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추억속에는, 사랑속에는 |
자판소리와 빗소리가 뒤섞여 온 방안을 울렸다. 한 두어줄 써내려가다 금새 손을 멈추고는 마른세수를 했다. 일은 해야하는데, 영 손에 잡히질 않으니 죽을맛이었다. 괜히 김종인은 왜… 아냐, 다 내탓이지 뭐. 쓴 웃음과 함께 다시 또 자판소리가 들려왔다. 눈가가 촉촉해 지는것을 느꼈다. 울려고 그랬던건 아닌데, 눈물이 다 나네. 눈을 세게 감았다 뜨고는 기지개를 켰다. 피곤해서 그런걸꺼야. 노트북을 탁, 덮고 침대위에 엎어졌다. 땅을 세게 내리치는 비가 그 마음에 미친듯이 요동쳤다. 살며시 눈을감으니, 새까만 세계가 나를 맞이했다.
그때도 분명 비가 세차게 내렸었다. 비가 오는걸 참 좋아했다. 시원하게 들려오는 빗소리와, 시원한 물줄기. 그래서 그날도 어김없이 우산을 들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대문앞에 쪼그려 앉아 비가오는것을 구경했다. 우산없이 뛰어다니는 사람들, 다정하게 한 우산 아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 그리고 가만히 앉은 나를 쳐다보던 너. 한동안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만 있었다. 먼저 눈을 맞추었던것도 너였고, 먼저 눈을 피한것도 너였다. 아마 그때부터였던가?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우연히 너를 마주치고, 나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었다. 네 인사에 답하지 않고 계집애 마냥 부끄러운듯 웃어보이는게 전부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의 사랑은 낫지도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다. 그 상처가 덧나고, 덧나 전보다 훨 더 아프게 만들어버렸다. 이젠 그 아픔마저도 익숙해져 너에게 느끼는 모든 감정조차도 자각할 수 없었다. 너무나도 무뎌져서, 내가 품고있는 마음이 거짓이라 판별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상처들을 모조리 너에게로 되돌려주었다. 바보같은 너는, 아마도 그것들은 거부하지 않았던것으로 기억된다.
곧 한통의 전화가 걸려와 나의 마음에서 너를 빼앗아갔다. 사랑해서는 안돼, 그를 잊어야만 해.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앞으로 굉장히 힘들거야. 밥도 잘 못먹을것이고, 잠도 잘 못잘거야. 매일 밤 그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야 되며… 난 힘든게 싫어. 그를 잊을거야. 이기적인 나는, 그렇게 그를 잊기로 결심했다. 사람을 잊기란 참 어려운 일이었다. 힘든게 싫다며 그를 잊을것이라 해놓고 이제와 밥을 넘기지도 못하고, 잠을 자지도 못하고, 매일 밤 그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려댔다. 그에대한 내 감정을 쉽게 내팽개 치는 일이 밥을 못먹는것 보다, 잠을 못 자는것 보다, 우는 것 보다 힘들었다.
그를 떠나보내고, 텅 빈 내마음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시간만 나면 그를 추억했다. 어린날의 기억과 함께했던 벚꽃이 만개한 시간들. 그에게 일방적으로 고한 이별또한 마음에 걸려 언제든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를 위해, 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곳에서라도 그는 행복해야했다. 우리가 힘들었던, 그래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던 나날들은 이제 돌아 올 수 없다.
눈을 떠보니 나는 그 자리 그대로였다. 침대에 누워있던 그대로. 변한것은 없었다. 덮여있는 노트북과, 잔뜩 젖은 배게, 그리고 상처 난 내 마음 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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