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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어둡고, 새파랗고.


외로워.







그 애가 가르쳐 준 바다란, 그런 곳이었다.
















[워너원/하성운] 심해의 언어 上 | 인스티즈


심해의 언어


The Language of the Ocean-Depths


W.LIGHTER








그 애를 만난 건 바닷물이 넘실 거리고 있는 부둣가 그 근처에서였다.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게 싫었다. 딱히 크게 아픈 데가 있는 것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좋은 직장을 구했고 거기서 일한 돈으로 차곡차곡 쌓아둔 적금의 만기일도 머지 않았다. 금리가 높은 만큼 오랜 시간 열심히 모아두었던 건데. 내 발 밑에서 요동치는 파도를 보면서 떠오른 건 내가 죽고 나면 그 돈들은 다 누구에게로, 어디로 갈까 하는 것이었다. 나는 평이한 삶을 살아왔고 그다지 큰 굴곡을 겪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시때때로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은 아주 어릴 때부터 뇌를 잠식하곤 했는데. 구태여 이유를 찾자면, 




‘ㅇㅇ씨한테는 말을 하고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겠어요.’




그래서였을 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곤 짐작조차 하지 않았지만 막상 죽음을 코 앞에 두고 있자니 의사의 말이 아예 틀리다고는 부정을 하지 못했다. 태생부터 혼자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우리 고아원의 원장 선생님은 부모에게 버려진 나와 같은 아이들마저도. 태생이 있고 근원이 있으며 누구에게나 사랑 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스물 여덟의 인생을 살면서 그것들은 모조리 달콤한 거짓말이라는 걸 깨닫긴 했지만서도. 눈을 감고 있으면 바다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파도가 방파제와 돌무더기를 때리는 소리와 막힌 틈새에서 물이 요동치는 소리. 그 위로 나는 갈매기들의 소리. 다른 건 몰라도 이 곳이 내가 마지막이 되는 곳이라면 꽤 근사한 곳임은 틀림 없었다. 




발 한 발 자국이었다. 한 발만 더 내딛으면 끝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아등바등 하는 짓도. 한없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우울감을 몸소 겪는 것도 모조리 다 끝이었다. 근데 하필이면. 나처럼 살기 싫은 사람이 또 있었던 건지. 방파제들의 끝자락에서 반은 모래더미에, 또 반은 물에 빠져있는 사람이 보였다. 보지 않으면 되었다. 아니, 보아도 못 본 척 하면 될 일이었다. 어차피 나도 곧 저렇게 죽을 것인데 남의 죽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봤자 뭘 해. 그래, 무시하자. 무시하는 거야. 나 죽기도 바쁜 세상이야.




“아오, 진짜 짜증나!”




내 천성을 탓했다. 말로만 죽고 싶다고 했지 정작 죽음을 앞에 두고선 그만한 의지도 없었나보다. 씨발. 낮게 욕을 지껄이다가도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기 위해 뛰어내려가는 발걸음은 빨랐다. 이미 죽기 위해 다 벗어둔 신발을 우겨 신고선 냅다 달려가자 남자의 흉부가 움직이고 있었다. 코에 귀를 갖다대면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고 손 끝도 아직 따뜻했다. 아, 살아있구나. 괜스레 그의 생명을 앞에서 마주하니까 눈이 시큰거렸다. 주책이다, 정말.




우선 병원으로 데려가야 했다. 그리하려 했다. 119 번호를 누를 준비도 되었었다. 나중에 내가 그 쪽 생명의 은인이라고, 되도 않는 유세라도 떨어볼 요량이었다. 다만 그가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없는 지금같은 상황을 마주하기 전까진. 그의 상반신을 온 힘을 다해 끌어 올리자 물고기의 꼬리가 있었다. 사람의 다리는 없었고 대신 우리가 흔하게들 보는 인어 공주의 꼬리가 파도에 맞춰서 휩쓸리고 있었다. 이거 지느러미야? 그의 하반신을 만지는 손이 살풋 떨렸다. 이런 건 다 미신이라고 했는데. 동화책에서나 보던 걸 마주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더군다나 내가 죽을려고 했던 그 날의 그 때에.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를 왠 인어 한 마리를 발견했다고 하면 믿어줄 사람이 있을려나.




“으-.”




