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1 괴리감
그 볼펜은 오빠가 자주 이용하는 볼펜이었다. 워낙 모나미 펜을 좋아해서,
다쓰면 또 사고, 또 사고. 아무튼 오빠와 동고동락을 하던 볼펜이었다.
그것을 잡고 사이코메트리를 발현했다.
내가 제발 과거시로 헛것을 본 것이길 바랬다. 아주 간절히.
내가 본 과거시는 예방의를 입고 있는 오빠의 모습이었다.
아주 잠깐 본 거라서 의사의 예방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분명 연구원의 예방의가 맞았다.
부정할 수 없게 내 기억이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증오해 마지않는 연구원들의 예방의를 입고 있는 오빠의 괴리감이란.
내가 사랑하는 오빠가 아닌 것 같고, 무서웠다.
눈을 감고 사이코메트리에 집중했다.
오빠는 지금, 연구소에 있다. 그곳은 내가 자주 들락날락 거리던 사이코메트리 특수방이었다.
3년이나 지났지만 아주 확실했다. 모든것이 그대로였으니까.
종인이가 나를 흔든다. 현실로 돌아오니 시야가 흐릿하다.
"왜 우는건데. 형이 왜?"
"종인아..어떡하지..?"
"형이랑 관련있는거야?"
"어떡하지.. 어떡해야되지..?"
"뭘 자꾸 어떡하냐고!! 답답하게 계속 그럴래?!!"
"오빠가 연구원인 것 같아.."
무언가를 말하려 벌어졌던 입이 꾹 닫혔다. 종인이의 꼭 깨문 입술이 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정확해? 확실해?"
"어. 그런 것 같아."
"언제부터?"
"오래된 것 같은데.."
"지금 형 어딨는데."
"안 알려줄래. 아니, 난 그냥 모른 척 할래."
문득 시선을 볼펜으로 돌리니 다른 과거시도 보였다.
손짓으로 수조에 담겨있는 물을 반으로 가르는 오빠. 도대체 얼마나 더 숨기고 있는 걸까?
알고 싶지 않다. 알수록 더 무서워진다. 염수력이었어..? 오빠도 초능력자인거야..?
"초능력을 가진 범죄자들한테는 약 복용하게 한다드라. 초능력억제제던가?"
문득 떠오른 백현이 말에 난 미친듯 오빠의 비타민 통을 찾아 헤매었다.
종인이가 당황하며 물었다.
"누나 왜그래? 또 뭐 봤냐?"
"오, 오빠 비타민 통 어디 있어?!"
"그거 형 방에, 있겠지."
오빠 방문을 열고 들어가 다시 비타민 통을 찾아 헤매었다.
오늘 아침에 급하게 먹고 갔는지 책상 위에 그대로 있었다.
"야 김종인 이거 먹어봐."
"뭐?"
비타민을 건네주니 받아먹는 종인이. 이내 표정을 찡그리며 말한다.
"이거 뭐야. 비타민이 원래 이런맛이야? 유통기한 지난 거 아냐?"
"능력 써봐."
".....안.. 돼. 안돼, 왜 안돼 이거!!?"
초능력억제제. 왜 그동안 이걸 먹고 있던거지? 그리고 이거 일반 약국같은 곳에서도 못 사는데,
오로지 수감소나 교도소에서만 쓰이는데.. 내 머리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질 않는다.
"가서 변백현 좀 데려.. 아니다. 가지마. 아, 어떡하지? 어떡할까 종인아?"
"뭔데 그래. 뭐가 더 있어?"
"아냐.. 아니야.. 없어."
"과거나 미래를 보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비밀이 많냐? 가족한테도 못 말해?"
"내가 잘 못 본거야. 그치? 난 과거시 D등급이니까."
"과거시는 F도 사실만 본다더라."
고개만 저으며 오빠 침대에 걸터앉았다. 내가 알던 오빠가 아니야.
연구소 욕하면 같이 욕해주고, 길길이 날뛰고, 나보다 더 연구소를 부시고 싶다던 오빠였잖아.
