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XX일 날씨 개 같 맑음 무조건 맑음이지.
안녕. 누군가에게 글 쓰는 게 처음이어서 많이 어색하네. 아마 너에게 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일 거야. 아쉬워도 참아라
내가 쓴 일들을 너는 기억할지 모르겠네. 그냥 지나간 일 하나로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하나하나 다 너무 소중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
첫 만남은 별로 좋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찬반 토론대회에서 너는 찬성 팀으로 나는 반대팀으로 참여를 했으니, 아 이때 너 첫인상을 귀엽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알아서 많이 놀랐지? 놀라지 않았어도 그냥 이번만큼은 놀랐으면 좋겠다.
대회가 끝난 후 내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나한테 와서 사과했었잖아. 근데 그때 내 기분은 좋지도 안 좋지도 않았어. 어차피 그런 대회였으니까 그냥 그랬거든
그런데 그 덕에 우린 친해졌지. 많이 무뚝뚝한 나에게 항상 먼저 인사해주고 그렇게 나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그것도 나와 다른 성별에게 마음을 열었었지.
그 이후 우린 둘도 없는 친구로 발전했는데, 근데 그거 알아? 사실 난 그때부터도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어.
너는 몰랐겠지만, 내가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아마 계속 몰랐을 테지만 이 관계를 끊고 싶지 않아서 그냥. 마음속에 이 감정을 가둬놨어.
너의 웃는 모습도 좋았고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찌푸리는 모습도 좋았고 깜짝 놀란 모습도 심지어 변태라 말해도 좋아. 아픈 모습까지 나는 다 좋아했어.
그 모습은 나만 알고 있는 거니까. 남들이 모르는 너의 모습까지 나는 다 알고 있어서 욕심이 났고, 그래서 무서웠어.
사실 고등학생 때는 잠깐의 감정이라 생각해서 이 잠깐의 감정으로 너를 잃을까 두려워했는데, 우리가 같은 대학까지 가고 함께한 시간도 오래 지나다 보니 잠깐의 감정, 단순한 감정이 아닌 걸 깨달았어.
이제 와서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너는 내, 전부였거든. 그리고 나도 너한테 있어 전부였길 바랐어.
바보 같지? 그걸 왜 이제야 말하냐고? 그래도 억울하잖아. 한 번도 말 안 하고 끝나기엔 내 사랑이 너무 불쌍해서.
사랑은 타이밍이란 말 믿지 않았는데, 널 만나고 이 웃긴 것들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다 믿게 됐다? 사랑은 진짜 타이밍이었나 봐.
언제였지 아, 우리가 24살쯤이었나 나 군대 갈 때 너도 같이 휴학해주고 다시 같이 복학했을 때, 네가 마음에 든 한 살 어린 후배가 있었다고 했잖아. 저녁 약속 잡혔다고 나한테 자랑하는 너 표정 정말 행복해 보였는데, 그냥 마음이 쓰라리더라. 나로 인해서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그 찰나에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 등신같이
그런데, 그날 아마 5시쯤이었을 거야. 네가 울먹이면서 나한테 전화했잖아. 나한테 가지 말까.라고, 그 물음에 내 대답이 응. 이었다면 지금쯤 운명 이란 게 많이 바뀌었을까?
나는 왜 끝까지 너한테 좋은 친구로 보이고 싶었을까. 한 번은 욕심을 내도 됐을 텐데. 그런데, 이제 와서 묻는 거지만 그때 너도 알고 있었던 거지? 알고 있었던 거였지?
우린 왜. 뭐가 무서워. 돌고 돌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우리 둘 다 병신이었을지도.
욕심을 낼걸. 너에게 안 좋게 기억이 남아도 욕심냈을걸. 석진이 형이 항상 나한테 뭐라 했는지 알아? 병신이래. 안 그렇게 생겨서 왜 이렇게 찌질하냐고
그런데, 가끔은 네가 욕심 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네가 욕심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어. 그래도 나는 사랑했을 텐데.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겠지만
여주야,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 마음이 확실히 끝이 난다면 네가 좋아하는 꽃구경. 다시 보러 가자. 그때는 둘이서. 아무런 욕심 없이. 둘이서만 보러 가자.
결혼 축하해. 내 사랑 내 사람아. (더는 아니지만 마지막이니까 허락해주라.
내 추억의 전부가 너여서 나는 후회되지 않고, 억울하지도 않아. 너여서 너무 행복했고, 그 추억으로 나는 계속 행복할 거야.
그리고, 오늘 가장 아름다웠어. 눈이 부시게
"넌 몰라 정말 한 사람을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과 영원히 행복하길 빌어주는 거
절대 불가능하거든"
'아니다
정말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군가 그를 아끼고 사랑해주면
그가 영원히 행복하길 진심으로 빌어주게 된다'
'결혼 축하해. 나의 청춘'
윤기 마지막 대사는 그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대사 입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글이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네요. 전부터 윤기 글을 쓴다면 이런 아련아련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