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per Junior-너같은 사람 또 없어(piano ver)
열병 번외
capricioso
-들뜬듯이, 변덕스럽게
written by. Thames
언제였을까,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날은 약간 쌀쌀한 봄날이었다. 아직 제대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난 조금 길어진 머리를 감고 캡모자로 푹 눌러쓰고 집 근처 편의점에 담배를 사러나가는 참이었다. 면도도 안하고 입술끼리 부딪히자 조금 자라난 까칠한 수염이 빨리 면도 좀 하라는듯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나오기 귀찮아서 담배를 보루로 사서 한갑을 뜯어 불을 붙이던 도중 멀리서 휘청휘청 거리는 애 하나가 걸어왔다. 아무리 쌀쌀하다지만 봄인데도 두꺼운 후드를 입고 밑에는 교복바지를 입고. 뭐지 하는 마음에 잠시 눈을 둔건 사실이지만 별 상관도 없었기 때문에 뒤를 돌아 집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도중 심하게 콜록이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 옷깃을 잡았다. 평소에 다른사람이 나의 몸에 손을 대는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한껏 미간을 찌푸리고 뒤를 돌아봤을때 아까 그 병약해보이던 아이가 옷깃을 꼭 쥐고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얘야, 무슨일이야?"
".........."
"일단 옷깃 좀 놔줄래?"
".......저..."
".........."
"가방에서...네블..라이저..좀꺼내주세요.."
네블, 뭐? 고개를 푹 숙이고 웅얼 거리는 꼬마에게 조금 짜증이 나서 담배를 피우던 손으로 고개를 잡고 들어올렸더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땀을 흘리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내 생각보다 훨씬 많이 아파보이는 모습에 놀라서 담배를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리고 편의점 테라스에 아이를 앉혔다. 가방에서 네블 뭐 꺼내면 된댔지? 대답못하겠어? 앉히자마자 눈을 감는 아이때문에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손까지 떨면서 가방을 뒤졌다. 가방 속에는 중1 영어교과서 2권과 물병, 그리고 원통형의 조그마한 스프레이 비슷한게 들어있었다. 다른건 다 내가 아는건데 이것만 모르는거니까 이거다싶어서 꺼내서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더니 들 힘도 없는지 눈을 아주 조금 떠서 그걸 계속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가 답답했다.
"얘야, 이거 필요한거 아니야? 형은 이거 어떻게 쓰는지 몰라."
".........."
"미쳐버리겠네 진짜."
".........."
뭐하는 애야 도대체, 갑자기 나타나서는 대답도 안하고 얘 자나? 뺨을 톡톡 두드려보았지만 이 사이로 으으-하는 신음소리만 낼 뿐 대답없는 아이가 너무 안쓰럽고 당황스러워서 휴대전화를 꺼내서 누군가의 핸드폰번호를 미친듯이 찾았다. 김준면, 김준면, 김준면 찾았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전화번호로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신호음이 3~4초 정도 지나자 항상 그랬듯 단정하고 정갈한 목소리가 대답했다. 여보세요-
"준면이형, 저예요 박찬열."
「어, 그래 찬열아 무슨 일이야?」
"형 죄송한데 지금 저희 집으로 좀 와주실수 있어요?"
「급한일이야? 나 지금 신사동이야. 금방 갈수는 있는데.」
"그럼 부탁드릴게요, 진짜 급해요. 죄송해요."
신사동이면, 바로 옆이네. 준면이형은 의대 졸업반이다. 경영학과인 나는 사람이 아프면 당황하지만 의학도는 침착하게 대처할수있을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으로 준면이형을 집으로 호출했다. 남은건 이 애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건데, 납치같은걸로 생각하진 않겠지, 의자에 축 늘어져서 앉아있던 아이를 안아들고 가방을 안쪽 어깨에 멨다. 되게 가볍네, 남자애 맞긴 하나. 길가를 걸어가는데 시선이 얼굴에 박히는게 느껴졌다. 그래, 설마 납치범으로 보겠어. 그냥 형이랑 동생 아니면 삼촌이랑 조카로 보겠지.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집 도어락에 카드를 긁어내렸다. 아주머니가 청소를 하시다가 내 모습을 보곤 놀라서 현관문 앞으로 달려오셨다. 내가 안아들고 온 아이는 누군지, 왜 안아들고왔는지 질문을 퍼부으시는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내 방 침대에 아이를 눕혔다. 아까 전보다 훨씬 안좋아져있는 안색때문에 내 심장이 다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하고있는걸까, 아, 더 아프면 안될텐데. 군대에서 굳었던 머리는 제 존재감을 표하듯 빠르게 돌아갔다. 얘 덕분에 굳었던 머리가 다시 돌아가네, 고맙다 눈물나게. 머리가 마치 지구 일곱바퀴는 돈 듯한것을 느낄때 길게 현관벨소리가 울렸다. 찬열아-
"형, 오셨어요? 죄송해요."