그리고 몸이 움직였다. 내 말이 들렸나. 귀에다 대고선 괜찮아요? 라고 소리를 쳤다. 뭔가 사람이 아닌 것 같긴 한데 위에는 또 사람 몸이니까. 말을 하면 알아는 듣겠지. 




“그니까 그 아직 신고는 안 했거든요. 이게 나도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고.”


“…….”


“우선 괜찮은 건 맞죠?”




아까 여기에-. 말이 맺기도 전에 반쯤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내 무릎으로 그의 고개가 떨어져 내렸다. 뭐야, 죽었어? 이 사람 죽은 거야. 지금? 순식간에 반쯤 얼이 나간 채 다시 그의 얼굴 가까이로 몸을 기울이자 그가 다시 눈을 떴다.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깜빡. 깜빡. 두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봤자 머지 않아 그 종착지는 나를 향해 있었지만. 까만 동공에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내가 비췄다. 살다 살다 내가 별 꼴을 다 당한다. 헛웃음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우선 눈은 떴으니까 산 거겠지 뭐.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가세요. 그가 저 지느러미를 가지고 어디로 갈 진 알지 못했으나 더 이상의 참견도 오지랖이었다. 사람 몸에 물고기 지느러미라니. 아마 예상컨데 내일 눈을 뜨면 난 오늘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꿈이구나, 하겠지. 지금 저 상황을 어떻게 믿어. 




“아, 우-.”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자 오른쪽 스웨터 소매가 끌어 당겨졌다. 뭐야. 




“헐.”




아까까지만 해도 지느러미로 되어 있던 게 사람 다리가 되었다. 그게 두 발을 딛고 나와 같이 모래를 밟고 서 있었다. 뭔 말을 하려는 지, 영 알아듣지 못할 신음소리만 내는 남자였지만서도. 분명 꿈을 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함부로 죽겠다고 해서 벌을 받는 거라면 이만하면 되었다. 현실과 전혀 동 떨어진 일을 마주하고 싶진 않았다. 그럴 용기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좀 전에도 무시하지 못해서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이번엔 확실히 무시하는 거야. 입술을 앙다물고 그의 손을 떼어내었다. 저는 바빠서. 살짝 고갤 숙이고 두 발자국을 움직였을까.




“…아!”




날 급하게 뒤따라오는 발소리 뒤로 쿵, 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이 앓는 소리와 울음도 들려왔고. 진짜 개버릇 남 못 준다고. 반사적으로 몸이 돌아섰다. 애초에 남을 무시할 수 있었으면 지금 이러고 있지도 않았겠지. 한숨이 턱 끝까지 밀려왔다. 덩치는 성인 남자면서 하는 짓은 어린 아이였다. 괜찮냐고 다가가서 묻자 그는 고개를 들어서 날 뚫어져라 보았다. 대답을 하듯 내 다리 한 쪽에 제 얼굴을 비비며 웃어보였다. 옛날, 내가 봐주었던 고아원의 동생들 같았다. 이 남자의 연령대를 파악하고자 하면 내가 아는 선에선 예닐곱의 아이들, 그게 최선이었더랬다.




살면서 여러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부딪히곤 한다. 뜻대로 살아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게 태반이었다. 죽겠다고 다짐을 한 건 벌써 십수년도 넘었고 오늘을 위해서 회사도 그만두었다. 어차피 죽는데 돈을 벌어서 뭐한다고. 괜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정작 살을 빼고 싶다고 생각했을 땐 빠지지도 않던 살이 오늘에서야 5키로가 빠졌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했으며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내가 처음으로 미친년처럼 바닷가를 헤집고 다녔었다. 그리고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 이 남자는 내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혹여 내가 아까처럼 저를 두고 갈까봐 걱정이 되는 지. 손에 힘을 주는 게 보통의 힘이 아니었다. 




