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살아낸 무수히 많은 시간.
우리는 그 시간들을 함께 공유한다.
내가, 그대가 살아 온 그 각자의 삶에 접속한다.
방탄소년단의 접속, 라이프
04 #
[김남준 민윤기, 프로듀서. 스튜디오]
“알고 싶어요. 여주씨가 말하는 이 과거.”
“형.”
남준씨가 그를 제지하듯 나직하게 부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내게 고정된 채 흔들림 따위는 없다.
“무례, 하시네요. 그 질문.”
“무례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답하지 않겠다는 걸 돌려 말해보지만 그도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구구절절, 모든 걸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람을 죽였어요. 그래서 의사도 그만뒀어요. 이제 질문에 대한 답이 됐나요?”
내 대답에 잠자코 듣고 있던 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이럴 줄 알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곧 이들도 나를 벌레 보듯 경멸하겠지.
“저 먼저 갈게요. 촬영은……. 그만 두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먼저 작업실을 나왔다.
긴 복도를 걸으며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비상구로 몸을 숨기듯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게 나왔지만 지금 내 심장은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어쩌자고 그런 소릴 했는지.”
계단을 내려오면서 그날의 기억과 내가 보내온 시간, 방금 전 상황이 오버랩 되면서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쳐온다.
그때, 나를 보던 사람들의 눈빛과 집으로 찾아와 나를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유가족들.
숨이 막혀온다.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나는 내 작업실 앞에 와있다.
시간은 밤 10시를 넘겼고 세상은 어둠이 내렸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하며 계단에 걸터앉아 파우치 깊숙이 넣어둔 담배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한 모금, 깊이 들이마셨을까, 전화가 울린다.
“네, 매니저님.”
-여주씨 무슨 일 있으셨어요? 윤기도 기분이 영 아니고 남준이도 좀 그런데. 여주씨는 지금 이 시간까지 안 들어오시고. 어디세요?
“두 분 다 아무 말 없던가요?”
-네. 아무 말 없었어요. 혹시, 작업하다 싸웠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네. 아니에요. 저는 제 작업실에서 가져올게 있어서 잠시 들렸어요. 좀 이따 들어갈게요. 걱정 마세요.”
-정말 아무 일 없는 거 맞죠?
“네.”
거짓말을 한다.
내 입으로 아까의 일들을 말하긴 싫다.
대답을 들은 두 사람이 이 상황에 대한 종결을 하길 바랄 뿐이다.
전화를 끊고 타들어 가는 담배를 마저 빨아 들였다.
남은 담배꽁초를 비벼 밟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기분으로는 어디든 가기 싫다.
*
숙소로 돌아오자 조용한 가운데 거실 소파에는 남준씨와 매니저님이 나와 있다.
나를 보자 두 사람은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주방에서 물을 마시며 나오는 윤기씨도 있다.
“늦으셨네요.”
“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근데 왜 다들 나와 계세요. 피곤하실텐데.”
“저, 여주씨. 오해 말고 들어줘요.”
“우선 남준이가 걱정돼서 저한테는 얘기했어요.”
“아, 괜찮아요. 의료사고, 검색이면 다 나오는 일인걸요.”
“그래요. 뭐, 의료사고. 이미 다 지난 일이고 굳이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촬영도 예정대로 진행하고 윤기는 알아서 잘 하겠다고 해서…….”
그는 나를 지나쳐 소파에 앉아서는 여전히 고고한 자태로 물을 마신다.
남준씨는 난처해했고 매니저님도 내게 미안해한다.
왜, 나와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이 눈치를 보는 건지.
“저는 괜찮은데. 남준씨도 매니저님도 저한테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그럼 내일 다시 작업실 가는 거죠?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들을 지나쳐 방으로 들어 왔다.
한순간 무너진다.
참아왔던 억울함, 속상함, 후회 같은 감정들이 쏟아진다.
나의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아니었다.
문틈으로 작은 소리라도 세어 나갈세라 이불을 잔뜩 끌어와 얼굴을 묻고서 울음을 삼킨다.
이럴 때면 생각한다.
내게도 가족이, 친구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
촬영 중, 분위기는 어제와 다름없다.
연기인지 진심인지 그의 감정 선은 석진씨의 연기 못지않다.
어제하던 작업이 지속되고 간간히 그들이 번갈아 가며 가이드를 녹음하기도 한다.
남준씨가 다시 뒤돌아 나를 본다.
“혹시 어제 녹음했던 음악, 뒷부분도 부탁드려도 될까요?”
