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스르르, 기범의 눈이 떠졌다. 분명히 약먹고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민호가 제 곁에 앉아있었는데, 어느새 민호도 저를 품에 싸매고 자고 있었다. 몽롱한 정신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보고 하품을 쩍, 한 기범이 민호를 느리게 흔들어 깨웠다. 형아, 형아. 민호가 잠결에 응, 그래, 하고 대답하면서 기범을 더 끌어안자 기범이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면서 웃더니 민호를 더 세게 흔들었다.
"아저씨……, 아저씨 일어나……."
번쩍, 민호가 눈을 떴다. 퉁퉁 부어서 눈도 제대로 못뜨면서 샐샐 웃는 기범을 보면서 민호가 물었다. 괜찮아? 잔뜩 잠긴 목소리에 기범이 킥킥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열 좀 나는 것 같긴 한데, 괜찮아."
"기범아."
"응?"
"너 잠자기 전에 뭐했는지 기억나?"
"약 먹은 거?"
"아니, 그 전에."
기범이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민호는 애가 그 질펀한 섹스를 기억 못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기억을 못하니 넌 단순히 아픈게 아니라 히트사이클이 온거라고 설명을 어떻게 해주나 걱정했다. 일어나 앉아 베개를 세우고 침대 헤드에 기대앉자 기범이 민호의 허리께에 매달려 얼굴을 부볐다. 민호는 반사적으로 기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범아."
"응?"
"너 열여덟이지?"
"알면서 왜 물어봐?"
"오메가는 그 나이대에 몸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 알아?"
기범이 눈을 도륵도륵 굴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활짝 웃으면서 히트사이클! 하고 대답하자마자 흠칫, 놀랐다. 민호가 아무 말도 없자 기범이 민호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되물었다.
"형아, 나 아픈게 아니라, 음, 혹시……, ……히트사이클이야……?"
민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기범이 꼬물꼬물 일어나 민호 곁에 앉았다. 제 머리를 쓰다듬던 민호의 손을 꼭 쥐고 우물쭈물하던 아이가 아주 조심스럽게 민호에게 또 다른 물음을 던졌다.
"저기, 있잖아, 나 꿈인줄 알았는데, 혹시, 나, 형이랑…… 그……, ……그거했어?"
"………."
민호가 차마 대답을 못하고 기범의 눈을 피하자 기범이 작게 중얼거렸다. 했구나……. 민호의 얼굴에 한가득 들어찬 미안한 표정에 기범이 쌕 웃더니 민호의 무릎에 올라탔다. 평소 애교부리던 그대로 민호의 목을 끌어안고 품에다 얼굴을 비빈 기범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난 좋아. 형아가 나한테 뭘 해도 난 괜찮아. 오히려 형아여서 다행이야."
"범아……."
"이그. 아저씨 왜이렇게 죽상인가 했네. 그렇게 미안해? 안 미안해도 돼, 아저씨. 난 진짜 괜찮아. 아저씨가 나한테 무슨 짓을 해도 난 아저씨가 좋아."
"미안해. 내가 미리 신경썼어야 됐는데."
"왜 미안해? 난 괜찮아. 아저씨여서 좋아. 다 좋아. 미안해 하지마. 잘못한 것 같잖아."
기범의 당찬 말에 민호가 한숨을 한 번 더 내쉬고 기범을 끌어안아 토닥였다. 민호의 품 안에서 기범이 입꼬리를 늘어뜨리며 웃었다.
13.
"어머, 내 새끼 왔네. 잘 지냈어? 옷도 예쁜 거 입고."
"네, 잘 지냈어요. 엄마 보고싶었던 거 빼면."
"아이구, 말도 이쁘게 하네."
"엄마. 얘만 보여? 어째 친아들보다 범이를 더 챙긴다?"
"네가 뭐가 이쁘다고 챙겨. 이렇게 예쁜 애 두고. 아가, 배고프지? 밥 먹을까?"
기범이 까르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김여사보다 훌쩍 큰데도 김여사는 아이 대하듯이 기범을 대했다. 김여사의 뒤를 쫓아 기범과 식당으로 가면서도 민호는 계속 툴툴거렸다.
화려한 밥상에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기범의 곁에 앉은 민호가 기범의 손에 숟가락을 쥐어줬다. 이건 내가 만든거니, 저건 아줌마가 한거니, 김여사의 장황한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범이 반찬을 꼭꼭 씹어먹는데 기범의 밥 위로 민호가 고기 두 점을 올려놓았다.
"응?"
"고기 많이 먹어. 살 좀 찌게. 한 번 대차게 앓더니 살이 쪽 빠졌네."
"응응."
"지 자식새끼 생겨도 저렇게는 못할거야. 어휴, 눈꼴시려. 엄마한테도 좀 그렇게 해봐라."
"내가 뭐? 엄마도 아까 얘만 챙겼잖아."
김여사의 핀잔에도 아랑곳않고 민호는 기범에게 반찬 챙겨주느라 바빴다. 민호가 챙겨주는 것을 넙죽넙죽 받아먹던 기범이 민호의 밥을 보더니 한 마디 했다.
"나 그만 주고, 형 먹어."
"어? 어, 그래."
"그래, 너도 좀 먹어라. 아, 그리고 민호야. 너 선자리 몇 개 봐뒀거든? 이따가 엄마 좀 보자."
"뭐? 선? 나 아직 서른 밖에 안됐는데 선은 무슨 선?"
"서른이 적은 나이니?"
눈살을 찌푸리며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민호의 표정에도 김여사는 아랑곳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밥을 오물거리면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기범이 숟가락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여사에게 짜증을 내던 민호가 기범의 팔목을 잡고 말했다.