처음엔 걷는 것도 버거운 남자가 날 따라서 발을 내딛고. 어디로 데려다줘야 할 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그 남자는 내 집 안에 있었다. 내가 몇 달 정도 휴식과 죽음을 위해서 빌린 별장이자 집에서. 그는 소파에 몸을 뉘인채 내가 자주 덮고 자는 담요를 몸 위에 얹은 채로 새근새근 아주 잘도 잤다. 내가 해주는 밥을 먹었고 씻는 것도 모르고 살았는지 샤워기의 물을 틀자 온 몸으로 신기한 내색을 띄었다. 내가 그를 형용할 수 있는 단어는 <인어>라는 게 전부였다. 그 인어는 물을 좋아했다. 씻으라고 했더니 욕조에서 하루 반나절을 잠을 잤다. 집에선 내 뒤를 밟고 다녔으며 온종일 날 보고, 날 따라하고, 내 옆에 있었다. 뜻하지 않은 나이에 객식구를 하나 들인 것마냥. 




“너 집으로 안 가?”




집. 집으로 안 가냐구.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하다. 어디서 천치바보를 데려왔다. 내가 데려온. 정확히는 날 따라온 인어는 바보였다. 아는 거라곤 글쎄. 인어들은 다 하나같이 잘생기고 예쁘다는 말이 실로 맞는 것처럼 잘생긴 제 얼굴만 아는 듯했다. 답답한 나머지 내가 몸을 돌려 침대에 눕자. 곧 날 따라 들어온 그는 제 얼굴을 가만히 침대 머리맡에 기댔다. 하얗고, 물기 어린 그 얼굴을 바라보고자 하면. 눈을 반쯤 휘어서 날 향해 웃고자 하면. 그게 꼭 어린 강아지 같아서 자꾸만 손이 그에게로 향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잘 자.




꼭 그렇게 말해주는 것처럼 그의 눈이 두어번 감았다가 떠졌다. 이제 모르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거라곤, 그저 이 모든 순간들이 있기까지 일주일이라는 것.




인어와 함께 한 지 이제 고작 일주일이 되었을 뿐이라는 것 밖엔.








*








벌써 한 달이 넘어서 두 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얼마 가지 않아서 그가 제가 살던 바다로, 아니면 더 먼 곳으로 갈 줄 알았다. 그래서 별장을 빌린 날을 연장하지 않았는데 그는 제 고향을 잊은 것처럼 굴었다. 어쩌다 보니 별장을 계약해버렸다. 내가 공들여 모은 적금과 예금들이 어디로 가나 했더니 결국 이 곳에 왔다. 




‘여기 근방 살기 좋아. 남편이랑 둘이서 사는 것도 나쁘진 않더라고.’


‘남편이요?’


‘아, 남편이 아니라 남자친구인가? 하여튼 좋은 가격에 내줄게.’




원래 심산은 별장을 조금만 더 빌릴려고 한 거였는데. 기간을 연장을 할 수 없냐고 했더니 조만간 이 별장은 팔고 다른 곳으로 가니 좋은 가격에 사라는 아주머니의 채근이 일었다. 그 사이에 나와 함께 있는 그는 남편이, 남친이 되어 있었더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로 다 떠날 거라던 본래 내 의도와는 달리 집이 생겼다. 집인지, 바다 앞에 있는 오두막인지 모를 집이. 이게 뭐람. 이럴 거면 서울에 있는 내 집도 그냥 전세기간을 더 늘려달라고 그럴 걸 그랬다. 졸지에 점점 내게서 생겨나는 무게감이 더 커지는 듯했다. 




“자, 따라해봐. 안녕하세요.”


“아녕하세요.”




그러기도 그러는 것이, 내가 지고 가야하는 무게들 중 이놈의 인어도 포함되어 있었다. 글을 가르치는 것까진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내가 답답해서 살 수가 없었다. 의사소통이라도 되면 좋으려만 단순한 것마저 일일이 행동으로 나타내야 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그래서 할 수 있는 한 어린이들이 배우는 한글 단어부터 천천히 가르쳤다. 자음과 모음, 글자, 그 글자가 이루고 있는 단어. 못내 그를 바보 같다고 미루어 짐작했거늘 나름 영리했다. 벌써 문장을 습득하는 걸 보면. 괜한 뿌듯함이 마음 속에서 피어 오르기도 했다. 




“나, 잘해써?”


“응?”


“잘해써어.”




