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꿈을 꾸는 소년이었다. 커서 멋진 음악인이 되어야지! 소년은 그를 동경했으며, 소년은 그래서 그를 따랐다. 소년은 제 아버지 옆에서 피아노를 치기 좋아했으며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소년이 날개를 채 펴기도 전에 소년의 날개는 꺾이고 말았다. 소년은 부러진 날개로 비상을 꿈꿨지만 소년에게 하늘은 이제 이상세계일뿐
소년은, 스스로 그 곳에 발을 디뎠다. 소년은 스스로 꿈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갔다. 소년이 향한 곳은 투토피아.
"우현아."
종현이 제 이름을 부르자 우현은 고개를 돌려 종현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가 요즘 왜이래..힘도 없고..제 부름에 고개를 돌린 우현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종현이 우현에게
물었다. 넌..김성규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냐? 뜻밖의 물음에 우현이 아무 말 못하자 종현이 성규의 것으로 추정되는 작곡노트를 집어 들며 웃었다. 김성규가 만약에..
죽지않았다면..? 마침내 우현은 종현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징그러운 것을 못 보는 종현이 얼마 전 성규 엄마의 부패된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아 잠시 정신이 나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현이 검지를 제 머리에 대고 돌렸다. 야, 민혁아..얘 오늘 좀 이상하지않아? 우현의 물음에 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 오늘 좀 많이 이상해요..어느 누구도
종현의 물음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아이고, 그래..! 네 친구가 잠깐 돌았다고 생각해라ㅡ"
종현이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며칠 성규에 대해 관심을 갖던 우현은 다시 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종현은 성규를 찾아 묻고싶었다. 왜 죽은 사람인 척 했느냐고. 그동안 왜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는지. 주민등록번호는 왜, 말소자가 되었는지. 그의 어머니가 성규를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한거라는 소문이 진실인지. 고민을 하다 성규의 집 앞으로
찾아가서 성규를 기다리면 성규는 끝끝내 나오지 않았고, 끈질기게 전화를 하면 집에 없는 척 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성규는 사람을 피했고 종현을 피했다.
만약 성규가 죽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성규의 인생은 행복했을까? 성규의 어머니가 성규를 입양 보냈었더라면 성규는 이런 삶을 살지 않아도 됐을텐데.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노래 연습이나 해~"
우현이 장난스럽게 종현의 목에 헤드락을 걸었다. 김종현 이거 요즘 봄이라고 많이 헤이해졌다? 금새 분위기를 바꿔놓는 우현에 종현이 황당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여튼
남우현 불리한 질문 요리조리 피해가기는~ 종현도 장난스럽게 그 질문을 넘겼다. 하지만, 우현도 어떻게 대답했을지 궁금했다. 김성규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소문처럼
외국으로 튀었을까? 아니면 정말 죽었으려나? 성규가 사라졌어도 성규를 따라다니는 말은 끝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종현이 사라졌다.
종현의 엄마가 아들의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그 전화를 우현과 호원도 받았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종현은 실종신고가 되었다. 그리고 우현은 종현이
없어지기 전, 종현이 한 말을 생각했다. 넌 김성규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냐? 그 물음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왜 하필 김성규와 아무 관련 없는 김종현이 그 말을 꺼냈을까.
우현이 교실에 들어오자 종현의 자리에는 흰 국화꽃이 놓여있었다. 우현이 그 국화꽃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다 그 국화꽃을 들어 꺾어버렸다. 김종현 아직 안 죽었어.
우현의 말에 한 녀석이 삐딱하게 받아쳤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우현이 말소리의 주인공인 그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앞에선 우현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넌..네가 아직 안 죽었는데 사람들이 죽었다고 처리하면 좋아?"
우현의 물음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김종현 아직 안 죽었어. 못 찾은 것 뿐이야. 우현의 말이 끝나자 그는 괜히 의자를 세게 집어넣어버리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우현도 그를 따라 나가버렸다. 종현의 빈자리는 예상 외로 컸다. 호원과 함께 종현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종현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위치추적도 해보고 뉴스에도
나갔지만 그 누구도 종현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도대체 넌 어디에 있는거니. 그 물음은 허공에 흩어졌다.