“뒷부분이요?”
“다시 들어보니까 노래가 여주씨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그의 부탁으로 다시 녹음실 안으로 들어와 헤드폰을 낀다.
어제처럼 그가 버튼을 누르고 입을 벙긋거린다.
-어제는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것 같던데. 오늘은 조금만 더 힘 빼고 불러 봐요. 호흡 길게 쓰고.
-형 얘기 신경 쓰지 말고 여주씨 편한대로 불러줘요.
두 사람의 상반된 의견에 서로 티격 거린다.
헤드폰 사이론 아무 말도 들리지 않지만 유리창으로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담긴다.
-시작할게요.
그의 말이 들리고 잠시 후, 반주가 시작된다.
어제에 비해 음악이 좀 더 완성되어 있는 듯하다.
“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어 주오. 눈이 부시게 더욱 찬란하게 빛나주오.
내가 깊은 밤을 날아 어디에 있든 그대를 보고 그대를 찾고 그대를 그릴 수 있게,
우리가 함께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처럼 밝게 빛나주오.”
짧은 가사지만 전체적인 흐름이 느린 탓에 노래의 전체를 아우르는 듯, 노래는 끝이 났다.
가이드곡이라 그런지 본 녹음과 달리 끊어가는 것 없이 한 번에 끝이 났다.
나와도 좋다는 남준씨의 말에 헤드폰을 내려두고 녹음실을 나왔다.
“여주씨 노래 들어 볼래요?”
“좀 창피한데...”
“일반인이 부른 것 치고는 괜찮아요.”
남준씨의 말 뒤로 그가 무심하게 말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을 대하지만 작업실에 함께 있는 게 조금은 답답하다.
문득 문득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 어제의 일들이 생각나기도 하면서 아침에 퉁퉁 부어버린 두 눈을 보며 나를 안타까워하던 매니저님도 생각난다.
“여주씨?”
“네? 뭐라고 하셨어요?”
“노래 잘 들었냐고 물었는데...”
“아,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했나 봐요.”
“괜찮은 거죠?”
“그럼요.”
남준씨가 걱정스레 나를 보고, 그는 아무 생각 없는 눈으로 나를 본다.
어색하게 웃어보이자 그가 먼저 내게서 눈을 뗀다.
*
촬영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우리를 남준씨는 저녁을 사주겠다며 그와 나를 데리고 조용한 한정식 집을 찾았다.
룸으로 들어와 주문으로 하고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과 마주 앉은 나는 그저 어색하고 민망한 분위기에 테이블 아래에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릴 뿐, 오가는 대화는 없다.
“밥 먹기 전부터 이런 얘기하면 불편한 거 아는데 두 사람 보니까 좀 답답해서 말해요.
특히 윤기형, 어제 얘기 다 해놓고 사람 민망하게 자꾸 쳐다보고. 여주씨도 자꾸 눈치 보시고 멍하던데.
이러면 나중에 여주씨랑 다 함께 촬영할 때 다들 불편해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거 눈치 챌 거고요.”
남준씨는 우리 둘을 타이르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하긴, 아직 남은 촬영이 한 달 정도 될 것 같다는 작가님의 말도 있었으니 우리는 최소한 한달은 더 부대끼며 숙소에서 함께 해야 한다.
그가 힐끔 나를 본다.
눈이 마주치자 피하지 않고 본다.
“세상에는 많은 의사들이 의료사고와 직면하며 살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고 실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잘 살아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양심에 가책이라곤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나는 내가 어디에 속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도망쳤고 지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지만 매일 생각나요.
나를 보던 사람들의 눈빛, 선배들의 원망, 유가족들의 울음소리 같은 거.
나는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요. 매번 상황이 힘들어지면 도망가거든요.
그래서 단 한 번도 이런 얘기를 못해봤어요. 그냥 나는 사람을 죽였다. 이렇게만 생각하면서 살아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니까. 지금 윤기씨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도 이해할게요.
뭐라고 하던 내가 잘못한 거잖아요. 내가 뭐라고 대꾸를 하겠어요.”
어느새 4화까지 왔네요!
얼른 뒷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은 웨이콩인데 아쉽게도 당분간은 글을 못 쓸 것 같아요ㅜ
주말은 친구와 짧은 여행이 있고 다음주는 며칧이 될지 모르겠지만 출장이 생겨버렷습니다
혹시나 올 수 있으면 올게요!
아마 못 올 확률이 80% 정도...?
그럼... 모두 즐거운 금요일, 행복한 주말 되시면 저도 행복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