초능력만 생기면 연구소장 쓸어버리겠다고 오빠가 말했었잖아.
Ep. 52 결국 라면
밤중에 오빠가 들어왔다. 피곤함이 얼굴에 묻어나오고 있었지만 내 얼굴을 보고 환해졌다.
"우리징어. 안자고 뭐해? 오빠 기다렸구나?!"
종인이는 애가 다혈질이라서 미리 오세훈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툴툴거리며 신발을 신던 종인이가 귀찮다며 안 가겠다고 했지만 때려서라도 보내놨다.
검색해보니까 초능력억제제는 12시간 짜리라던데. 갑자기 종인이가 들어올 일은 없었다.
"일 다녀왔어? 상사가 안 갈구고?"
"당연하지! 오빠가 회사에서 얼마나 엘리트인데!ㅎㅎ"
"할 말 있어서 오빠 기다렸어."
"할 말? 뭔데? 뭘까.. 아! 남자친구는 눈에 흙이 들어와도 안돼!"
"그런거 아니야."
내가 진지하니 오빠도 슬슬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에 답답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냥 확 말해버리고 오빠의 변명이라도 듣고 싶은데,
만약.. 아주 만약에 다 밝혀진 내 오빠가 사라질까봐 두려워서 자꾸 말문이 막힌다.
"음, 지금 말하기 힘들면 오빠 옷 좀 갈아입고 와도 될까?"
"어? 어. 미안. 불편했겠다."
"아니야, 아니야. 금방 갈아입고 올게!"
"응."
오빠가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남겨진 나는 소파에 앉았다.
이게 다 망할 과거시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 망할 과거시때문에..
문이 열리고 편한옷으로 갈아입은 오빠가 나왔다.
근데, 오빠는 왜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책상위에 그걸 올려놨던걸까..?
이정도 비밀이면 어딘가에 꽁꽁 감춰놨어야지. 왜 나한테 들키는 건데. 내 능력도 뻔히 알면서..
"무슨말하려고 했어?"
"어? 아, 음.. 배고파서 라면을 끓일까 하는데 오빠도 먹을래?"
"응..? 아 뭐야, 진지해서 오빠 놀랐었잖아. 배고팠어? 진작 말하지. 오빠가 끓여줄게! 조금만 기다려!"
밝게 말한 오빠가 부엌으로 향한다.
오빠가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것이 얼마나 더 많을지 가늠이 안된다.
서서히 밝혀질수록 오빠에 대한 의구심만 생길 뿐이었다.
왜 우리에게 초능력자라는 것을 숨긴것이며, 왜 연구원이고,
하다못해 진짜 내 오빠가 맞는지 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난 의심들과 의문들은 오빠의 라면먹자라는 말에 흩어졌다.
그래. 모른 척 하자. 아는 척 해봤자 서로 얼굴만 붉어질 뿐 이득이 없을거야. 그렇겠지.
Ep. 53 딴생각
종인이가 아침에 들어오고 오빠가 혼내려는 거 세훈이 핑계대며 말렸다.
학교갈 준비를 마치고 나를 보는 종인이를 끌고 나왔다.
"뭐냐? 안 말했어?"
"어.."
"내가 말할거야. 놔봐."
"아, 좀! 그냥 가자."
"약해 빠졌냐. 그거 하나 못말해?"
"어. 약해빠져서 그래."
"누나한테는 나도 있잖아. 형만 있냐?"
"너는 내가 책임져야 할 동생이고. 나는 오빠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동생이고. 난 아직 미성년자고. 됐냐?"
"...짜증나."
바로 교실로 공간이동한 김종인은 찬바람을 쌩쌩 풍기며 자리로 갔다.
"누나!!!"
화르륵 날아온 불덩이가 내 눈앞에서 꺼졌다.
나도 놀라고 날 보고 있던 경수랑 찬열이도 놀라고 하다못해 쏜 타오도 놀랐다.
놀랐을 애들을 진정시키려 더 과하게 반응해주었다.
"깜짝 서프라이즈 짱인데!?"
