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씨발아. 우리집 밥 니가 다 쳐먹는거 아냐?"
"뭐든 잘먹는게 내 매력포인트야."
같은 반 친구이자 불X친구인 김종인의 집, 밥통에 있던 찬밥을 모조리 긁어 국에 말아 먹으며 간단하게 대답했다. 쇼파에 늘어져 앉아 맘에 안든다는 표정으로 연신 나를 노려보는 김종인의 안색이 평소보다 더 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체하며 뻔뻔하게 밥을 한가득 푼 숟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날이었다. 완전히 열어놓은 거실 베란다 창문을 통해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쨍쨍하게 내리쬐는 붉은 햇볕이 서로의 우위를 다투며 우리를 더운 와중에도 시원하게, 어쩌면 시원한 와중에 덥게 만들고 있었다. '오늘 가장 큰보름달인 슈퍼문(super moon)이 돌아옵니다. 지난 2013년 6월 23일 이후 거의 1년만으로...', 아까 김종인이 집에 오자마자 틀어놓은 건지 뉴스 앵커의 말이 부엌 식탁에 앉아 밥먹고 있는 내게도 옅은 바람을 타고 흘리듯 간간히 들린다. 그런데 저 김종인 새낀 티비를 틀어놨으면 볼 것이지 쇼파에 누운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벌써 입을 살짝 벌리고 잠든 듯 했다. 존나 병신같다..속으로 생각을 삼키며 김종인에게 보내던 한심한 눈빛을 거두고 다시 밥먹는데에 집중했다. 집밥은 역시 김종인네가 짱이라고 생각하면서.
2014 엑소시스트 上
세훈은 뻔뻔하게 남의 집에 찾아와 점심을 먹고난 뒤 부른 배를 텅텅 두드리며, 낮잠자는 김종인을 등지고 한가롭게 티비를 보고 있었다. 볕이 따뜻해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꾸벅꾸벅 젖혀지며 잠이 쏟아졌다. 이게 과연 대한민국 고3의 주말이 맞는 건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한량처럼 살고 있는 세훈과 종인이다. 삑삑삑-하고 비밀번호를 눌러 문여는 소리에 세훈은 쏟아지던 잠이 팍 달아남과 동시에 고개를 번쩍 들어 소리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웃음을 머금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피부가 하얀 남자는 종인의 형 준면이었다. 세훈은 종인과 함께 자라왔던 터라 그의 형인 준면과도 친형제처럼 지내 친한 사이이다. 그러나 2년 전 준면이 집에서 먼 대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그 대학 근처로 자취를 하게 된 바람에 최근엔 도통 세훈과 만나지 못했다. 세훈은 오랜만에 보는 준면의 얼굴에 반가워 입가에 미소가 화하게 번지다 이내 손까지 들어 인사하며 말했다.
"준면이형!!"
"어, 세훈아. 오랜만이다. 너 전보다 키 더 큰 거 같다? "
"그럴리가. 이제 클만큼 다 컸는데..뭐 컸다니까 기분은 좋네."
"짜식... 아, 들어와요."
준면형은 그런 내가 귀엽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얄밉지 않게 흘겨보며 내 팔을 툭 치더니 열려있는 현관문 사이로 '들어와요.'라고 언뜻 말한다. 그리고 그 말에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들어오는 사람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우리 고등학교 남자애였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전에 학교에서 언뜻 마주쳤던게 기억이 났다. 혼자서 쟤 이름이 뭐더라...하고 고민하는데 그 남자애의 동그란 눈과 마주쳤다. 저 애도 내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걸 아는건지, 날보고 화들짝 놀라더니 그대로 뒤를 훽 돌아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
"아!!오빠 한다며!!!!진짜 여기까지 와서 왜 그러는데!!"
"...."
"...도경수?"
그 여자애는 남자애의 친동생인건지 찡찡대며 나가려는 도경수의 허리를 붙잡고 매달려 애원한다. 준면이형과 내가 그 모습을 뻘쭘하게 지켜보고 있는 사이 시끄러운 소리에 김종인이 깬건지. 잔뜩 졸린 눈을 하고 그 모습을 보며 제 머리 뒤를 벅벅 긁더니 '..도경수?'하고 말한다. 그리고 순간 정적이 일고, 남자는 제 동생의 품에서 기를 쓰고 나가려던 걸 멈추고 고개를 뒤로 돌려 우리들의 모습을 빤히 쳐다본다.
"하아..비밀지켜준다면서요."
"하하...내 동생이랑 아는 사이인지 몰랐네요. 미안."
너털웃음을 지으며 무안스럽다는듯 말하는 준면이형이 '그래서, 안할거예요?'하고 덧붙여 되묻자, 여전히 옆에 달라붙어 '오빠..한번만..?'하고 애원하는 여동생을 한번 흘긋 보더니 다시 한숨을 푹 내쉬고는 별 수 없다는듯 결국 터덜터덜 집안으로 들어오는 경수였다.