내 손을 제 머리 위로 가져다 놓고 쓰다듬기를 종용했다. 칭찬해주세요, 이런 건가. 아이를 낳지도 키우지도 않았지만 이런 순간만큼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일곤 했다. 그의 세상에선 꼭 내가 전부인 것만 같았다. 글을 가르치고 내가 하자고 하는 걸 곧잘 따랐다. 그럼 그게 예뻐서 간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볼을 매만져주었다. 하얀 피부 위로 내 손이 닿을 때면 왠지 모르게 인간보다 좀 더 뜨거운 온도가 느껴졌다. 그가 나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나보다 한참은 큰 손이 내 손등을 덮고, 손바닥에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만져지면 그가 무엇이든, 어디서 왔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자꾸만 그런 것들이 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욕실이 큰 이 집을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아했다. 하루에 욕실에서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방 하나를 차지할만한 크기로 만들까 싶었는데. 그가 욕조에 들어가서 물 속에서 제 꼬리를 흔들고 절반이 훌쩍 넘는 시간을 그 안에서 있는 걸 보면 이제 와서는 저 무식하게 크기만 한 욕실이 나쁘지 않았다. 욕실의 주인이 생긴 셈이었다. 그가 내 삶에 들어온 첫 날에는 낯설기 그지없는 지느러미가 이젠 친숙했다. 오묘한 파란색을 띄는 게 그의 푸른색의 은발과 퍽 잘 어울렸다. 그가 욕조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도 자연스레 욕실에 자주 있게 되었다. 그러면 물결을 가르는 지느러미와 꼬리가 예뻐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알던 색, 질감과는 전혀 달라보이는 게 한 몫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성운아, 이제 그만 나와.”




그의 이름은 하성운이었다. <인어>는 하성운이 되었다. 내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예뻐, 라고 긍정의 뜻을 밝힌 걸 보면 그도 나쁘진 않았으리라. 수건과 가운을 들고선 욕실의 문을 열자 뿌연 수중기가 내 시야를 가로 막았다. 바로 앞에 있는 그가 내 바로 앞에 있었음에도 그와의 거리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대충 수건을 건네 주면서 뒤돌아 나갈려고 했을까 몸이 기울었다. 내가 진짜, 바닥에 물 뿌리지 말라고 했는데. 자칫 넘어질 것만 같은 기분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다치면 얜 누가 봐주지, 하는 그런 별 같잖은 기분까지 느끼면서. 그런 것들을 생각하기도 전에 날 안고 있는 그의 가슴팍이 눈에 들어왔지만.




“아파?”




날 걱정하는 목소리가 사뭇 인간 같았다. 아파, ㅇㅇ야? 그가 말을 한다곤 해도 아직까진 어눌한 발음이 남아 있었다. 인어의 세계에서는 이런 말들은 잘 안 쓰는 모양인지 받침이 들어가 있는 말들은 모조리 어려워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내 이름 석자, 하나는 또박또박 잘도 불러왔다.




“안 아파. 괜찮아.”


“응.”




내가 주춤거리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자 새하얀 김이 사라지고 그의 하얀 얼굴이 다가왔다. 그와 나의 관계는 잘 모르겠다. 그걸 정의하는 건 내겐 좀 어려운 일이었다. 인어를 만나는 것도, 그런 인어와 이렇게 사는 사람도 나 하나 뿐일텐데 이런 걸 어른들은 뭐라고 해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내 침실이라고 생각한 공간에 그가 서슴없이 들어오는 게. 이따금씩 그의 맨몸을 보고 살결이 맞닿아 있으면 관계라는 단어가 새로이 정립이 되질 못했다. 왜 나를 따라왔는지 모르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떠날지 모르는 그와.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나는 결코 친해질 수 없었다. 오늘은 이렇게 같이 있다가도 내일은 사라질 지도 모를 노릇인데.




“사랑해.”




이마 위로 가볍게 입술이 다가왔다. 여적 내 어깨를 두 손으로 붙잡고 있는 그의 손길만으로도 우리의 선은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 입술이 아주 느릿하게 떨어지며 귓볼을 매만지는 손이 부드러웠다. 그가 잘하는 말은 꽤나 단순했다. 내 이름만 부를 줄 안다고 여겼지만 내가 알려주지도 않은 말을 불현듯 꺼내는 그는, 하성운은 종 잡을 수 없는 부류였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와 같이 산다고 하는 내가 미친 걸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어라고 너무 간과하고 살았어.




“오, 옷이나 입고 나와.”




