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빈은 개 같다.
욕 같이 들릴 지도 모르지만 김한빈은 정말 '개' 같은 걸.
" 김한빈! "
" 왜. "
" 너 내가 이런 거 물어 뜯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
신경질 적인 목소리로 화 한 번 냈더니 소파에 누워있던 김한빈은 쿠션으로 제 얼굴을 덮어 가리곤 모올라, 하고 늘어진 소리만 뱉고 있다.
모르긴 뭘 몰라. 누가 봐도 제 작품인데!
손에 있는, 다 찌그러져버린 화장품 통을 한 번 더 바라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손도 부들부들.
" 이러니까 내가 자꾸 너보고 개라는 거야. "
" 죽을래? "
" 이갈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자꾸 이런 걸 물면 어쩌자는 거야. "
" 기억 안 나. 자꾸 그냥 이가 가려운 걸 어떡해. "
덮고 있던 쿠션을 치우곤 눈치를 살살 보는 김한빈의 눈빛을 한 번 쏘아봐주니 마치 꼬리라도 내리는 듯 다시 제 얼굴을 덮어버린다.
짜증나.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로션인데. 내가 이 로션 사려고 진짜, 진짜.
속상한 마음에 입술만 삐죽 내민 채로 멍하니 화장품 통만 바라봤다. 소란스러운 티비 소리를 제외하고는 정적이 흐르는 김한빈과 나.
조금의 시간이 흐른 뒤에, 김한빈이 누운 쇼파에서 조그만 목소리가 들렸다.
" 미안. "
" …뭐? "
" 미안해. "
제 얼굴을 덮었던 쿠션을 치우고는 진득하게 날 바라보는 김한빈의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올라간 눈꼬리와는 다르게 눈꼬리를 어째 축 내리고 있는 듯한 저 눈매, 저 표정, 저 시선은 진짜 …….
아, 오늘도 또 졌다.
저 강아지에게 또 졌다.
*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갔더니 김한빈은 거기서 그대로 잠든 건지 쇼파 위에 작게 몸을 웅크리고 있다.
회색 털에 작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몸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쇼파 옆으로 향했다.
잠든 김한빈의 옆에 살짝 앉아 손을 뻗어 손가락을 회색 털 사이로 통과시키니 부드러운 느낌이 손가락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곤히 잠든 걸 보면 진짜 마냥 순할 것만 같다가도, 그 얼굴을 보고 있자면 제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거 같고.
자꾸만 만지작거리는 손길을 느꼈는 지 슬그머니 눈을 뜬 김한빈과 눈이 마주쳤다.
" 뭐. "
뻘쭘한 느낌에 눈을 마주치고 뭐, 하고 입을 움직이니 김한빈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예 일어나려는 건가, 했는데 내 허벅지 위로 슬그머니 올라오더니 거기에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버린다.
졸음이 가득 담긴 눈으로 자꾸만 바라보는 김한빈의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손으로 슬그머니 그 눈을 가렸더니, 크응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손을 제 앞발로 밀어버린다.
" 그렇게 보지 마. "
싫어. 하는 김한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자꾸만 빤히 보는 눈빛에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러자 내 배를 제 앞발로 꾹꾹 눌러온다.
아, 누르지 마! 뱃살 있잖아! 순간 민감한 반응을 보였더니 김한빈의 눈이 웃음을 머금은 것만 같다. 기분이 좋은 건지, 웃는 건지 그르릉 소리도 나고.
김한빈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집에 왔다.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혼자 살게 되면서 우울증을 겪었고, 그렇게 누군가를 애타게 원하게 되었고, 마법처럼 버려진 강아지 한 마리를 만났다. 비가 오는 이른 아침이었다. 강아지를 씻기고, 곤히 잠든 강아지를 보다가 같이 잠에 들었는데, 깨어나서 만난 건 ….
강아지가 아니라 김한빈이었다.
강아지랑 꼭 닮은 김한빈.
아니, 그 강아지가 김한빈이었다.
김한빈은 제가 강아지가 아니라고 했다. 늑대라고 하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개'랑 다를 게 없는데…. 행동은 꼭 '개' 같으면서도 개라고 하면 화냈다. 날카로운 눈빛은 정말 가끔 늑대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평소의 김한빈은 순둥하고 느긋하고 능글맞은 개였다. 뭐, 어쨌든 김한빈을 처음 보게 된 날. 그러니까, 사람인 김한빈을 처음 보게 된 그 순간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침대에서 분명 그 강아지와 함께 잠들었는데 잠에서 깼더니 처음 보는 외간 남자가 옆에 있질 않나! 도둑이라도 든 줄 알고 미친 듯이 김한빈을 때렸었다. 그러다 김한빈에 잡혔고, 근데 김한빈은 옷을 입고 있지 않았고, 나는, 나는…….
어쨌든 김한빈과 함께 산다. 밤 12시부터 다음 날 정오 12시까지 김한빈은 늑대가 되었고, 12시 정각부터 밤 12시 까지는 사람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정말 김한빈은 밤 12시가 지나자 마법처럼 다시 늑대가 되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 킁. "
생각에 빠진 나를 제 머리로 툭툭 치던 김한빈에게 내 손을 뻗었더니 그 손을 향해 제 머리를 부벼온다. 이게 어딜 봐서 늑대야. 그냥 개잖아. 입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막고는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더니 내 허벅지 위에서 제 몸을 웅크리고는 잠들 준비를 한다. 얼레, 안 돼. 나 오늘 나가야 해.
" 여기서 자면 안 돼. 나 나가야 해. "
알아 들은 건지 (사실 늑대일 때는 내 말을 알아듣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아닌 지, 누워선 고개를 젓는 김한빈을 들어서 쇼파 위 방석에다 내려놓았더니 몸을 일으켜선 또 빤히 쳐다본다. 뭐라 말을 못하는 김한빈을 멀뚱히 보니, 내 손으로 제 시선이 향해있다. 뭘 원하나 싶어서 손을 내밀어 줬더니 혀로 낼름, 손바닥을 핥는다. 참나. 어이가 없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뭐, 영역표시야?
나도 모르게 바람빠지는 웃음을 지었더니 만족한다는 듯 김한빈이 방석 위에 몸을 웅크리곤 다시 천천히 제 눈을 감았다.
뭐야, 진짜.
알다가도 모를 김한빈이다.
그냥 한빈이가 늑대였음 좋겠어서 썼어요 흐..흐흫흐..ㅡ흐....
늑대 한빈이 ㅜㅜ.. 좋아라.. 여자주인공이 나다 하고 보셔요 전 쓰면서 그렇게 대리만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