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인이는 3학년이었고, 아무래도 임관이 가까워질수록 자잘한 훈련이 늘어났어. 1,2학년 때는 생도생활에 적응하고, 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면 3,4학년 때는 정말로 임관해서 장교가 되기 위한 기술을 익히는 과정? 그런 식이었지. 나도 생도생활 때 3,4학년이 제일 힘들었던 기억이 나. 실습에 시험에 지친 우리를 데리고 훈련까지 가던 잔인한 학교 커리큘럼때문에 다 때려치고 싶었을 정도로. 쨋든 종인이도 지금 그 과정에 서있었고 며칠 뒤에 있을 야전훈련때문에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바빴어. 나는 훈련 전체를 참여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가서 부상자들 봐주는 걸로 결정되어있었고 어김없이 일주일 동안은 종인이 얼굴도 볼 수 없게 된거지. 그렇게 종인이는 여느 때와 같이 씩씩하게 훈련을 떠났어. 휴대폰 사용도 못하고 편지를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연락은 두절될 수 밖에 없었고. 가끔 김민석한테서 오는 연락만 받았지. 사적인 이야기는 없었고 애들 훈련 도중 다친 걸 세세하게 보내주는게 다였어. [박찬열 생도 걸을 때마다 왼쪽다리가 불편하다고 합니다.] [김종인 생도 어깨가 많이 부었습니다. 냉찜질이 필요할 것 같은데.] [올 때 파스 좀 많이 가져와, 내가 가져온 건 다 떨어졌다.] 역시나 마이웨이 김민석 갈 수록 말이 짧아지더니 마지막 문자는 아예 쌩 반말로 보내버렸어. 이 것 말고도 김민석이 문자로 보낸 환자생도 파악해서 필요한 물품 준비하고 야전 구급차에 짐을 다 실었어. 운전병이랑 구급차 타고 3학년들이 훈련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어. 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김민석이 보였고, 이것저것 차에서 끌어내리는 걸 도와줬어. "길 험한데 멀미는?" "안했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뭘 이렇게 많이 챙겼어?" "이번 훈련이 유독 환자가 많던데요." 종인이 어깨까지 다치고. 뒷말은 꾹 눌러 삼켰지만 괜히 김민석 얼굴이 보기 싫었어. 따지고 보면 김민석 잘못도 아닌데 김민석이 유독 훈련을 독하게 시킨건가 싶은 어린애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내가 양손에 낑낑대고 구급함 들었더니 김민석이 재빨리 와서 자기가 두개를 다 드는거야. 김민석이 내 물건 이것저것 다 들어줬던게 습관이 되어서 그랬는지, 나도 자연스럽게 짐을 김민석한테 넘기고 김민석뒤를 따랐지. "왜, 종인이 다친게 나 때문 같아?" "아니, 무슨.." "허리도 안좋은데 어깨까지 다쳐서." "..." "괜히 내탓같지?" 소름돋을 정도로 핵심을 콕 파고드는 말에 가만히 입 다무니까 김민석이 푸스스 웃었어. 김민석도 많이 고생한건지 그 깔끔한 성격에 전투복이 엉망인거야. 원래 정복입을 때도 구김하나 없이 깔끔하게 챙겨입었던 사람이었거든. "찬열이 다리때문에 종인이가 도와주다가 무리했나봐, 심각한거 아냐." "아.." "부은 것도 찬열이 때문에 안거야." 아..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걸어서 도착한 곳에는 텐트가 일렬로 세워져있었어. 김민석이 가르키는 텐트 안으로 들어갔더니 찬열이는 이미 와있고, 종인이는 아직 안 온듯했어. "김소위님! 충성! " "어, 그래 찬열이 잘 있었어? 다리 다쳤다면서." "저 앞으로 고꾸라져서 발이 이렇게, 꺾였습니다!" 찬열이 전투복도 흙투성이에 지저분했는데, 발목 보겠다고 양말이랑 벗겼더니 방금 씻은 애처럼 깨끗한거야. "씻었어? 발이 왜이렇게 말끔해?" "김종인이 안 씻고가면 죽여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발만 씻었어?" 