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잡이 처음이라 무지 떨리네요;;
부족한 글이지만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남우현이 나를 찾았던 것은 신의 한 수 였다.
#.1-
더보기 딸랑- 가게의 문을 닫는 종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아름드리 노을빛이 그의 가게를 감싸안았다. 우현이 일찍 영업을 끝내고 카페의 문을 닫는 금요일 저녁이였다. 카페의 이름은 [SweeTea (스위티)]. 우현이 얼마 전 새로 열게 된 갤러리 카페였다.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던 우현이였기에 자신의 그림들과 여러가지 소품들로 아담하게 장식 된 그의 카페는 점점 입소문을 타고 홍대 근방에서 꽤 좋은 인지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우현은 여느때 처럼 가게의 문을 닫고 자신의 오피스텔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 「S」라는 이니셜이 적혀진 한 이젤이 눈에 띄인건 순식간의 일이였다. "「S」...?" 온통 검정색으로 뒤덮인 이젤 위의 새하얀 캔버스에는 S라는 이니셜이 수려한 글씨체로 적혀져있었다. 우현이 시선을 조금 올려보니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였다. 아무래도 이 이젤은 갤러리를 안내하기 위한 입간판 비스무리 한 역할인듯 했다. 안까지 들어가는 길은 돌길이였다. 유난히 밝아보이는 백열가로등이 쓸쓸하게 비추고 있는 그 돌길은 왠지모르게 자신을 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길 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우현은 홀린듯이 그 길을 따라 갤러리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갤러리 안에는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그림이 걸려있었다. 자신의 정면을 떡 하고 가로막은 그 거대한 크기의 그림은 큰 절벽이였다. 깎아지를듯한 엄청난 절벽. 우현은 단지 그림일 뿐 이였음에도 아찔함을 느꼈다. 거친 묘사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섬세함, 그리고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붓의 흔적들- 그 큰 그림 외에도 다른 그림들은 모두 한결같은 느낌을 줬다. 색채가 굉장히 화려했음에도 밝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현은 어느새 그림에 취해있었다. 그림들은 꼭 자신에게 손을 뻗어 아우성을 외치는 듯 했다. 꺼내달라는 소리없는 아우성- * * * 우현은 마음이 급했다. 자신이 보고있는 그림들을 그린 화가를 꼭 찾고싶었다. 자신의 눈동자가 마약에 취한듯이 황홀해지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어느 가슴 한 켠에 아련함을 들게 하는 그림. 우현은 자신의 카페에 그의 그림을 꼭 전시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S」..." 갤러리의 주인장인, 화가 자신의 이름이였다. 물론 본명은 아니겠지만. 센스 참 멋있네. 그림과 안 어울리는 네이밍 센스에 우현은 잠시 쿡- 하고 웃었다. 이내 고개를 들어 갤러리의 입구쪽에 있는 큐레이터에게 다가가 살풋 미소를 지어보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이 갤러리에 있는 작품들을 그리신 화가분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 S는 갤러리에 나오지 않아요." "네?" "항상 비워두고 계세요. 아주 가-끔, 그러니까 느닷없이 새벽에 간혹 오시는 경우가 있긴 해요. 아무튼 갤러리에 직접 들리시지는 않아요." "그럼 갤러리의 그림들은...." "아, 제가 항상 S의 편지를 받으면 옮겨오곤 하죠." 조용한 갤러리 안에 큐레이터의 조용한 웃음이 울렸다. 말이 큐레이터지 S의 조수와 다름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우현은 베이지 니트를 입고있는 그 큐레이터의 가슴에 달린 명찰에 시선이 옮겨졌다. 「성종」. 남자답지 않게 여린 그의 외모와 어울리는 이름이였다. 우현은 곰곰히 생각하더니 다시 큐레이터에게 말을 꺼냈다. "S의 그림은 살 수 없는건가요?" "어... 저기.. 원래 판매 목적으로 갤러리를 열지 않는다고 입구에..." "그래서 묻는거에요." 이번에는 우현의 웃음소리가 벽을 타고 갤러리 안에 울렸다. 성종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쭈물거렸다. 하지만 가지런히 포개놓은 손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잠깐의 정적이 아스라지며 성종의 미성이 울렸다. "정 원하신다면 S가 있는 곳을 알려 줄 순 있어요." "아, 그런건 아니고 그냥 연락처만 줘도 되는데..." "S는 따로 연락 할 수 있는 연락처가 없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이 일대의 갤러리 주인장이라는 사람이 연락처도 하나 없다니. 우현은 처진 자신의 눈이 잠시나마 동그라졌음을 느꼈다. 그 눈빛은 어서 다음얘기를 해달라고 재촉하는 눈빛이였다. "만나보시면 알거에요. 원래 이런 일, 한 두번 있는 것도 아니였거든요. 