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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열준] 열정적인 하루 01

 

w. 발발

 

 

 

"아들아, 헉헉- "
"뭐냐, 다 늙어서 뛰어 온 거야?"
"나 늙지도 않고 뛰지도 않았는데?"
"그럼 이마의 땀방울하고 거친 숨소리는 뭐냐?"

 

종인이가 안 본 새 더 컸다.

며칠 안 봤다고.. 한 보름이나 되었나?
나나 지 엄마나 키는 작은데, 다행이도 우리아들은 벌써 내 키를 껑충 뛰어넘었다.
요즘 고딩들은 무서우리만치 발육이 빠르다.


"이거 맛있다."
"그래? 더 시켜줄까?"
"아니, 그냥 후식으로 피자나 더 시키자."
"뭘로 하지?"
"예전에 나 도미노더블크러스트까르보나라피자좋아했던거 알지? 그거 비슷한 거 아까 보니까 있던데. "
"알겠어."

 

유난히 피자, 파스타같은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서 만날 때마다 새로운 맛집으로 데려가는데, 신경 쓴 보람이 있다.
부모란 것이 이런 걸까-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못해 터질 것 같다.
흐뭇하게 냠냠거리는 것을 지켜보는데, 피자도우를 씹던 종인이가 불쑥 불렀다.

 

"아빠,"
"음?"
"안 먹어?"
"먹고 있는데?"
"개뿔.. 혹시 지금 그 인간하고 따로 먹으려고 안 먹는거야?"
"설마! 오늘 아빠가 너랑 오붓하게 저녁식사하려고 얼마나 진따-"
"아 그만- 그딴 소린 좀 하지마!"
"아... 미안,"

 

며칠 전에 입학식에 못 가서 안 그래도 서운해하고 있었는데, 그걸 까먹고 나불댔다.
아무리 종인이가 이해한다 해도, 애한테 상처는 상처다.
실수했다.
신경질적으로 피클이 꽂힌 포크를 내려놓은 종인이가 한 조각밖에 먹지 않은 피자를 냅두고 물컵을 들어 입을 헹궜다.
밥맛 떨어졌나보다.
아 진짜.. 점수따려고 저녁먹자고 한건데,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왜 더 안 먹고."
"잘도 넘어가겠다. 아빠같음 넘어가겠어?"
"미안,"
"맨날 미안만 하대~ 미안만 하면 뭐해? 미안해도 결국 그 인간한테 갈 거면서?"
"..아빠가 그래서 오늘 너한테 맛있는 거 먹이려고 없는 시간 쪼개서 인터넷 두드려서 맛집데리고 왔잖아~"
"...아오 진짜 좆같네.."
"야, 이게 아빠앞에서!"

 

아빠노릇.
눈을 세모로 치켜뜨고 소리높여도, 코웃음도 안 치는 걸 알면서 한 번 해봤다.
종인이는 은근히 내가 자길 혼내주는 걸 좋아한다.
같이 살지 못해서 만날 때마다 다정하게 대해주는 아빠가 이질적일 것이다. 
자신의 친구들 부모처럼, 늘 다정한 말만 하는 나같은 부모보다는 잔소리하는 부모가 진짜 부모같을테니까.
가끔 본다고는 하지만, 최소 2주에 한 번은 만나는데, 잔소리거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껄렁스럽게 욕설을 내뱉는다거나, 가만히 놔둬도 이쁜 머리를 일흔먹은 노인네마냥 회색으로 염색한다거나.
그래도 한창 감수성 예민할 나이에 이런 불량스런 아빠랑, 심지어 떨어져지내는 것이 못내 가슴아파서 덮어두는 것 뿐이다.
불량이지만, 나도 부모다.

 

 


내 기분 잡쳐놓고 나간 것 치고는 우울하게 돌아왔다.
안그래도 조그만 몸집이 아주 쪼그라들 것처럼 움츠러들었다.
뭐, 안 봐도 비디오다.
어쩌다가 내 얘기가 나와서 그놈이 성깔부렸겠지.
못돼쳐먹은 놈.
아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내가 나쁜놈이지.. 애가 무슨 잘못이야.
한숨을 푹푹 내쉬며 쇼파에 털썩 주저앉아 넥타이를 벅벅 풀길래, 말없이 냉장고에서 막 꺼낸 맥주 한 캔을 건넸다.
그걸 고맙다는 말은커녕 눈도 안 마주치고 건네받는데, 거기서 또 살짝 상처받았다.
이럴 때마다 진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여러가지 감정이 나타난다.

 

"신나서 나가더니?"
"내가 또 말실수했지 뭐."
"그 말실수의 주인공은 나고?"

 

넌 또 무슨-
착 가라앉은 내 목소리에 살짝 격양된 형의 목소리가 기대와는 다르게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아니라는 소린 못하는구나.
그래, 사실은 사실이니까.

