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맑음 때때로 흐림.
"오랜만이네."
"생각보다 오래걸렸어. 그치."
이른아침, 이슬이 촉촉하게 잎을 적셨을때쯤. 아무도없는 운동장에서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그때 그시간 그자리에서 서로를 마주한 우리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아무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ㅡ
"회사는 다닐만 하고?"
"응. 하고싶은거하니까. 너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끄덕. 10년전에도 있었던 분식점에 들려 항상먹던양만큼
시켜서 먹는둥 마는둥. 벽에 온통 낙서 자국인 이 분식점에서 우리의 흔적을
눈으로 찾으라 바빴다. 어,저깄다. 하고 찬열이가 손으로 가르친데는
아무도 못건드리게 천장에 유성매직으로 커다랗게 적어놓은
박찬열♡000.
분명 우리짓은 아니고 같이왔던 경수가 놀린답시고 적어놓은 거였다.
이놈은 아직도 찬열이와 내가 어쩌면 저가 놀린 바람처럼 될수도 있었다는걸
몰랐을거다. 무슨 큰 비밀이라고 꽁꽁 숨겨두던 거였으니까.
먹어. 하고 포크로 집어준 떡볶이를 받아먹자 진짜 그때 생각난다.
하고 피식 웃어버리는 찬열이였다.
그러게, 끝까지 철없는 고등학생일줄만 알았던 우리가 벌써
10년이나 지나서 1년후면 서른을 맞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한달 용돈모아서 놀러가고
영화도 보러가고
시험끝나고 노래방가서 몇시간을 죽치고있고
쉬는시간에 매점가서 왕창 사먹고
등교하고
하교하고.
이모든게 그때는 익숙했는데
이제는 모두 추억처럼 낯설기만하다.
하나부터 열가지 모두 너와 함께였는데
그때는 왜 나한테 솔직하지 못했을까.
놀러가던것도 영화보러가던것도
노래방 가던것도 매점 가는것도
등교하는것도 하교하는 것도
전부 너와 하던것들인데.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너한테 두근거리는 내맘도 모를정도로
난 너무 바보같았으니까.
"10년동안 대학갔다가..군대갔다 졸업하고.
회사 다니다가... 그냥 열심히 살았는데.
힘들때마다 많이 생각났어."
"나도. 많이 보고싶었어."
"10년이나 지났는데.
넌 여전하다."
"너 나보고 맨날 마귀할멈이라며 유치하게.
아직도그래?"
"아니. 그때도 예뻤고 지금도 예뻐."
마침 신호등이 바뀌어 내게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는 찬열이를
한참이나 쳐다봤다. 넌 10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하다.
이미 10년이나 지났는데 네 말 하나하나가 되게. 간질간질해.
이러면 안되는데. 차라리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
ㅡ
ㅡ
10년만에 보는 얼굴인데도.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다. 10년 전처럼 찬열아,
하고 달려와 나한테 폭 안겨올거 같은데 그러기엔 10년이라는 벽이
꽤 두텁게 자리하고있었던 모양이던지 조금 떨어져서 걷고 이야기하고.
헤어질때쯤이 되어서야 그때처럼 환하게 내게 웃어줬다.
이유없이 너만보면 기분좋고
네가 웃을때 내가 웃고
네가 울때 내가 위로해주고.
이모든게 너에대한 설렘이였단걸 왜 그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까.
내맘을 알아채지 못할정도로
난 너무 바보였다.
"그때도 예뻤고 지금도 예뻐."
날 뚫어져라 쳐다보기에 뭘봐. 하고 장난스레 던진말에 얼굴이 빨게져선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
어째 넌 서른이 다되가면서도 아직도 열아홉같을까.
깊숙이 자리한 서로에 대한 미련을
어떤거로도 메꿀수 없다는걸 잘 알기에
구석에 네 자리를 아주 크게 비워놓았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어른스러웠었더라면
지독하게 유치하게 시작된 우리 둘이
그렇게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낙엽 부서지듯
흩어지지는 않았을텐데.
우리는 그때 왜 그렇게 어렸을까.
내가 10년의 공백을 모조리 너로 채우는동안
너와 경수의 연애사를 간간히 들었고
얼마전에는 청첩장까지 받았는데.
널 놓아버린 내가 뭐그리 대수라고 눈물이 나는지.
다시 다가갈 용기조차 없었으면서 후회하는 내가 그냥 너무 미웠다.
아직도 날 보고서 얼굴이 붉어지는 네 손가락에 끼워진
경수와의 결혼반지가
그냥 너무. 미웠다.
만약 10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돌아선 널 뒤에서 꼭 안아줬을텐데.
이제서야
너 없이도 혼자서 널 생각하면서
맑고 흐렸던 내 10년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