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몽(自覺夢)
Baby J
오후 9시. 오늘도 난 역시 꿈을 꾸기 위해 일찍 잠을 청했다. 오직 꿈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그 사람을 위해서.
꿈속에 사는 사람을 좋아하게 된다는 게, 벌어질 수 없는 그 일이 나에게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 했다.
우연히 접한 루시드 드림. 즉, 자각몽 속에서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자각몽이란 내가 만들어내는 꿈이라고 들었기에 꿈속에선 연예인이든, 유명인을 마음껏 불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 또한 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저 평범한 사람이 불쑥 튀어나와 날 이 지경까지 만들어 버렸다.
꿈속에서 평생 살고 싶을 만큼, 그렇게 좋아하게….
자각몽을 꾸려 하는 이들에게 절대 권유하고 싶지 않다. 한두 번이면 상관없겠건만, 나처럼 이렇게 하루하루를 자각몽을 꾸기 위해 살아가는 멍청한 인간들이 더이상 생기지 않길 바란다.
꿈은 꿈이고 현실이 아니니까.
「 0.5 」
황량한 벌판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마음 한구석이 쓰려 왔다.
오늘은 어째서인지 이리도 황량한 벌판 위에 서 있는 것인지, 거친 모래벌판 위를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 그의 뒤에 가만히 서 바라만 보았다.
언제 이 꿈이 끝날지 모르지만, 그저 그렇게 가만히 그와 한 공간에 공존하고 싶었다.
아무런 물체도 없는 이곳에 그와 나 단둘이.
“왔으면 말을 하지.”
“……….”
“나 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어.”
“그럼 빨리 안아줘, 오늘은 바쁘니까.”
다른 흔한 연인들처럼 나를 대하는 그 사람을 보니 가슴 한켠이 울컥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아무리 우리 사이가 연인 사이라 해도 그와 난 비극으로 끝날 게 분명했기에.
현실에선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니, 볼 수 없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너무나도 가슴이 아린 일이었다.
바쁘다는 그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뒤에서 꼭 그를 끌어안았다.
항상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늘 최선을 다했고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이 꿈을 못 꿀까 봐 두려워서, 다시는 그를 못 볼까 봐.
“불안해 하지 마,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야.”
항상 불안에 떨었던 날 잘 아는 듯 내 손을 꼭 감싸 쥔 그가 나지막이 말을 뱉었다.
그의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희뿌연 연기로 점점 변해만 갔고, 난 오늘 역시 연기로 흩어지는 그의 형태를 넋을 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언제쯤, 도대체 언제쯤 그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으며 그와 마음 놓고 웃고 떠들 수 있을까.
꿈을 통해 나오는 그는 항상 변해만 갔다. 아니, 내가 변해갔다. 그가 하는 말을 못 듣거나 그를 만질 수 없거나.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끔찍한 현상들이 나에게 일어났다.
그랬기에 더욱그가 절실했고 더욱 현실에서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만나게 될 거야. 그가 남긴 여운이 남는 말 때문에 오늘도 난 편히 잠이 들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꼭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를 기다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