"그..그치? 하하핳ㅎ 내가 잘 가르쳤다고ㅋㅋㅋㅋ"
"뭔일있었어?"
전기구이가 물었고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고 있는 우리는 각자 자리로 갔다.
남겨진 전기구이의 찡찡거림은 브금수준.
그냥, 계속 딴생각을 했다.
경수가 지구를 쪼갤 수 있을까?
찬열이가 용암에서 수영할 수 있을까?
종인이가 우주로 공간이동 할 수 있을까?
종대가 세계의 모든 전기를 없앨 수 있을까?
뭐 이런생각들. 그냥 오빠생각 빼고 모든 생각을 다 했다.
"김징어. 징어야. 징어?"
"네?"
날 애타게 부르는 쌤을 바라보았다. 칠판에는 수학문제가 적혀 있었다. 하필 수학이야..
"징어야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럼 나와서 풀어볼래요?"
"아뇨."
"나와요."
"네."
쭈볏쭈볏 앞으로 나가니 분필이 둥둥떠서 내 앞으로 온다.
그것을 잡고 수학문제를 바라보았다. 초록색은 칠판이요 하얀색은 분필이니..
일단 아는 곳까지만 식을 딱 쓰고 쌤을 보았다. 더 하라는 눈치이다.
아이.. 모르는데..
"모르겠습니다."
"솔직한 답변 좋네요. 가서 앉아요."
"네."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번엔 수업에 과다 집중을 했다. 쌤이 날보고 흠칫 놀랄정도로.
Ep. 54 노력가
그날 과거시반. 학생들은 여전히 정겨웠다.
내가 딴생각을 못 할 정도로 아주 즐겁게 해주었다.
"그래서 염수력 맥시멈이..!"
왜 하필 얘기가 염수력 맥시멈으로 간건지.. 진짜 하필 염수력..
"앉아. 종쳤어. 어유, 징어 오니까 아주 소란스러워졌어, 조용하던 애들이."
"ㅋㅋㅋㅋㅋㅋ징어언니 좋아요."
"나도 너 좋아.ㅎㅎㅎ"
나의 말에 꺄르르 웃는 아이. 그래, 그 나이때엔 낙엽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는다더구나.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늙은 사람같네..
"징어 연습 좀 해 봤어?"
"해보긴 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음. 내가 항상 해주는 말이 있는데. 유체이탈이라고 알아?"
"네."
"과거시가 그거랑 비슷해. 너의 몸은 이곳에 있는데 영혼은 과거로 간다고 생각하면 되거든.
그니까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 뿐만 아니라 영혼도 놓을 정도로 멍한 정신상태여야 된다는 거야."
무슨 말일까..? 나의 영혼만 과거여행시키라는 건가..? 이걸 잘 할 수 있게 되면 내가 원할때만 보이는 건가?
오, 그럼 진짜 열심히 연습 해야겠다.
"가령 예를 들자면. 이것을 바라볼때 우리 AA등급인 네모는 바로 과거시가 가능해.
멍한 정신과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게 빠르다는 거지. 그니까 그것만 연습하면 C등급은 걱정 없을거야.
저기 C등급인 세모도 등급이 오를 수 있다는 연구소의 결과 발표 후 이틀만에 등급이 오른 케이스거든."
희망이있다. 죽어라 연습하면 될것이다.
죽어라 연습하고 수업으로 이론들으면 아마 평생 과거시때문에 고통받는 일은 없을것이다.
그날부터 난 죽어라 연습했다. 쌤이 말씀하신 것을 메모까지 하면서.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빠나 종인이도 놀란 듯 내가 연습중이면 건들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오빠는 감격이라며 가끔 과일을 깎아다 건네주었고 종인이는 예상외로 오빠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는 단란해 보였지만 각자 느끼고 있을 것이다.
전에 없던 이질감을.
Ep. 55 김준면
(준면시점)
옷 갈아입는단 핑계로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나 다를까 책상위에 있는 약.
