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로 인해 감각 하나씩들 잃고 국가로부터 버려진 둘이 만나는 이야기가 보고싶다.
시각을 잃은 어둠의 능력을 가진 사쿠사 (빛의 유무 정도만 파악 가능)
청각을 잃은 얼음의 능력을 가진 닝 (진동의 유무로 소리의 유무 정도만 파악 가능)
잃어버린 감각을 제외한 시신경들이 더 예민해진 둘.
두 사람 모두 정부 소속일 당시에는 라이벌로 유명했겠지. 서로의 얼굴과 목소리도 알거야. 국내의 유일한 두 명의 최상위급 센티넬로 유명했을테니까. 하지만, 최소 투자 & 최대 이윤을 원했던 정부에 의해 혹사당했었어. 두 사람 다.
둘 중 먼저 부상을 입은 사람은 예상치 못한 테러에 능력을 과하게 사용해버린 닝. 폭주로 인해 청력을 잃게 되고 그 이후로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춘거야. 갑자기 사라진 인간병기에 대한 소문도 꽤나 떠돌았지만, 실은 정부로부터 버려진거겠지. 결함이 있는 무기는 투자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애꿎은 사람들에게 부상 입히고 싶지 않아 맞서 싸우는 대신 조용히 사라져 버린 것.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서 사쿠사가 시각을 잃어버리게 된거야. 똑같은 사유로, 똑같은 과정을 겪고 폭주를 하게 되었지. 그는 정부로부터 이용 가치를 잃어버린 도구 정도로 취급받게 되고, 암살 시도까지 당한 뒤로는 빠져나올거야. 시각은 잃었지만, 그만큼 사소한 기척이라든가 아주 작은 변화 조차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 덕에 잘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공간을 파악해가며 걸음을 옮기던 사쿠사는 어느 순간에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어. 그리고 불안감에 벽에 등을 지고 그림자를 키워내며 방어 태세를 취하지. 그때, 익숙치는 않지만,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와.
“이젠 그 쪽까지 보내서 날 죽이겠다?”
사쿠사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어쩐지 들어본 듯한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리려 애썼어.
“근데요, 언젠가는 우리도 버려지는 날이 오겠죠?”
“...”
“그냥 해본 말이에요.”
문득 기억의 먼 저편에서 떠오르는 몇 마디. 암살 시도를 당했을 당시 가장 먼저 떠올랐던 말의 주인. 무언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막아낸 사쿠사가 마침내 입을 열었어.
“닝.”
“...”
답은 돌아오지 않았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제 경쟁자이자 같은 공감대를 가진 유일한 존재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사쿠사는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묻지 못 했던 말들을 던질거야. 라이벌이라지만, 닝이 사라진 뒤로 정말 혼자가 되어버렸으니까.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어? 정부가 당신을 버린거야? 내가 지금 ...”
그렇게 말을 이으려던 찰나 닝이 그의 말을 뚝 끊어먹었어. 사쿠사가 그녀를 알던 당시와는 달리 필요 이상으로 큰 목소리로 말이야.
“나, 당신 말이 하나도 안 들려요. 청력을 잃었거든요.”
“아 ...”
이거 최악인걸. 사쿠사는 머리를 짚었어. 소통을 할 방법이 없었거든.
“그래도, 천천히 말해주면 알아들을 수는 있는데, 더 가까이 와줄래요?”
익숙함과 함께 찾아온 안도감에 사쿠사는 평소의 경계심 따위는 모두 잃은 채, 목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어.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불어오는 몇년 째 여전한 장미 향이 불어오는 곳으로 그는 느리게나마 닝에게 다가갔지.
사쿠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맹목적인 신뢰감은 닝이 어울리지도 않게 목소리를 키워낸다는 사실에서 어느정도는 기반됐을거야. 청력을 잃었다는 말과 어울리는 행동이었고, 폭주로 인해 결함을 얻어내고 만 인물을 정부가 가만둘리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니까.
누군가 제 앞에 서 있기라도 한듯 바람의 방향이 틀어짐을 느낀 사쿠사가 손을 들었어. 괜히 닝을 치고 싶지는 않아서 느리게 손을 휘저으면, 전투로 인해 거칠어졌지만, 섬세한 손이 부드럽게 그의 손목을 감았지.
“뭐해요.”
그 물음에 사쿠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어. 어찌 설명해야 할까. 마스크를 내린 사쿠사는 느리게 손을 들어 제 눈을 가리곤 또박또박, 그리고 또 느린 템포로 말을 했어.
