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조팝나무입니다!
이건 텍본에 들어갈 번외 중 하나인데요.
텍본에만 넣으려고 했었는데 음..
텍본을 정리하다가 글잡에 글을 아예 안남기고 있는게 조금 마음에 걸려서 ㅎㅎ..
이렇게 올리게 되네요!
성종이의 하루인데 태민이가 깨알 등장하고 있네요 흐흐흐흐
성종이를 그냥 큐피드 역할로만 제한시키기는 뭔가 아까워서 흐흐흐흐
항상 제 소설을 재밌게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리구요!
그리고 여러분 사랑함미다!!!
BGM은 제가 이미 여러번 올렸던 바이준 - 통조림이에요.
개인적으로 생김에 가장 알맞는 브금이라고 생각하구 있슴미다.
오늘도 즐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제게 예쁜 표지들을 선물해주신 꽁기 그대 다시 한번 감사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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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의 선율이 흐르는 동시에 눈을 번쩍 뜬 성종은 여느 때 처럼 커튼을 열어제치고 밖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실만큼 찬란한 햇살들이 그의 기상을 축복하며 꺄르륵 거리는 소리가 성종의 귓가에 울렸다. 안녕? 너희들은 여전하구나. 여전히 아름다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혹자가 그랬듯이 세상 만물은 항상 변화를 경험하고 있건만 너희는 변함 없이 그대로구나. 무슨 아침마다 통과의례라도 되는지 따끔거리는 눈가를 검지 손가락으로 훔쳐낸 성종은 흡 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 그런거야. 시간이 흐르면 이렇게 젊고 아름다웠던 나도 빛을 잃고 쇄약해지겠지. 그렇지.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지. 나는 주름이라는 이름의 세월의 흔적을 지닌 할아버지가 될꺼야. 하지만 성종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마저도 곱기 그지 없을 게 분명했다. 바로 지금의 나처럼. 한 떨기의 코스모스 같은 할아버지가 되겠지. 또르르... 흡... 어디가 대체 눈물을 흘릴 포인트인지 십중팔구는 알지 못할게 분명하건만 성종의 눈매는 어느새 다시 촉촉해지고 있었다. 아, 별들아. 미치겠다. 오늘도 여김없이 꼭두새벽부터 별들을 부르짖는 점성술사 꿈나무 성종이었다.
감상에 흠뻑 젖어 (저에게만) 바람직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성종의 귓가에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 형이었다. 나대지 말라니.. 입에 밥이나 쑤셔넣으라니.. 용모는 매우 단정한 주제에 열기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상스러운 소리만 내뱉는 저 입을 매우 세게 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성종은 애써 은은한 미소만을 얼굴에 띄운 채 대꾸했다. 형이나 쑤셔넣어요. 우심방 좌심방의 위치를 바꿔주는 수고를 하기 전에. 그러자 성열이 금방이라도 좋은 아침! 하고 인사할 것 같은 해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하하! 우리 성종이, 아침부터 기분 잡치게 하는 실력이 날로 일취월장 하는구나!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 없었으나 서로 웃음꽃을 활짝 피운 채 이야기 하는 그 모습은 겉으로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우애를 나누는 형제로 보일 뿐이었다. 온 가족이 유일하게 한 자리에 모이는 시간, 즐거운 아침 식사 시간에도 성종은 제가 고고한 한 마리의 학이라도 되는거 마냥 도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의젓한 사촌 동생 대열의 옆에서 밥풀을 이리저리 튀겨대며 조잘거리고 있는 성열은 상대적으로 비교 되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뭐라고 해야되지? 굉장히.. 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들과 비슷한 아우라를 풍기는 듯한.. 성종이 가족이 정말 재밌게 봤던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나오는 집현전을 방자전으로 잘못 말하는 실수를 저지르고도 방실방실 웃고 있는 제 형을 바라보며 성종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저런 인간을 데려가는 사람은 대체 누가 될까? 아마 그 사람은 전생에 대역죄라도 짓고 능지처참이라도 당했나 보다. 불쌍한 사람.. 별들아, 아직은 그 분의 관등성명도 모르는 나이지만, 진심으로 축복을 빌어주고 싶어졌어. 그 비극적인 인생에.. 더욱 반.짝.거.려.줘.