찬열이가 울상으로 종인이가 그랬어요, 하는데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터졌어. 찬열이 발목만 다친 줄 알았더니 무릎도 많이 상했길래 지금 할 수 있는건 응급조치밖에 없으니까, 파스도 뿌려주고 압박붕대로 칭칭 감아놨어. 대충 찬열이 끝내고 찬열이 다음 생도 봐주려고 하는데 텐트 문이 열리더니 살이 쭈욱 빠진 종인이가 들어왔어. 나보다 찬열이가 먼저 반갑게 인사했는데, "어 김종인!" "발은?" "씻었어!" "아니, 발 괜찮냐고." 김종인이 무덤덤하게 내뱉은 찬열이 발 걱정에 우리 찬열이, 감동받았다는 표정으로 종인아.. 이러는데 둘다 너무 귀여워서 주체할 수 없는 엄마미소가 피어올라. 대기하고 있는 줄에 종인이가 털썩 앉더니 옆으로 쪼르르 달려온 찬열이랑 뭐라뭐라 얘기하고 있었어. 사실 찬열이 혼자 얘기하고 종인이는 중간에 웃거나 맞장구 조금 쳐주는 정도? 그렇게 세명정도 봐주고 종인이 차례가 왔는데 종인이가 내 얼굴 보자마자 웃는거야. 눈까지 휘어지며 웃는데 종인이 몸조심 안했다고 화낼 수가 없어서 같이 웃었더니 김민석이 옆으로 와서 종인이 옷 벗는 걸 도와줬어. 그러면서 김민석 특유의 폭풍 잔소리가 시작됐지. "웃음이 나오냐. 어제까지 죽어가던게." "이제 좀 괜찮습니다." "내일부터 군장 더 무거워지니까 치료 제대로 받고, 오늘은 쉬어." "박찬열 생도 군장은.." "걔도 쉴거야." 어깨를 제대로 들 수가 없는지 옷도 혼자 못 벗는 지경이 된 거야. 김민석이 한바탕 잔소리를 하고 나서야 종인이의 퉁퉁 부은 어깨가 드러났는데, 겉으로 봐서는 그냥 조금 부은정도? 였거든. "팔 이렇게 들어봐, 못 들겠어?" "응." "야, 너.." 뻔히 김민석이 옆에 있는데 당당하게 응, 이라고 대답한 종인이때문에 내가 놀라서 고개 들어 쳐다봤더니 종인이는 하나도 당황하지 않은 얼굴인거야. 자연스레 김민석 눈치본다고 김민석을 쳐다봤는데 김민석이 종인이 발을 퍽 차는거야. "야, 왜 애 발을 차고 그래! 아, 아니 그러세요?, 그러십니까?" "말 꼬이고 난리났다." "종인이 군장 20짜리 맞아요? 혼자 더 많이 짊어진거 아냐?" "종인이는 40이었지." "왜?" "찬열이꺼 같이 드느라." 이게 뭔 소리야, 찬열이 군장을 종인이가 왜 매? 의아하게 종인이 쳐다봤더니 종인이가 또 슬금슬금 웃는거야. 얘, 자기 불리할 때만 웃는 버릇이 있는데. 내가 다그쳐 물었더니 그제야 입을 열어. "나 때문에 박찬열 다쳐서." "너 때문에?" "내가 박찬열 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걔도 넘어져서 다리 접지른거야." 이 답답이, 답답이. 찬열이 입장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로 군장을 짊어지고 갈 수도 없고 종인이는 또 저때문에 다친 찬열이가 다른애들 눈치보는게 싫어서 찬열이 군장까지 짊어진게 뻔했어. 거기서 어깨 아프다고 했다간, 찬열이가 미안해할게 당연하니까 아무소리 않고 두개 다 짊어지고 돌아왔겠지. 팔도 제대로 못드는 우리 종인이 어떡하나 싶어서 속상한 맘에 두손 놓고 종인이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 김민석이 종인이 짐이랑 이것저것 챙기더니 먼저 가겠다며 나가버렸어. 그렇게 그 텐트안에 종인이랑 나만 남게 됐지. "김종인, 웃지말고 나 봐." "왜 또 그런표정해." "너 훈련 가기 전에 안 다친다고 약속 했어, 안했어?" "다친거 아니야." "그럼 팔 들어봐." 내 말에 김종인 팔 들지도 못하고 머쓱하게 웃길래 또 맘이 아릿한거야. 얘네는 우리랑 달라서 진급도 많이해야하구, 그 진급마다 중요한게 체력측정인데 어깨랑 허리 둘다 안좋아지면 불리해지기 딱이잖아. "아, 진짜 속상해.." "오랜만에 봤는데 울상이야." "네가 그렇게 만든거잖아." "이제 조심할게, 약속." "뻥.." "오면서 멀미는 안했어?" 종인이의 마지막 질문에 순간 멍,해지는게. 아까 김민석이랑 똑같은 질문을 종인이가 한 거잖아. 그런데 그 느낌이 확 다르다고 해야하나, 김민석도 물론 나에게 몸에 밴 다정함으로 물었지만 종인이는 정말로 걱정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였거든. "누가 누굴 걱정해.. 