그의 가슴께로 가운과 수건을 던지다시피 주면서 뒤를 돌았다. 며칠 전만 해도 이 인어 한 마리랑 지내는 건, 물고기를 기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 나였는데. 도무지 뭔 생각으로 사랑한다, 라고 말을 하는지 알 겨를이 없는 하성운은 어리숙한 바보 인어. 물고기. 어류. 이렇듯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었다. 




“ㅇㅇ야?”




금세 나와서 등을 돌리고 있는 내 어깨 위로 또 자신의 얼굴을 들이미는 인어는 필시 바보인 척 하는 아주 영리한 놈일지 모르겠다. 내 머리카락과 쇄골 근처에서 고개를 한껏 파묻던 그는 또 곰의 탈을 쓴 여우처럼 웃었다. 정작 저 때문에 내가 어떤지는 하나도 모르고선. ㅇㅇ, 너 조아. 사랑해.




하루 빨리 죽어야겠다. 이건 내가 아니다. 정말 인어한테 홀리지 않는 이상.








*








곧 겨울이 올 것 같았다. 11월 30일. 얇은 옷만을 입고 나갈 순 없었다. 의도하지 않게 별장에 놓인 벽난로에 땔감을 구해다 놓기 시작했고 부지런히 먹을 것들을 사다가 모아두었다. 바닷가를 앞에 둔 이 곳은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꼼짝도 못한 채 갇히기 일수였으니까. 되게 신기한 것이. 살 의지가 없으면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숨을 내쉬는 것도 다 귀찮았다. 하루를 내내 굶어도 배고픈 것을 잘 몰랐다. 잠을 자지 못하면 그건 그것대로 괜찮았다. 죽어서 계속 잠을 잘 터이니 조금 더 눈을 뜨고 다닌다고 큰 일이 나진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정해놓은 내 죽음의 날짜가 점점 미루어지더니 이제는 하루 세끼를 다 챙겨먹기 시작했다. 그 원인 중 구할은 하성운 때문이었고.




“성운아.”


“응?”




이젠 인정해야만 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하성운, 그러니까 인어에게 의지를 하고 있었다. 모든 공간을 그와 함께 나누어 살다보니까 그가 없는 집은 상상하기조차 싫었다. 숱한 불면증을 달고 살던 나는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꼴로 잠을 청했다. 정신과에서 처방해준 수면제는 내성이 생겨 듣질 않았고 정말 피곤해서 골아 떨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내 부름에 하성운은 고개를 돌려 날 보았다. 그가 틀어둔 티비에선 옛날 흑백 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영화 재밌어? 침실로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어느 순간 그가 없는 것이 이토록 낯설기만 했는지 때는 알 수가 없었다.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웠다. 그가 내게로 다가오는 건. 스며드는 건. 




“왜 잠이 안 와?”




내가 그에게 심적으로든, 다른 것으로든 의지를 하기 시작할 즈음부터 그는 말을 더듬지 않았다. 올바른 말투로 내 말을 듣고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했다. 정신연령이라는 게 있다면 처음 만났을 땐 일곱살 터울로 보인 그가, 요근래 정말 내 친구 같았다. 대꾸를 하는 대신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불 빛이 모두 꺼진 어두운 거실에선 티비에서 나오는 희뿌연 빛이 유일했다. 침대도 아니었지만 내 어깨를 감싸오는 그의 팔에 눈이 무거워졌다.




“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


“괜찮아.”




그는 제 옆에 놓인 담요를 내게 덮어주었다. 너 영화 다 볼 때까지 기다릴 거야. 나의 말에 하성운의 웃음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뭐야, 왜 웃어? 그냥. 되게 아기 같아서. 그리고 무어라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그가 날 한 품에 안고선 침실의 문을 열었다.




“가서 자자. 재워줄게.”




내가 네 아이인줄 알아? 누가 누구한테 아기라고 그래. 마음 속에서 이렇듯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별 수가 없었다. 재워준다는 말이 썩 좋았다. 내 머리 위로 팔을 기대어 주고선 등을 토닥였다. 그가 나를 아이 취급한다는 게 어이없기도 했는데 또 그게 나쁘진 않았다. 혼자 있을 때는 좀처럼 잠을 자기 어려울 거라고 했던 것이 우습게도 눈꺼플이 쉬이 감겨왔다. 그에게선 바다 냄새가 났다. 그의 눈동자는 깊은 바닷속처럼 까맣고 깊었으며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유려했다. 심지어 날 재우는 이 몸짓 또한. 보통 보다 훨씬 높은 그의 품이 따뜻하기만 했다. 본능적으로 그의 품을 파고 들었다. 이러면 진짜 날 애라고 놀릴 게 분명한데.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가볍게 울리는 그의 맥박 소리가 안정적이었다.








