 내밀어진 미음을 보던 찬열이 수저로 두어 번 휘휘 젓기만 하고 고개를 저어냈다. " 못 먹겠어. " - 그래도 조금이라도 드셔요, 곡기를 끊으시면 몸에도 안 좋은걸요. 수하인 삼족오三足烏의 재촉 아닌 재촉에 찬열은 억지로 미음을 삼켰다. 이미 천계에는 그가 감히 부친인 상의 자리를 빼앗으러 반란을 일으 켰다는 거짓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짝인 자신은 감히 반역자와 사통하여 역모를 꾸민 요귀妖鬼 취급을 받고 있다지. 찬열은 수 정구를 든 채 앙상하게 마른 제 손목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와중 들어온 존재에 가까스로 표정을 밝게 지어내려 노력했다. - 아버님. " 빈彬아. " 자신을 이을 차기 주작의 후계자이자 유일한 아들, 이제 겨우 서른 살이 넘었다. 죽은 아내가 남겨두고 간 어린 아들은 찬열에게 종인과 함 께 세상 단 둘뿐인 빛이었다. 다가온 아들을 침상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찬열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아버지, 그대로 안겨오는 아들을 토 닥이며 보듬던 찬열은 좀처럼 눈물이 없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잔뜩 울상인 아들의 표정을 의아하게 여기다 이어진 빈의 발언에 낯빛이 창백해지며 경악해야 했다. " 사람들이… 아버지께 요물이래요…. " " 선녀님들도 다 그래요.. 아버진 요물이 아닌데… " 손에 들린 수정구를 놓쳐버린 찬열의 표정이 황망했다. 그와 사랑한 것이, 이토록 죄가 되었나?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나며 깨지는 그것의 신세가 꼭 저와 같아서, 찬열은 어린 아들을 끌어안은 채 한없이 울어야 했다. 의아한 얼굴의 아이는 아직 한참 어렸다. 청룡 님은 어디 계시냐고, 그렇게 말을 한 선녀님들을 일러바쳐야 하는데 처소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 아무 곳에 도 안 계신다며 다시 울상이 된 아이를 보듬으면서도 찬열은 다시 제 심장이 찢겨지는 아픔에 몸부림쳐야 했다. - 네가 청룡이라며? 이제 백 살이나 먹었을까, 인간 나이로는 열셋 즈음의 한참이나 덜 여문 소년을 바라보며 웃었던 찬열 또한 그 시절에는 일찌감치 정혼한 약 혼녀를 뒤로 하면 부인도 자녀도 없던 청년이었다. 종인과의 첫 대면은, 순전히 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현무의 부탁을 받고 찾아온 자리였다. - 누구?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제게 돌을 던지고 도망치던 소년, 그렇게, 종인과 찬열은 꼬박 백 년을 사랑했다. 아아, 내가 사모했던 존재는 반역자도 아니고, 청룡도 아닌 오직 그였는데. 청룡, 이제는 반역자로 낙인찍힌 김종인. 어린 소년은 상이 태어나자마자 버린 자식이었다. 찬열은 멸滅의 상징인 흑주작黑朱雀이 되었다. 수정구를 깨트린 다음 날, 거울을 바라보자 제 머리색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이제 찬열은 명실공한 죄인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상은 찬열을 더욱 심하게 때리며 더럽혔고 점차 찬열은 시들 어갔다. 저가 흑주작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 싶어서였다. 내일은 종인의 처형식이고, 머지않아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다. 욱신거리는 가슴 한 켠을 부여잡은 채 그렇게 찬열은 그가 없는 스물아홉 째의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 찬열? 그때였다. 제 머릿속에서 울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눈을 반짝 떴다. - 형이야? - 나 황룡, 루한. 감시 때문에 많이 늦었어. 이건 그래도 안전할거야. 난 갖혀 있어. 넌? - 유폐됐어. - 목소리 많이 상했다. 