종현은 결국 그 부모도 모르게 교통사고 실종 처리가 되었다. 결국 종현도 찾지 못했다. 성규가 없어진지 몇 주만에 종현이 사라졌다.
그리고 괴담이 떠돌았다. 아무도 모르게 사람을 죽이는 신종범죄가 생겨났다고..하지만 피해자들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듯 해결책을 찾으려 할 뿐.
종현과 성규는 그저 불쌍한 피해자였다. 우현은 이질적인 세상에 치가 떨리기 시작했다. 제 힘으로라도 종현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성규도 찾고싶었다.
우현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윤호의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윤호 몰래, 윤호가 알면 아마 저를 때려 죽이려 할게 뻔하니까. 윤호의 할아버지와 긴 대화를 나눈 우현이
호원과 명수를 불렀다. 김종현 찾으러 가자. 명수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우현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호원은 우현에게 욕을 퍼부으며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현이 피식 웃으며 호원의 배에 주먹을 날렸다. 꼴에 할거면서 허세 부리기는ㅡ 우현이 학교를 나섰다.
그날 아침, 또 다른 실종자들이 생겼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이 셋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ㅡ선생님, 금방 돌아올게요. 선생님도 아실거에요, 윤호형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그 할아버지한테 물어서 종현이 찾으러 가는거에요. 이제 곧 저희도 실종자 처리가 되겠죠?
김종현도 김성규를 찾으러 간거겠죠? 선생님은 오지 마세요. 기차표가 다 떨어졌거든요.
"기차 온다."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옅은 파란색의 기차가 그들 앞에 섰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이 기차표를 받았다. 출발지가 없는 기차표. 소년이 그들을 기차에 태웠다. 더 이상
타는 사람이 없자 기차는 떠났다. 소년이 문 옆에 앉았다. 기차엔 노인들이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젊은 사람들도 있었다. 젊은 사람들은 비교적 밝은 표정이었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한 여자가 그들에게 물었다. 학생들도 살기 위해서 가는거야? 그녀의 물음은 뜬금없었지만 무리 중 호원이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친구를 찾으러 가요.
호원의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약에 살기 위해서 가는거라면..느낌이 다를텐데..그녀의 표정은 몽상에 젖은 듯 했다.
"넌 뭐야?"
소년이 물었다. 종현이 눈을 떴다. 종현이 누워 있는 곳은 민들레꽃이 피어 있는 풀밭이었다.
"넌 뭐냐고."
소년이 종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소년이 종현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소년이 웃음을 터트렸다.
"신기한 곳에서 왔네."
소년의 말에 종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소년이 다시 한번 물었다.
"너..말을 못해..?"
종현이 얼떨결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소년이 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반가워, 난 오찬양이라고 해.
"성규야.."
"...네.."
"어렵겠지만..엄마라고 불러주지 않겠니..?"
성규는 끝끝내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녀가 한숨을 한번 크게 쉬고 성규가 누워있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직 날 엄마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단다. 하지만..
넌 이제 천사야,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단다. 넌 아주 큰 잘못을 저질렀거든..성규야, 넌 이제 천사야. 성규의 손가락이 꿈틀거렸다. 성규의 손이 움직였다.
성규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규의 몸은 아직 뜨거웠다. 성규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참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엄마를 볼 수 있다면..
성규는 믿고있었다. 이 곳으로 오면 엄마를 볼 수 있을거야. 그녀는 성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규에게 엄마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곧 성규는 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테니까. 나비를 찾는 꿈에서 깨어나게 될 성규를 위해서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은
마음에 그녀는 조용히 성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했다. 기억해요..이 곳은 선택받은 세상이에요..노인은 알 수 없는 말만 남겼다. 신경쓰지말고 가자는 호원의 말에 우현이 기차에서 내렸다. 곧 기차가
떠났다. 기차역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어 따뜻했다. 선로 사이에 핀 풀꽃이 애처롭게 보였다. 우현이 선로에 가 그 꽃을 꺾었다. 다시 길 위로 올라온 우현이 꽃을 제 손에
쥐었다. 우현의 행동에 호원이 물었다. 꽃은 왜 가져왔어?
선로에 있으면 어느 순간 기차에 짖밟혀 죽을 것 같아서. 이 꽃..꼭…김성규 같아서..
아카페라 |
오찬양=지코 소년의 정체는 성규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