물리 선생님은 잠을 부르는 주술이라도 외우는 것일까? 수면제보다도 더욱 확실한 효과를 자랑하는 그의 능력에 성종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안돼, 성종아. 정신 차려! 이러다가 너 거렁뱅이가 되어 지리산 산기슭에서 나물을 캐다가 네잎 클로버를 찾는걸 낙으로 살아가게 될꺼야! 그러기는 정말 싫었는지 바로 돌아온 정신을 가다듬으며 성종은 제 옆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는 짝꿍을 바라보았다. 전교 1등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곧게 펴진 등이 정말 의젓해보였다. 태민아, 나 쉬는 시간에 필기 좀 보여줄 수 있니? 내가 레몬 사탕 줄게. 선생님 말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태민이 그런 성종이의 작은 목소리를 들을리는 없었고, 본의 아니게 말을 우적우적 씹혀버린 성종이 무안해져 괜시리 책장을 이리저리 넘겨보았다. 이런, 내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이태민의 고막에 도달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작았단 말인가? 상당히 알맞은 소리로 발성을 낸 것 같은데. 희안하네. 그래도 명색이 무한남고 마성의 이성종인데 자신이 무참히 개무시 당하는 현장을 본 목격자가 있는지를 눈을 돌려 확인한 이 17살의 감성 소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칠판에 고개를 고정시켰다. 아니, 고정시키려 했지만 공식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자신의 노트 위에 쓰여진 낯선 문체에 시선을 빼앗겼다. 잘못 보면 프린트 한 것 같이 정갈하고 작은 글씨를 멀뚱멀뚱 쳐다보던 성종의 표정이 삭힌 홍어를 연속으로 4개를 먹은 것 처럼 썩어들어갔다. [ㄴㄴ, 레몬 사탕 너나 쳐드셈.] 또박또박한 모양새와는 다르게 굉장히 유아틱한 내용이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들 만도 못한 버러지놈이 내 말을 들었으면서도 그랬다는거 아니야, 이거? 약간 모자랄 수 있지만 조금은 전지전능한 나, 이성종한테 저런 식으로 굴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그램은 바로 이런 걸 제보하라고 존재하는게 아닐까? 금방이라도 레이저 총을 발사할 것 처럼 성종이 태민의 옆태를 있는 힘껏 야려보았지만, 상대는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제가 원한다면 안구 기증이라도 해줄 것 같았던 그동안 스쳐지나갔던 짝꿍들과는 확연히 다른 태민의 태도에 답답함이 쓰나미로 밀려오는 느낌을 받은 성종이 가슴을 팡팡 내리쳤다. 두고 봐라, 니가 저절로 이 마성종을 위해 신체 포기 각서를 쓰는 날이 올 것이다. Coming soon. 뭐랄까, 무심한 듯 시크한 이 모범생 소년은 17년의 인생을 귀족처럼 떠받듬만 받아오던 성종에게는 아주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충 수업이 끝나는 종이 치자마자 빛의 속도로 가방을 챙긴 성종이 100m 달리기 수행평가라도 하고 있는 것 처럼 열심히 발을 놀려 교문을 통과했다. 평소에는 먼지가 묻지 않을까, 혹시 지나가다가 새똥이라도 맞지 않을까 따위와 같은 쓰잘데기 없는 변수에 대한 걱정으로 조신한 걸음걸이만을 고집하던 성종이 앞머리가 흉하게 휘날리고 있는데도 신경을 1g 조차 쓰지 않는 그 희안한 광경을 목격한 1학년 학생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저씨, 잠깐만요!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성규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이후 처음으로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달리기를 하던 성종이 막 떠나려고 하던 버스를 겨우 잡고 숨을 고르며 계단 위를 올랐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매로 톡톡 닦아낸 성종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버스 맨 뒷자리에 앉..으려 했지만 그 옆자리에 떡 하니 앉아있는 달갑지 않은 한 인영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국민학생 말투를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고등학생 따위와 온기를 나누며 오순도순 있고 싶진 않은데.. 오늘 하루 기분 좋은 햇살로 시작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늘이 노하시기라도 했나 보다. 거짓말처럼 그 자리만 빼고 꽉꽉 차있는 버스 좌석들을 망연자실한 얼굴로 둘러보던 성종이 한숨을 푹푹 내쉬며 태민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안녕, 태민아?"
"니 존나 이쁘다고."