"...."
저들이 준면이형을 찾은 건 아마도 저것 때문인 것 같았다. 내 눈에도 선명히 보이는 도경수 등에 붙어있는 일렁이는 검은 것들. 내 눈이 이상한게 아니라면 저 검은 것들은 조금씩 도경수를 집어삼킬듯 커져가고 있는게 분명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도경수의 뒤를 보고 있는 와중에 허공에서 준면형의 시선과 마주치자 형이 쓰게 웃으며 '꽤 크지.'하고 입모양으로 말한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저기..우리 오빠랑 친구예요?"
"어.친구야."
"우와! 저 오빠 친구 처음봐요!! 이렇게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저는 경수오빠 동생 도경아예요.우리오빠 잘부탁해요."
도경수와 친구라는 김종인의 덤덤한 말에 싱글벙글 웃으며 명랑한 목소리로 싹싹하게 말하는 경아의 모습에 부끄럽다는 듯 도경수는 두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린다. '우리 오빠가 워낙 조용하고 소심해서요.'하고 덧붙이는 은근한 디스에 다들 풉하고 웃자 그제야 도경수가 벌개진 얼굴로 그만하라고 조용히 면박을 줬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오히려 친한 남매 같아 보이게 만들어, 그걸 보는 사람도 기분 좋아지게 만들었다. 아무튼 형제가 없는 내게는 부러운 모습이었다.
준면형이 손님들 대접할 과일을 준비하겠다며 부엌에 과일을 가지러 간 사이, 나는 멍하니 앉아 여전히 도경수의 등 뒤에서 넘실거리는 기분 나쁜 저것들을 쳐다보고 있고 도경수는 그런 나를 알 수 없는 경계의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성격좋은 김종인과 경아는 그새 친해져 투닥거리고 있었다.
"오빠! 오빠도 준면오빠처럼 귀신 뗄 수 있어요?"
"난 영안만 트였지 퇴마는 못해."
.
도경수와 도경아. 저 사이좋은 남매의 부모님은 외국에 나가 일하시느라 지난 2년동안 둘이서 지내왔다고 했다. 경아가 재잘재잘 떠들어 알아낸 바로는, 도경수는 부모님이 외국으로 떠난 이후부터 독특한 취미를 갖게 되었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오컬트 놀이라고 했다. 소의 생간이나, 사람의 머리카락, 피, 칼과 같은 오컬트 놀이의 준비물만 봐도 경아는 소름이 끼치는데도 불구하고 경수는 무서운지도 모르고 그것에 푹 빠져버렸다고 했다. 그리고 사건의 발단이 이것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오컬트 놀이를 해도 아무렇지 않게 잘 끝내왔건만, 바로 2주전 경수가 오컬트 놀이를 해 귀신을 불러내어 놓고 덜컹거리는 귀신소리에 순간 겁을 먹어 실수로 입에 머금고 있던 소금물을 꿀꺽 삼켰던게 화근이었다. 그 이후로 꿈을 꾸는데 이상한 긴머리의 여자가 나타나 도경수를 죽일 듯 노려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귀신과의 거리가 매일밤 차츰 차츰 가까워져 잠이 들면, 어느 순간엔 코 앞까지 그 여자가 와있을까봐 두려움에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 말에 도경수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보니, 정말 제대로 잠을 못자왔던건지 다크서클도 진했고 꽤나 수척한 모습이었다.
"오늘 잠에 들면 그 여자가 내 앞에 와있을 거 같아요."
"...."
"무서워요."
덤덤한 표정으로 무섭다고 말하는 도경수의 멍한 모습에 여동생은 울컥한듯 그렁그렁한 눈으로 잠시 자기 오빠를 쳐다보다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는다. 준면이형은 안쓰러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섣불리 움직이기 힘들어요. 보통내기가 아니거든요. 쉽사리 움직였다가 '그것'을 더 화나게 만들 수도 있어요."
"....."
"대신 부적을 줄게요. 오늘 잠옷 바지 주머니에 꼭 넣어놓고 자요. 귀신에게서 잠시라도 당신을 숨길 수 있는 부적이니까요."
도경수의 마른 손 위로 노란빛의 부적이 올려지고, 도경수는 그것을 조심스레 반으로 접어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정말 괜찮을까?"
"뭐가?"
"도경수 말이야."
준면이형의 친구 루한형까지 껴 남자 4명. 동그랗게 앉아 건전하게 치킨과 콜라를 먹고 있는 와중 내가 먼저 내뱉은 말이었다. 루한형은 도경수를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지는 못했기에 상태가 많이 심각하냐며 은근한 걱정을 내비친다. 그것도 그럴만한것이 내일 준면이형과 함께 퇴마의식을 같이 진행할 퇴마사가 루한형이니까. 나는 그냥 작개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루한형이 오늘 같이 있어줘야 했던 건 아닌지 걱정하자, 준면형도 자신의 생각이 짧았나하고 걱정되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그거 크기만 컸지.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 거 같으니까 내일 의식 치뤄도 괜찮을거야."
