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를 좀 멀리 갔단 말야
그러니까 다른 지역이 아닌, 원래 살던 동에서 정 반대인 곳으로.
그래서 배정받은 고등학교에는 아는 애가 다섯 손가락에 꼽았었어
막 가서 왕따되는건 아닌가 하고 엄청나게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됐지.
그 날도 여느때와 같이 일찍 일어나서 집을 나서서 버스를 탔는데, 자리가 없는 거야
원래 내가 타는 곳이 좀 앞 쪽이라서 아무리 사람이 있어도 내 자리정도는 남아있었는데...또륵...
어쩔 수 없이 서서 가다가 딱 한 자리가 남아서 냉큼 거기에 딱 앉았지
핸드폰에 이어폰 꼽고 노래 들으면서 창 밖을 계속 멍하니 의미없이 쳐다보고 있었는데 내 자리 앞으로 어떤 남자가 와서 위에 손잡이를 잡는거야
그냥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딱 고개를 돌렸는데 우리 학교 교복인거야...ㅋㅋ
사실 버스에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 학생들이거든, 근데 그 사람들도 똑같은 시간에 가니까 주말 빼고 맨날 보는거야.. 그래서 어느정도 얼굴을 익히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 교복입은 학생은 없었어서 되게 신기했었엌ㅋㅋㅋ
그러다가 고개를 돌리려는데 눈이 딱 마주쳤어
근데 겁나 무섭게 쳐다보는거야... 그래서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바로 고개 돌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다시 창 밖을 쳐다봤어ㅋㅋㅋㅋㅋㅋ
그러다 그 남자애도 자리가 났는지 없더라고.. 우리 학교 근처 정류장이 종점에 가까워서 도착 할 때 쯤이면 거의 텅텅 비거든
몇 분 후에 정류장 앞에 멈추고 내가 먼저 후다닥 내리고 걸어가다 뒤를 살짝 보니 그 남자애도 휘적휘적 걸어오고 있더라고..
막 걔가 핸드폰을 보면서 걸어오는데 아까는 몰랐었는데 좀 잘생긴거야.. 쌍커풀도 진하고..ㅎㅎ...다리도 길고..ㅋㅋㅋ
그렇지만 아까의 그 무서운 표정이 강하게 자리잡아서인지 오래 쳐다보진 못하고 그냥 바로 교문을 통과하곤 교실로 올라갔어
교실에는 평소와 같이 박찬열이 있었어 아 얘는 고등학교 올라와서 처음 친해진 애 였어
걔도 집이 멀어서 엄마 차를 타고 통학하거든 나보다 20분은 더 멀어ㅋㅋ
얘가 워낙 친화력도 좋고 서글서글해서 처음에 몇 마디 나누다가 바로 친해졌어
막 남자라서 불편하거나 이런거 없이 그냥 동성친구같음ㅋㅋㅋㅋㅋ그래서 내가 가끔 박찬순이라고도 불렄ㅋㅋㅋ
"왔냐"
"야 나 버스 타고 오는데 우리 학교 교복 봄"
"아 진짜? 남자?"
"엉 근데 완전 무서워..."
"왜 뭐가"
"자리 없어서 걔가 내 앞에 섰거든? 근데 어쩌다 눈이 마주쳤는데 진짜 완전 살벌하게 쳐다봤어.."
"ㅋㅋㅋㅋㅋ미친ㅋㅋㅋㅋㅋ니가 못생겨서 그랬나 보네"
"닥쳐 아 진짜 쫄아서 겁나 아무렇지 않은 척 함ㅠㅠㅠㅠㅠ걔 키도 엄청 커가지고 더 무서웠어"
"나보다 큼?ㅋ"
"아 맞다 니도 키 컸짘ㅋㅋㅋ 걍 삐까뜸"
"잘생김?"
"뭘 그렇게 물어봐대냨ㅋㅋㅋ 응 솔직히 좀 생김 근데 그것보다 그냥 무서워 약간 까무잡잡함"
"야 나 걔 누군 지 알 것 같아"
"뭔 개소리야"
"아 진짜로 니가 까무잡잡하다매 키도 나랑 비슷하고"
"그런 애가 한두명이냐"
"ㄴㄴ 성격까지 똑같은 듯 걔 진짜 존나 무뚝뚝함"
"헐 진짜로..?"
"엉 9반"
현실 당황ㅋㅋㅋㅋㅋㅋㅋㅋㅋ박찬열이 아는 애였다니..
박찬열이 사람을 한번 보면 안잊어서 우리 학년 애들은 거의 꿰다싶이 하고 있거든?
그래서 아까도 속으로 좀 설마설마 했었는데 진짜였다니..나는 진짜 처음 보는 애였거든
"친해?"
"응 초중고 다 같이 나옴"
"뭐 그런게 다 있냐"
친하긴 얼마나 친하겠어 하고 생각했는데 초중고를 다 같이 나왔다니... 엄청 신기했엌ㅋㅋㅋㅋ
"그러게 근데 걔 원래 자전거 타거나 아니면 걸어오거나 그러는데 웬일로 버스를 탔대 집도 가까우면서"
그러다가 나도 사물함에서 시간표에 맞게 교과서들을 딱 가져와서 책상서랍에 넣어놓곤 어제 못했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
그때까지만 해도 얘랑 이런 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