*








그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나와 대화하는 걸 즐길 때쯤 불현듯 궁금해지는 것들이 많아졌다. 아니. 애초에 그를 바닷가에서 주울 때부터. 그가 내 집에서 살아가는 내내 궁금했다. 너는 어디에서 왔고 왜 쓰러져 있었어? 바다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 아, 마지막 질문은 좀 그렇다. 돌아가고 싶지 않냐니.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돌려 보내줄 생각이나 있고? 내가 그와 함께 있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데. 인어와 사람이, 더구나 사람이 인어의 옆에 있고 싶어한다는 게 가당키나 하련지. 그럼에도 난 하성운이 내 옆에서 오래 머물러 있길 바랐다. 처음 그에게 집에 가지 않냐고 물었던 걸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한정적인 시간일지언정 그게 조금이라도, 하루라도 더 이어지길 원했다.




가지 마. 말은 차마 하지 않았지만 요즘은 불안감이 수시로 날 엄습했다. 손에 쥐고 있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그에 대한 불안함도 점차 커진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불안한 이유는 하성운의 존재가 내게서 영역을 점점 넓혀가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알아내지 않으려 해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였나. 요즘은 말을 잘 하지 않았다. 그는 제가 말을 하는 게 꽤 신기한 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내게 모든 걸 얘기했다. 같이 나간 길에선 무엇을 보았고 오늘은 어떤 음식이 맛있었고 지금 기분이 어떤지. 세세하게도 말을 해왔다. 그러면 난 거기에 별다른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하고 말 뿐이었다. 혹여 내가 너와 말을 하다가 가지말라고 하면 어떡해. 내가 가진 이 같잖은 감정 때문에 그에게 부담감을 안겨주고 싶진 않았다. 




“나 안 돌아갈거야.”


“…어?”


“돌아갈 생각 없어. 여기가. ㅇㅇ, 네가 있는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야.”




그는 다 알고 있었다.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것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지. 성운이의 머리카락이 볼을 간지럽혔다. 날 내려다 보는 눈이 또다시 검게 일렁거렸다. 나에게도 약점이 많이 있듯이 그에게도 약점이라는 게 있는 걸까. 뭐가 그렇게 무서워. 그리 말을 했던 것도 같았는데. 모르겠다. 손가락 마디마다 입을 맞춰오는 그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가 눈을 올려서 나를 쳐다보는 순간, 귓가에선 거센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가 그립진 않아?”


“글쎄. 별로.”


“그래도 네가 있던 곳이잖아.”


“ㅇㅇ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님을 잘 알았다. 그의 지느러미가 욕조 안의 작은 물결을 가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꼬리가 헤엄쳐야 할 것은 이런 작고 인공적인 곳이 아니라,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심해라고. 온 몸으로 물을 느끼고 바닷속에서 있는 모든 생명체를 눈으로 마주하고. 그러면 여느 때든 그와 비슷한 인어와 함께 살 수 있진 않을까. 끝도 없이 밀려오는 생각에 생각은 결국 눈물로 끝이 났다. 그와 함께 헤엄을 치고 바다에서 살아가는 인어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내 처지가 하찮고 볼품 없어 보였다. 




“…나는 인간이고 싶어, ㅇㅇ야.”


“…….”


“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오래도록 인간으로 살고 싶어.”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마저도 부드러웠다. 그의 손바닥을 볼에 대고선 한참동안이나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을 들었다. 성운이의 목소리는 생각해보면 작은 소라 껍질에서 울리는 고동소리 같았다. 그다지 낮지도, 높지도 않은 일정한 음으로 노래를 하는 듯했다. 울림이 좋았다. 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너랑 멀어지고 싶지도 않아. 숨결이 코 끝에 닿았다. 새삼 그가 내게 사랑한다, 라고 말해온 어리숙하기만 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혹시나 내가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리해야만 한다면, 날 죽여줘.




