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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조용한 정적이 온 방을 휘감았다. 두 사람의 눈은 그 조용하고도 어스름한 방 안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눈이 맞닿은 서로는 말이 없었다. 그저 계속 바라보게 될 수밖에 없는 깊은 눈동자들이였다. 서늘하게 떠져있던 남자의 눈이 살짝 깜박였다. 우현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멍하니 벌려져 있던 입으로 황급히 말을 뱉어냈다. "아, 저기 그러니까 전.." "......" 당황스러움이 온몸에 묻어나오는 몸짓으로 어버버거리던 우현을 등진 채, 남자는 그대로 일어서 방을 나가버렸다. 우현의 눈이 남자가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흘러가다 휙 나가버린 문에 멈춰섰다. 여전히 입을 벌려놓은 채로 문을 바라보다 화들짝 따라나섰다. 남자는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목넘김을 하고있는 그의 등 뒤를 향해 우현이 외치듯이 말했다. "당신 그림, 사고싶습니다." "......" "제 카페에 그 쪽의 그림을 전시하고 싶어요." 입가에 묻은 물을 슬쩍 닦는 손등이 그림을 사고싶다는 말에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말이 없는 남자의 뒷모습에 우현은 자신의 가슴이 비트를 뿜어대는 스피커마냥 뛰는 것을 느꼈다. 이 두근거림이 대답에 대한 기대감인지, 아니면 저 야릇한 분위기의 뒷모습 때문인지는 살짝 헷갈렸지만. "성종이가 알려줬어?" 군더더기 없이 딱 잘라낸 남자의 말이 화살마냥 우현에게 박혔다. 뜨끔할 이유는 단 한 점도 없었지만 우현은 날카로운 그의 말에 몸을 움찔했다. 왠지 기싸움에서 밀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버렸다. "그렇습니다만.." "...그럼 나가." 여전히 조용하고 살짝 힘없는 말투였지만 그의 말은 날카롭게 박혀들어왔다. 이쯤 되어버리자 우현의 가슴 속에서 태동을 하는 것 처럼 오기가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지 말고 얼굴 보고 얘기나 한 번 하죠." "....." "제 카페 가보면 마음이 달라질 수 도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고선 웃는 우현의 입꼬리가 싱긋 올라갔다. * * * 일찍 닫아버린 자신의 가게로 무작정 데려와 문을 열고 불을 켰다. 밖은 어느새 어두컴컴해져있었다. 환한 불빛에 감싸여진 남자의 얼굴은 어스름한 방에서 볼 때와는 전혀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남자는 갑자기 펼쳐진 눈앞의 환한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때요, 제 카페?" "....." '무슨 대답을 원하는거야' 라고 말하고 싶은게 얼굴에 표정으로 여실히 드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현은 자신의 카페에 대해 꽤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듯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해 주기 바빴다. 이 소품은 자신이 파리로 유학을 갔을 때 사온 것 이라던가, 이 쪽 벽에 걸려있는 그림은 인사동의 갤러리에서 사온 그림 이라던가, 아니면 이 액자에 걸려있는 그림은 자신이 대학생 때 직접 그린 그림이라는 설명 같은 것들. 남자는 우현의 말을 무심히 들어줬지만 그닥 흥미있어보이진 않았다. 이것저것 가리키며 잔뜩 떠들던 우현은 갑자기 남자를 향해 휙 뒤돌았다. "아, 잠시만 기다려요. 카페에 왔으니까 커피는 한 잔 마셔줘야지." 그렇게 말하는 우현이 남자의 어깨를 잡아 의자에 앉혔다. 무표정한 남자의 시선이 우현을 따라 움직였다. 우현은 보란듯이 커피머신에서 샷을 뽑아 우유와 생크림, 초코시럽을 넣어 달큰한 향기를 내뿜는 모카라떼를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카페 안에는 모카라떼의 진한 향기가 솔솔 퍼져나갔다. 우현의 입가에 실풋 미소가 번졌다. 고개를 들어 진열장에서 예쁘장한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꺼내 작은 접시에 담아냈다. 우현은 아담한 목재 테이블에 보기만 해도 달콤함이 느껴지는 초콜릿 케이크와 모카라떼를 올렸다. 테두리에 초콜릿 색으로 색이 칠해져있는 하얀 접시가 케이크와 어우러져 참을 수 없는 비주얼을 뽐냈다. 옆에 놓여있는 모카라떼 또한 모락모락 김을 뿜으며 달콤한 향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그 두 개의 음식은 우현이 간접적으로 행사하는 남자를 향한 유혹이였다. "자. 드세요. 제일 자신하는 메뉴들로 내봤으니까." 테이블의 맞은편에 의자를 꺼내 앉은 우현이 손으로 턱을 괴며 남자와 눈을 맞췄다. 얄쌍하게 올라간 눈꼬리에 시선이 머물렀다. 역시 처음 봤을 때 부터 느낀거지만 눈꼬리가 참 유혹적이다. 물론 저 굳게 닫혀있는 입술도. "그렇게 보고만 있지 말고 한 입 먹어봐요." 우현이 포크를 들어 남자의 앞에 들어보이며 고갯짓했다. 남자는 조용히 그 포크를 바라만 보다가 미동도 않던 손을 살짝 들어 포크를 쥐었다. 조심스럽게 케이크의 끄트머리를 잘라냈다. 붉은 입술이 살짝 열리며 그 안으로 케이크의 조각이 들어갔다. 몇 번의 오물거림 끝에 남자는 입안에 퍼지는 초콜릿 케이크의 단 맛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되게 달다.." 남자는 뒤이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초콜릿 케이크에 눈길을 두곤 조용히 말했다. "단 음식은 기분을 좋게 해줘서 안먹는데." "....." "다 먹고나면, 너무 허탈한 기분이 들어버려. 맨날 그랬던 것 처럼." '맨날 그랬던 것 처럼...' 그렇게 말하곤 눈을 내리까는 남자의 모습을 우현이 지긋이 바라봤다. 남자는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는 듯 했다. 조용한 정적이 카페에 머물렀다. "그럼, 이왕 먹게 된 김에 커피도 좀 마셔봐요." "....." "저 커피 잘 만들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카페도 차렸지." "....." "아, 이거 케이크도 제가 만든거에요. 잘 만들었죠?" 칭찬을 바라는 아이마냥 천진난만하게 조잘거리는 우현에 그 조용한 정적이 살얼음 깨지듯 깨졌다. 남자는 그런 우현의 모습에 살짝 고개를 들어 우현과 눈을 마주쳤다. "이름은 뭐에요?" 눈꼬리를 휘어내리며 웃는 우현의 얼굴을 보며, 남자는 우현에게 가져서는 안 될 기대감을 가져버렸다. "성규.. 김성규야." 또 되풀이될까 두려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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