믿을 수 없다. 자신을 막 대하는건 둘째 치고, 또라이 4인방 공식 초딩 이성열도 안쓰는 미성숙한 언어를 사용하는 태민의 작태에 멘탈에 2배로 충격을 받은 성종이 닭살이 돋은 제 팔을 문질렀다. 저런게 바로 말로만 듣던 '초글링'이라는거구나. 성종이 초등학생 알레르기라도 있는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람이라는 생물은 역시 겉으로만 평가해서는 아니 된다. 옛 선조들이 입술이 부르트도록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오늘도 새로운 깨달음을 경건한 태도로 마음 속 깊숙이 새긴 성종은 바로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반대편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자신도 그 '겉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되는 생물체'에 속한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채로.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발을 놀리던 성종이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저 꼴도 보기 싫은 놈팽이는 왜 자신을 따라오고 있는지 영문도 한글도 한문도 모르겠다. 성종이 가는 쪽을 그대로 따라밟고 있는 태민은 그 상황을 별로 개의치 않아하는 것 같았다. 젠장, 그래서 더 배알이 꼴리는 것 같아! 별들아, 쟤 좀 어떻게 해줘! 이러다가 신경쇠약이라도 걸릴 것 같은 기분에 안그래도 큰 눈을 힘껏 부라리며 태민을 흘겨본 성종이 입을 열었다. 너 스토커니? 물론 날 뒤쫒고 싶은 마음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고로 사람에게는 할 일 못할 일이 존재하는 법이야. 그런 비이성적인 행동 그만두는 바람직한 태도를 취하는 너를 기대하는 성종이가 될게. 그럼 난 이만 총총. 피곤한 기색이 가득한 성종의 얼굴을 어이가 이보다 없을 수는 없다는 표정을 지은 태민이 대답했다. 난 내 갈 길 가는건데? 착각 쩐다, 니. 님 좀 짱인 듯. 오히려 자신을 휘적휘적 앞질러가는 그 긴 다리를 보면서 성종은 자신의 뒷목을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아, 혈압 올라. 뒷골 땡겨!
드디어 도착이구나. 윤아 누나, 곧 있으면 우리는 같은 공간 안에서 같은 공기를 공유하게 될거에요. 정말 꿈만 같죠? 바로 이 곳에서, 우리의 끈질긴 인연의 실이 반짝이는 그 순간을 목격할 수 있을거에요. 감회에 젖은 눈빛으로 스텝들이 곧 있을 팬싸인회를 준비하는 그 현장을 바라보던 성종이 등에 매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옮겨매고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자신이 수일동안 밤을 꼬박 새며 만든 플랜카드 [미치겠다윤아야]를 꺼내든 성종은 보람이 차다 못해 미치겠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검은색 바탕과 노란 글씨의 그 적절한 배합을 꽤 오랫동안 바라보던 성종은 생각했다. 이걸로 인해 턱 밑까지 내려올 것 같은 다크서클을 선물로 받았지만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윤아 누나가 내 노력의 결실을 0.1초라도 눈에 담는다면 그걸로 나는 여한이 없다고. 나의 이런 톡 하고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열일곱 순정을, 누나는 알아주겠죠? 미치겠다, 별들아. 바로 그 때였다.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못해 그 곳에서 살림을 꾸리고 살 것 같이 보이는 성종의 귓가에 전혀 듣고 싶지 않은 불청객의 목소리가들렸다. 님, 존나 임산부 같음. 금방이라도 애 낳을 듯. 앞으로 백팩을 매고 있는 성종의 꼴을 보고 감상평을 읊조리고 있는 태민은 [지존킹윤아] 라고 쓰여있는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채였다.
"이태민, 너 뭐야? 너 왜 여깄어?" "나는 여기 있으면 안됨? 니만 윤아 누나 좋아하는 마음 있냐? 내 마음도 있다. 우리 윤아 누나 보러 왔거든?" "......우리 그냥 말을 말자. 서로 불필요한 갈등을 괜히 야기하지 말자. 정말 비생산적인거 너도 알꺼라 믿는다." "바라던 바임."
알면 알수록 짜증나는 놈이었다. 집 앞 어린이집에 다니는 애들도 쟤보다는 어른스러울거라는 가정에 망설임 없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성종은 이번주 월요일 자리뽑기에서 8번 종이를 뽑은 제 손을 원망했다. 너란 손. 정말 나쁜 손. 또르르.. 왜 그 많고 많은 종이들 중에서 하필 그걸 뽑은거니? 특유의 여린 감수성으로 그 생각을 한지 몇 초 되지 않아 눈물이 차올라서 고개를 들은 성종이 갑자기 주위 공기의 흐름이 달라짐을 느꼈다. 저녁 7시 정각. 숙녀시대 정규 3집 팬싸인회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경호원들이 팬들의 대열을 정리하고, 더욱 분주해진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는 스텝들을 바라보던 태민과 성종의 눈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채를 띄웠다.