아침에 나갈때와 다른 위치에 있었다. 징어가 과거에 대한 초능력이 있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바보 같이 여기에 두고 갔냐.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그것을 원래 두던 곳에 감췄다. 그냥 들춰 본 것일 수도 있겠지.
그럴리가 있나. 멘붕이다, 진짜. 밖으로 나가면 징어가 무슨 말을 할까.
그 여린아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밖으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서 인상을 찡그린채 무언가를 고민하던 표정이
내가 말함과 함께 누그러졌다.
"무슨말하려고 했어?"
"어? 아, 음.. 배고파서 라면을 끓일까 하는데 오빠도 먹을래?"
"응..? 아 뭐야, 진지해서 오빠 놀랐었잖아. 배고팠어? 진작 말하지. 오빠가 끓여줄게! 조금만 기다려!"
일부러 더 밝게 말하며 부엌으로 갔다. 내 딴에는 안심하라는 표현이었는데,
징어가 어떻게 받아드릴지는..
내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우선 우리 남매의 엄마와 아빠는 일반인이었으며 각광받는 연구원이었다.
내가 어릴때부터 그런 연구자료를 많이 접해서인지 나도 연구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던것 같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난 염수력 AA등급의 능력치를 가진 초능력자다. 그러나 조절을 못해 D등급으로 판정받았다.
집중력이 안 좋은 것도,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내 능력이 강력한 것에 비해
조절을 못해 항상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연구자료에 매진 했던 것 같다.
뭐, 부모님이 연구원이라 초능력억제제를 줘서 사건은 멎었지만 난 거의 초능력이 없는 채로 살아가게 되었다.
엄마가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시고 그 충격으로 아빠가 집을 나가니,
나에게는 동생 2명이 남겨지게 되었다. 그때 당시 내 나이는 겨우 13살이었다.
7살인 징어와 6살인 종인이. 종인이는 이때 맥시멈인것이 판정(태어날때부터 맥시멈이었지만 티가 안나서 몰랐었다)
나서 정부지원금이 있으니 먹고 사는 것엔 지장이 없었지만,
"엄마 보고 시퍼.."
"엄마, 백밤 세면 올거야 종인아."
이렇게 엄마나 아빠를 찾으면 진짜 난감했다.
한참 부모님이 필요할 나이에 능력조절을 못해 약을 먹는 내 밑에서 자라고 있고.
그렇게 어린 동생들을 키우면서 일찍 철이 든 탓에 이 아이들을 내가 지켜야 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없던 부정도 생기고. 내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 진짜 내 자식같고, 동생의 감정보단 아들딸의 감정이고.
연구소에 들어가게 된 것은 내 약 때문이었다.
범죄에 악용될까봐 일반 약국에선 판매금지고 그나마 있는 곳이 교도소나 연구소인데
교도소에서 경찰이 먹는 것은 불법이므로 자연스럽게 내 능력 조절도 연구할겸 연구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아, 정확히 연구소에 들어가게 된 계기도 있는데 그건 아직 말할 타이밍이 아닌것 같다. 정말로 이것까지 알게된다면
징어랑 종인이가 나를 진짜 싫어하게 될까봐..
실망이다, 더해서 역겹다는 표정으로 나를 볼까봐.. 그게 무섭다.
징어와 종인이에게 미움을 받는 다면 진짜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일 것이다.
.....으으 |
+으어어어유ㅠㅠㅠㅠㅠㅠㅠㅠ 오늘은 능력남용답지 않게 슬펐네여ㅠㅠㅠㅠㅠ 여러분이 간절히 원하시던 준면이의 초능력은.. 조절을 못해 감출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ㅠㅠㅠ
++암호닉입니다♥ 체리/안녕/모카/매매/경수하트/엑소영/구금/정동이/뭉구/규야/바닐라라떼/세젤빛/탄비/슈웹스/죽지마/치노/ 성장통/두부/캐서린/해바라기/코끼리/강우/워너비/샘물이/스젤졸/삼지창/단해나/변맥현 빠..빠뜨린 분.. 없겠죠...? 확인하긴 했는데...암호닉 신청 좋아옇ㅎ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