"그래?"
"그래. 치킨을 앞에 두고 맛떨어지게 그런 얘기나 하고 있냐. 이 사람들아."
다운되는 분위기에 종인이 부러 장난스레 면박을 주었다. 그에 긴장을 풀고 피실피실 웃으며 못본 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새벽 1시가 지나도록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하하하,하는 남자 넷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그리고 뎅뎅하고 괘종시계가 두번 웅장하게 울림과 동시에 어디선가 핸드폰 진동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리기 시작한다. 징징징-, 그 불길한 진동소리에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다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굳은채 가만히 있었다. 발신인, 도경아. 준면의 핸드폰이 쉴새없이 반짝거리며 울리고 있다. 준면형의 손이 주저하듯 멈칫거리더니, 곧 핸드폰을 잡아 통화버튼을 누른다.
"...여보세요?"
"오빠..오빠 우리집..우리집와줘요...제발요.....무서워요..제발...흐윽...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경아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렸다. 자신의 집일텐데도 목소리를 낮추고 저렇게 울음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하자, 준면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건지 '금방갈게. 좀만 참아.'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통화내용을 들은 우리는 다들 굳은 표정이었다. 준면형이 우리쪽을 한번 쓱 훑어보고, '빨리 가자.'하고 말했다.
그들의 집 앞에 도착하자, 현관 밖에 나와 쭈그려앉아 소리없이 눈물을 엉엉 쏟아내고있는 경아가 보였다. 다들 덤덤한 표정으로 서로 눈치를 보다, 실신 직전인 경아를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가려던 차였다. 경아가 부축하는 우리를 발작하듯 뿌리치고 오들오들 떨기 시작한것은.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집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경아를 보다못한 종인이 그녀를 다독이는동안, 준면형과 루한형 그리고 나는 조용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어두컴컴했고 그것이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를 은근하게 풍기게 만들었다. 준면형이 스위치를 찾아 거실불을 밝히자 보이는건 거실 끝, 그러니까 구석에 머리를 두고 죽은듯 누워있는 도경수였다. 우리가 그 근처에 갔음에도 꿈쩍도 않고 잠에 깊게 든 모습이었다. 외관상으로는 편안히 잠든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곳이 귀신들이 좋아한다는 방구석이라는 점과, 평소에 불면증에 시달려 잠들지 못한다는 사람이 이렇게 깊게 자고 있다는 사실만 몰랐다면 말이다.
"루한 준비됐어?"
무언가 일이 터질것만 같은 느낌에 두려움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 정도의 무서움이 나를 엄습했다. 준면형의 말이 끝나자마자 루한형이 어떤 부적을 꺼내 도경수의 배에 올려두었다. 그에 도경수의 속눈썹이 새가 알을 깨고 나온 첫순간의 그 떨림처럼 바르르 떨더니 곧이어 번쩍 떠졌다. 도경수의 눈은 촛점없이 눈 흰자위에 실핏줄들이 터져 붉은 빛을 띈 괴이한 모습이었다. 내가 그걸 보고 흠칫 놀라는 동안, 그 모습을 도경수 바로 위에서 똑바로 보고 있던 준면형은 무섭지도 않은지 "원하는게 뭐야."하고 묻는다. 잔뜩 갈라진 도경수의 입술 사이를 비집고 이상한 여자의 목소리가 까득거리며 새어나온다.
"..얘는...내..꺼야..."
"아니, 얘는 네것이 아니야. 놔줘."
"....."
"놔줘!"
도경수는 너의 것이 아니라는 말에 입을 굳게 닫고, 금방이라도 피눈물이 흐를것같은 눈으로 준면형을 노려보다가, 준면형의 "놔줘!"하는 큰소리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준면의 목을 조른다.
"건들지마!!!!"
도경수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결코 도경수가 아니었다. 젊은 여자의 한맺힌 외침이 방을 울리고, 컥컥대는 준면이 형의 숨넘어가는 소리에 나와 루한형이 도경수와 준면형을 떼내려 힘을 쓰는데도 그 아귀힘이 얼마나 센 건지 도통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루한형이 도경수 배에 붙여놓은 부적을 떼자 다시금 죽은듯 픽 쓰러지는 도경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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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특집 호러물...근데 안무서운거같애..ㅋ..ㅋㅋㅋㅋㅋ..안무서워서 죄송합니다...다음편은 최대한 무섭게 쓸게여 이거슨 꽃미남들이 퇴마하는 이야기.신난당~(_^▽^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