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으레 널 떠올리게 되는 내가 있다. 우리의 끝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지만, 첫 연애란 어떤 슬픔을 간직하게 되더라도 언젠가는 빛을 발하게 되는 법이더라. 뭐, 나의 지론에 네가 동의할 수 없다 해도 좋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의 이별과, 그와 맞먹는 병마를 겪은 지금에서야 너에 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를 만난 최초의 기억은 어릴 적 잠시 다녔던 컴퓨터 학원에서였다. 지금 그 때의 네 모습은 이미 퇴색되어 흐릿하게 번져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학원을 그만둔 이후에도 네 이름 석 자는 잊혀지지 않고 이따금 생각이 났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여자중학교에 입학을 했으므로 너와의 접점은 영영 없을 거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기억은 고등학교 입학식 때였다. 같은 재단의 남자중학교 학생회장을 맡고 있던 네가 단상 위로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다. 흰 와이셔츠에 회색 바지의 교복을 러프하게 소화하던 네 모습. 그 동안 잊고 지냈던 네 이름이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널 처음 만난 때로부터 꼭 육 년째 되던 해였다. 내년이면 같은 학교에서 만나겠구나. 복도에서 어쩌다 한 번이라도 마주치는 행운이 있지 않을까 조금 설레었던 그 때의 나를 넌 알까.
그리고 열 여덟의 봄에 같은 학교에서, 나는 너를 다시 만났다. 너는 방송부원이었고, 신입생이었고, 키가 조금 자라 있었다. 쾌활하게 웃고, 떠드는 네 모습. 그리고 난 너와 참으로 대조적이게도, 우울증에 허덕이며 내세로의 자유를 꿈꾸는 한심한 여고생이 되어 있었지.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기보단 버겁게 살아내고 있었다는 것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머릿 속에서 하루 열두 번도 더 죽고 싶다고 외치고 있을 때, 너는 예고도 없이 그렇게 내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벚꽃처럼 잠시 스치듯 마주쳤던 그 봄날 이후의 기억은 그저 암전으로 남아 있을 뿐, 우리의 조우가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이루어졌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의 짧은 만남이 마침내 설레는 연애 감정으로 꽃피기 시작한 건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넌 수험생으로, 난 대학 신입생으로 또다시 위치가 갈렸다. 고작 한 살 차이라는 짧은 간격에도 서로 다른 사회에 속박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와 나 모두를 피곤하게 했다. 그래도 마냥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만큼. 그 때 잦은 현기증과 이상하게 온 몸을 감싼 은은한 열기가 불현듯 나를 찾아왔다. 건강검진 결과는 사형선고 같았다. 그러나 사형선고라는 단어를 인생이 끝장났다는 뜻으로 쓴 건 아니다. 내 잘못 아닌 잘못으로 사형수가 되었으나 결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으리란 결심이 내겐 있었으니까. 물론, 그 결심은 말할 것도 없이 네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찬열아, 두 장의 사진을 보면서 난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 시절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던 그 애와, 그런 그 애를 놀랄만큼 쏙 빼닮은 너는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문득 머리를 때려 오는 현기증은 눈 앞을 흐리는 것도 모자라 정신마저 빼 놓는 것 같다. 머리로는 너와 그 애가 동일인일 리 없음을, 잔인할 만큼 확실히 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연애는 그 때에 완전히 끝이 났다. 그럼에도 여태 묵은 감정을 비워내지 못한 것은 다 내 탓이고, 그래서 전혀 다른 사람인 너에게서 그 애를 보는 것 또한 내 잘못이다.
이 글을 마지막으로 난 그 애에 대한 혼잡한 추억을 깨끗이 비우려고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써 보는 글이기에, 난 일부러 그 애와의 행복했던 기억에 대해서만 썼다. 미처 쓰지 못한 끔찍한 결말은 예쁘게 포장해서 좋았던 시절이라는 카테고리에 차곡차곡 넣어 둘 생각이다. 그리고는 다시는 열어보지 않을 결심을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다시 이 곳에 돌아 오게 될 날을 미리 생각하진 말아야겠다. 이제 동이 트고 있다. 끝으로 찬열아, 그 애와는 별개로 네 선한 웃음이 날 이토록 행복하게 해 주었음을 새삼 고백한다. 너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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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퇴원하게 되었어요. 잘 쉬다가 돌아 올게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