"유리 누나! 여기 좀 봐주세요! 흑진주율! 흑진주율! 패션왕자 진심 재밌어요!" "탱구야! 내가 부르다 죽을 우리 탱구야! 뿌잉뿌잉 한번만! 뿌잉뿌잉 한번만!!! [탱구와 울라숑] 팸 꼭 기억해줘!!"
숙녀시대 멤버 전원의 등장과 동시에 싸인회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그 개판 오분전의 상황에서도 성종과 태민은 꿋꿋이 자신들의 플랜카드들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있었다. 아, 좀 밀지마요. 아 쫌 발 밟지말라구요! 본인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여기저기 휩쓸려다니던 두 윤아 빠돌이들은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갔다. 다 비켜! 꽃보다 아름다운 윤아 누나 실물 영접 좀 하게! 제 앞에 있는 초록색 티를 입은 남자를 초인적인 힘으로 밀치며 성종이 소리쳤다. 개매너 쩌네. 다 꺼지셈! 앞을 가로막고 있는 키 작은 남자와 대포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소년 사이를 파고들며 태민이 소리쳤다. 모든 역경과 고난을 빠심 하나로 이겨낸 소년들은 결국 명당 자리를 쟁취하고 말았다. 아, 말로만 듣던 경국지색이 바로 이 자리에 있구나. 멍한 표정으로 탄성을 내뱉은 성종이 자신과 별들로 엮인 사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백 퍼센트 체감하고 있는데 비극적이게도 옆에서 또 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발, 존나 예뻐. 달빛천사 여주인공보다 더 예뻐.
"이태민, 니가 왜 내 옆에 있어? 물론 그렇게까지 내 곁을 지키고 싶은 니 마음을 이해 못하는건 아ㄴ.." "아닥 좀 해봐. 윤아 누나가 뭐라고 하는지 안들림." "....시발"
평소에 욕을 쓰면 입이 더러워지는 것 같아서 싫다던 성종의 입에서 쌍욕 보스몹이 등장했다. 전생에 부모를 죽인 원수라도 됐는지 태민과 말을 조금이라도 섞으면 짜증이 곤두서다 못해 머리통을 뚫고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별들아, 나 오늘 기분이 말이 아니다. 항상 청정수역처럼 잔잔한 성품을 자랑하던 나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이건 다 이태민 때문이야. 이성열보다도 못한 저 놈 때문이라고. 제 형을 아무 죄책감 없이 디스한 성종은 멘탈 붕괴의 코스를 밟고 있는데도 플카를 주기적으로 흔들어주는걸 잊지않는 센스를 발휘했다. 그건 태민도 마찬가지였다.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는 얼굴과는 반대로 플랜카드를 든 팔은 격렬하게 흔들렸다. 바로 그 때 였다. 하느님이 도우시기라도 했는지 생수병을 탁자에 내려놓고 있던 윤아의 시야에 왠 놈팽이 두명이 잡혔다. 음, 하나는 굉장히 오글거리고, 다른 하나는 좀 초딩 같네. 빠른 시간 내에 자신의 이름이 적혀있는 플카들에 대해 그렇게 결론을 내린 윤아가 그래도 제 팬들이라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야!!!!! 윤아 누나가 이쪽 봤어!!!!!!!!" "나도 봄!! 아이컨택 쩔어!!!!!! 소름이 뙇!!!!!!"
자신들이 핥고 있는 아이돌에게 제대로 팬서비스를 선물받은 두 남학생은 거의 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서로를 마주보고 와락 부둥켜안은 성종과 태민은 자신들이 지금 무슨 행동을 누구에게 하고 있는지 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그대로 얼마나 파고들었을까. 이제서야 현실의 세계에 입성한 두 윤아 빠돌이들은 거의 동시에 깜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맘을 모두 네게 줄게...같은 일은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도 절대 없을거야! 마성의 알렉스의 음성이 귓가에 울려퍼지는 환상 속에 갇혀있던 성종이 뭐 못볼거라도 본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내저었다. 자신의 뺨을 이리저리 내리치고 있는 태민도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정신은 안멀쩡해보이는 자신의 남팬들을 힐끗 쳐다보던 윤아가 다시 싸인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싸인회가 진행되는 1시간 30분 동안 성종과 태민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단 한번의 시선도 나누지 않은 채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그 둘이 눈치 채지 못하고 있던게 하나 있었다. 그 오랜 시간동안 플랜카드를 들고 있는 자신들의 손이 아까처럼 다시 올라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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