종인이는 어떻게 된 건데? - 날 대신해서 봉인됐어, 상과 호각으로 싸웠지만 그가 날 인질로 잡는 바람에 내 목숨을 담보잡아 빙하 속에 갖혀 있어. - 상은 미쳤어. 예언을 받았지만 내 처소가 바로 봉인되어 버려서 못 갔어. 수호도 모두 갖혀 있어서 널 구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대. 미안해. - 괜찮아, 형. 다만…. - 다만? - 상은 형을 포함한 모두의 기억을 지우려 할거야. 나와 종인이가 죽고 난 다음에 말이지. - 그런 소리 하지마. -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돼. - ……. - 상한테 충성하는 척 해줘. 형만 아니라 모두 다 말이야. 그리고, 아이를 부탁해. 되도록이면 상처를 받더라도 빈이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줬으면 좋겠어. - 찬열.. - 이런 부탁해서 미안해, 하지만 내일은 종인이의 처형식이야. 그리고 곧.. 나도 그렇게 되겠지. - 정말 길이 이거밖에 없어? - 응, 지금 상태로는 모두 상을 이길 수 없어. 종인이도 나도 지금으로서는 능력을 모두 뺏겼어. - 이런 말 듣는 거 괴로워. - 알아, 미안해. 아, 그리고 내가 죽은 뒤 남은 영혼을 형이 거둬줬으면 좋겠어. - 그리고? -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환생을 할 때까지 형이 상 몰래 지켜봐줘. 그때는 종인이도 나도 이렇게 당하고 살지 않을 거야, 아마. 찬열이 답을 전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¹ 그악스럽다 - 보기에 사납고 모진 데가 있다.
천天 12년,
온갖 독한 결계가 쳐진 제 처소에 홀로 갖히다시피 한 찬열이 몸을 떨었다. 하루아침에 제 능력을 잃었고, 제 정체를 잃었고 저의 하나뿐인 정인을 잃었다. 찬열의 표정이 절망에 가득 물들었다. 찬열은 주작이었다. 여름을 관장하는 사신四神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것이 전부 과거 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추문에 휩싸여 그는 지금 반란을 꾸민 주모자와 사랑을 나눴다는 이유로 홀로 유폐되어 죄인이 되어 있었다. 미치도 록 괴로웠다. 현실이 괴로웠고, 그가 저의 곁에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미치도록,
- 심정이 어떠한가?
증오스럽다.
찬열은 대답 대신 다가온 사내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 … 차라리 죽이십시오. "
- 과연, 그놈이 탐낼만한 용태를 지녔구나.
" 이리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사느니 기꺼이 목숨을 끊겠습니다. 신을 소멸시키시지요. "
- 그럴 수야 있나.
상이 찬열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찬열의 두 초점이 정처없이 흔들렸다. 마음같아서는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에게 몸이 더럽 혀지고 비웃음거리가 되느니 죽는 것이 훨씬 나았다. 하지만 상은 치졸했다. 끝까지 찬열을 죽지 못하도록 모든 능력을 빼앗고 처소에는 결계를 쳤다. 아주 견고한 결계였기에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사랑한 것 치고는 너무나도 가혹한 대가였다.
" 죽여, 제발 죽이라고! "
- 차피 너는 짐의 계륵鷄肋이나, 욕정을 풀기 위한 도구로서의 쓸모는 있지.
천계서 제일가는 경국지색絶世佳人, 적어도 그 맛은 한번 보고 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찬열이 비명을 질렀다. 난생처음 허락하지 않은 타인의 손에 의해 반항하는 흰 몸뚱이가 맥없이 널부러졌다.
그가 떠난 지 닷새가 지났다. 이레가 지났고, 열흘이 지났다. 찬열은 점차 표정을 잃었다. 고통도 두려움도 괴로움도 조금씩 지워졌다. 단지 그 아름다운 얼굴 안에는 끝없는 절망과 슬픔이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 흐흐흐, 흐흐흐흐. "
괴악스런 웃음소리에 눈쌀을 찌푸린 상이 찬열에게 말했다.
- 정녕 미친 게로구나.