“눈이 안 보여.”
“결국 내 신세가 됐군요.”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흘러나온 말에 사쿠사는 대꾸를 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어.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만이 감돌던 곳에는 곧 닝의 목소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지.
“그럼, 나랑 같이 갈래요?”
조금 더 나긋한,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는 닝의 제안에 사쿠사는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곤, 손을 움직여 제 손목을 감싼 닝의 손을 맞잡은 사쿠사가 반대편 손을 더듬어 닝의 볼을 감쌌지.
“뭐하는거예요?”
“확인.”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기라도 하듯 틀어지는 것에 사쿠사는 느릿하게 발음을 해줘.
“함정일까봐.”
“당신을 죽일 생각이었으면, 이미 죽였겠죠.”
“...”
“버려진 사람들끼리 돕고 살자는 말이에요.”
닝의 오른손을 꽉 쥔 채 사쿠사는 얌전히도 저를 끌고 가는 그녀를 따랐어. 어쩌면, 배신당할지도 모르고, 아주 어쩌면, 닝을 누군가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당연하게도 했어. 그렇지만, 제 처지를 알게 된 이후로 닝이 내뱉은 모든 말들에는 애달픔이 섞여 있었는걸.
닝이 사쿠사를 데리고 향하는 길에는 상쾌한 공기가 불었고, 때때로는 쓸쓸한 공기가 불어왔지만, 기분 나쁠 수준은 아니었지. 그렇기에, 그는 닝 특유의 은은한 장미향을 조용히 따랐어.
암흑 속에서 피어난 장미와도 같은 존재를 믿어도 된다고 여겼지.
*
“닝.”
“...”
“닝.”
아차한 사쿠사가 닝의 고개를 강제로 돌려 제 쪽을 바라보게 했어. 그의 손에 이끌린 닝은 반발하지 않을거야. 이유를 아니까.
“이름 부르는 대신에 이렇게 불러도 괜찮아요. 마음대로 내 몸을 움직이게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면, 비참함이 잊혀지거든요.”
“... 어.”
*
“가이딩은 어떻게 하는건데?”
“안해요.”
“뭐?”
“어차피 살고 싶어서 살아가는 거 아니거든요. 정 힘들것 같으면, 저 잘난 분들이 계시는 곳에 뛰어들어서 폭주를 또 일으킬 생각이에요. 그러면, 뭐라도 남기고 가는거겠죠.”
“...”
“그래도, 윗층의 창고에 약이 꽤 많이 구비되어 있어요. 가이드도 있으니, 부탁하면 해줄거예요.”
“됐어.”
“왜요?”
“네 생각이 마음에 들거든.”
사쿠사에게는 보이지 않는 웃음을 닝은 지어보였어.
*
“사랑해.”
“...”
“사랑해.”
“있죠. 그렇게 제 뒤에 서서 말해봤자, 저는 당신이 뭐라고하는지 모른다니까요?”
*
관계는 물론이고, 둘의 처지로는 행복한 결말을 맞을 수 없을거야. 파멸의 길을 걷고 말겠지.
둘을 찾아 쫓아온 정부에게 맞서다가 끝을 맞이해. 제 끝을 오래간 준비해온 닝이 먼저 뛰어들었지. 폭주에 다다를 정도로 핏대를 세우고, 눈의 실핏줄이 터질 지경으로 능력을 사용하는 닝에게 달려간 사쿠사가 이를 끌어안았어.
“저리가요. 죽기 싫으면.”
“싫어.”
“나 때문에 당신 죽는 거 싫으니까, 꺼지라고요.”
저 때문에 억지로 참아내기라도 하는지 잔뜩 일그러진 닝의 얼굴을 마주한 사쿠사는 긴 말 대신에 어떠한 단어를 선명하게도 발음해낼거야. 결국 너털웃음을 지은 닝은 사쿠사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제 능력에 집어삼키는 순간을 기다려.
한기만이 가득 자리한 공간은 빛 하나 새어들어오는 것 없이 어둡기만 했어. 그 곳에는 단 두 사람을 잡기 위해 쳐들어왔던 수백의 군사들또한 함께 묻히게 되었고, 일전에 말했던 대로 사쿠사와 닝은 동시에 눈을 감았지.
사쿠사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사랑한다는 말을 담았고, 닝은 답을 돌려주는 대신에 눈을 감음으로서 마음을 전했어.
그렇게 죽음의 길을 걸었지만, 그 어떠한 후회도 남지 않는 선택을 내리는 둘이 보고싶다.