"으응, 아니야, 근데 왜 갑자기?"
"저도 잘모르겠어요 잠시만 이쪽으로 와주세요."
준면이형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오자 준면이형은 얼굴을 찌푸리며 침대머리맡에 붙어서 아이의 이마를 손으로 짚고 혹시 아이가 뭔가 가지고있지 않았냐고 물었다. 나는 재빨리 아이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스프레이 같이 생긴 물건을 보여줬고 형은 익숙하게 그걸 아이의 귀 뒤로 고정시키고 가방속에서 비닐팩에 들어있는 초록색액체와 플라스틱 병을 찾더니 이내 그것들을 연결시키고 버튼을 눌렀다. 형이 버튼을 누르기가 무섭게 아이의 코에 연결된 플라스틱 관에서는 허연 기체가 일기 시작했고 나는 그제서야 그게 산소인것을 깨달았다. 형은 아이의 가슴팍 부분을 꾹 누르며 아이의 기도를 열어 산소관을 확보했고 나는 그제서야 손에 힘이 풀리면서 조금씩 안도하기 시작했다. 2-3분 정도가 지나자 아이의 호흡은 규칙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형은 넥타이을 갑갑하다는듯 느슨하게 푼뒤 아이의 이마에 젖은 머리를 쓸어올려주며 물었다.
"누구야 얘는?"
"....저도 잘몰라요."
"뭐?"
"길가에서 갑자기 애가 이상해서 데리고 들어왔어요. 그거 사용법 몰라서 형한테 전화한거구요."
"박찬열 웬일이냐, 착한일을 다하고."
형은 기특하다는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도 애 취급이네. 나는 속으로 입을 비죽거리고 형에게 커피한잔 하실래요? 하고 주방으로 나가서 아주머니께 커피 2잔을 부탁드렸다. 낮은 잔에 부탁드려요. 그 말은 잊지않고 덧붙이며, 오랜만에 조우한 형에게 인사치레로 안부를 물었다. 요즘 어때요?
"나야, 인턴교육 받느라고 피곤하지."
"아, 근데 쟤 뭐예요, 많이 아픈것 같던데."
"내가 의사가 아니고 정밀진단을 해보질 못해서 자세한건 모르겠지만 네블라이져 들고 다니는걸 보니까 천식이 되게 심한거 같네. 애가 고생이야."
"네블 뭐요?"
"네블라이저. 천식이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들고다니면서 호흡하는 기계야. 천식있는 사람들은 집에 하나쯤은 다 가지고 있는데."
나는 내 부족한 의학상식을 깨닫고 고개를 어색하게 끄덕였다. 그래요, 몰랐네요. 형은 알아두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재빨리 커피를 비웠다. 나 이제 갈게, 약속있었거든. 내심 약속도 미루고 와준 형이 고마워서 나중에 밥산다는 얘기를 하고 바깥까지 배웅해주었다. 아주머니도 퇴근하시고 잊고있었던 아이에게 다가갔을땐 잠에 푹빠져있는듯 고른 숨을 내뱉는 아이가 보였다. 처음봤을때도 생각했지만 무척 피부가 하얗고, 머리는 갈색빛을 도는 검은색이었다. 입술은 색깔을 잃은듯했지만 제 색깔을 다시 찾는다면 아마도 그리 붉지 않은 예쁜 색깔일것같았다. 진짜 강아지같이 생겼네. 말랑말랑하게 생긴 볼을 만지작 대며 제대로 아이의 얼굴을 보려고 침대 머리맡에 앉아 아이의 얼굴 위로 시선을 고정시켰을때, 숱많은 속눈썹이 바들바들 떨렸다. 곧 눈이 떠지고 머리색과 비슷한 고동색을 눈동자가 초점을 맞추려는듯 두어번 깜박였다.
"얘야, "
".........."