" 아니요. "
" 사는 것이, 그악스러워서¹. "
지독히도 그악스러워서, 그리하여 웃었습니다.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심부 안에 있을 무언가는 이미 잔뜩 문드러져 빛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그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 청룡이 그리운 것인가.
찬열의 답이 없자 상이 찬열의 따귀를 후려쳤다. 이미 잔뜩 피멍이 들고 상처가 난 뺨이었으나 당연스럽게도 사정을 보아주지 않았다.
- 과연 그놈처럼 천하구나.
꼴에 정인이라 똑같이 천해 빠졌어. 보거라, 네 그 정인이 지금 무슨 꼴을 하고 있는지. 다시 찬열의 뺨을 두어번 더 후려친 상이 이내 반항하는 몸뚱이를 질질 끌어 수정구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빛을 내는 수정구 안에는 차마 외 면하고픈 진실이 있었다. 차디찬 빙하 안에 갖혀 반쯤 죽어있는 청룡의 모습은 이미 산 사람의 몰골과는 거리가 멀었다. 괴로워하며 울부짖 는 찬열의 모습이 즐거운지 연신 웃어대던 상이 이내 자리를 떴다. 찬열은 반쯤 기다시피 하여 앞의 수정구를 품에 안았다. 걸을 힘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무슨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마냥 연신 가슴에 품었다. 가끔은 웃어주던 아름다운 내 정인, 내게 당신은 둘도 없을 천하절 색의 가인이오 칭송해주던 내 정인, 증표로 내게 은가락지를 끼워주던 내 정인. 찬열은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종인아. 너는 나를 끊어내려 얼마나 아팠을까, 등을 돌리던 네 뒷모습이 눈에 선했다.
어찌 이리 야속한 짓을 저질렀어. 종인아.
너 없는 세상은 이미 나의 세상이 아닌 것을….
찬열이 소리없이 눈물을 흘려냈다. 부여잡은 뭉그러진 심장 안의 수많은 고통들이 터져 시커먼 피고름이 철철 흘러내렸다.
찬열은 저를 깨우는 손길에 이끌려 반쯤 억지로 눈을 떴다. 여전히 표정은 초췌했고, 가슴에서는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 가시질 않았 다.
찬열은 제 가슴을 부여잡았다. 너무나도 아프다.
꼭 보름이다.
종인이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삼아 차디찬 얼음덩이 안에 봉인당한 지가.
내밀어진 미음을 보던 찬열이 수저로 두어 번 휘휘 젓기만 하고 고개를 저어냈다.
" 못 먹겠어. "
- 그래도 조금이라도 드셔요, 곡기를 끊으시면 몸에도 안 좋은걸요.
수하인 삼족오三足烏의 재촉 아닌 재촉에 찬열은 억지로 미음을 삼켰다. 이미 천계에는 그가 감히 부친인 상의 자리를 빼앗으러 반란을 일으 켰다는 거짓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그 짝인 자신은 감히 반역자와 사통하여 역모를 꾸민 요귀妖鬼 취급을 받고 있다지. 찬열은 수 정구를 든 채 앙상하게 마른 제 손목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와중 들어온 존재에 가까스로 표정을 밝게 지어내려 노력했다. -
아버님.
" 빈彬아. "
자신을 이을 차기 주작의 후계자이자 유일한 아들, 이제 겨우 서른 살이 넘었다. 죽은 아내가 남겨두고 간 어린 아들은 찬열에게 종인과 함 께 세상 단 둘뿐인 빛이었다. 다가온 아들을 침상에서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찬열은 스스로를 원망했다. 아버지, 그대로 안겨오는 아들을 토 닥이며 보듬던 찬열은 좀처럼 눈물이 없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잔뜩 울상인 아들의 표정을 의아하게 여기다 이어진 빈의 발언에 낯빛이 창백해지며 경악해야 했다.