"밥 더 먹어. 왜 벌써 일어나? 엄마가 불편한 얘기하니까 애가 밥도 못 먹잖아!"
"아니야, 형 나 배불러서 그래. 먼저 올라갈래. 잘먹었습니다."
"그래, 아가. 올라가서 쉬렴."
"아, 엄마!"
"배부르다잖아? 배부른데 계속 먹으면 체해."
기범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민호가 신경질적으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민호의 짜증에도 눈 하나 깜짝않고 자신의 양만큼 식사를 마친 김여사가 물로 가볍게 입가심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결혼을 해서 알파를 봐야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은 네가 더 잘 알잖니?"
"엄마."
"사실 엄마나 아빠나 네가 네 피 이을 알파만 낳아오면 결혼하든 이혼하든 상관없기는 해. 막말로 기범이가 낳아도 알파기만하면 상관 없다는거야. 하지만 알파 여자와의 결혼이 모양새도 그럴싸 하고 확률도 백에 가까우니 그걸 추진하려는 것 뿐이고."
"내가 알아서 할거니까 좀 신경 좀 끄세요. 엄마 말마따나 적지도 않은 서른살이면 이 정도 알아서 다 할테니까."
"올해 안에 해결해. 아니면 아버지가 밀어붙이실거야."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여사가 기범이를 언급하는 순간, 문득 아이가 해사하게 웃으며 형이라면 다 괜찮다고 하던 그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14.
"기범아?"
평소같으면 제 방을 내버려두고 민호 방에서 놀고 있었을 기범이 안보여서 기범의 방으로 갔더니,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서 입술을 댓발은 내밀고 있다. 민호가 곁에 다가가 침대에 걸터앉자 기범이 민호의 반대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극도로 삐치거나 기분이 상했을 때 하는 행동에 민호가 깜짝 놀라 기범을 제 무릎에 안아올렸다. 그런데도 여전히 불퉁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에 민호가 어쩔줄 몰라 기범을 어르기 시작했다.
"범아, 왜 또 기분이 안 좋아, 응?"
"아니야."
"우리 범이 기분이 왜 나쁠까. 아까 엄마가 결혼 얘기해서 그래? 그런거야?"
순간 기범의 입꼬리가 옴짝거리며 곧 울것같은 얼굴이 되자 민호가 이마며 뺨이며 여기저기 자잘하게 입을 맞추며 달랬다. 왜 기분이 나빠, 응? 기범아, 우리 범이, 왜 기분이 나빴어. 조근조근하고 다정한 말투에 횅 돌아앉아 있던 기범이 꿈지럭거리며 민호의 품을 파고 들었다. 손으로 민호의 옷을 꾹 잡아쥐며 기범이 웅얼거렸다.
"나 버릴거잖아……"
"버리다니, 내가 어떻게 널 버려? 기범아, 형 속상하게 왜 그런 생각을 해……."
"결혼하면 나 버릴거잖아…… 세상에 어느 여자가 남편이 끼고 도는 펫을 좋아해? 결혼하면 나 버릴거야, 분명히……."
민호가 기가차다는 얼굴을 하고 기범의 턱을 잡아올렸다. 울먹거리는게 더할나위 없이 진심이라는게 느껴져서 민호가 한숨을 폭, 내쉬고 기범을 끌어안은채 벌러덩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민호가 기범을 안고 어르면서 말했다.
"기범아, 우리 예쁜 범이. 난 널 못 버려. 어떻게 나랑 십년이 넘게 있었으면서 그런 소리를 해? 형 속상하게. 난 너 절대 못 버려. 너랑 같이 못 살겠다는 여자는 내가 필요 없어. 네가 제일 중요해."
그 단호한 말에 민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던 기범이 고개를 들어 민호를 쳐다봤다. 민호가 부드럽게 웃어주자 기범이 옴찔거리며 물었다. ……진짜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민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범이 그제서야 좀 얼굴을 풀었다. 민호가 픽 웃으면서 기범을 토닥이자 기범이 찡긋거리면서 민호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볐다.
"형아, 나 버리면 안돼. 난 형아 없으면 못 살아."
"못 버린다니까 그러네. 결혼해도 너 데리고 살거고, 너 인정 못하는 사람이랑은 결혼 절대 안 할거야."
기범이 드디어 배실배실 웃기 시작하자 민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기범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민호가 기범을 바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는데 민호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핸드폰을 확인하고 짜증스러운 얼굴이 된 민호가 기범에게 회사 전화라며 양해를 구하자 기범이 배시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가 전화를 받으며 밖으로 나가자 활짝 웃고있던 기범의 입꼬리가 스르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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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바쁘게 지내다가 한달이 넘었는지 몰랐어요.....................ㄷㄷㄷㄷㄷㄷㄷㄷㄷ
다 잊으셨을까봐 걱정ㅠ_ㅠㅋㅋㅋㅋㅋㅋㅋ 신알신하신 분들 잊고있던게 갑자기 뿅 튀어나와서 놀라셨을 것 같아요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뎨둉합니다ㅠㅠ♡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휴_휴 그래도 많이 써왔어여....
누가 제 머릿속에 든거 대신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진짜 맨날맨날 올텐뎈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다시만나 반갑습니다 저 잊지 말아주세여 흑흐흐흐ㅡㅎ긓규휴규ㅠ휴ㅠㅠㅠ
암호닉_저격저격 님, 끙끙이 님, 케미요정 님, 유후 님, 민소매 님, 라인 님, 부먹 님, 밍키행쇼님
감사합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