살 빠진 거 봐, 김종인." "종인아." "뭐?" "김종인은, 딱딱하잖아." 내가 말 끝마다 종인아, 종인아. 이러는게 습관이었는데 오늘은 속상해서 김종인이라고 끝에 붙였더니 그게 싫었나봐 우리 종인이. 애교아닌 애교에 결국 또 웃어버렸는데 지금 시급한 건 종인이 어깨였잖아. 구급함에서 얼음찜질팩이랑 꺼내서 어깨에 얹어줬어. "종인아, 뒤 돌아봐. 어깨 뭉친 것 좀 풀게." "안 풀어도 돼." "너 지금 어깨 완전 돌이야, 돌." "뒤돌면, 얼굴 안보여." 하.. 진짜 이 맛에 연하를 만나는건가 싶을 정도로 씹덕터지는 이유를 갖다 붙인 종인이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도 울음도 아닌 표정을 하고 내 자신을 추스렀지. 결국 종인이가 원하는 대로 뒤 안돌고 어깨를 주물러줬는데, 목 뒤랑도 풀어줘야하니까 내가 일어서서 약간 종인이 안듯이 만져주고 있었어. 종인이는 앉아있고 나는 일어서서 목 뒤쪽 풀어주는 자세? 그랬는데 종인이가 내 어깨에 자기 얼굴을 턱 올리는거야. "으, 이것 봐. 김종인. 다 뭉쳤는데 아프지도 않아?" "아기가 만져주는 것 같다." "뭐야, 안시원하다고? "더 꽉꽉 해봐." 그러곤 종인이가 열심히 조물딱거리는 내 손을 붙잡더니 자기 목 뒤로 잡아 당겨. 덕분에 종인이쪽으로 주욱 딸려가서 휘청했는데 종인이가 휘청하는 걸 잡아주기는 커녕 자기 몸을 뒤로 주욱 빼버리는거야. "어..종인아?" 내가 당황해서 발끝으로 균형잡으려고 버둥거렸는데 종인이가 내 어깨에 턱 대고 있었다고 했잖아. 그 상태로 그냥 내 허리를 감싸 안았어. 그 와중에 나는 귀 쫑긋 세우고 누가 들어올까봐 당황타고 종인이는 그저 여유로웠지. "종인아, 너 옷 벗고 막 이러는거 아니야.." "아무렇지도 않던데, 넌." 그래, 아파서 웃통 시원하게 깐 애 보고 우리 종인이 몸 탄탄하네, 이런 못된 생각을 하기엔 양심이 없으니까..애써 나쁜생각 떨구고 있었는데 이렇게 도발해버리면 내 심장건강 누가 책임지나. "남자친구가.." "어?" "옷 벗고 코 앞에 있는데도," "..."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안하냐." "그거야..!나는, 직업..일이니까!" 종인아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너를 덮칠 순 없잖니?ㅇㅅㅇ? 어색하게 허허..웃어버렸더니 종인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나를 똑바로 세워줬어. 괜히 민망해서 눈 둘 곳을 모르고 종인이 머리카락만 매만졌어. "일하면서.. 어디까지 봤어." "으응..?" "일하면 다 보나?" "어, 어..다보지.." "..어디까지?" 어디까지 보긴 종인아..전부 다보지..군병원 실습 나가면서 이미 남자의 모든 걸 보고왔는걸. "..다." "전부..다?" "응.." "아..위험한데, 직업이.." 이 누나는, 종인이만할때 군병원 비뇨기과 실습도 다녀왔는걸요. 까지 얘기하면 종인이 식겁할게 뻔하니까 입 꾹 다물고 헤실헤실 웃었어. 그러다 장난기 발동해서 종인이 배를 손으로 스윽 훑었더니. "우리 종인이, 몸 탄탄했네요?" "야.." "누나 마음 설레게.." "무슨 누나야, 누나는." "종인아, 누나가 너보다 두살이나 많아요." 내가 단호한척하면서 소위 장교표정이라 불리는 입술 꾹 다물고 입꼬리 내리는 표정을 지었더니 종인이가 푸흐흐하고 웃는거야. 종인이 몸이 중독성이 있는지 한번 만지니까 계속 만지고 싶어져서 내가 계속 쪼물딱 댔거든. 막 등도 만지고 배도 만지고 어깨도 만지고. 그러는데 종인이가 손목을 턱 붙들었어. "종인이 몸 되게 쫀득쫀득하다, 운동 많이 했네 우리 종인이~" "이게..겁도 없이." "이게 막 손이 감기는, 그런거 알아? 예전에 김민석도.." 아, 뒤늦게 망할 내 입을 틀어막았지만 종인이의 두 귀가 멀쩡히 달려있는 이상, 못 들었을리가 없었지. 내 손목 단단하게 쥐고 있던 종인이 손에서 힘이 풀리더니 툭 하고 내 손이 떨어져버렸어.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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