정신이 하나도 없는듯 눈을 뜨고 시선이 마주친 나와 계속 바라보자 괜히 민망해져서는 헛기침을 했다. 그제서야 아이는 상황파악이 되는지 상체를 일으켜 오른손으로 플라스틱 관을 뽑았다. 외부공기가 유입되면 쇼크를 먹는다는것은 알기때문에 뽑은 관을 재빨리 손으로 연결해주며 외부공기를 조금 들이마신듯 휘청하는 아이의 상체를 의도치않게 품에 안았다. 본인도 당황스러웠는지 말을 하고싶은데 관때문에 말은 못하고, 답답했는지 아이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왜 울지, 내가 무섭나, 이거 납치 아닌데, 네가 갑자기 와서 뭐 꺼내달라며. 나는 상당히 당황한 모습으로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이름 뭐야, 아, 백현아, 그래. 형은 나쁜사람이 아니고,"
".....흐....읍..."
"되게 착한사람이거든, 그 호흡기 연결도 형이 아는 형불러서 해준거야. 울지 말아봐, 숨넘어가겠어 아가야."
"..........."
울지말라는 소리를 듣고 눈물을 손으로 훔치는 아이에게 안도감을 느끼고 고개를 들게했다. 젖은 눈동자가 마냥 새카맸다.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가 예뻤다. 미쳤구나 박찬열. 남자앤데 남자애한테 예쁘다는 생각도 다하고. 눈물로 젖은 아이의 눈가를 닦아주면서 교복와이셔츠에 붙은 명찰을 다시한번 읽었다. '변백현' 이름 예쁘네, 백현이.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담배사러 편의점에 나갔다가 네가 나한테 가방맡기고 쓰러진 얘기부터, 준면이형을 불러 호흡기를 연결해준 얘기까지. 아이는 좀 진정이 됐는지 연신 죄송하다고 옹알거렸다. 목소리가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았다. 보통 남자애들 변성기와 똑같았다. 갑자기 남의 집, 남의 침대에 누워있는것때문에 놀란 아이를 식탁에 앉혀놓고 아까 준면이형이 말해준 약과 죽을 앞에 놓아주었다. 이거 먹으래, 형이 직접 만든거야.
"아, 감사합니다."
"왜 그렇게 아파, 백현이는, 깜짝 놀랐잖아."
"....어렸을때부터 이래서, 괜찮아요."
익숙해졌다는듯 살짝 웃으며 수저를 드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린 아이한테 뭘 아프게할게 있다고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부모님은 애 이렇게 아픈데 혼자 돌아다니게 해도 되는건가. 솔직히 조금 놀랐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 본 이 아이는 나에게 자꾸 자신을 더 알아달라고,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더 가져달라고 말하는것 같아서 관심을 뗄래야 뗄수가 없었다. 원래 입이 짧은 편인지 죽을 반도 못비우고는 계속 깨작이는 아이의 앞에서 죽을 치우고 미지근한 물과 약을 다시 놓아주었다. 살짝 놀란듯한 아이의 표정이 이내 사그라들고 익숙하게 포장을 뜯더니 약을 입에 털어넣고 물을 쭈욱 들이켰다. 약이 좀 쓴듯 인상을 찌푸리다가 이내 가슴을 두드리며 진정을 하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예뻐해주고 싶다고. 처음봤는데, 예뻐해주고 싶다고.
"백현아, 아플때는 형 집에 놀러와도 돼. 형 거의 집에 있거든?"
"네?"
"그러니까, 앞으로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살짝 당황한듯한 아이의 표정에 재빨리 덧붙였다. 혹시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아, 겁먹고 안온다고 하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지만 아이는 이내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힘이 없어 보이는 아이를 아파트 단지 밖까지 배웅해주며 생각했다. 정말 예쁘다, 예뻐해주고 싶다고.
그게 첫만남이었다. 14살, 24살의 첫만남. 철없던 나의 20대 초반. 백현이를 만나서 조금씩 철이 들고, 우리의 첫만남은 그다지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특별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만남이기에, 아직까지 기억에 또렷하게 남는 첫만남. 그 뒤 2년을 쭉 그런식으로 만나다가 백현이 부모님의 해외지사로 인하여 동거를 시작하고, 그 뒤 2년을 지금같이 보내왔다.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거야. 영원하다는 약속은 못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예쁜사랑하자 백현아.
번외 1입니다, 급하게 써서 완전날려썼어요ㅠㅠㅠㅠㅠ
핡 댓글보면서 힘내고 있으니까 많이 써주시면 감사하고 암호닉!! 정해주세요, 그리고 신알신은 항상 감사하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