이게 무슨 뜻인지 그 때는 몰랐다. 내가 저를 어떻게 죽이라고 그런 무서운 말을 했는 지. 꼭 나에게 제 목숨을 쥐어주는 것처럼 단호한 말 끝으로, 입술이 부딪혔다. 그에게 손목이 잡히고 온 몸으로 날 짓누르는 무게감이 실로 다가왔을 때서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한참을 물고선 놔주질 않는 입술 사이로 그의 작은 한숨이 스며들었다. 이미 얽히고 얽혀서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었다. 다리가 얽히고 목 근처에선 그가 갈망하는 소리가 맴돌았다. 이상한 밤이었다. 그가 오고나서부터는 이상한 기분만이 줄곧 이어졌다. 우리가 헤어지게 된다면, 그가 바다로 가야만 한다면 그 땐 꼭 자신의 목숨을 거둬가라고. 그러한 말을 하는 그에겐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해.




그가 내게 해준 바보 같은 말을 다시 되돌려주는 것 외엔. <인어>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어버린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었다. 










심해의 언어 


















[워너원/하성운] 심해의 언어 上 | 인스티즈

라이터입니다!



오늘도 단편을 들고 왔습니닿ㅎㅎ 심해의 언어는 다른 단편들과는 달리 상 하? 두 편? 아니면 상 중 하 세 편으로 연재가 될 것 같아요

예전부터 뭔가 꿈을 꾸는 듯한 이야기처럼 현실감은 없지만 또 자주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제 인어왕자님 성우니가 그걸 이뤄줬네요(은발 쵝오ㅠㅠㅠ


인어를 누구를 할 지 엄청 고민에 고민을 했는데 뭔가 정해놓고 보니까 하성운씨....찰떡이야ㅠㅠㅠㅠ흐뷰ㅠㅠㅠㅠ감덩



겨울이라는 주제로 뭔가 짧게 글을 쓰고 싶어서 잠을 포기하고 미친듯이 쓴 글인데 워낙에 충동적으로 나온 글이라 필력이 딸리거나 많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이써여....그래도 울 독자님들은 천사님들이니까 저를 감싸주실 거라고 믿을게요☆★


그리고 우리 워너원 또 대상 받은 거 너무 너무 축하한다ㅠㅠㅠㅠㅠ맨날 사족에다가 대상 축하 글을 쓰기를 바라면서


[워너원/하성운] 심해의 언어 上 | 인스티즈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음 편에서 또 만나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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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달린입니다 워......진짜 분위기 대박.....역시 쟈까님....쩌러.......짱짱💙🖤
5년 전
Lighter
달린님 이번 글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진짜 크리스마스니까 메리크리스마스 보내세요❤️
5년 전
독자2
나B입니다!
진짜..이 시간에 분위기 무엇..주제 무엇..너무 환상의 조합이잖아요?!?

5년 전
Lighter
나B님 늦은 시간에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ㅠㅠ 성운이 덕분에 환상의 조합을 이루었습니닿ㅎㅎㅎ 메리크리스마스 보내세여 울 독자님🎄
5년 전
독자3
저 진짜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연신 감탄만 나온다는 거 그거 작가님은 아시련지... 무려 또 성운이 글로 와주신 것도 모자라서 인어라뇨 ㅜ.ㅜ 생각지도 못 했는데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부디 좋은 결말이었음 좋으련만... 믿고 보는 작가님 글인지라 다음 편이 더더욱 기대되네요!
5년 전
Lighter
믿고 본다는 말이 이렇게나 좋을 줄은 몰랐네요ㅠㅠㅠㅠ 많이 부족한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도 열심히 써서 올게요 오늘은 크리스마스 날인데 메리메리크리스마스 보내세요🎄❤️
5년 전
독자4
99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왔죠ㅠㅠ 약간 깊이 있는 글들은 항상 시간을 넉넉잡고 분위기를 느끼면서 감정이입하는 타입이라 바쁜 현생이 여유로워질때까지 미루다 오랜만에 찾아왔어요ㅜㅜ 이제라도 작가님 글을 많이 읽고 또 댓글도 많이 남기겠습니다!! 오늘도 잘 읽었어요 진짜 작가님의 글에선 특유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데 그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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