 

"기분상했냐?"
"뭐가요-"
"아닌 거 알잖아, 화 풀어."

 

맘 상한 사람한테 사과나 위로는 없다.
은근한 명령뿐이다.
그러고서 저도 좀 심했나 싶었는지, 뒷통수를 슬슬 어루만져주었는데,
형의 눈을 보면 알 수 있다.
얼음장같은 그 눈동자에는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

 

 


박찬열.
요즘 조금 낯선 이름이다.
5년을 같이 살고 있는데, 불과 5분 전에 만난 느낌?
처음에 애엄마한테 데리고 가서 얘랑 같이 살거니까 이혼해달라고 그럴 때도 차분했고,
물론 허구헌날 종인이 팽겨 쳐놓고 나이트며 클럽이며 바람나서 싸돌아다니다가 결국 남의 애까지 벤 여자한테 당당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하여튼 그 때도 그렇고,
내가 그렇게 극구 안 된다며 울고불고 사정해도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딱 말해버리라며, 아직 애기같은 종인이를 불러다가 니 아빠 동성애자다- 라고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말하던 인간이,
요즘은 좀 변했다.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군다.
친하게 지내는 건 진짜 솔직히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바랄 수도 없다.
그냥 서로 안 부딪히고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데, 날 사이에 두고 나를 가지고 이렇게 압박들을 하니 진짜 미치겠다.
여기서 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종인이한테는 아빠로서, 찬열이한테는 애인으로서.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서, 내 뜻과는 다르게 반대로 대하고 있다.


"찬열아, 5분 늦으면 30분 늦어. 출근안해?"
"안해, 연차쓸거야."
"너 어제 휴가계 안냈잖아."
"...이렇게 정없게 굴어야 되요? 형이 팀장인데 내가 꼭 회사에서 형한테 휴가계 꼬박꼬박 내야 돼?!"
"야 너 진짜 이럴래?!"

 

내 말도 안 되는 생떼에 형이 폭발했다.
방금 내 입으로 내뱉었지만 진짜 억지다.
그래도 도로 주워 삼킬 생각은 없다.
난 그냥 김준면한테 투정부리고 싶을 뿐이다.
협탁에 놓인 휴대전화를 들어 느릿하게 몇 번 손가락을 움직인 후, 붉게 상기된 얼굴의 형을 바라보았다.

 

"팀장님께 문자보냈으니 확인해봐요.
설마, 갑자기 몸이 안 좋다는데, 전날 미리 휴가계 안 썼다고 매정하게 나오라고는 못하겠죠.
그쵸, 형?"
"..너 진짜!"

 

어금니를 물며 으르렁거리면서도, 또 휴대전화를 들어 수신되어있을 내 문자를 확인한다.
뭐라 썼나 미간을 찌뿌리면서 몇 글자 안되는 문자를 정독하는 모습이 과연 김준면다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픽-"
"웃어?"
"아, 형때문에 기분 개같았는데, 또 형때문에 풀어지네요."
"이게!"
"누가 이 사람을 서른넷에 열일곱살짜리 아들내미까지 있는 노친네라고 할까-"
"너 진짜..."

 

내 장난스런 말투에 졌다는 듯이 어깨를 한 번 으쓱한 형이 내 뺨을 툭 치더니 이내 내 품에 안긴다.
그날 이후 내내 싸늘한 내 행동에 은근히 맘고생이 심했나보다.
또 이런 모습을 보면 내가 나쁜놈인거 같아 내 마음이 더 아프다.

 

"그럼 나 혼자 갔다 올게.."
"네, 운전 조심하고-"
"점심 챙겨먹고."
"응, 조심히 갔다와요."

 

 


"너도 참 징하다.  드라마 욕할 거 없어, 내 앞에 이새끼가 막장 그 자체인데 뭐-"
"모르면 가만있어, 얼마나 스트레슨데."

 

위로해달라고 만났더니, 내가 지금 점심식사를 입으로 하는지, 귀로 하는지 모르겠다.
오세훈 이 새끼는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얼마 전에 결혼하더니 종잇장도 베어버릴 듯 하던 브이라인이 사라졌다.

 

"제수씨가 잘 해 먹이나 보네? 아주 빵빵하다, 야~"
"당연하지, 우리 자기가 얼마나 요리솜씨가 좋은데~
근데 너 이런 식으로 화제 돌리지 마라?"
"어휴 이 꼰대-"

 

같은 고등학교 나와서 같은 대학교 다니고 군대갔다오고 2년의 취준생을 거쳐 나란히 우리나라 일이등을 다투는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우리는 서로 다짐한 것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쫓겨나지 말자. 더러워도 참고, 지겨워도 참아서 가늘고 길게 가자.
그런데 입사하지마자 남자직속선배한테 반해서 회사를 때려쳐야 겠다느니, 그 선배랑 사겨야 겠다느니 미친 생지랄을 떤 나를 붙잡아 준 것이 세훈이였다.
그런 세훈이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하지만, 기댈 수 있는 형제같은 사이이기도 하다.