" 사람들이… 아버지께 요물이래요…. "
" 선녀님들도 다 그래요.. 아버진 요물이 아닌데… "
손에 들린 수정구를 놓쳐버린 찬열의 표정이 황망했다. 그와 사랑한 것이, 이토록 죄가 되었나? 바닥으로 추락해 산산조각나며 깨지는 그것의 신세가 꼭 저와 같아서, 찬열은 어린 아들을 끌어안은 채 한없이 울어야 했다. 의아한 얼굴의 아이는 아직 한참 어렸다. 청룡 님은 어디 계시냐고, 그렇게 말을 한 선녀님들을 일러바쳐야 하는데 처소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 아무 곳에 도 안 계신다며 다시 울상이 된 아이를 보듬으면서도 찬열은 다시 제 심장이 찢겨지는 아픔에 몸부림쳐야 했다.
- 네가 청룡이라며?
이제 백 살이나 먹었을까, 인간 나이로는 열셋 즈음의 한참이나 덜 여문 소년을 바라보며 웃었던 찬열 또한 그 시절에는 일찌감치 정혼한 약 혼녀를 뒤로 하면 부인도 자녀도 없던 청년이었다. 종인과의 첫 대면은, 순전히 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현무의 부탁을 받고 찾아온 자리였다.
- 누구?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제게 돌을 던지고 도망치던 소년,
그렇게, 종인과 찬열은 꼬박 백 년을 사랑했다.
아아, 내가 사모했던 존재는 반역자도 아니고, 청룡도 아닌 오직 그였는데.
청룡, 이제는 반역자로 낙인찍힌 김종인.
어린 소년은 상이 태어나자마자 버린 자식이었다.
찬열은 멸滅의 상징인 흑주작黑朱雀이 되었다. 수정구를 깨트린 다음 날, 거울을 바라보자 제 머리색이 까맣게 변해 있었다. 이제 찬열은 명실공한 죄인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로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상은 찬열을 더욱 심하게 때리며 더럽혔고 점차 찬열은 시들 어갔다. 저가 흑주작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 싶어서였다. 내일은 종인의 처형식이고, 머지않아 자신도 그렇게 될 것이다. 욱신거리는 가슴 한 켠을 부여잡은 채 그렇게 찬열은 그가 없는 스물아홉 째의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 찬열?
그때였다. 제 머릿속에서 울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눈을 반짝 떴다.
- 형이야?
- 나 황룡, 루한. 감시 때문에 많이 늦었어. 이건 그래도 안전할거야. 난 갖혀 있어. 넌?
- 유폐됐어.
- 목소리 많이 상했다. 종인이는 어떻게 된 건데?
- 날 대신해서 봉인됐어, 상과 호각으로 싸웠지만 그가 날 인질로 잡는 바람에 내 목숨을 담보잡아 빙하 속에 갖혀 있어.
- 상은 미쳤어. 예언을 받았지만 내 처소가 바로 봉인되어 버려서 못 갔어. 수호도 모두 갖혀 있어서 널 구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대. 미안해.
- 괜찮아, 형. 다만….
- 다만? - 상은 형을 포함한 모두의 기억을 지우려 할거야. 나와 종인이가 죽고 난 다음에 말이지.
- 그런 소리 하지마.
-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돼.
- …….
- 상한테 충성하는 척 해줘. 형만 아니라 모두 다 말이야. 그리고, 아이를 부탁해. 되도록이면 상처를 받더라도 빈이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줬으면 좋겠어.
- 찬열..
- 이런 부탁해서 미안해, 하지만 내일은 종인이의 처형식이야. 그리고 곧.. 나도 그렇게 되겠지.
- 정말 길이 이거밖에 없어?
- 응, 지금 상태로는 모두 상을 이길 수 없어. 종인이도 나도 지금으로서는 능력을 모두 뺏겼어.
- 이런 말 듣는 거 괴로워.
- 알아, 미안해. 아, 그리고 내가 죽은 뒤 남은 영혼을 형이 거둬줬으면 좋겠어.
- 그리고?
-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환생을 할 때까지 형이 상 몰래 지켜봐줘.
그때는 종인이도 나도 이렇게 당하고 살지 않을 거야, 아마.
찬열이 답을 전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¹ 그악스럽다 - 보기에 사납고 모진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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