물론..." "물론..?" "잘 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성종이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한숨을 쉬었다. S의 그림을 사려고 했던 사람들이 다 퇴짜라도 맞은건가... 우현은 그림을 사려는 걸 마다하는 화가는 또 처음이라고 생각하며 성종에게 자신의 명함과 수첩을 내밀었다. "얼마 전에 이 근처에 갤러리 카페 연 사람이에요." "아..." "제 카페에 S의 그림을 꼭 전시하고 싶어요. 손님들도 많이 모일 것 같고.." "......" 성종은 왠지 미심쩍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수첩과 명함을 우현의 손에서 가져갔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 있던 펜을 집어 글자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성종이 펜을 내려놓고 수첩을 다시 우현에게 건냈다. "주소에요. 이 오피스텔 어딘지는 알죠?" "당연하죠. 저도 여기 주변 사는 사람인데." "꼭 들리세요. 주소 적어줬으니까." 성종의 말투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간곡히 부탁하는 듯이 들렸다. 눈동자 또한 이리저리 피했던 방금까지와는 다르게 우현을 올곧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성종의 눈동자를 그대로 바라봤다. 꼭 그대로 하겠다는 듯이 약속하는 눈빛이였다. 그리고 생각했다. S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그림과 그 본인마저 이렇게 신비롭고 매혹적일 수가 있을까. 지금까지 그림에게 느꼈던 자신을 향한 이끌림을, 이제는 그 모습이 기다려지는 S에게 느끼는 우현이였다. * * * 오피스텔의 동·호수가 적힌 수첩을 보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주소에 적힌 510호의 문이 바로 자신의 눈 앞에 있었다. 막상 문 앞에 서고나니, 방금까지 떨리던 기분은 어디가고 침착함만 남았다. 우현이 조심스럽게 문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조용한 공간에 벨의 울림이 퍼졌다. "...계세요.....?" 벨을 누르고도 아무 반응이 없자 소심하게 말을 해보는 우현이였다. 정말 아무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싸한 공기소리만이 그의 귀에 감겼다. 결국 우현은 무작정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문은 쉽게 열리고 말았다. 그대로 그 조용한 공간 안에 발을 들였다. 머리가 띵 해질 정도의 유화물감 냄새가 그의 코를 덮쳤다. 우현은 반사적으로 코를 부여잡고 얼굴을 찌푸리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이는 거실에는 크로키북마냥 작은 사이즈의 그림부터, 베란다 창문 한 짝마냥 거대한 사이즈의 그림까지, 아주 다양한 크기의 그림들이 여기저기 기대어져 있거나 널부러져 있었다. 개중에는 중간에 그리기를 포기 해 버린 듯, 치덕치덕 물감이 발라져있는 캔버스도 보였다. 이 양반 진짜 아싸인가... 우현이 오피스텔에 오면서 아주 잠시 했던 자신의 추측을 기정사실화 해버렸다. 눈길을 조금 돌려보자 딱 엿보기 좋을 만 한 틈으로 벌어져있는 방문이 보였다. 우현은 그 틈사이로 시선을 고정했다. 저기다. 자신의 직감이 딱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들어서면 안될것 같은, 그러면서도 꼭 들어가보고싶은, 그런 마녀의 과자집 같은 느낌이 우현의 온 몸을 감쌌다. 결국 우현은 과자집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살금살금 걸어가 그 벌어진 방문의 틈을 서서히 열었다. 선이 고운 남자의 인영이 보였다. "........." 방안은 바깥과는 다른 세상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동화속에서 마법의 문을 열자 그 너머의 세계가 보인 듯. 그런 느낌.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한 느낌이였다. 시간이 멈춘 듯, 남자의 모습도 그대로 멈춰져있었다. 커튼에 살짝 가려진 어스름한 노을빛때문에 남자의 모습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쇄골이 다 드러나는 니트, 얇은 다리에 꼭 들어맞는 스키니진, 살짝 갈색빛이 도는 차분한 머리. 마침 그림을 그리려 했던 듯, 남자의 손은 캔버스 위에 살짝 떠 있었다. 하지만 그 살짝 떠 있는 손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붓에 닿을락 말락하는 캔버스는 남자의 모습보다 훨씬 거대해 곧 있으면 남자를 덮쳐버릴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 우현이 저도 모르게 남자에게 손을 뻗었다. "......아." 무의식적으로 뻗은 손이 남자에게 닿기 직전이였다. 남자의 고개가 우현을 향해 돌려졌다. 잘 보이진 않았지만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매섭게 올라갔지만 어딘지 모르게 유혹적인 눈꼬리, 실낱같은 빛에도 하얗게 드러나는 볼, 어스름한 와중에도 붉은 빛이 감도는 입술. 우현이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그는- 매혹적인 화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