 

"아들내미가 진짜 특이한 애 아니면 착해 빠진거지. 어떤 자식이 지 부모가 동성한테 빠져서 애도 나몰라라 하는데 좋아하겠냐? 걘 희대의 천사야. "
"아니라니까? 그러면서 은근히 아주 날 긁는다고! 형도 애 어릴 때도 안 그러더니 요즘은 아주 벌벌 긴다고!"
"이 답답한 놈아. 걔 지금 중요한 나이야,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탱탱볼이라고.
그리고, 니네 형이 애한테 관심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너에게 관심이 없어진 거라면?'
"뭐?"
"그렇잖아, 니 말대로 어린애 떼어놓고 너랑 살림차릴 땐 언제고, 애 다 크니까 이제 와서 신경쓰는게."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야-"
"니네 5년넘어가잖아. 권태기 안 온게 이상하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난 겉으로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이 반응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담담했다.
그리고
제 3자의 눈에 비친 우리의 권태로운 모습에 담담한, 나 자신에게 또한 담담했다.

 

 


"선배, 나 어때요?"
"뭐야, 새삼스레?"

 

찬열이 말 그대로 새삼스레 물었다.
이 물음은 5년 전 그 날에도 들었었다.
보통의 남자라면 친하게 지내자는 뜻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찬열이의 물음에 난 전에 없던 설렘을 느꼈고, 그렇게 쉽게도 사랑은 시작되었다.
동성애자인 주제에 나를 시험해보려고 딱 하룻밤지낸 옆 반 여자애가 덜컥 임신을 해버리는 바람에 결혼까지 해서 순식간에 애아빠가 된 내게, 찬열의 등장은 마치 흩날리는 벚꽃잎을 잡은 소녀의 마음을 심어주었다.

 

"빨리요, 나 어때요?"
"픽- 뭐야, 진짜~"
"아- 진짜.."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쑥스러워하며 뜸들이고 있었는데, 그 사이 찬열이의 맘이 상했다.
평소에 나에게만은 태평양같던 마음이, 우리 동네 실개천마냥 쪼그라든 것이 분명하다.
요즘 찬열이는 조울증환자처럼 감정기복이 심하다.
원래 찬열이는 어두운 구석없는 천상 밝은 애였고, 나도 그 모습에 반했던 것이다.
우린 동성애자라는 것 빼면 여느 남자와 다름없기때문에 싸울 때는 진짜 온갖 쌍욕과 고함이 울려퍼진다.
그러고나서조차도 이런 열받는 분위기 조성하는 것도 한시간이면 지친다며 웃는 얼굴로 백기를 드는 것이 찬열이다.
그런데 요즘은 정말 변했다.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렵죠."
"어?"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는데,"
"아 장난이지, 왜그래,"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였어요? 내가 항상 장난으로 보여요?"
"야 박찬열, 말 가려서 해라."
"너야 말로 제대로 해.."
"...너? 야 너 지금-"
"내가 언제까지 참고 있을거같아?"
"너 지금 뭐라해-"
"꼴랑 몇 개월가지고 한 살 형이느니 그딴 말 하지마.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
"..."
"애 만나는 건 매일이든 일주일에 한 번이든 상관안해. 부모자식사이니까.
그러면, 그렇게 배려해주면, 최소한 그 만남에서의 악감정은 나한테 감춰야되는 거 아니야?
만나고 와서 좋았다고 행복해하는 모습도 내가 괜히 부자지간 떼어놓는 것 같아서 죄인같은 기분드는데, 안 좋은 모습하고 돌아오면 어떨 거 같아?!
생각은 해봤어?!"

 

맞는 말이다.
박찬열 입장에 서면 백퍼센트 이해가는 행동이다.
하지만 난 지금 찬열이를 이해하면서도 짜증이 난다.
예전에는 이해하면 반성했지만, 지금은 내가 이해한다는 것 조차도 짜증이 난다.
그냥 이 상황이 짜증이 나고, 이 상황을 굳이 조성한 박찬열이 짜증이 나고, 그러면서도 이 상황이 이해가 되는 내가 짜증이나고.
짜증, 짜증, 짜증, 짜증.

 

"미안해알겠으니까그만해"
"...뭐요?"
"내가 죄인이니까 그만하자고 씨발진짜!!!!"

 

펑-!
그냥 짜증폭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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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올립니다.

요 정도? 분량으로 2~4주정도 간격으로 업뎃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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